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하신 엄마. 엄마는 슬리퍼를 들고서 법과 질서를 정했다. 그놈의 슬리퍼, 히스패닉계 애들은 모두 슬리퍼를 무서워했다.
수백만 명의 멕시코 엄마들은 성질이 나면 퉁방울 같은 눈을 부라리며 애들이 비명을 지르도록 팬다. 한쪽 팔로 애들을 잡고서다른 팔로는 볼기짝을 갈겨대는 것이다. 이럴 때마다 애들은 어떻게든 도망치려 하지만 엄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빙글빙글 맴돌며 춤을 추는 꼴이 된다. 엄마들은 볼기짝을 갈겨델때마다 설교하듯 격식 있는 존댓말을 내뱉었다. "그대는 여기 대장이 누군지 알게 될 거예요!‘ 노부인들에게 볼기를 맞으면 모두 그대란 존댓말을 듣게 된다. 그러다 불쌍한 애들이 탈출이라도 하면, 엄마들은 유도 미사일을 쏘듯 슬리퍼를 던져서 애 뒤통수를 정확히 맞히는 것이다.
"훈련소 조교보다 더 심하고말고."
그는 옛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 P30

빅 엔젤의 절친한 친구인 데이브는 이런 말을 했었다.
"아주 넓은 해안이 있어. 우리는 모두 자그마한 호수야. 그런데 저 물 한가운데가 요동치면, 중심에서부터 퍼진 물결이 완벽한 원을 이루거든."
그때 그는 이렇게 대꾸했었다.
"데이브, 지금 뭔 헛소리를 하는 거야?"
"인생이 그런 거라고, 멍청아. 너 말이야. 물결은 처음에 세차게 시작하지만, 해안으로 갈수록 점점 약해지지. 그러다 다시 안으로 돌아오고, 돌아오는 물결은 눈에 보이지 않아. 하지만 분명히 존재해서 세상을 바꾸는 법이야. 그런데 너는 지금 본인이 뭔가 성취했는지 어떤지 의심이나 하고 있잖아."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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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종과 순종의 결정적 차이는 내면의 동의 여부에 있다. 복종은 행동에 관심이 있을 뿐 내면적 동의에 무관심하지만, 순종은 행동뿐 아니라 내면적 동의를 요구한다. 분대장은 병사들이 속마음이야 어떻든 자신의 명령에 따라 행동하기를 바라고,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의 뜻에따라 행동할 뿐 아니라 자신을 공경하기를 바란다. 사회나 군대의 상하 관계에서는 복종이 주로 쓰이고,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간의 관계에서는 순종이 주로 쓰인다고 할 수 있다.
- P162

그러나 엄밀히 말해 ‘부도덕하다‘와 ‘비도덕적이다‘, ‘부도덕성‘과 ‘비도덕성‘이 완전 동의어는 아니다. ‘부도덕하다‘와 ‘부도덕성‘이 어떤 행위가 도리나 규범에 어긋나거나 이를 어긴 상태를 나타내는 반면, ‘비도덕적이다‘와 ‘비도덕성‘은 어떤 행위가 도리나 규범에 맞지 아니하거나 도덕에 대립된 상태를 나타낸다. 전자가 후자보다 도덕에 대한 부정의 정도가 강하다.
••••••
남의 물건을 훔치는 일은 부도덕한 행위이면서 비도덕적인 행위이지만, 인간 배아 복제는 부도덕한 행위라기보다 비도덕적인 행위이고, 타인의 불행에 아무 관심이 없는 도시인의 이기심은 부도덕성이라기보다 비도덕성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부도덕과 비도덕은 부정적 의미의 강도가 다르다. 또 해악을 미치는 결과도 달라, 부도덕이 직접적이라면 비도덕은 간접적이다. 곧 도둑질이 가져오는 피해는 직접적이지만,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 가져오는 피해는 간접적이라 할 수 있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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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과 마법의 의미가 구별되어 쓰인 것은 초자연적힘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이 상실되어 가면서부터이다. 근대 과학이 초자연적이고 불가사의한 현상을 의심의 눈길로 바라보게 되면서 마술은 현란한 눈속임의 공연 예술로 축소되었고, 마법은 환상적인 상상 문학(동화, 판타지 소설 따위)에서나 가능한 허구의 술법이 되었다.
- P132

