프롤로그

"한 번에 한 분의 손님을 초대해 비건 만찬을 차려드려요.
대신 손님께선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식탁을 사이에 두고 당신과 나눈 대화를 기록하고 싶습니다."
- 담 - P5

엄살원의 손님들은 활동가들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너무 특수한 인간들의 집합이라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자기 일도 아닌 문제에 자기 일처럼 화를 내는 게 직업인 사람들. 여성, 장애인, 성노동자, 퀴어, 빈민, 홈리스, 청소년, 동물의 이야기가 곧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굳게 믿는 감각이상자들. 비관할 구석이 가득한 세상에서 냉소를 통해 똑똑해 보이기를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 너무 순진한 게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감수하면서 굳이 어떤 희망을가져보기로 한 사람들.
나를 매번 놀랍게 한 것은 활동가들이 타고나기를 강건한 영혼의 소유자이거나 남에게 베풀고 남을 만큼 자원과 사랑이 넉넉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도리어 그들은 아프고 취약하며 그렇다는 이유로 미움받은 역사 또한 긴 사람들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왜? 자기를 돌보아도 모자랄 시간에 왜 어떤 사람들은 남을 돌보겠다고 오지랖을부리는 걸까? - P6

손더스의 표현을 빌려 엄살원의 손님들에게 나는 묻고싶었다. 당신들은 어떻게 ‘자기 자신의 일부‘이기를 그만두겠다는 놀라운 선택을 내릴 수 있었느냐고. 어떤 계기로 우리는 자신이기만 했던 자신의 투명도를 낮추어 마침내 나 아닌 존재들과 하나로 포개질까? 나는 고작 나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진실을 추구하는 데는 어떤 기쁨과 슬픔이따를까?
활동가들의 대답은 다양했지만, 그들이 모두 밥을 먹고 산다는 점만은 같았다. 그들처럼 나의 일부이길 그친 나, 나만은 아닌 나, 시끄럽고 커다랗고 무수한 나로 살아보려는 일은 많은 열량을 소모한다. 그래서 이들에게 밥을 든든히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밥상 앞에 앉은 손님들의 얼굴은 유순하기 그지없다. 농성에 도가 튼 사람이건 국회를 드나드는 사람이건, 수저를 쥐는 손만큼은 다들 조그맣다. 한명의 인간은 누구든 이렇게 작다는 사실, 그 사실 때문에 때로는 기가 막히고 때로는 가슴이 미어졌다. - P7

여름  저는 자기돌봄이란 말을 보면, 살고 싶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자기돌봄을 잘 안 하는 타입이거든요. 죽음에 대한 열망과 거리두기를 실패한 삶을 살고있어서••• 제 몸을 돌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다 해도 한때에 지나지 않고요. 자기 몸을 돌보고, 자신에게 좋은 것을 스스로 제공하고 싶은 마음과 노력을 놓치지 않는 건 어떻게해야 하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근데 그런 걸 몰라도 그냥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겠죠? 저처럼.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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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시에 낙방을 하고 죽은 듯이 두어 달을 방에 틀어박혀지내던 오빠는 아랫녘에서 슬금슬금 꽃소식이 올라오기 시작하자 기어이 배낭을 지고 집을 떠났다. 으레 오빠는 봄이 오는 것을 견디지 못해 잔설이 녹을 무렵이면 집을 떠나곤 했었으나 그시절 한참 소설 읽기에 빠져 있어 인생이나 사람을 보는 눈이 까닭 없이 허허롭기만 했던 내 눈에 집 떠나는 오빠의 모습은 등산용 배낭과, 물들인 작업복 차림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운명의 힘에 이끌려 무명 동저고릿바람에 엿목판을 지고바람처럼 떠돌아야만 했던 소설 속의 사내처럼 보이기만 했다. - P116

가진 것이 없어지자 오빠는 더욱 허황해졌다.
하루에도 몇 가지씩 사업 계획을 세웠다가 허물고 다시 세우면서 별반 알아듣지도 못하는 나나 어머니에게 설명을 늘어놓거나 사장을 육촌아저씨로 둔 친구를 만나 다시 계획을 짜며 우리형편으로는 꿈같은 오백만 원, 천만 원 소리를 거침없이 해대는것이었다. - P121

