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한 번에 한 분의 손님을 초대해 비건 만찬을 차려드려요. 대신 손님께선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식탁을 사이에 두고 당신과 나눈 대화를 기록하고 싶습니다." - 담 - P5
엄살원의 손님들은 활동가들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너무 특수한 인간들의 집합이라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자기 일도 아닌 문제에 자기 일처럼 화를 내는 게 직업인 사람들. 여성, 장애인, 성노동자, 퀴어, 빈민, 홈리스, 청소년, 동물의 이야기가 곧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굳게 믿는 감각이상자들. 비관할 구석이 가득한 세상에서 냉소를 통해 똑똑해 보이기를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 너무 순진한 게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감수하면서 굳이 어떤 희망을가져보기로 한 사람들. 나를 매번 놀랍게 한 것은 활동가들이 타고나기를 강건한 영혼의 소유자이거나 남에게 베풀고 남을 만큼 자원과 사랑이 넉넉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도리어 그들은 아프고 취약하며 그렇다는 이유로 미움받은 역사 또한 긴 사람들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왜? 자기를 돌보아도 모자랄 시간에 왜 어떤 사람들은 남을 돌보겠다고 오지랖을부리는 걸까? - P6
손더스의 표현을 빌려 엄살원의 손님들에게 나는 묻고싶었다. 당신들은 어떻게 ‘자기 자신의 일부‘이기를 그만두겠다는 놀라운 선택을 내릴 수 있었느냐고. 어떤 계기로 우리는 자신이기만 했던 자신의 투명도를 낮추어 마침내 나 아닌 존재들과 하나로 포개질까? 나는 고작 나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진실을 추구하는 데는 어떤 기쁨과 슬픔이따를까? 활동가들의 대답은 다양했지만, 그들이 모두 밥을 먹고 산다는 점만은 같았다. 그들처럼 나의 일부이길 그친 나, 나만은 아닌 나, 시끄럽고 커다랗고 무수한 나로 살아보려는 일은 많은 열량을 소모한다. 그래서 이들에게 밥을 든든히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밥상 앞에 앉은 손님들의 얼굴은 유순하기 그지없다. 농성에 도가 튼 사람이건 국회를 드나드는 사람이건, 수저를 쥐는 손만큼은 다들 조그맣다. 한명의 인간은 누구든 이렇게 작다는 사실, 그 사실 때문에 때로는 기가 막히고 때로는 가슴이 미어졌다. - P7
여름 저는 자기돌봄이란 말을 보면, 살고 싶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자기돌봄을 잘 안 하는 타입이거든요. 죽음에 대한 열망과 거리두기를 실패한 삶을 살고있어서••• 제 몸을 돌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다 해도 한때에 지나지 않고요. 자기 몸을 돌보고, 자신에게 좋은 것을 스스로 제공하고 싶은 마음과 노력을 놓치지 않는 건 어떻게해야 하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근데 그런 걸 몰라도 그냥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겠죠? 저처럼.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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