꽃은 만발할 수도, 만개할 수도 있다. ‘만발‘은 식물이 군락을 이룬 상태에서 꽃이 흐드러지게 핀 경우에 쓰이고, ‘만개‘는 식물의 군락 여부와 상관없이 꽃의 절정 상태를 나타내는 경우에 쓰인다. 곧 만발이 수많은 꽃이 너른 공간을 온통 뒤덮듯 피어 있는 상태인 데 비해, 만개는 꽃이 개화의 절정에 다다른 상태이다. 가령 벚꽃은 만발할 수도 만개할 수도 있는데, 이때 만발은 어느 곳이 수많은 벚꽃으로 뒤덮인 상태를 가리키고, 만개는 벚꽃의 개화가 최고조에 이른 상태를 가리킨다. 그런데 한 송이의 연꽃에 주목할 경우, 원추형의 꽃봉오리가 점차 벌어져 마침내 활짝 핀 상태는 만개라고 할 뿐 만발이라고 하지않는다. 이렇듯 만발은 꽃이 넓은 곳에 수량적으로 많이 피어 있음을 뜻한다는 점에서 공간적 분포에 초점이 있고, 만개는 개화의 진행이 정점에 도달한 상태를 뜻한다는 점에서 시간적 추이에 초점이 있다. 만발은 대상을 멀리 두고 바라볼 때 더 잘 감상할 수 있고, 만개는 대상을 가까이 두고 살펴볼 때 더 잘 포착할 수 있다.
- P136

무식‘無識은 배우지 못해서 아는 것이 없는 상태를 뜻한다. 배우지 못했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제도 교육을 받지못했음을 뜻하지만, 넓게는 글(지난 시대에는 한문)을 깨치지 못했음을 가리키기도 한다.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라는 속담은 문맹文盲이 곧 무식의 징표임을 간결하게보여 준다. 제도 교육을 받지 못했더라도 최소한 글을 깨친사람은 독서나 독학을 통해 무식을 면할 수 있다. 무식을 면한다는 것은 인문적 지식과 교양을 두루 쌓는 일이다.
‘무지無知‘는 아는 것이 없음을 뜻한다는 점에서 ‘무식‘
과 유사하나, 인문적 지식과 교양의 전반적 결여를 가리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무식‘과 구별된다. 무지는 단지 특정한 분야나 영역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물리학 박사라도 음악에 대해 무지할 수 있고 철학자라도 경제에 무지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아무도 물리학 박사나 철학자에게 무식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 P141

과학 문명, 기계 문명, 공업 문명의 경우 문명을 문화로 바꾸기 어렵고, 전통 문화, 놀이 문화, 음식 문화의 경우 문화를 문명으로 대체하기 어렵다. ‘문명‘이 인간 집단이 주로 기술적·물질적 토대 위에서 발전을 이룩한 상태를이른다면, ‘문화‘는 어떤 사회 집단이 오랜 시간 동안 형성하여 서로 공유하는 가치관과 행동 양식을 가리킨다고 할수 있다.
- P144

‘물건‘은 일상생활과 관련이 있는, 일정한 형태가 있는사물을 가리킨다. 필요에 따라 만들거나 가공하여 어떤 목적으로 이용하며, 일반적으로 혼자서 들거나 여럿이 옮길만한 크기의 것을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물건은 어떤 용도인지, 누구의 소유인지,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등이 중요하다. 남의 물건을 훔친다는 말은 소유 관념이 투영된 표현으로, 남의 물체나 물질을 훔친다고 하지는 않는다.
또 가치 유무를 따져 귀중한 물건이라거나 값싼 물건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귀중하거나 값싼 물체나 물질이라고는 말하지 않으며 용도 여부를 따져 쓸모없는 물건이라거나 쓸 만한 물건이라고 하지만 쓸모없다거나 쓸 만한물체나 물질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이처럼 물건이라는 말 속에는 용도, 소유, 가치 등의 관념이 짙게 묻어있다.
- P149