애정이 시간을 지배할 수 있을까. 시간에서 해방시킬 수 있을까. 아이의 얼굴에 떠오를 한번의 웃음을 위해, 단음절의 외침을위해 열 번을 울어보이고 스무 번을 웃어보이며 나는 이 아이도곧 내게서 떠나리라는 것에 괴로워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사랑의 허구가 아닐까.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보고 있는 것은 진실의 환상뿐이 아닐까. 믿고 싶은 것밖에는 믿을 수 없는 것이 아닐까. - P164

허위허위 올라온 길들은 꼬리를 잘라 흔적을 없애는 도마뱀처럼 재빨리 집들 사이로 숨어버렸다. 대신 연민과 증오와 욕정과 무관심으로 녹여버린 애정이, 지나간 시간들이 눅눅한 공기 속에서 숨쉬고 있었다.
앞으로의 모든 날들이 그러할 것이다.
내 앞에 놓인 끝없는 시간들이, 전혀 믿지 않는 것을 믿는 체하며 행복하게 살아야 할 그 지루한 나날들이 함성이 되어 숲을 흔들었다. 나는 문득 이미 죽은 사람을 생각하듯 아이와 남편을먼눈으로 보는 자신에 공포를 느꼈다. 아이의 팔목에 매달린 풍선이 둥실 떠서 흔들렸다. 나는 갑작스런 두려움으로 아이의 팔에서 풍선을 떼어내었다. 그것은 춤추듯 흔들리며 날아가 이내 어둠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아이를 다시금 들쳐업고 단단히 띠를 동여매었다.
비탈을 내려가는 동안 아이는 점차 가벼워지고 나는 종아리에스치는 잡초의 서걱거리는 소리에도 깃털처럼 가벼워진 아이를 흘려버릴 것 같은 두려움으로 자꾸 잠든 아이의 이름을 불러대었다. - P169

황토흙이 좁은 사잇길로 벌겋게 흘러내려 발가락 사이로 스며들었다.
이른바 ‘특지‘는 그 좁고 가파른 길의 꼭대기였다. 일련 번호가 표시된 것도 아니어서 정옥은 별반 미덥지 않은 어머니의 기억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었다.
정옥은 다시 아이를 업었다. 길은 두 사람이 나란히 오르기에도 좁았다. 어머니는 택지만 닦아놓았던 분양 당시와 무덤이 들어찬 풍경이 너무도 다름에 기억의 혼란을 일으키는 기색이 완연했다.
계약서의 도면을 꺼내들고 출발했던 지점부터 되짚어 하나씩도면의 번호와 맞춰가기 시작했다. 그러는 중에도 연신 깨금발로 서서 샌들의 흙을 털어내며 혀를 찼다. 합장묘를 준비한 것에 안심하면서도 어쨌든 공동 묘지라는 사실이 서운한가 보았다.
선산은 북쪽이었다. 겨울에 상을 당하면 집뜰에 가묘를 쓰고얼음 풀린 후에야 새로이 장례를 치러 산에 매장을 한다고 했다.
"여길 올라가려면 시신이 서서 가겠구나." - P213

"더 주무시지 않구요."
이른 아침 집 앞 골목을 쓸고 온 부지런한 가장에게처럼 그녀는 천연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돌아서서는, 그에게는 들릴 리 없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난 아무것도 몰라요. 그냥 아무것도모르는 여자예요. 그걸 불행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비 온뒤 부드럽고 따뜻한 땅에 꽃씨를 뿌리고, 싹이 돋아 피어나는 모습에 놀라 기뻐하는 여자예요. 욕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그날그날을 남들처럼 예사롭게 살아갈 수 있어요. 미래도 있구요. 아이가 있잖아요. 그러면 그는 대답할 것이다. 당신은 꽃씨나 뿌리면서 살자 하지만 꽃씨를 뿌리는 마음은 또 무엇이오, 그것은 꽃을보고자 하는 기다림과 꿈이 있기 때문일 것이오.
정옥이 미래라고 부르는, 자신이 죽은 뒤의 시간과 공간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그것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기 때문이다. 세상과 함께 핏줄을 남겨놓고 가기 때문이다. - P215

