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자녀의 훌쩍 커 버린 모습을 보면 다 자란 것 같아서 유 소아기 때보다 정서 문제에 신경을 덜 쓰게 됩니다. 지시할 것도 많아졌고, 잔소리할 일도 많아졌기 때문에 다정한 대회가 이전보다 줄어든상황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 아이들이 가정 일에 관심이 많다.
는 것을 아나요? 친구로, 학교로, 연예인으로 관심이 쏠린 것 같지만, 사실 10대 아이들에게 가정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빠가 해 준다정한 말 한마디를 흘려듣는 듯해도 아이의 정서는 맑음입니다. 엄마아빠 사이의 분위기가 조금만 안 좋아져도, 아이는 관심이 없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매우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신경 씁니다. 실제로 부모의 이혼과 불화가 자녀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때가 자녀의청소년기입니다. 독립하고 싶어 하지만 가정에 더 관심을 갖는 ‘가짜 독립성 pseudo independence‘의 시기인 것이죠.
- P286

정서 충족 외에 부모가 아이의 정신 건강을 위해 해 주어야 할 두번째 역할이 있습니다. 바로 알아차림 입니다. 아이가 보내는 경고신호를 가장 잘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일상을 제약하고 통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와 함께 생활하고 아이의 기질과 특성을 잘아는 부모는 아이의 문제를 가장 잘 알아차릴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 P287

생각의 흐름을 바로잡는 인지행동치료는 정신건강의학의 다양한질환에서 적용하는 기본적인 방법입니다. 생각의 흐름이 잘못되다못해 지나치면, 피해의식, 자기비하를 거쳐 낮은 자존감과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훈련은 정신 건강에 아주 중요한 도움이 됩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상황을 객관적으로 해석하게 되고, 왜곡 없이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그에 맞는 대처와 문제 해결을 경험할 수 있게 한다면 아이의 자존감은 향상되고, 상황을 보는 수용성과 감수성은 올라갑니다.
- P305

성교육은 성관계 자체에 대한 설명이 아닙니다. 단순히 성에 대한지식을 알려주는 것도 아닙니다. 성적 주체성, 결정권이 각각 개인에게 주어져야 하고, 성관계는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전달하는 과정입니다. 성 문제로 인한 피해자뿐 아니라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교육입니다.  - P314

10대는 아주 멋진 시기입니다. 10대의 뇌는 지각변동을 거치며 엄청난 잠재력을 가집니다. 이전에는 시도하지 않았던 것에 도전하기도 하고, ‘아니야!‘라고 따지고 드는 낯설고 이상한 모습을 보이기도합니다. 그래서 10대의 자녀를 보면, 아이가 처음 걸음마를 하던 때가 떠오릅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자라면서 이것저것에 호기심을 갖고 뭐든 ‘내가! 내가!‘ 하겠다던 그때의 아이가 딱 지금의 모습같습니다. 실제로 10대의 뇌는 그때만큼 열심히 발달하는 중입니다.
멋진 어른이 되기 위해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걸음마를 응원하던 그때의 마음으로 한걸음 뒤에서 믿고 지켜봐 주세요.
그러다 혹여 아이의 마음이, 아이의 뇌가 상처받은 것은 아닐까싶은 순간이 올 수 있습니다. 상처는 치료받으면 됩니다. 아이의 마음이 아플 때 감싸주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 주세요. 걸음마 하던 아이가 풀썩 넘어져 울먹이며 엄마를 쳐다볼 때, 포근하게 안아주며토닥이던 그때의 그 마음으로 훌쩍 큰 내 아이의 마음을 꼭 안아주는 부모가 되어 주세요.
- P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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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분할 이유! 먼저 우리는 세 번째인 테네시 주를 거쳐가게 되었는데, 여러 주를 넘나드는 것은 언제나 트레일의 성취감을 더해주었다. 스모키 산맥을 관통하는 트레일은 노스캐롤라이나와 테네시주의 경계를 이룬다. 언제나 내가 원할 때마다 왼발은 이 주에, 오른발은 저 주에 걸칠 수 있다는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테네시 주에 있는 나무 그루터기에 걸터앉을 수도 있고,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바위에 앉아 쉴 수도 있다. 또, 주계를 가로질러 오줌을갈길 수도 있고, 그 밖에도 여러 가지 ‘경우의 수‘ 가 있을 수 있다.
이렇게 기름지고 울창한 첩첩산중에서는 새로운 것들을 볼 수 있다는 흥분도 있다. 이를테면 왕도롱뇽이라든지 엄청나게 큰 튤립나무, 밤에는 푸른색 인광을 발하는 도깨비불 버섯도 볼 수 있다.
아마 곰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바라옵건대 멀찍이, 바람이 불어가는 쪽에서, 그리고 곰은 나를 보지 못한 상태에서, 만약 우리를 보고 다가온다면 카츠에게만 배타적으로 흥미를 느낀다는 조건에서,
무엇보다 거기에는 봄이 멀지 않았으리라는 희망 아니 확신이있었다. 매일 우리는 봄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는데, 자연의 에덴동산인 스모키에서는 봄이 폭발하리라.
- P146