‘물체‘는 일정한 형태가 있다는 점에서 물건과 같으나 일상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물건과 다르다. 물체에는 용도, 소유, 가치 등의 일상적 관념이 지워져 있다. 물체는 주로 관찰이나 실험 같은 가치 중립적 맥락에서 사용된다. 과학 탐구를 위한 관찰에서 정지해 있는(혹은 운동하는) 물체를 물건이나 물질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또 형태는 있으나 정체를 알 수 없거나 오직 시각이나 촉각 등의 대상이 되는 사물을 물체라고 부를 수 있다. 창밖으로 스쳐지나간 정체불명의 그림자는 검은 물체라고 부르고 흐릿하거나 또렷한 시각적 대상물과 차갑고 단단한 촉각의 대상물도 물체라 부른다.
••••••
‘물질‘은 공간을 차지하고 질량이 있다는 점에서 물건 · 물체와 같으나 특정한 형태가 없다는 점에서 그것과 다르다. 물질은 어떤 물건이나 물체의 재료나 원료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고, 원소나 화합물이라는 뜻으로 쓰이기도한다.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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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엔젤은 어머니의 장례식에 지각했다.
그는 침대에서 고개를 번찌 쳐들있다. 발에 침대 시트가 이리저리 감겨 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깨닫자 옆구리에서 땀이송송 솟았다. 해가 중천이었다. 가늘게 뜬 눈꺼풀 사이로 빛이 환했다. 온 세상이 분홍빛으로 타오르고 있다니. 다른 사람들은 모두 먼저 가 있을 것이다. 안 돼, 이러지 마. 오늘은 안 된다고. 그는 일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
"멕시코 사람은 이런 실수를 하는 법이 없는데……." 그가 중얼거렸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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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러닝셔츠 바람에 총을 들고 멍하게 앉아 있는 폴의 눈에 보이는 것은 발가벗은 채 트램펄린 위로 높이 뛰어오르는 샌디의 모습이다. 샌디는 점프를 하며 폴을 향해 웃는다. 뒷마당이 환해질 만큼 눈부신 웃음이다. 폴도 그녀를 향해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지만 그의 가슴에 어느새 슬픔이 가득 차오른다. 그는 울음을 참느라 이를 악물고있어 얼굴이 우스꽝스럽게 일그러진다. 점프를 하는 샌디의 등뒤론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고 그 너머로 평화로운 다운타운의 아침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점프를 할 때마다 샌디의 풍성한 금발은 바람에 나부끼고 커다란 두 개의 젖가슴이 그 사이에서 출렁인다.
- P238

그녀는 전남편이 왜 그렇게 머나먼 땅에서 외롭게 떠돌며 살았는지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게 혹시 자기 때문이었다면 이제는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둘이 함께한 시간들이 비록 고통스럽고 힘들었더라도, 그래서 함께 늙어가는 기쁨을 가지진 못했더라도, 팔짱을 끼고 산동네를 향해 올라가던 그 순간, 우리는 서로 사랑하지 않았었냐고, 그렇다면 결국 상대로 인해 인생을 낭비한 것만은 아니잖냐고 말하고 싶었다. 그녀는 미국에 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떠 찻잔을 자주 들었다놓곤 했다.
- P350

그때 디제이 형의 입에서 흘러나온 취향 이란 단어가 어찌나 우아하고 향기롭게 느껴졌던지! 우리는 모두 비싼 중국음식점에서 차려낸, 듣도 보도 못한 청요리 앞에 교련복을 입고 나란히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취향을 갖는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것은 여러 보기 가운데 반드시 하나의 정답만을 골라야하는 사지선다의 세계와는 차원이 다른 세계였다. 그것은 틀릴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공평하고 무사(無私)한 세계였으며 믿기에 따라선 내가 찍은 게 다 정답이 될 수도 있는 너그럽고 당당한 세계였다. - P356

사실, 스무 살 나이엔 아무것도 절실한 게 없다. 그것은 젊음이라는 빛나는 재산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아직 욕망이 구체화된 나이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젊음은 그저 무지와 암흑의 카오스에 갇혀 있는 어설픈 가능태일 뿐, 특별한 의미는 없다. 당시 내게 필요한 건 심심함을 달래줄 만화책과 담뱃값, 그리고 아무 데고 내키는 대로 쏘다닐 수 있는 자전거……… 그 외에 또 뭐가 있었을까? 훗날, 그때 누군가 좋은 책을 추천해주는 사람이 옆에 있었더라면 내 인생이 좀더 나아졌을까?
하지만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만난 수많은 스승들가운데 그런 스승은 아무도 없었던 것 같다. 그들이 가르쳐준 거라곤 그저 ‘대학 못 가면 사람 노릇 못 한다‘는 무시무시한 명제뿐이었다.
그 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었지만.
- P372

-잘가.
나는 돌아서서 기차를 향해 뛰어갔다.
승강대에 오르자마자 기차는 곧 출발하기 시작했다. 기차가 움직이는 순간, 울컥 목이 메었다. 나는 승강대에서 머리를 내밀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언제나 그렇게 서 있을 것처럼 나를 향해 말없이 서있었다. 우리의 초라한 방을 밝혀주었던 스탠드도 여전히 그녀의 트렁크 위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나는 그 스탠드가 언제까지고 그녀의 방을 따뜻하게 비춰주길 바랐다. 기차역이 멀어지며 그녀의 모습이 시야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가장 슬프고 아름다웠던, 하지만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내 인생의 어느 한 지점과 영원히 작별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 P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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