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내게 연약한 넓적다리, 혹은 발목을 잡던 악력(握力), 막연히 따스하고 부드러운 것, 보다 커다란 것. 땀으로 젖어있던 등허리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기억 역시 내 상상이 꾸며낸 더 먼 꿈속의 일은 아니었을까.
전쟁이 끝나면 아버지가 돌아온다. 두 해가 지나도록 소식이없었지만 할머니는 끈기 있게 기다렸다.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정다운 기억,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돌아온다는 사실에 우리는 모두 얼마쯤의 불안과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매일 술 취해 돌아오는 어머니를 향해,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뭐라고 하실까요. 차갑게 협박하는 오빠까지도, 우리가 임자 없는 닭의 맛에 길들여지듯, 어머니의 지갑을 더듬는 내 손길이 점차 담대해지고 빼내는 돈의 액수가 많아지듯, 할머니가 단말마의 비명도 없는 도살(屠殺)의 비기(秘技)를 익혀가듯, 그리고 종내는 눈의 정기만으로도 닭들이 스스로 죽지 밑에 고개를 묻고 널브러지듯 아버지 역시 달라져 있을 것이다. 아버지가 우리를 떠나 있던 그 긴 시간의 갈피짬마다 연기처럼 모호히 서린 낯섦은 새로운 전쟁으로 우리 사이에 재연될 것이기에 차라리 그립고 정답게 아버지를 추억하며 희망 없는 기다림으로 우리 모두 아버지가 영영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거나 돌아오지 않을 사람으로 치부하고 있음을 변명하고 용서를 구하는것이나 아니었는지. - P48

바다를 한 뼘만치 밀어둔 시의 끝, 해안 동네에 다다라 우리는짐들과 함께 트럭에서 내려졌다. 밤새 따라오던 달은 빛을 잃고 서쪽 하늘에 원반처럼 납작하게 걸려 있었다. 트럭이 멎은 곳은낡은 목조의 이층집 앞이었는데 아래층은 길가에 연해 상점들처럼 몇 쪽의 유리문으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흙먼지가 부옇게 앉은 유리에 붉은 페인트로 석유 배급소라고 씌어 있었다.
앞으로 우리가 살게 될 집이었다.
나는 새삼스럽게 달려드는 차가운 공기에 이빨을 마주치며 언제나 내 몫인 네 살짜리 사내동생을 업었다.
우리가 요란하게 가로질러 온, 그리고 트럭의 뒤꽁무니 이삿짐들 틈에서 호기심과 기대로 목을 빼어 바라본 시는 내가 피난지인 시골에서 꿈꾸어오던 도회지와는 달랐다. 나는 밀대 끝에서 피어오르는 오색의 비누방울 혹은 말로만 듣던 먼 나라의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우리가 가게 될 도회지를 생각하곤 했었다. - P73

지난밤 떠나온 시골과는 모든 것이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나는잠시, 우리가 정말 이사를 온 것일까, 낯선 곳에 온 것일까. 이상한 혼란에 빠졌다. 그것은 공기중에 이내처럼 짙게 서려 있는, 무척 친숙하고, 내용은 잊혀진 채 분위기만 남아 있는 꿈과도 같은 냄새 때문이었다. 무슨 냄새였던가. - P74

