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 연 잡아다줄까?"
소랍이 침을 삼키자 후골이 오르락내리락했다. 바람에 그의 머리가 들어올려졌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았다.
"너를 위해서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해주마."
나는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지 미소에 불과했다.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괜찮아지지도 않았고, 어떤 것도 괜찮아지지 않았다. 그저 작은 미소에불과했다. 놀란 새가 날아오른 직후에 흔들리는 숲 속의 나뭇잎하나에 불과했다.
그러나 나는 그 미소를 양팔을 활짝 펴고 환영할 것이다. 봄이오면 눈발이 하나씩 녹듯 어쩌면 최초의 눈발이 녹는 것을 내가 목격한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달렸다. 고함을 질러대는 아이들 무리와 함께 다 큰 어른이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신경 쓰지 않았다. 얼굴에 바람을 맞으며 판즈세르 계곡만큼이나 활짝 미소를 지으며 달렸다.
그렇게 나는 달렸다.
- P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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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사실 해답도 뭣도 아니다. 일종의 도덕적 판단이다. 스스로의 성공에 취한 승자들이 그런 판단을 내린다. 전문직업인 계층은 그들의 교육 수준에 따라 정의되며, 그들은 입만 열면 더 많은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들에 따르면 불평등이란 시스템의 실패가 아니라 실패자 개인의 실패일뿐이다.

프랭크는 이 모든 교육 운운하는 이야기가 불평등을 직접 초래한 정책에서 민주당의 주의를 돌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생산성은 1980~1990년대에 증가했으나 임금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과연교육 실패가 불평등의 주원인일까? 하고 의문을 제기했다. "진짜 문제는 노동자의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것과 상관없으며, 노동자의 정치적 영향력이 약한 데 있다. 생산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생산한 것에서 자기 몫을 요구할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 P149

 학력이 뛰어난 사람이 정부를 이끈다는 것은 비교적 좋아 보인다. 그들이 올바른 결정을 내리고, 노동계급의 생활을 동정적으로 이해한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그것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실천적 지혜와 시민적 덕성이라고 부른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뛰어난 학력과 실천적 지혜 또는 공동선 실현에 대한 본능적인 욕구가 서로 그다지 일치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학력주의가 잘못된 가장 대표적인 사례 하나는데이비드 할버스탐의 고전적 저작인 《최고의 인재들 The Best and the Brighter)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에는 존 F. 케네디가 호화찬란한 학력의 소유자들로 내각을 꾸렸던 사례가 나와 있다. 그러나 그들의 뛰어난 전문성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베트남 전쟁의 늪에 뛰어들고 말았다.
알터는 케네디 내각과 오바마 내각의 비슷함에 주목한다. 두 대통령모두 아이비리그를 나왔으며, 미국인들 대부분의 일상생활에 어느 정도 경멸 섞인 무관심을 갖고 있었다. 결국 오바마의 경제고문들도을 자초했다. 베트남 전쟁보다는 덜 치명적인 늪이었으나, 그럼에도미국 정치의 형태를 바꿔 버리는 데 결정적 작용을 한 늪이었다. 금융위기를 맞이해 월스트리트의 편을 들어주도록 함으로써 그들은 은행들이 담보도 없이 거액의 구제금융을 받도록 했다. 덕분에 민주당은 많은 노동자들의 눈 밖에 났다. 그리고 트럼프는 백악관에 갈 꽃길을 얻었다.
이런 정치적 판단 착오는 능력주의적 오만과 무관하지 않다. 프랭크는 이를 두고 "민주당 사람들과 월스트리트 사람들이 널리 공유하고있던 거대한 능력주의적 특권, 그것은 명문 대학원 학위와 직결되어 있었다"고 설명했다.
- P152

좋은 통치는 실천적 지혜와 시민적 덕성을 필요로 한다. 공동선에 대해숙고하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나 둘 중어느 것도 오늘날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함양될 수 없다. 최고의 명문대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최근의 역사적 경험은 도덕적 인성과 통찰력을 필요로 하는 정치 판단 능력과 표준화된 시험에서 점수를 잘 따고명문대에 들어가는 능력 사이에 별 연관성이 없음을 보여준다. 최고의인재들이 저학력자 동료 시민들보다 통치를 잘한다는 생각은 능력주의적 오만에서 비롯된 신화일 뿐이다.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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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호세 주립대학에서 창조적 글쓰기 강의를 맡았던 선생님은 상투적인 표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곤 했다.
"전염병을 피하듯이 상투적인 표현을 피하라."
그런 다음 그는 자기가 한 농담에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학생들도 선생님과 함께 웃었지만 나는 상투적인 표현이 부당하게 매도를 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항상 품고 있었다. 상투적인 표현이 너무나 정확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투적인 표현이 들어간 말은 상투적인 표현이라는 그 말의 본질 때문에 그 정확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방 안의 코끼리(무시할 수 없는 현실)‘ 라는 표현을 예로 들어보자. 라힘 칸과의 재회 첫 순간을 이보다 더 정확하게 묘사할 말은 없을 것이다.
- P296

그들은 번화한 길모퉁이 도랑 옆에서 부르카를 입은 어머니 무릎에 앉아 "은혜를 베풀어주세요! 은혜를!" 이라고 외쳤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남자 어른과 함께 앉은 아이들이 거의 없다는 것을. 전쟁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아버지가 귀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 P366