"지도를 보라고, 그리고 우리가 걸어온 지점을 바."
그는 보고 또 보았다. 나는 할 말을 잊은 그의 표정에서 무엇인가가 빠져나가는 걸 지켜보았다.
"제기랄."
마침내 그가 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내게로 얼굴을 돌려 경악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아무것도 한 게 없네."
우리는 커피 한 잔을 마시고 한동안 어안이 벙벙한 채 말없이 앉아 있었다. 우리가 지금껏 경험하고 극복해 온 것 - 모든 노력과 수고, 고통, 습기, 산들, 지긋지긋한 국수, 눈보라, 메리 앨런과의 지겨운 밤, 끊임없이, 지루하게, 끈덕지게 쌓아 온 마일리지- 이 고작 5센티미터였다. 머리카락도 그보다는 더 자랐을 것이다. 그래도 한가지는 분명해졌다 우리는 결코 메인 주까지 가지 못할 것이다.
한편으로 그건 해방이었다. 트레일의 전 거리를 다 걸을 수 없다면 우리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생각하면 할수록 매력적인 아이디어였다. 우리는 의무에서 벗어났다. 고역(役) — 조지아 주에서부터 메인 주까지 울퉁불퉁한 땅을 한 뼘 한 뼘 걸어야 하는 지루하고정신 나간 일-은 이제 끝났다.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다.
- P169

기묘한 대조였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에 있을 때는 숲이야말로 무한한, 그리고 온전한 우주였다. 매일매일 경험하는 것이니까. 실제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기도 하다. 물론 지평선 너머 어딘가에 활발한 도시와 복잡한 공장들, 붐비는 고속도로가 있다는 것은안다. 하지만 눈이 미치는 범위 안의 모든 것이 나무인 곳에 있으면 숲이 지배를 한다. 프랭클린이나 하이어왜시, 그리고 심지어 개틀린버그마저도 숲의 거대한 우주 속에서 그냥 잠시 도움을 주는정거장 같은 곳에 불과하다.
그러나 트레일에서 내려오면, 멀리 내려와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처럼 어딘가로 차를 몰면 얼마나 기만을 당했었는지 깨닫게된다. 여기서는, 산과 숲은 단지 배경 - 익숙하고 잘 알려져 있지만, 그들의 능선에 감도는 구름 이상 유의미하거나 주목할 만한 것은 아니다. 일 뿐이다. 여기에 현실의 세계, 즉 주유소와 월마트,
K-마트, 던킨 도넛츠, 블록버스터 비디오 대여점, 끔찍한 상업적 세계의 끝도 없이 펼쳐진 현란함들이 존재한다.
심지어 카츠마저도 그게 싫은 모양이었다.
"제기랄, 흉측하네."
그는 놀라워했다. 마치 전에 그런 것들을 본 적이 없다는 듯이.
나는 그를 지나서 그의 어깨선을 따라 대초원의 크기만 한 주차장이 딸린 쇼핑 몰을 바라보며 동의했다. 정말 고약했다. 그러고 나서 우리도 함부로, 일제히 오줌을 갈겼다.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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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에는 우울 상태로 들어가면 계속 위축되고 고립되는 쪽으로만 가지 않습니다. 청소년기 뇌 발달의 특성, 또래 관계 특성 등이 있어서 자신의 우울감을 극복하려는 충동적 행동들이 툭툭 튀어나와 다양한 문제를 일으킵니다. 즉, 우울감에서 벗어나려고 자극이 될 만한 것들을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약물, 담배, 술과 같은 행동 문제나, 이성과의 성적 관계를 통해 정서적 보상을 받고 싶어 합니다.
여자 청소년이 우울증에 빠지면 성적 일탈로 연결되는 취약성이커지기 때문에, 이 시기에는 SNS를 통한 잘못된 성적 접근에 대해 매우 경계해야 합니다. 과거에는 설사 잘못된 욕구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비행을 저지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비행 그룹과 연결되어야 했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실제 행동으로 이어졌지만, 이제는 SNS나 랜덤채팅과 같은 손쉬운 접근 방법이 더해지면서 전혀 모르는 사람을 쉽게 만나고, 이용당하기도 쉬워졌습니다. 과거와 비교하면 훨씬 더 많은 위험 요소가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교육과 돌봄이 매우 중요합니다.
자살 시도와 자해도 우울증의 가장 큰 합병증입니다. 청소년은 충동적인 시기이기 때문에 자살 생각의 빈도가 높고, 자살 시도도 있게 생각하지 않고 저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 P223

