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하는 일과 독자가 하는 일이 너무 달라요. 작가는 글을쓰는 것으로씨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에요. 반면 독자는 글을 읽음으로써 즐거움을 누리거든요.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엄청나게 다른 거예요, 마지 발레리나와 관객의 관계치료. 발레리나에게 관객의 갈채가 있으면 좋겠조. 그러나 발레리나가 진짜 고민하는 문제는 어떻게 하면 이 동작을 더 잘할 수 있을까. 이 감정을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연기를 얼마나 실감나게 할 수있을까. 주로 그런 것들이거든. 작가란 늙지 않는 발레리나같은 거예요. 그러니까 늘었다고 퇴화하거나 점프의 높이가 낮아지거나 그러면 안 돼요.
- P537

원칙적으로 비무장지대 안에는 민간인이 살 수 없도록 되어있지만 예외가 있습니다. 대성리라는 마을입니다. 이 마을은 일종의 전시용 촌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집들은 번듯했고 주민들은 모두 마을 근처에 경작 가능한 논과 밭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북한군의 계급장과 얼굴 표정까지 알아볼 수 있는 거리에 살고 있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태평해 보였습니다. 아침이면 경운기를 몰고 농사를 지으러 나갔고 저녁에는 돌아와 밥을 지었습니다. 지프를 타고 마을 근처를 지날 때면 아버지는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전쟁 터지면 제일 먼저 죽을 사람들이다."
위험한 곳에 사는 대신, 남한 정부는 이들의 세금과 병역을 면제해주었습니다. 이들은 비무장지대라는 신전에서 일하는 사제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들의 삶을 보면서 저는 삶의 연극성이랄까, 하는 것을 처음으로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살아야 하는 삶도 있다는 것, 나중에는 그 연극성마저 망각하고 일상을 살아나가게 된다는 것, 그런 것들을 어렴풋이 의식하게 되었던 것이 바로 그 무렵이었습니다. - P577

언젠가 해럴드 블룸은 ‘셰익스피어가 『햄릿』을 쓰기 전에는햄릿 같은 인간형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썼다. 그런 식이라면아마도 나라는 인간은 돈키호테와 엠마 보바리와 라스콜니코프 같은 인물로부터 창조되었을 것이다. 상상 속에서 창조되었으나 현존하는 그 어떤 인간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 있으며, 이후로도 영원히 살아남을 그 인물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 P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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