우리 두 사람 모두 쳐다봤다.
"제발 그만해요."
고아원 원장이 파리드와 내게 문을 열어주었을 때 했던 말이기억났다. 그의 이름이 뭐였더라? 자만이었던가? "그애는 그것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예요. 어딜 가건 항상 바지춤에 집어 넣고 다녀요."
"그만해요."
두 줄의 검은 마스카라가 눈물로 범벅이 된 채 그의 볼을 타고 흘러내려서 루주와 뒤섞여 번졌다. 그의 아랫입술이 떨렸다. 콧물이 그의 코에서 흘러나왔다.
"그만해요."
그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새층의 고무줄을 팽팽하게 당겨서 그 끝부분을 잡고 있는 그의 손이 어깨 위로 올라가 있었다. 고무줄 끝부분에 반짝이는 노란 것이 끼워져 있었다. 눈을 깜빡여서 눈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보니 그것은 테이블 아래 부분의 고리에 달려 있던 놋쇠 공이었다. 소랍이 새총을 아세프의 얼굴에 겨냥하고 있었다.
"그만해요. 제발요."
소랍이 허스키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 좀 때려요."
- P433

용서란 요란한 깨달음의 팡파르와함께 싹트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소지품들을 모아서 짐을 꾸린다음 한밤중에 예고 없이 조용히 빠져나갈 때 함께 싹트는 것이아닐까?
- P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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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과 파커의 입을 통해 도덕 세게의 궤적이 정의를 향해 휘어진다는 믿음은 부정의에 맞선 싸움을 위한 크고 예언자적인 외침이 되었다. 그러나 똑같은 섭리론 믿음이 약자들에게는 희망을, 강자들에게는 오만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최근 수십 년 동안 자유주의의 감각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민권의 도덕적 긴급성에 대한 감각이 냉전 이후 자족적인 승리주의 감각으로 바뀌어 버렸다.
- P96

힐러리 클린턴의 불운이랄까. 사회적 상승에 관한 담론은 2016년 그 추진력을 잃어버렸다. 그녀를 누른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는 사회적 상승에 대한 이야기나,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재능과 노력이 허용하는 한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내가 아는 한 트럼프는유세 기간 중 이 구호를 한 번도 쓴 적이 없다. 또한 그는 대통령이 되어서도 이런 이야기를 일절 안 했다. 대신 그는 승자와 패자에 대한 거친 발언을 내놓으며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노라"고 했다. 그러나 그가 말한 위대함의 비전은, 지난 40년간 미국에서 활발한 공적 담론을 일으켰던 능력주의적 기획과 아무 상관이 없다.
사실 능력주의 엘리트에 대한 포플리즘적 반감이 트럼프 당선과 그해 초 영국에서 예상을 깨고 이루어진 브렉시트 표결에 일정한 역할을했다고 믿을 이유가 있다. 선거는 복합적 이벤트이므로 어떤 일이 투표자의 표를 이끌어 냈는지 확실히 알기 어렵다. 그러나 트럼프와 브렉시트 그리고 다른 나라들의 포퓰리스트 정당들에 표를 던진 많은 노동계급 사람들은 사회적 상승에 대한 약속보다는 국민 주권 원칙의 재확인, 국가 정체성과 국가적 자존심 등의 강조에 동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시장주도적 세계화를 환영하면서 그 이익 대부분을 챙기고 노동자들을 외국 노동자들과의 경쟁에 내몬 장본인들, 동료 시민들보다는 세계 각지의 엘리트들과 더 가까워 보이는 능력주의 엘리트, 전문가, 전문직업인 계층에 대해 분노를 표출한 것이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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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맞은편에 많은 그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손톱은 잘려나가고 엔진 오일로 새까맸으며, 손마디는 벗겨지고, 옷에서는 주유소 내 먼지와 땀, 휘발유 냄새가 났다. 바비는 재혼한후에도 사별한 아내를 잊지 못하는 홀아비 같았다. 그는 잘랄라바드의 사탕수수밭과 파만의 정원을 그리워했다. 자기 집에 들락거리던 사람들을 그리워했고 소르 시장의 소란스런 길을 걷고 싶어했다. 자기와 아버지를 알고 있는, 같은 조상과 같은 과거를 가진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싶어했다.
내게는 미국이 과거를 묻을 수 있는 곳이었다.
바바에게 미국은, 과거를 애도해야 하는 곳이었다.
- P196

그런데 지금 그런 소라야의 어머니가, 감추지도 않은 채 고스란히 희망을 드러낸 눈빛으로, 가슴을 아프게 할 정도로 간절하게 일그러진 미소를 짓고 있다. 운 좋게 남자로 태어났다는 그이유 하나로 그 동안 누려왔던 권력에 나는 진저리가 났다. 장군의 눈빛을 통해 장군의 생각을 읽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그의 아내는 눈빛으로 많은 것을 드러냈다. 이 문제가 무엇이건, 이 문제 때문에 적이 생긴다 해도 그녀가 내 적이 될 가능성은 전혀없을 것 같았다.
- P226

"이 주 후에 전화 드릴 거예요."
‘의심이 간다‘는 말을 듣고서 어떻게 2주를 기다릴 수 있겠느냐고 의사에게 따지고 싶었다. 어떻게 내가 밥을 먹고, 일하고, 공부를 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그 의사는 그런 말을 해주고 나를 집으로 보낼 수 있을까?
서류를 받아서 그것을 제출했다. 그날 밤 바바가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담요를 폈다. 그것을 기도용 깔개 삼아 바닥에 머리를 수그리고 카불에서 율법 선생님 때문에 강제로 외웠지만 반쯤 잊어버린 코란 구절을 낭송했다. 과연 신이 존재하는지 확신하진 못했지만 신에게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이제는 율법학자가, 그의 믿음과 확신이 부러웠다.
-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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