아이의 사춘기는 묘하게도 부모의 중년 시기와 맞물립니다. 저는 이 시기를 현관에 비유하고는 합니다. 부모가 이제 많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보려고 현관문을 열었는데, 외출하려는 아이를 마주하는 것이조, 집에 와서 아이와 함께할 이런저런 계획을 세웠는데, 아이가 나가려 한다면 서운한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보내 줘야 합니다. 이이가 나가려고 한다는 것은 아이에게도 계획이 있다는 것이고, 그것을 실행할 의지를 보이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아이를 아직 떠나보낼 준비가 되지 못한 많은 부모가 현관에서 마주친 아이를 붙잡아 둡니다. 나가고 싶어 하는 아이를 붙잡으려 합니다. 아이를 독립시키기 힘든 부모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10대 아이의 관심사는 가정이 아니라 밖이고 미래입니다. 자기만의세상을 만들어 가려는 아이에게 부모의 조언은 아이에게 그저 간섭과 잔소리가 될 뿐입니다.
- P255

아이에게 강압적이지 않다는 것, 부족한 부분을 보여 줄 수 있다는 것, 그런 여지를 좀 남겨 주세요. 아이가 툭툭 들어올 수 있게 해주세요. 부모가 단단할수록 아이가 세게 부딪힙니다. 부모가 둥글면아이가 살살 부딪힙니다. 부모가 여지를 남겨 주면 아이는 덜 공격적으로 됩니다.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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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 아이들의 문제를 쉽게 진단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것을 문제 회피의 도구로 이용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나 ADHD라잖아. 난 안 돼. 난 집중 못 해"라는 식으로 아이가 어떤 불편함이나 위기를 회피하는 도구로 병명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내 자녀의 문제에 있어 ‘왜‘에 집착하지 않길 바랍니다. 아이를 잘관찰하되, ‘왜‘를 찾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아이의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집중해야 합니다. ‘왜‘가 아니라 ‘어떻게‘가 중요합니다. 아이가 힘들어하는 과정을 "사춘기라서 그래"라고 방관하거나, "엄마(아빠)가 잘못 키워서 그런 거야"라고 단정하지말고, ‘어떻게 이 아이를 도울 수 있을까‘에 집중하고 부모와 치료자 그리고 아이가 함께 협력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 P158

문제는 자기합리화를 통해 폭력에 대한 정당성이 강화되면, 그것이 문제를 다시 반복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공격성,
폭력성이 반복해서 나오면 차후에는 공감 능력이나 죄책감을 갖지않게 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 즉, 소시오패시sociopathy나 사이코패시 psycopathy 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품행장애, 공격성, 도벽 등의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 적기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면 그 중 3분의 1이 소시오패스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치료 효과도 미미해지고, 청소년기에 치료할 때 드는 비용보다 수십 배 또는 수백 배의 사회적 비용이 들며, 사회안전망이 불안해집니다.
- P170

