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감 연구의 선구적 학자인 필 테들록(Phil Tetlock)에 따르면, 책임감(accountability)의 개념은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우리가무엇에 책임이 있다는 것은, 그 무엇에 대한 우리의 믿음. 느낌. 행동을 남들에게 정당화해야 한다는 뜻이며, 그런 정당화를 사람들이 당연히 기대한다는 뜻이다." 더불어 책임감에는 우리가 스스로를 얼마나 잘 정당화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상과 벌이 달라지리라는 기대도 들어 있다. 어떤 사태가 일어났을 때 누구도 그 일을 해명하지 못하고, 또 사람들이 태만하게 일하거나 사기를 쳐도 벌을 받지않는다면, 결국엔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 P152

인간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이 책임감의 망(網) 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테틀록은 아주 유용한 비유를 든다. 즉, 우리는 직관적인 정치인처럼 행동하는데, 각양각색의 유권자를 앞에 두고 호소력 있는 도덕적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비지땀을흘린다는 것이다. 콜버그나 튜리얼 같은 합리주의자들의 주장을 보면, 아동들은 마치 꼬마과학자와도 같은 모습이다. 이들은 아이들이 논리와 실험을 통해 스스로 진실을 찾아나간다고 생각했다. 물론 아이들이 물리적 세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걸 보면 이러한 과학자의 비유가 잘 통하는 것도 같다. 아이들은 정말로 이러저러한 가설을 세워보고, 또 그 가설을 검증해가며 한발 한발 진실에 다가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테틀록의 주장에 따르면, 사회적 세계는 그와는 사정이 다르다. 사회적 세계는 글라우콘식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실제보다는 외관이 훨씬 큰 중요성을 갖는 것이 보통이다. - P153

합리주의자들에게는 이러한 연구 내용이 희소식으로 들릴지 모르했다. 중요한 일이라고 믿는 상황에서는 우리가 언제든 정교한 사고를 할 수 있다는 뜻일 테니 말이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테이밝혀낸 바에 따르면, 정교한 추론에는 두 종류가 있고 둘은 매우 다른 성격을 지닌다. 우선 그중 하나인 탐구적 사고는 우리가 대안이 될 수 있는 여러 관점을 공평하게 헤아려보는 것"을 일컫는다. 그에비해 확증적 사고는 우리가 "특정 관점을 합리화하기 위해 기울이는일방적인 노력"을 말한다." 책임감이 탐구적 사고를 증가시키려면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한다. (1) 의사결정자는어떤 견해를 갖기 전 그 견해를 나중에 자신이 청중에게 해명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2) 의사결정자는 청중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몰라야 한다. (3) 의사결정자가 보기에 청중은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또 정확성에도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어야 한다.
이 세 조건이 모두 충족될 때에야 사람들은 그야말로 피 터지게 노력하여 진실을 찾으려고 한다. 이때는 청중이 듣고 싶어 하는 것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외의 경우에 (우리 삶은 거의 백이면백 여기에 해당한다), 책임감 압력은 확증적 사고만 더 증가시킬 뿐이다. 사람들은 정말 올바른 사람이 되기보다는 올바른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더 애쓰는 것이다. 사람들의 이 같은 모습을 테틀록은 다음과 같이 요약 정리한다.

지금 나의 행동 방식이 남에게 충분히 정당화되고 양해받을 수 있는가에대한 확신을 갖는 것이 바로 사고의 주된 기능이다. 내가 한 선택들이 얼마나 정당화될 수 있는지를 따져보는 이 과정은 의사결정을 할 때 너무도 흔하게 일어난다. 사람들은 남에게 자신의 선택을 설명해야 할 때도 뭔가 받아들여질 만한 이유를 찾지만, 자신이 ‘올바른‘ 선택을 했음을 스스로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도 이러저러한 이유를 찾는다." - P154

그러한 개인적 이득보다 사람들은 인종, 지역, 종교, 정치와 관련해 자신이 어느 집단에 속했는지를 더 신경 쓰는 경향이 있다. 정치학자 돈 킨더(Don Kinder)는 이와 관련해 자신의 연구 결과를 다음과같은 말로 요약한다. "시민들은 여론조사에 임할 때면 ‘이것이 나한테 어떤 도움이 되지?‘라고 묻기보다 ‘이것이 우리 집단에 어떤 도움이 되지?‘라고 묻는 듯하다. 사람들이 가진 정치적 견해는 마치 "배지처럼 그가 어떤 사회집단에 속해 있는지를 일러준다." 사람들이 자동차 범퍼에 각종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며 특정 정치 표어, 대학, 스포츠 팀을 지지하는 것이 이와 비슷하다. 즉, 우리가 가지는 정치적 견해는 우리 개인의 것이라기보다는 우리 집단의 것이다.
사람들은 같은 모양에서조차 자신이 원하는 것을 본다. 그러니 당파가 서로 다른 사람들 눈에 세상 속의 사실들이 얼마나 다르게 보일지는 아마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이러한 ‘태도 양극화(attitude polarization)‘ 효과를 논한 연구는 이미 여러 건인데, 이 연구들을 보면 당파로 인해 서로 다른 경향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일련의 정보를한 가지씩 주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다.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의 경우에는 특정 상황 속에서 태도 양극화가 더 심해지는 양상을 띤다. 이를테면 사형 제도가 범죄 예방 효과가 있는지 연구한 논문을 읽게 하거나, 대통령 후보들이 토론회에 나와서 얼마나 훌륭한 주장을 했는지 평가하게 하거나, 아니면 정부의 차별 철폐 조처나 총기 관련 규제에 대한 논변을 평가하라고 하면, 이 둘 사이는 더 벌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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