그는 상영 도중 극장을 나왔다. 밖은 여전히 대낮이었다. 해를따라 걸으며 그는 머릿속의 안개를, 그 비현실감을 걷어내려는듯 자꾸 머리를 흔들었다. 고깔 모자를 쓰고 미친 듯 춤을 추던 검고 흰 사람들. 초라하고 피로에 지친 만삭의 임부, 울고 있는아이. 그것은 어제의 일이던가. 조금 전의 일인가, 아니면 내일의 일인가. 어제와 그저께와 또 훨씬 이전, 자신의 몸을 빌려 지나갔을 어느 한 생의 기억과 구별할 수 없는 똑같은 길을 걸으며 그는 비로소 자신이 왜 울었던가를 알 것 같았다. 아들 때문이었다. 그가 희구하는 평화로운 삶, 아들이 살기를 바라는, 그러나 아들 역시 실패하고야 말 삶, 그럼에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의 어쩔 수 없는 아름다움 때문이었다. - P222

문 앞에 ‘입실 금지‘ 니, ‘금남‘ ‘금녀‘ 등을 서투른 한문으로써붙이고 혹은 ‘요 노크‘ 따위 뒤에 붉은 매직펜으로 느낌표를세 개씩 붙이거나 아들이 해적선 표시를 본떠 뼈가 엇갈린 해골모양을 그려 붙이던 것을, 반드시 책상 서랍과 문을 잠그고 다니던 시절을 생각하고 그 여자는 미소를 지었다. 아이들은 그렇게자란다. 그리고 어느 때부터인가 그애들은 문을 잠그는 일을 소홀히 하기 시작했다. 이제 비밀은 일기장이나 마른 꽃, 네잎 클로버가 붙여진 편지 묶음, 우정의 맹세 따위에 있는 게 아니라는뜻이겠지. - P254

영원히 소멸되지 않고 떠다니는 고통에 가득 찬 심장이 있을까. 육체가 소멸한 뒤에, 그것은 물과 불과 공기와 흙이 되어 떠돌 뿐 세상의 눈 밝은 자 뉘라서 그걸 알랴.
그러면서도 그 여자는 지난 세월 동안 출근하는 남편, 문밖으로 나가는 아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다시 저들을 볼 수 있을까. 지금의 작별이 추억의 한 순간으로 남게 되는 것은 아닐까.
미래의 어느 날, 나는 사고가 있던 날 역시 여느 날과 다름없었던 아침이었다고 회상하며 평온한 기류 속에 숨어 있던 불행한사건의 전조를 알리는 어떤 암시를 캐내어보려고 애쓰게 되거나않을까 따위들을 아득하게 생각하곤 했다. - P260

그 여자는 느릿느릿 마루의 전등 스위치를 올렸다. 불이 들어오기까지의 일 초나 이 초, 혹은 그보다 짧은 순간 그 여자는 어둠 속을 섬광처럼 지나치는 무엇을 보았다. 그것은 무언가 차갑고 날카로운 이물스러움이 그녀의 생애를 꿰뚫고 지나간 느낌이기도 했다. 아마도 일생을 동반해온 벗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그녀보다 앞서 이 집에서 웃고 숨쉬며 떠들며 살아갔던 사람들, 아니 그들보다 앞서 살았던 사람들, 또한 그 여자의 흔적, 비탄, 막연한 불안과 분노, 비애 따위를 한 번의 페인트 칠로 말끔히 지우고 천연덕스럽게 살아갈, 미래의 사람들의 가면처럼 냉혹하고창백한 얼굴들이었다.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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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감 연구의 선구적 학자인 필 테들록(Phil Tetlock)에 따르면, 책임감(accountability)의 개념은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우리가무엇에 책임이 있다는 것은, 그 무엇에 대한 우리의 믿음. 느낌. 행동을 남들에게 정당화해야 한다는 뜻이며, 그런 정당화를 사람들이 당연히 기대한다는 뜻이다." 더불어 책임감에는 우리가 스스로를 얼마나 잘 정당화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상과 벌이 달라지리라는 기대도 들어 있다. 어떤 사태가 일어났을 때 누구도 그 일을 해명하지 못하고, 또 사람들이 태만하게 일하거나 사기를 쳐도 벌을 받지않는다면, 결국엔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 P152