아이가 빨리 성숙해지는 것, 진도를 빨리 나가는 것, 환경에 빨리적응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을 경계하세요. 뇌의 기능, 적응 과정의 속도는 정해져 있는데 부모가 어긋난 속도를 강요하면 아이의 머리와 마음이 어긋나고, 그것이 스트레스와 좌절이 되고, 낮은 자존감과 잘못된 생각을 만들어 냅니다.
내 아이는 내 아이만의 속도와 방향으로 키워야 건강합니다.
- P179

다른 사람의 일상이 내게 허탈감을 키울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일상의 수많은 단편 중에서 가장 멋지고 아름답고 화려한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고 올립니다. 그러한 순간들이 모인 SNS의 세상은 나의 처지와 다른 별천지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상대적 박탈감이 생깁니다. 자기를 더 과장되게 드러내고 싶은 경쟁적인 마음도 생기죠. 그래서 자기 일상을 더 선택적으로, 왜곡되게 드러내고, 가짜 스토리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비교우위를 확보하고 싶은 것입니다. ‘나도 이 정도는 한다‘, ‘이건 내가 더 낫다‘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
성인은 어느 정도가 되면 적당히 하고 멈출 수 있는 억제 능력이 성숙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10대는 멈춤, 자기통제가 어렵습니다. 또한 성인이 만나는 사람들이 만족하는 친밀도가 10이라면, 10대는 그보다 10배는 더 강한 친밀도를 서로에게 요구합니다. 그래서 SNS를 하는 아이들은 ‘좋아요‘를 더 많이 받기를 바라고, 더 빨리 반응해 주기를 바라고, 자신의 글에 대해 더 강하고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기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런 반응을 매번 받기 어려워서 그만큼 좌절감도 자주 느낍니다. 일상에서 매 순간 상실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10대 아이들은 의존성의 강도도 높은 편입니다. 인플루언서나 SNS 롤모델의 영향을 어른보다 더 많이 받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
 새로운 만남이 쉽고, 또한 10대의 취약성을 이용하려는 성인들의 의도적 접근에 노출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현실에서 자존감이 낮고 의존 욕구가 높은 아이들이 이러한 의도적 접근에 쉽게 넘어갑니다. 이성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는 시기이기에 이러한 접근에 쉽게 넘어가게 만드는 취약성이 있습니다.
- P204

다음은 청소년기 우울증의 특성입니다.
● 즐거움이 없음
● 희망이 없음
● 자존감이 낮음
● 기분 변덕이 심함
● 쉽게 분노함
● 성적 저하
● 또래 관계 위축
● 너무 많이 자고 너무 많이 먹음비행
●약물남용 
●성적으로 문란해짐
●자살 시도(청소년기 자살 시도는 성공하는 확률이 높아지고 있어 주의)
●원인 불명의 과장된 신체적 고통 호소

앞서 말한 대로 청소년기 우울증은 성인기 우울증과 달라서 혼란이 생깁니다. 성인의 우울증은 우울한 기분이 주가 되지만, 소아 청소년 우울증은 짜증을 내고 반항적인 행동을 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가장 쉽게 구별할 수 있는 청소년 우울증의 증상이 있습니다.
바로 무쾌감증입니다. 무쾌감증이란 즐거움을 느낄 줄 아는 능력을우울증으로 인해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만약 내 아이가 기분 저하를보이거나 불쾌감을 토로한다고 해도, 평소 즐겨 하던 활동과 대상에 대해서는 여전히 열정을 보이고 재미있어하고 즐거워한다면 우울증은 아니라고 볼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것에도 쾌감을 느끼지 못하는 증상이 명확하게 보인다면, 우울증을 의심해야 합니다.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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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햄프셔 주의 작은 마을로 이사한 지 얼마 안 돼 우연히 마을 끝에서 숲으로 사라져 가는 길을 발견했다.
흔히 마주칠 수 있는 그런 길이 아니었다. 그 유명한 애팔래치아 트레일‘ 이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이 트레일은 장거리 종주 등반의 원조로 불린다. 미국의 동부 해안을 따라 고요히 솟아있으면서 은근히 사람의 발길을 부르는 애팔래치아 산맥 위로 굽이굽이 3천360킬로미터나 흐르는 길이다. 조지아 주에서 메인 주까지 14개 주를 관통하면서 이름만 들어도 맘이 설레는 블루리지,
스모키, 컴벌랜드, 그린 마운튼, 화이트 마운튼을 지나간다.
- P13

