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치료용 성장호르몬은 죽은 사람의 뇌(뇌하수체)에서 추출하것이었으므로, 성장호르몬(GH) 대신 사람성장호르몬(HGH)이라고 불렸다. 왜소증 어린이는 하루에 한 번씩 적어도 일 년 동안 주사를 맞아야 했는데, 하나의 뇌하수체는 하루에 한 명의 어린이를 치료하는 데충분한 양만 공급했다. (용량에 관한 연구는 아직 수행되지 않았지만, 좌우지간 뇌하수체 하나에 들어 있는 분량이 정량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한 명의어린이를 치료하려면 365개의 뇌하수체, 그러니까 365 구의 사체가필요했다. 미국의 심각한 왜소증 어린이들을 모두 치료하려면 어마어마한 시체가 필요하므로, 수많은 영안실과 입도선매 계약을 맺어야할 판이었다.
- P214

버슨과 앨로는 이 같은 미시적 난교 microscopic promiscuity를 이용해 방사면역측정법 adiommunossey (RIA)이라는 기법을 고안해냈다. RIA의 사용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댄스 파트너, 즉 샘플 호르몬 과 ‘호르몬에 결합하는 항체‘를 준비해야 하며, 각각의 양을 알아야 한다. 둘째, 샘플 호르몬과 항체의 혼합물에 환자의 혈액을 첨가하는데, 이 혈액에는 ‘환자의 호르몬‘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 양은 알 수 없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정리하면, 비커 속에는 샘플 호르몬(기지)과 항체(기지)와 환자의 호르몬(미지량未知量)이 들어 있다. 셋째, 환자의 호르본 중 일부가 항체에 결합되어 있는 샘플 호르몬을 떼어내고 항체를 차지할 것이다. 항체에서 떨어져 나온 호르몬의 양을 측정하면, 환자의 혈액 속에 얼마나 많은 호르몬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있다. 호르몬의 양이 너무 적어 양을 직접 측정할 수는 없지만, 호르몬과 항체가 결합하면 큰 덩어리를 형성한다. 그리고 샘플 호르몬은 방사선으로 처리하면 발광하므로 포착하기가 훨씬 더 쉬위진다. 엘로와 버슨은 이상과 같은 방법으로 항체에서 떨어져 나온 샘플 호르몬의 양을 측정할수 있었다.
그들은 호르몬-항체 결합‘의 강도에 기반한 공식을 개발했다. (결합 강도는 호르몬에 따라 다르다.) 그러고는 떨어져 나온 방사선 처리된 샘플 호르몬의 양을 측정해 공식에 대입했다. 만약 떨어져 나온 호르몬의 양이 많다면 환자의 혈액 속에 포함된 호르몬 양이 많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들은 환자의 혈액 속에 포함된 호르몬의 양을, 혈액 1밀리리터당 10억 분의 1 그램‘ 수준까지 측정할 수 있었다.
- P244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녀는 스톡홀름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석한 이후부터 남편이 선물한 ‘노벨상 기념 목걸이‘를 목에 걸고 모든 편지에 "로절린 앨로, 이학박사, 노벨상 수상자"라고 서명했다고한다. 또한 연구실의 게시판에는 "남성의 반만큼 인정받기 위해, 여성은 두 배 열심히 노력하고 두 배 뛰어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쪽지를붙였다. 페미니스트의 격언이었다. 그러나 앨로그 뒤에 핵심을 찌르는 말을 덧붙였다. "그까짓 거, 어렵지 않다." 자녀들은 어머니의 명품 연설을 ‘남성 동료들을 향한 전형적인 공갈 협박‘ 쯤으로 여기고 웃어넘겼지만, 그 쪽지의 내용만큼은 똑똑히 기억했다.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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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하는 일과 독자가 하는 일이 너무 달라요. 작가는 글을쓰는 것으로씨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에요. 반면 독자는 글을 읽음으로써 즐거움을 누리거든요.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엄청나게 다른 거예요, 마지 발레리나와 관객의 관계치료. 발레리나에게 관객의 갈채가 있으면 좋겠조. 그러나 발레리나가 진짜 고민하는 문제는 어떻게 하면 이 동작을 더 잘할 수 있을까. 이 감정을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연기를 얼마나 실감나게 할 수있을까. 주로 그런 것들이거든. 작가란 늙지 않는 발레리나같은 거예요. 그러니까 늘었다고 퇴화하거나 점프의 높이가 낮아지거나 그러면 안 돼요.
- P537