인간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이 책임감의 망(網) 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테틀록은 아주 유용한 비유를 든다. 즉, 우리는 직관적인 정치인처럼 행동하는데, 각양각색의 유권자를 앞에 두고 호소력 있는 도덕적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비지땀을흘린다는 것이다. 콜버그나 튜리얼 같은 합리주의자들의 주장을 보면, 아동들은 마치 꼬마과학자와도 같은 모습이다. 이들은 아이들이 논리와 실험을 통해 스스로 진실을 찾아나간다고 생각했다. 물론 아이들이 물리적 세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걸 보면 이러한 과학자의 비유가 잘 통하는 것도 같다. 아이들은 정말로 이러저러한 가설을 세워보고, 또 그 가설을 검증해가며 한발 한발 진실에 다가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테틀록의 주장에 따르면, 사회적 세계는 그와는 사정이 다르다. 사회적 세계는 글라우콘식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실제보다는 외관이 훨씬 큰 중요성을 갖는 것이 보통이다. - P153

합리주의자들에게는 이러한 연구 내용이 희소식으로 들릴지 모르했다. 중요한 일이라고 믿는 상황에서는 우리가 언제든 정교한 사고를 할 수 있다는 뜻일 테니 말이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테이밝혀낸 바에 따르면, 정교한 추론에는 두 종류가 있고 둘은 매우 다른 성격을 지닌다. 우선 그중 하나인 탐구적 사고는 우리가 대안이 될 수 있는 여러 관점을 공평하게 헤아려보는 것"을 일컫는다. 그에비해 확증적 사고는 우리가 "특정 관점을 합리화하기 위해 기울이는일방적인 노력"을 말한다." 책임감이 탐구적 사고를 증가시키려면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한다. (1) 의사결정자는어떤 견해를 갖기 전 그 견해를 나중에 자신이 청중에게 해명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2) 의사결정자는 청중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몰라야 한다. (3) 의사결정자가 보기에 청중은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또 정확성에도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어야 한다.
이 세 조건이 모두 충족될 때에야 사람들은 그야말로 피 터지게 노력하여 진실을 찾으려고 한다. 이때는 청중이 듣고 싶어 하는 것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외의 경우에 (우리 삶은 거의 백이면백 여기에 해당한다), 책임감 압력은 확증적 사고만 더 증가시킬 뿐이다. 사람들은 정말 올바른 사람이 되기보다는 올바른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더 애쓰는 것이다. 사람들의 이 같은 모습을 테틀록은 다음과 같이 요약 정리한다.

지금 나의 행동 방식이 남에게 충분히 정당화되고 양해받을 수 있는가에대한 확신을 갖는 것이 바로 사고의 주된 기능이다. 내가 한 선택들이 얼마나 정당화될 수 있는지를 따져보는 이 과정은 의사결정을 할 때 너무도 흔하게 일어난다. 사람들은 남에게 자신의 선택을 설명해야 할 때도 뭔가 받아들여질 만한 이유를 찾지만, 자신이 ‘올바른‘ 선택을 했음을 스스로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도 이러저러한 이유를 찾는다." - P154