등산 장비를 사기 위해 다트머스 협동조합의 야외용품 전문점에 들어섰을 때, 그 일이 얼마나 무지막지할 것인가 하는 느낌이 처음으로 와 닿았다. 내 아들이 거기서 방과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처신을 잘해야 한다는 것은 알았다. 예컨대 물건값을 듣고 "나랑 장난치자는 거냐?" 하는 말을 내뱉어 속을 내보인다든지, 장비의 올바른 손질법 등을 가르쳐 주는 직원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듣는다든지, 여성 스키 모자와 같은 것을 써보면서 딴청을 피운다든지 하는 일은 할 수 없었다. - P19

 181킬로그램이나 되는 흑곰이 캠프장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상황서 암흑의 텐트 안에 당신 혼자 누워 있다고 상상해보라. 텐트크기만 한 엉덩이를 텐트 천에 쓱쓱 문대는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거친 숨소리, 육중한 발바닥, 찐득찐득한 혓바닥, 곰의 움직임에따라 흔들리는 주전자나 냄비의 덜거덕거리는 소리, 낮게 으르렁거리면서 괴이하게 쿵쿵거리는 소리를 상상해보라. 당신과 혹곰사이에는 바람에 떨리는 얇은 텐트 천밖에 가릴 것이 아무것도 없다. 갑자기 곰이 텐트 안으로 코를 들이민다. 순간 팔 한쪽이 따끔하게 물린 것 같은 통증을 느낄 때 솟구치는 뜨거운 아드레날린을한번 상상해보라, 곰이 텐트 입구 안쪽에 받쳐 놓은 배낭을 뒤질때 갑자기 당신은 생각날 것이다.
‘배낭에 스니커즈가 있다.‘ 알겠지만 곰은 스니커즈를 좋아한다.
‘오, 하느님! 내 옷 속에도 스니커즈가 있네, 여기도 있고, 발 쪽에도, 등 밑에도, 제기랄, 여기도 있네.‘
그러는 사이 또 한 번 곰은 텐트 안으로 쿵 하고 돌진해서는,
제는 당신의 어깨를 노린다. 또다시 쿵 하는 소리, 쿵, 쿵, 쿵! 잠시침묵, 아주 긴 침묵.
‘기다려 봐! 맞아, 갔어. 곰이 다른 텐트나 숲으로 돌아간 것임에 틀림없어‘
형언할 수 없는 안도감. ....… 정말 이런 상황은 피하고 싶다.



- P28

봉우리에 올라서면 지금까지 올라온 길은 훤히 보이지만 앞으로 뭐가 나올지 전혀 예측을 할 수 없다. 어느 쪽이든 나무 커튼 사이로 가파른 비탈길이손에 잡힐 듯 잡힐 듯하다가 다시 뒤로 물러서고, 그럴수록 몸의 기운은 쪽쪽 빠지고 얼마나 왔는지조차 감을 잃어버리게 된다.
꼭대기라고 생각한 곳까지 억지로 몸을 끌고 올라갈 때마다 그 너머에 또 다른 봉우리가 솟아올라 있다. 그것도 전혀 밑에서는 보이지 않는 각도에서 봉우리가 나타나고 그 비탈을 넘어서면 또 다른 비탈, 그 비탈을 넘어서면 또 다른 비탈, 각 비탈마다 새로운 비탈을 준비하고 있다. 이렇게 길게 반복해서, 끊임없이 비탈이 늘어서 있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겨질 때까지 비탈이 나타난다.
마침내 그 너머로 맑은 하늘밖에 보이지 않고 가장 높이 있는 나무들의 맨 위를 볼 수 있는 높이까지 올라가면 "바로 저기다." 하면서전의가 다시 살아나지만, 이내 잔인한 기만으로 끝난다. 교묘히 치고 빠지는 산 정상은 나아간 만큼 계속해서 후퇴한다. 그래서 전경을 볼 수 있을 만큼 시야가 열릴 때마다 가장 높이 있는 나무들이전과 다름없이 엄청나게 떨어져 있어서 결국은 가까이 가기가 어렵다는 걸 깨닫고 좌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비틀거리며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 밖에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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