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젤은 비 오는 날도 무척 좋아했다. 비가 오면 그림자가 모퉁이와 골목길을 따라 신비한 길을 내었다. 그리고 모두는 황혼을 사랑했다. 빛이 정신을 잃고 언덕을 지나 태평양으로 떨어지는 모습, 붉은 태양은 점점 더 빨개지고 주홍빛으로 변하다 마침내는 초록빛이 되어갔다. 하늘은 용암이 검은 바위를 먹어치워 불타오르는 거대한 잇자국을 내듯 녹아내렸다. 때로는 온 도시가 멈추어 서서 서쪽을 바라보았다. 가게 주인들은 안에서 나와 거리에 섰다. 가족들은 집에 누워 있던 병자들을 침상이나 휠체어에 태워서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그러면 그들은 하늘을 집어삼키고 있는 그 광기에 굽은 손을 흔들어 보이는 것이다. 갈매기떼와 펠리컨의 소용돌이가 하늘에 폭동을 일으키며 떠다니는 모습은 마치 하느님이 손수 뿌리는 꽃가루 눈송이 같았다.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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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풀 개념은 이제야 의미를 띠기 시작한다. 성적으로 번식하는 개체군, 가령 까마득히 먼 남대서양에 고립된 어센션 섬의 쥐들이라면, 섬 안의 모든 유전자가 끝없이 섞일 것이다. 그래도 각 세대가 전 세대보다 더 적은 변이를 보이는 내재적 경향성은 없을 것이고, 갈수록 지루한 중간 형태들이 되어가는 경향성도 없을 것이다. 유전자들은 말짱하게 보존된다. 세대가 지남에 따라 이 개체의 몸에서 저 개체의 몸으로 옮겨갈 뿐이다. 결코 서로 혼합되지 않고, 결코 서로 오염시키지 않는다. 어느 한 시점에 모든 유전자는 개체들의 몸 안에 담겨 있거나, 아니면 정자를 통해 새로운 개체의 몸으로 이동하는 중일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세대를 아울러서 전체적인 그림을 보면, 섬의 모든 쥐 유전자는 잘 섞인 한 벌의 카드처럼(물감처럼 혼합되는게 아닌) 하나의 유전자풀을 이룬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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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는 감추지 않거나 꾸미지 않고 ‘사실 그대로‘의 뜻을 나타낸다. 감추지 않는다는 것은 부끄러움이나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공개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꾸미지 않는다는 것은 그럴듯하게 덧붙이거나 부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
정직은 거짓 없음에 더해 규범성을 함의한다.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따라야 하고 사회 윤리를 벗어나지 않아야 비로소 정직하다 할 수 있다. 공직자로서 부정한 청탁이나 뇌물을 받지 않았다면 정직하게 살아왔다고 할 만하고.. - P205

 사람은 누구나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거나 떳떳하거나 기품을 보이고 싶은 심리가 있다. 그런 심리가 충족되지 않거나 훼손되었을 때 수치를 느끼게 된다. 이렇듯 수치는 명예나 위신, 체면, 품위 등이 손상되어 남 앞에서 떳떳하지 못하게 되는 상태를 가리킨다.
치욕이나 굴욕도 남들 앞에서 떳떳지 못한 느낌을 가지는 상태라는 점에서는 수치와 별로 다르지 않다. 다만 치욕과 굴욕은 수치에 비해 욕됨, 모멸감의 의미가 더 추가되는 어감이 있다. - P213

두 단어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질투‘가 자기보다 우월한 상대로 인하여 속이 상하거나 언짢은 기분을 느끼는 것을 가리키는 데 비해, ‘시기‘는 상대가 자기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이 거슬리거나 아니꼬워 상대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을 가리킨다. 전자는 자신과 상대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가능성이 있어 자기 성찰에 다다를 수도 있지만, 후자는 오로지 증오심에 매몰되어 자기 성찰에 이를 가능성이 희박하다.  - P226

