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타이지는 아민을 조선으로 출정시키면서 다음과 같이 명하였다.

조선은 여러 해 동안 우리 나라에 죄를 얻었다. 이치로는 마땅히 성토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번 일의 목적)이 오로지 조선을 치는 것만은 아니다. 명의 모문룡은 저 바다의 섬을 가까이하며(그것을) 의지해 미쳐 날뛰며, 우리 반민叛民까지 받아들인다. 그러니 (이제) 군사를 정돈하여 가서 정벌하라. 만약 조선도 취할수 있다면 모두 취하라.

이처럼 원정군 사령관 아민에게 구체적 임무를 부여했다.
그 임무가 바로 침공의 이유이자 목적임은 자명하다. 침공의 이유를 명시한 사료는 이 청태종실록』이 거의 유일하다. 따라서 홍타이지 쪽에서 보더라도 정치·외교·군사적 이유로 침공을 단행했음은 자명하다.
그런데 위 사료에서 "조선도... 취하라"는 정확히 어떤 뜻일까? 도성인 한양을 점령하고 조선을 완전히 정복하는 것이었을까? 정묘호란의 전황을 보면 그렇지는 않다. 압록강을 건넌 직후 아민이 보인 태도는 조선의 완전 정복을 목표로 삼은 장수로 볼 수 없을정도였다. 그는 진군 속도를 늦추고 처음부터 줄곧 조선 국왕에게 화친을 요구했다. 이는 당시 후금이 조선을 취한다는 의미가 조선을 정복하기보다는 후금의 맹약 체제 안으로 포섭하는 데 있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명질서明秩序하에서 명의 오랜 ‘혈맹‘이던 조선을 후금의 맹약 체제로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갓 등극한 홍타이지의 혁혁한 공훈이 될 것이 자명했다. 이 점을 고려하면 개전하자마자 줄기차게 조선을 몰아치며 빠르게 남하하는 대신 왜 집요하게 화친을 요구하며 지체했는지, 협상의 최대 안건이 왜 하필 화친이라는 방식, 곧맹약의 체결이었는지 쉽사리 알 수 있다. 협상 과정은 물론 맹약을 체결한 후에도 조선에 대한 경제적 수탈이 ‘의외로‘ 미미했던 이유또한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다.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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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금과 조선의 국경 무역은 맹약을 체결하고 1년이 지나도록 지지부진하였다. 후금은 당장 개시를 열라고 압박하는 동시에조선의 이런저런 핑계를 대체로 수용하는 편이었다. 특히 첫 개시를 통해 후금으로 들어간 물량은 방금 막 전쟁을 통해 우열을 정한국가 간의 무역 (일방적 공출)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양이 적었다.
요컨대 후금이 조선에서 가져간 경제적 가치는 맹약에 따른 예물의 성격이 강했고, 후금의 경제 사정을 호전시킬 만한 양도 아니었다. 따라서 정묘호란의 발발 요인 중에서 후금의 경제 문제를 강조할 근거는 사실상 없다. 특히 식량 문제가 협상 과정에 일언반구조차 등장하지 않은 사실을 간과하면 곤란하다. 후금 내부의 경제 사정이 나빴다고 해서 그것을 곧바로 침공의 동인이나 목적으로 볼 근거는 없다는 것이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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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침은 추웠다. 옅은 잿빛 안개가 축축하게 살갗을찔러 따끔거렸다. 공항을 보자 리머스의 머리에 전쟁이 떠올랐다. 안개 속에 반쯤 가려진 채 참을성 있게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기계들,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와 그 메아리, 갑작스러운 외침 소리, 여자의 하이힐이 돌바닥에 닿을 때마다 나는 불협화음, 바로 옆에 대기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엔진이 으르렁거리는 소리. 도처에 음모라도 꾸미는 듯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새벽부터 깨어 있었던 사람들 사이에서 생겨나는 그런 분위기였다. 그것은 밤이 사라지고 아침이오는 것을 본 공통된 경험에서 유래하는 우월감 같은 것이었다. 공항 직원들의 표정에는 동틀 녘의 신비감이 배어 있고 추위가 그 표정에 생기를 주고 있었다. 그들은 승객과 수화물을 전장에서 돌아온 병사들처럼 무뚝뚝한 태도로 다루고있었다. 그날 아침 그들에게 보통 사람은 아무 의미도 없는 존재였다. - P95