원칙적으로 비무장지대 안에는 민간인이 살 수 없도록 되어있지만 예외가 있습니다. 대성리라는 마을입니다. 이 마을은 일종의 전시용 촌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집들은 번듯했고 주민들은 모두 마을 근처에 경작 가능한 논과 밭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북한군의 계급장과 얼굴 표정까지 알아볼 수 있는 거리에 살고 있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태평해 보였습니다. 아침이면 경운기를 몰고 농사를 지으러 나갔고 저녁에는 돌아와 밥을 지었습니다. 지프를 타고 마을 근처를 지날 때면 아버지는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전쟁 터지면 제일 먼저 죽을 사람들이다."
위험한 곳에 사는 대신, 남한 정부는 이들의 세금과 병역을 면제해주었습니다. 이들은 비무장지대라는 신전에서 일하는 사제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들의 삶을 보면서 저는 삶의 연극성이랄까, 하는 것을 처음으로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살아야 하는 삶도 있다는 것, 나중에는 그 연극성마저 망각하고 일상을 살아나가게 된다는 것, 그런 것들을 어렴풋이 의식하게 되었던 것이 바로 그 무렵이었습니다. - P577

언젠가 해럴드 블룸은 ‘셰익스피어가 『햄릿』을 쓰기 전에는햄릿 같은 인간형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썼다. 그런 식이라면아마도 나라는 인간은 돈키호테와 엠마 보바리와 라스콜니코프 같은 인물로부터 창조되었을 것이다. 상상 속에서 창조되었으나 현존하는 그 어떤 인간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 있으며, 이후로도 영원히 살아남을 그 인물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 P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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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르 편에서는 자기가 왜 즐겨 베르토를 찾아가곤 하는지를 구태여 알려고 하지 않았다. 설사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하더라도 틀림없이 자기가 열을 올리는 까닭은 증세의 심각함이나 아니면 수입에 대한 기대 때문이라고 치부했으리라. 그렇지만 그 농장을 찾아가는 일이 그의 생활의 따분한 일과 속에서 매력적인 예외가 된 것이 과연 그 때문일까? 그날이 되면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출발부터 달음박질로 시작하여 말을 몰아세웠고 땅에 내려서면 풀에다가 신발을 문질러 닦고 들어가기 전에 검은 장갑을 꼈다. 마당에 들어서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든가 어깨로 밀면 빙그르 도는 사립문의 감촉을 느끼는 것이 즐거웠고 담 위에서 시간을 알리며 우는 수탉이나 마중 나오는 하인들이 기분좋게 느껴졌다. 그는 헛간과 마구간이 좋았다. 생명의 은인이라면서 그의 손바닥을 치며 손을 잡는 루오 영감이 좋았다. 말끔히 씻은 부엌 타일 위를 걷는 엠마 양의 작은 나막신이 좋았다. 신발 뒤축이 높아서 그녀의 키가 약간 더 커 보였다. 그녀가 앞에 서서 걸을 때면 나무로 된 구둣바닥이 얼른 들어올려졌다가 편상화의 가죽에 닿으면서 삑삑 하고 소리를내곤 했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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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몬이 킬러 본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관념은 하비 쿠싱이 수행한 뇌 연구의 논리적 확장이었다. 만약 쿠싱이 증명한 대로 호르몬 분비 이상이 여성의 턱수염을 자라게 하거나 소년을 거인으로 만든다면, 그런 내분비물이 어린 영재들을 폭력범으로 만들 수도 있지않을까? 일리 있는 말이지만,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쿠싱이 사람들에게 "서커스단의 기인들을 동정하라" 고 촉구한 것은 그들이 ‘괴상한 사람‘이 아니라 ‘환자‘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살인자에게도 그런 동정심을 발휘해야 할까? 즉, 파괴된 분비샘이 ‘선량한 아이들‘의 등을 떠밀어 흉악한 범죄로 내몬 게 사실이라면, 우리는 킬러를 피살자와 동등한 희생자로 간주해야 할까? 《뉴욕타임스》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다. "만약 가인의 내분비기관이 부적절하게 기능했다면, 그도 아벨과 마찬가지로 희생자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호르몬범죄 이론hormone crime theory의 골치 아픈 부분이었다. 호르몬범죄 이론은 과학적 장점을 가질 수 있을진 몰라도 도덕적 딜레마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는 정보를 입수했을 때, 도덕 수준이 높은 사람들은 그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킬러 호르몬이 오작동했다는 이유로 관용을 베풀까?
- P102

