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사실 해답도 뭣도 아니다. 일종의 도덕적 판단이다. 스스로의 성공에 취한 승자들이 그런 판단을 내린다. 전문직업인 계층은 그들의 교육 수준에 따라 정의되며, 그들은 입만 열면 더 많은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들에 따르면 불평등이란 시스템의 실패가 아니라 실패자 개인의 실패일뿐이다.
프랭크는 이 모든 교육 운운하는 이야기가 불평등을 직접 초래한 정책에서 민주당의 주의를 돌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생산성은 1980~1990년대에 증가했으나 임금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과연교육 실패가 불평등의 주원인일까? 하고 의문을 제기했다. "진짜 문제는 노동자의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것과 상관없으며, 노동자의 정치적 영향력이 약한 데 있다. 생산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생산한 것에서 자기 몫을 요구할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 P149
학력이 뛰어난 사람이 정부를 이끈다는 것은 비교적 좋아 보인다. 그들이 올바른 결정을 내리고, 노동계급의 생활을 동정적으로 이해한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그것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실천적 지혜와 시민적 덕성이라고 부른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뛰어난 학력과 실천적 지혜 또는 공동선 실현에 대한 본능적인 욕구가 서로 그다지 일치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학력주의가 잘못된 가장 대표적인 사례 하나는데이비드 할버스탐의 고전적 저작인 《최고의 인재들 The Best and the Brighter)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에는 존 F. 케네디가 호화찬란한 학력의 소유자들로 내각을 꾸렸던 사례가 나와 있다. 그러나 그들의 뛰어난 전문성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베트남 전쟁의 늪에 뛰어들고 말았다.
알터는 케네디 내각과 오바마 내각의 비슷함에 주목한다. 두 대통령모두 아이비리그를 나왔으며, 미국인들 대부분의 일상생활에 어느 정도 경멸 섞인 무관심을 갖고 있었다. 결국 오바마의 경제고문들도을 자초했다. 베트남 전쟁보다는 덜 치명적인 늪이었으나, 그럼에도미국 정치의 형태를 바꿔 버리는 데 결정적 작용을 한 늪이었다. 금융위기를 맞이해 월스트리트의 편을 들어주도록 함으로써 그들은 은행들이 담보도 없이 거액의 구제금융을 받도록 했다. 덕분에 민주당은 많은 노동자들의 눈 밖에 났다. 그리고 트럼프는 백악관에 갈 꽃길을 얻었다.
이런 정치적 판단 착오는 능력주의적 오만과 무관하지 않다. 프랭크는 이를 두고 "민주당 사람들과 월스트리트 사람들이 널리 공유하고있던 거대한 능력주의적 특권, 그것은 명문 대학원 학위와 직결되어 있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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