‘신문訊問‘은 법원이나 수사 기관 등이 어떤 사건에 관하여 피의자나 피해자, 당사자, 증인 등에게 말로 물어서 조사하는 일을 가리킨다. 
‘심문審問‘은 법원에서 사건 당사자나 이해관계저에게 개별적인 진술을 할 기회를 주는 일을 가리킨다. -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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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마음속은 불쑥불쑥 뒤어나오는 온갖 종류의 영광으로 불타올랐다. 라파스를 비추는 일몰, 인부들이 죽은 비둘기와 똥들을 다 파내고 난 멕시코 대성당 유적의 그림자. 그의 아내 허벅지 사이에 겹겹이 드리워진 무한한 그림자, 코르테스 바다에서 본 고래, 고래가 물속에서 솟아올라 산산이 부서지는 바닷물 가운데 떠 있는 모습은 마치 부서진 유리 스커트를 입은 듯 했다. 마치 공기가 그 무지막지한 덩치를 끌어올린 것만 같았다. 고래는 옆을 지나는 자그마하고 하얀 앵무새 같은 물고기들을 둥근배 아래로 날리면서 다시 물거품 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하늘을 보았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페를라는 비를 싫어했지만, 빅 엔젤은 이게 신호라는 것을 알았다. 새 삶이 오고 있군, 삶은 계속되고 있어. 그는 하느님에게 눈썹을 찡긋해보였다.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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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위는 너무나 아름답고, 경이로운 생명들로 가득하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며, 무작위적이지 않은 자연선택에 의한 결과다.
이것은 진화가 펼쳐낸 지상 최대의 쇼이다.
- P5

우리는 범죄가 저질러진 뒤에 현장에 도착한 탐정과 같다. 범인의 행동은 과거가 되어 사라졌다. 탐정이 실제 범행을 제 눈으로 목격할 가능성은 없다. 더구나 고릴라 실험이나 비슷한 다른 실험들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눈을 불신하라는 것을 배웠다. 탐정이 실제로갖고 있는 것은 남은 흔적들뿐이지만, 그것들은 상당히 믿을 만하다. 발자국이 있고, 지문이 있고(요즘은 DNA 지문도 있다), 혈흔, 편지, 일기장 등이 있다. 우리도 세상의 현재 모습을 잘 살피면, 이러이러한 역사가 아니라 저러저러한 역사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올 수 밖에 없었구나 하고 말할 수 있다.
- P32

우리가 한 세대 사이에서 토끼들의 변화를 눈치 채지 못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어느 시대든, 엄마들과 딸들 사이의 변이보다는 현재 개체군 내부의 변이가 더 크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엄마들과 딸들을 비교하거나 할머니들과 손녀들을 비교함으로써 ‘시침‘ 의움직임을 판별할라치면, 설령 사소한 차이들이 있더라도 같은 초원에서 뛰노는 친구나 친척 토끼들과의 차이에 파묻혀 크게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 P43

둘째, 우리는 한 현생 동물을 다른 현생 동물과 잇는 일련의 단계를 확인했다는 점을 명심하자. 토끼를 표범으로 진화시킨 것은 결코 아니다. 머리핀까지 올라가는 과정은 역 진화고, 거기서 표범까지내려오는 과정은 진화라고 말할 순 있다. 현생 종이 다른 현생 종으로 진화하진 않는다는 것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설명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현생 종들은 선조를 공유하는 친척들이다. "정말로 인간이 침팬지에서 진화했다면, 왜 아직도 침팬지들이 돌아다니는 거죠?" 심란할 정도로 흔한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이것이다.
셋째, 머리핀 굴곡에서 미래로 나아갈 때, 우리는 임의로 표범으로 향하는 길을 선택했다. 이것은 진화사에 실제로 존재했던 경로다. 하지만 중요한 점이기에 또 지적하자면, 우리는 무수히 많은 다른 종착점으로 갈 수 있는 무수히 많은 갈림길에서 다른 쪽을 다 무시한 것이다. 머리핀 굴곡의 동물은 토끼와 표범만의 공통선조가 아니라, 다른 많은 현생 포유류의 선조다.
넷째 요점은 앞서 이미 강조한 것이다. 머리핀 양끝(가령 토끼와 표범)의 차이가 아무리 크고 넓어도, 양자를 잇는 연결고리들의 각 단계는 아주아주 작다. 각 개체는 연쇄사슬에서 제 양옆에 있는 개체들과 몹시 비슷하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와 딸은 비슷할 수밖에없지 않은가. 그리고 이것 역시 앞서 언급했지만, 그 개체는 자신을둘러싼 개체군의 전형적인 구성원들보다 오히려 연쇄사슬 양옆의개체들을 더 닮았을 것이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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