한 소녀가 해변에 서서 갈매기들에게 빵 조각을 던져 주고있었다. 그녀는 리머스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다. 바닷바람이치렁하고 검은 머리카락을 나부끼게 하고 코트 자락을 펄럭이게 했다. 그러자 소녀의 몸은 바다를 향해 활 모양으로 젖혀졌다. 그 순간 리머스는 리즈가 준 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영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그것을 되찾아야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하찮은 것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었다. 평범한 생활이 가치 있다는 믿음, 빵 부스러기를 종이 봉지에 넣고 해변으로 걸어가 갈매기들에게 던져 주는 소박함. 하찮은 것에대한 이 관심은 리머스가 이제껏 가질 수 없었던 것이었다. 갈매기에게 던져 줄 빵이든 사랑이든, 다른 무엇이든 간에, 그는 돌아가서 그것을 찾을 것이다. 스스로 찾지 못하면 그를 대신해서 리즈가 그것을 찾게 할 것이다.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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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문소

미국인은 리머스에게 다시 커피 잔을 건네주면서 말했다.
「돌아가서 한숨 주무세요. 그 사람이 나타나면 전화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리머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검문소 창문 너머로 텅 빈거리를 내다보았다.
「언제까지나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다른 시간에 올지도 모릅니다. 그가 오면 본부로 연락해 달라고 경찰에 부탁해도 됩니다. 본부에서 이곳까지 넉넉잡고 20분이면 달려올 수 있을 겁니다.」 이제 곧 어두워질 거요.」 리머스가 말했다.
「하지만 영원히 기다릴 수는 없잖습니까. 벌써 예정보다아홉시간이나 지났어요.」「당신은 가고 싶으면 가도 좋아요. 수고했소.」 리머스가 다시 덧붙여 말했다. 「당신이 아주 친절했다고 크레이머한테 말해두겠소.」
「언제까지 기다리실 겁니까?」
「그가 올 때까지」  - P7

그 순간 카를이 무슨 소리를 듣고 위험을 느낀 것 같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고는 자전거 핸들 위로 몸을낮게 구부리고 맹렬히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아직 다리 위에 혼자 서 있는 보초가 있었다. 그는 돌아서서 카를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예기치 않게 서치라이트가 켜졌다. 눈부시게 새하얀 빛이 카를을 포착했다. 카를은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에 갇힌 토끼 같았다. 위아래로 요동치는 사이렌 소리가울려 퍼졌다. 거칠게 명령을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리머스앞에서 두 경찰관이 무릎을 꿇고 모래주머니 틈새로 그쪽을 내다보면서 능숙한 솜씨로 자동 소총을 재빨리 장전했다.
동독 보초는 조심스럽게 그들을 피해 자기 구역 쪽으로 총을 쏘았다. 첫 번째 총알은 카를을 앞으로 홱 밀어붙인 것 같았고, 두 번째 총알은 그를 뒤로 잡아당긴 것 같았다. 그래도 어떻게든 그는 아직 움직이고 있었다. 아직 자전거 위에 앉아서 보초 옆을 통과했다. 보초는 여전히 그에게 총을 쏘고있었다. 그때 카를이 축 늘어지면서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들은 쓰러진 자전거가 달각거리는 소리를 또렷이 들었다. 리머스는 카를이 죽었기를 신에게 기도했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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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인 태도를 버려야 한다는 생각을 긍정 심리학의 연구결과가 뒷받침한다. 이런 연구에 따르면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사람은 건강이 증진되고 더 행복한 결혼 생활, 더 성공적인 직장생활 등 온갖 종류의 이득을 얻는다. 하지만 심리학 연구가보통 그렇듯이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하는 모든 연구에는 그와 반대되는 결론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연구가 존재한다. 긍정적인 성향의 사람은 속기 쉽고 고정관념에 지나치게 의존하며 좋은 논증을구성하는 데 서툴다. 게다가 일부 연구에 따르면 부정적인 감정은 유익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실망감을 더 잘 처리하고 더 창의적이며 협상을 더 잘하는 경향을 보인다. 부정적인 감정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심리학적, 신경학적 또는 생물학적 연구 결과를 근거로 나쁜 감정이 어떤 목적에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나쁜 감정이 어떤 이유로 인해 진화했다는 생각은 새로운 게 아니다. 진화론을 정립한 것으로 유명한 19세기 과학자 찰스 다윈이 1872년 저서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에서 그런 설명을 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끼면 혈액이대근육으로 잘 흘러들어서 위험으로부터 더 쉽게 도망칠 수 있다. 그렇다면 부정적인 감정은 (포식자로부터 도망치는) 자연적인행동에 도움이 되도록 진화했기 때문에 좋은 것이라는 결론이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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