2013년 스위스와 독일의 연구자들이 다음과 같이 발표한 것은 전혀놀라운 일이 아니다. "의사에게 ‘성급히 수술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들으면, 대부분의 부모들은 성전환수술을 늦추거나 회피할 가능성이높다. 그러나 ‘상황이 매우 심각합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당황한 부모들이 자녀의 성을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즉시 성전환수술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셰릴 체이스를 비롯한 활동가들과 많은 온라인 및오프라인 활동 그룹 덕분에, 어린이와 부모들은 더 이상 고립감을 느끼지 않는다. (간성인의 권익옹호단제를 처음으로 조직한 사람이 체이스는 아니지만, 그 이전의 사람들은 체이스와 달리 암암리에 활동했다.)
수술을 둘러싼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브라이언 / 보니 / 셰릴 체이스는 이제 보 로랑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보‘는 보니를 의미하며, ‘로랑‘은 19세기의 로랑 클레르라는 학생을 의미한다. 클레르는 청각장애인이 종종 정신장애인으로 취급받는 것에 격분해 그들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해 싸웠다. (보 로랑의 외조부모는 모두 청각장애인이어서, 어머니가 맨 처음 사용한 언어는 수화였다.) "나는 간성인들을 위해 클레르처럼 싸우고 싶어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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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의 「에마」의 주인공 에마를 글로 읽는 것과 영화로 보는 것은 꽤 다른 경험입니다. 소설로 읽을 때는 내 멋대로 상상하던 인물이 영화에서는 배우의 얼굴로 고정됩니다. 우리가 상상하던 공간 역시 미술감독의 뜻에 따라 재현되고 그 안으로 제한됩니다. 이런 특성을 폴 오스터는 이차원과 삼차원의 경험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평면에 투사되는 이미지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이차원이라는 것입니다. 영화의 원래 이름은 활동사진이었고 영어에는 아직도 그런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영어로 영화는 모션픽처 motion pictures, 즉 움직이는 그림이라는 뜻 아닙니까? 반면소설은 평면이 아닌 삼자원적 공간, 상상적 세계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소설을 읽을 때마다 우리는 ‘지금, 여기‘ 가 아닌 ‘어딘가 다른 세상‘에 가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곳은 19세기 러시아의 궁정일 수도 있고, 뉴질랜드 근처의 무인도일 수도있고, 플로리다의 어촌일 수도 있지만, 실은 그 어느 곳도 아닌, 우리 마음속에서 스스로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일 뿐입니다.
- P529

 아울러 소설은 실패가 때로는 성공보다 더 위험 있는 사건일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노인과 바다」의 노인은 뼈만 끌고 포구로 돌아왔지만 소설을 읽은 우리는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그 물고기와 싸웠고, 그 물고기가 숨을 거둔 후에는 그 물고기의 살을 뜯어먹으려는 상어와 또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그를 어리석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그의 실패에는 위엄이 있습니다. 소설들은 그런 패배로 가득합니다. 늙은 돈키호테는 평생 읽어온 기사도 소설의 세계를 동경해 길을 떠나지만 비웃음을 살 뿐입니다. 그러나 그런 행위조차도 우리는 미소를 띠며 읽게 됩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모두 환상을 좇아 일상을 탈출하려는 욕망이 있습니다. 돈기호테는 그걸 좀 과장되게 보여준 깃뿐입니다. 그를 보면서 위엄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인간 존재에 대한 공감과 연민을 느낄 수는 있습니다.
- P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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