그러한 개인적 이득보다 사람들은 인종, 지역, 종교, 정치와 관련해 자신이 어느 집단에 속했는지를 더 신경 쓰는 경향이 있다. 정치학자 돈 킨더(Don Kinder)는 이와 관련해 자신의 연구 결과를 다음과같은 말로 요약한다. "시민들은 여론조사에 임할 때면 ‘이것이 나한테 어떤 도움이 되지?‘라고 묻기보다 ‘이것이 우리 집단에 어떤 도움이 되지?‘라고 묻는 듯하다. 사람들이 가진 정치적 견해는 마치 "배지처럼 그가 어떤 사회집단에 속해 있는지를 일러준다." 사람들이 자동차 범퍼에 각종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며 특정 정치 표어, 대학, 스포츠 팀을 지지하는 것이 이와 비슷하다. 즉, 우리가 가지는 정치적 견해는 우리 개인의 것이라기보다는 우리 집단의 것이다.
사람들은 같은 모양에서조차 자신이 원하는 것을 본다. 그러니 당파가 서로 다른 사람들 눈에 세상 속의 사실들이 얼마나 다르게 보일지는 아마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이러한 ‘태도 양극화(attitude polarization)‘ 효과를 논한 연구는 이미 여러 건인데, 이 연구들을 보면 당파로 인해 서로 다른 경향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일련의 정보를한 가지씩 주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다.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의 경우에는 특정 상황 속에서 태도 양극화가 더 심해지는 양상을 띤다. 이를테면 사형 제도가 범죄 예방 효과가 있는지 연구한 논문을 읽게 하거나, 대통령 후보들이 토론회에 나와서 얼마나 훌륭한 주장을 했는지 평가하게 하거나, 아니면 정부의 차별 철폐 조처나 총기 관련 규제에 대한 논변을 평가하라고 하면, 이 둘 사이는 더 벌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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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내게 연약한 넓적다리, 혹은 발목을 잡던 악력(握力), 막연히 따스하고 부드러운 것, 보다 커다란 것. 땀으로 젖어있던 등허리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기억 역시 내 상상이 꾸며낸 더 먼 꿈속의 일은 아니었을까.
전쟁이 끝나면 아버지가 돌아온다. 두 해가 지나도록 소식이없었지만 할머니는 끈기 있게 기다렸다.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정다운 기억,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돌아온다는 사실에 우리는 모두 얼마쯤의 불안과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매일 술 취해 돌아오는 어머니를 향해,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뭐라고 하실까요. 차갑게 협박하는 오빠까지도, 우리가 임자 없는 닭의 맛에 길들여지듯, 어머니의 지갑을 더듬는 내 손길이 점차 담대해지고 빼내는 돈의 액수가 많아지듯, 할머니가 단말마의 비명도 없는 도살(屠殺)의 비기(秘技)를 익혀가듯, 그리고 종내는 눈의 정기만으로도 닭들이 스스로 죽지 밑에 고개를 묻고 널브러지듯 아버지 역시 달라져 있을 것이다. 아버지가 우리를 떠나 있던 그 긴 시간의 갈피짬마다 연기처럼 모호히 서린 낯섦은 새로운 전쟁으로 우리 사이에 재연될 것이기에 차라리 그립고 정답게 아버지를 추억하며 희망 없는 기다림으로 우리 모두 아버지가 영영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거나 돌아오지 않을 사람으로 치부하고 있음을 변명하고 용서를 구하는것이나 아니었는지. - P48

바다를 한 뼘만치 밀어둔 시의 끝, 해안 동네에 다다라 우리는짐들과 함께 트럭에서 내려졌다. 밤새 따라오던 달은 빛을 잃고 서쪽 하늘에 원반처럼 납작하게 걸려 있었다. 트럭이 멎은 곳은낡은 목조의 이층집 앞이었는데 아래층은 길가에 연해 상점들처럼 몇 쪽의 유리문으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흙먼지가 부옇게 앉은 유리에 붉은 페인트로 석유 배급소라고 씌어 있었다.
앞으로 우리가 살게 될 집이었다.
나는 새삼스럽게 달려드는 차가운 공기에 이빨을 마주치며 언제나 내 몫인 네 살짜리 사내동생을 업었다.
우리가 요란하게 가로질러 온, 그리고 트럭의 뒤꽁무니 이삿짐들 틈에서 호기심과 기대로 목을 빼어 바라본 시는 내가 피난지인 시골에서 꿈꾸어오던 도회지와는 달랐다. 나는 밀대 끝에서 피어오르는 오색의 비누방울 혹은 말로만 듣던 먼 나라의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우리가 가게 될 도회지를 생각하곤 했었다. - P73

지난밤 떠나온 시골과는 모든 것이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나는잠시, 우리가 정말 이사를 온 것일까, 낯선 곳에 온 것일까. 이상한 혼란에 빠졌다. 그것은 공기중에 이내처럼 짙게 서려 있는, 무척 친숙하고, 내용은 잊혀진 채 분위기만 남아 있는 꿈과도 같은 냄새 때문이었다. 무슨 냄새였던가. - P74