푸줏간에 잇대어 후추나 흑설탕, 근으로 달아주는 중국차 따위를 파는 잡화점이 있었다. 이 거리에 있는 단 하나의 중국인가게였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가끔 돼지고기를 사러 푸줏간에갈 뿐 잡화점에는 가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옷이나 신발에 다는장식용 구슬, 염색 물감, 폭죽놀이에 쓰이는 화약 따위가 필요치않았기 때문이었다.
햇빛이 밝은 날에도 한 쪽 덧문만 열린 가게는 어둡고 먼지가낀 듯 침침했다.
그러나 저녁 무렵이 되면 바구니를 팔에 건 중국인들이 모여들었다. 뒤통수에 쇠똥처럼 바짝 말아붙인 머리를 조금씩 흔들며 엄청나게 두꺼운 귓불에 은고리를 달고 전족한 발을 뒤뚱거리면서 여자들은 여러 갈래로 난 길을 통해 마치 땅거미처럼 스름스름 중국인 거리로 향했다.
남자들은 가게 앞에 내놓은 의자에 앉아 말없이 오랫동안 대통 담배를 피우다가 올 때처럼 사라졌다. 그들은 대개 늙은이들이었다.
우리는 찻길과 인도를 가름짓는 낮고 좁은 턱에 엉덩이를 붙이고 나란히 앉아 발장단을 치며 그들을 손가락질했다.
아편을 피우고 있는 거야, 더러운 아편쟁이들.
정말 긴 대통을 통해 나오는 연기는 심상치 않은 노오란빛으로 흐트러지고 있었다.
늙은 중국인들은 이러한 우리들에게 가끔 미소를 지었다.
통틀어 중국인 거리라고 불리는 동네에, 바로 그들과 인접해살고 있으면서도 그들 중국인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아이들뿐이었다. 어른들은 무관심하게 그러나 경멸하는 어조로 ‘놈들‘ 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들과 전혀 접촉이 없었음에도 언덕 위의 이층집, 그속에 사는 사람들은 한없이 상상과 호기심의 효모(酵母)였다.
그들은 우리에게 밀수업자, 아편쟁이, 누더기의 바늘땀마다금을 넣는 쿠리. 그리고 말발굽을 울리며 언 땅을 휘몰아치는 마적단, 원수의 생 간(肝)을 내어 형님도 한 점, 아우도 한 점 씹어먹는 오랑캐. 사람 고기로 만두를 빚는 백정, 뒤를 보면 바지도올리기 전 꼿꼿이 언채 서 있다는 북만주 벌판의 똥덩어리였다.
굳게 닫힌 문의 안쪽에 있는 것은, 십 년을 사귀어도 좀체 내뵈지 않는다는 깊은 흉중에 든 것은 금인가, 아편인가, 의심인가. - P78

이건 비밀이야.
매기언니의 방에서는 무엇이든 비밀이었다. 서랍장의 옷갈피짬에서 꺼낸 비로드 상자 속에는 세 줄짜리 진주 목걸이, 여러가지 빛깔로 야단스럽게 물들인 유리알 브로치, 귀걸이 따위가들어 있었다. 치옥이는 그 중 알이 굵은 유리 목걸이를 걸고 거울 앞에서 단호하게 말했다.
난 커서 양갈보가 될 테야. 매기언니가 목걸이도 구두도 옷도다 준댔어. - P82

다음날 나는 아무도 몰래 반닫이를 열고 손수건 뭉치를다. 그리고는 공원으로 올라가 장군의 동상에서부터 숲 쪽으로 할머니의 나이 수만큼 예순다섯 발자국을 걸어 숲의 다섯번째오리나무 밑에 깊이 묻었다.
겨울의 끝 무렵 우리는 할머니의 부음을 들었다. 택시에 실려떠난 지 두 계절 만이었다.
산월을 앞둔 어머니는 새삼스럽게 할머니가 쓰던, 이제는 우리들의 해진 옷가지들이 뒤죽박죽 되는 대로 쑤셔박힌 반닫이를 어루만지며 울었다.
저녁 내내 아무도 찾아내지 못할, 골방의 잡동사니들 틈에서숨을 죽이고 있던 나는 밤이 되자 공원으로 올라갔다. 아주 깜깜했지만 나는 예순다섯 걸음을 걷지 않고도 정확히 숲의 다섯번째 오리나무를 찾을 수 있었다.
깊은 땅속에서 두 계절을 묻혀 있던 손수건은 썩은 지푸라기처럼 축축하게 손가락 사이에서 묻어났다. 동강난 비취 반지와녹슨 버클, 몇 닢 백동전의 흙을 털어 가만히 손 안에 쥐었다. 똑같았다. 모두가 전과 다름없었다. 잠시의 온기와 이내 되살아나는 차가움.
나는 다시 손 안의 물건들을 나무 밑에 묻고 흙을 덮었다. 손의 흙을 털고 나무 밑을 꼭꼭 밟아 다진 뒤 일정한 보폭을 유지하는 데 신경을 쓰며 장군의 동상을 향해 걸었다. 예순 번을 세자 동상이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히 두 계절 전 예순다섯 걸음의 거리였다. 앞으로 다시 두 계절이 지나면 쉰 걸음으로도 닿을 수가 있을까, 다시 일 년이 지나면, 그리고 십 년이 지나면 단 한걸음으로 날 듯 닿을 수 있을까. - P9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