푸줏간에 잇대어 후추나 흑설탕, 근으로 달아주는 중국차 따위를 파는 잡화점이 있었다. 이 거리에 있는 단 하나의 중국인가게였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가끔 돼지고기를 사러 푸줏간에갈 뿐 잡화점에는 가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옷이나 신발에 다는장식용 구슬, 염색 물감, 폭죽놀이에 쓰이는 화약 따위가 필요치않았기 때문이었다.
햇빛이 밝은 날에도 한 쪽 덧문만 열린 가게는 어둡고 먼지가낀 듯 침침했다.
그러나 저녁 무렵이 되면 바구니를 팔에 건 중국인들이 모여들었다. 뒤통수에 쇠똥처럼 바짝 말아붙인 머리를 조금씩 흔들며 엄청나게 두꺼운 귓불에 은고리를 달고 전족한 발을 뒤뚱거리면서 여자들은 여러 갈래로 난 길을 통해 마치 땅거미처럼 스름스름 중국인 거리로 향했다.
남자들은 가게 앞에 내놓은 의자에 앉아 말없이 오랫동안 대통 담배를 피우다가 올 때처럼 사라졌다. 그들은 대개 늙은이들이었다.
우리는 찻길과 인도를 가름짓는 낮고 좁은 턱에 엉덩이를 붙이고 나란히 앉아 발장단을 치며 그들을 손가락질했다.
아편을 피우고 있는 거야, 더러운 아편쟁이들.
정말 긴 대통을 통해 나오는 연기는 심상치 않은 노오란빛으로 흐트러지고 있었다.
늙은 중국인들은 이러한 우리들에게 가끔 미소를 지었다.
통틀어 중국인 거리라고 불리는 동네에, 바로 그들과 인접해살고 있으면서도 그들 중국인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아이들뿐이었다. 어른들은 무관심하게 그러나 경멸하는 어조로 ‘놈들‘ 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들과 전혀 접촉이 없었음에도 언덕 위의 이층집, 그속에 사는 사람들은 한없이 상상과 호기심의 효모(酵母)였다.
그들은 우리에게 밀수업자, 아편쟁이, 누더기의 바늘땀마다금을 넣는 쿠리. 그리고 말발굽을 울리며 언 땅을 휘몰아치는 마적단, 원수의 생 간(肝)을 내어 형님도 한 점, 아우도 한 점 씹어먹는 오랑캐. 사람 고기로 만두를 빚는 백정, 뒤를 보면 바지도올리기 전 꼿꼿이 언채 서 있다는 북만주 벌판의 똥덩어리였다.
굳게 닫힌 문의 안쪽에 있는 것은, 십 년을 사귀어도 좀체 내뵈지 않는다는 깊은 흉중에 든 것은 금인가, 아편인가, 의심인가. - P78

이건 비밀이야.
매기언니의 방에서는 무엇이든 비밀이었다. 서랍장의 옷갈피짬에서 꺼낸 비로드 상자 속에는 세 줄짜리 진주 목걸이, 여러가지 빛깔로 야단스럽게 물들인 유리알 브로치, 귀걸이 따위가들어 있었다. 치옥이는 그 중 알이 굵은 유리 목걸이를 걸고 거울 앞에서 단호하게 말했다.
난 커서 양갈보가 될 테야. 매기언니가 목걸이도 구두도 옷도다 준댔어. - P82

다음날 나는 아무도 몰래 반닫이를 열고 손수건 뭉치를다. 그리고는 공원으로 올라가 장군의 동상에서부터 숲 쪽으로 할머니의 나이 수만큼 예순다섯 발자국을 걸어 숲의 다섯번째오리나무 밑에 깊이 묻었다.
겨울의 끝 무렵 우리는 할머니의 부음을 들었다. 택시에 실려떠난 지 두 계절 만이었다.
산월을 앞둔 어머니는 새삼스럽게 할머니가 쓰던, 이제는 우리들의 해진 옷가지들이 뒤죽박죽 되는 대로 쑤셔박힌 반닫이를 어루만지며 울었다.
저녁 내내 아무도 찾아내지 못할, 골방의 잡동사니들 틈에서숨을 죽이고 있던 나는 밤이 되자 공원으로 올라갔다. 아주 깜깜했지만 나는 예순다섯 걸음을 걷지 않고도 정확히 숲의 다섯번째 오리나무를 찾을 수 있었다.
깊은 땅속에서 두 계절을 묻혀 있던 손수건은 썩은 지푸라기처럼 축축하게 손가락 사이에서 묻어났다. 동강난 비취 반지와녹슨 버클, 몇 닢 백동전의 흙을 털어 가만히 손 안에 쥐었다. 똑같았다. 모두가 전과 다름없었다. 잠시의 온기와 이내 되살아나는 차가움.
나는 다시 손 안의 물건들을 나무 밑에 묻고 흙을 덮었다. 손의 흙을 털고 나무 밑을 꼭꼭 밟아 다진 뒤 일정한 보폭을 유지하는 데 신경을 쓰며 장군의 동상을 향해 걸었다. 예순 번을 세자 동상이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히 두 계절 전 예순다섯 걸음의 거리였다. 앞으로 다시 두 계절이 지나면 쉰 걸음으로도 닿을 수가 있을까, 다시 일 년이 지나면, 그리고 십 년이 지나면 단 한걸음으로 날 듯 닿을 수 있을까.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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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뜰

홧 아 유 두잉?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아임 리딩 어북, 나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홧즈 유어 프렌드 두잉? 당신의친구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석양이 오빠의 이마와 목덜미를 붉게 물들이며 방을 깊숙이가로질렀다.
내가 기억하는 한의 그 시간은 늘 그랬다.
함석 지붕이 흐를 듯 뜨겁게 달아오르고 저녁 햇빛이 칼처럼방안에 깊숙이 꽂힐 즈음이면 어머니는 화장을 시작하고 오빠는 창가에 놓인, 붉은 꽃무늬의 도배지 바른 궤짝 앞에 앉아 꼼짝않고 소리 높이 영어책을 읽었다. 나는 어머니의 곁에 앉아 갖가지 화장품이 담긴 병들을 만지작거리거나 창을 통해서 멀찍이보이는 개울의 다리와 신작로, 그리고 더 멀리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초등학교의 창을, 점점이 붉은 빛이 묻어나는 새털구름들을 바라보며 이유가 분명치 않은 조바심으로 어머니와 오빠 사이의, 은밀히 조성되어가는 팽팽한 공기를 지켜보았다. - P9

거울 속에는 언제나 좁은 방안이 가득 담겨 있었다.
소꿉놀이를 하다가도, 게으르게 눈을 껌벅이며 잠에서 깨어나서도, 싸움질을 하다가도, 허겁지겁 밥을 먹다가도 문득 눈을 들면 방의 한구석에 버티어 선 거울이 자신은 볼 수 없는 등까지도 환히 비추는 바람에, 우리는 거울 속에서 낯설게 만나지는 자신에게 경원과 면구스러움을 느껴 옆으로 슬쩍 비켜서거나 남의 얼굴처럼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 P11

나는 오빠가 또 언니를 때릴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저렇게 묵묵히 있는 것도 아마 트집 잡을 궁리에 골몰한 탓일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는 밤이면 오빠는 언니를 때렸고 할머니는 말릴 염도 없이 동생을 업고 나가 개울가를 서성거렸다.
오빠의 매질은 무서웠다. 오빠는 작은 폭군이었다. 아버지가떠난 이래 부쩍부쩍 자라는 오빠의 몸이 어느결엔가 아버지의빈자리를 채웠다. 어머니가 읍내 밥집에 나가게 되면서부터. 그리고 수상쩍은 외박이 잦아지자 오빠는 암암리에 아버지의 위치를 수락하였음을, 공공연히 자행되는 매질로 나타냈다.
오빠는 자신이 가장임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어 언제나 침울하고 긴장으로 부자연스럽게 굳어 있었다. 그 긴장으로 억눌려져 자라지 못하는 욕망, 자라지 못하는 슬픔, 분노 따위는 엉뚱한 잔인성이나 폭력의 형태로 나타났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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