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이슬람교의 가장 좋은 점과 가장 나쁜 점이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지 볼 수 있다. 이슬람교에는 원래 제도화의 원리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국가 권력이 이슬람교를 이용하기 쉬웠다. 그래서 국가 권력은 이슬람교를 위한 제도화를 추진했다. 여기서 이슬람교는 선택을 해야 한다. 이슬람교는 본성상 어떤 사항을 "곧바로 정치적 문제로 만들 수 있다."
이렇게 종교와 정치가 중첩되는 현상은 국가주의적 동원으로 나타나거나 국가주의에 반대하는 집단으로 나타난다. - P54

물론 우리는 테러리스트의 논리를 (코란이 아니라) 근대화의 맥락에서 다뤄야 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이슬람 세계가 부딪힌 문제를 근대화를 중심으로 다음과 같이 기술할 수있다. 이슬람 세계는 서구 근대화에 갑자기 노출되었다. 근대화의 충격을 "통과하고" 충격을 완화할 상징적, 환상적 공간이나 장막을 구성할 겨를도 없이 근대화에 직면했다. 그래서 이슬람 세계는 이란의 샤shah 정권처럼) 근대화를 피상적으로 모방하거나, 적당한 상징적 환상을 만들지 못한 채 곧바로 폭력적 실재에 기대어 무력을 휘두를 수밖에 없었다. (또한 근대화를 피상적으로 모방하는 방법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폭력을 휘두르는 세력은 이슬람의 진리와 서구 세계의 거짓이 싸울 수밖에 없고 둘을 이어주는 상징적 매개체가 없다고 선언한다. "근본주의자"가 제시하는 이 해법은 근대적 현상으로서 이슬람교 전통과 곧바로 연결되지도 않는다.
이들의 해법에서 나타난 신은 초자아다운 실재로서 외설스런 초자아적 신성을 실현하고자 희생제물을 요구하는 살해욕구를 발산한다.  - P58

하지만 이슬람교는 여자를 불신한다. 그런데 이슬람교가 여자를 불신하는 방식은 오히려 여성 주체성이 품은 외상적, 전복적, 창의적, 폭발적 힘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물론 부정적으로 드러내긴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선택을 해야 한다. 극동처럼 여자를 어머니 여신으로 높일 것인가? 이슬람처럼 여자를 불신하여 여성 주체성의 힘을 드러낼 것인가?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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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별장에서는 선생님이 가장 일찍 일어난다. 날이 새고 얼마 있다 잠이 깬 나는, 좁은 침대에 누운 채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선생님 기척에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머리맡에 둔 손목시계를 들고 어둠 속에서 시간을 본다. 5시 5분이다. - P9

나는 잠자코 불을 보고 있었다. 장작과 장작 사이에 약간의 틈을 주고 늘어놓으면 그 틈새로 신나게 불길이 솟구친다. 사이를 떼어놓으면 그 순간 불길이 약해지고 빨갛던 장작이 하얀 연기를 내면서 까매진다. 장작을 가까이 갖다붙이면 다시 불꽃이 일어난다. 불꽃은 장작과 장작 사이에서 태어나는 덧없는 생물 같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변은 불타는 장작 소리만 이따금 튈 뿐, 빗소리도 바람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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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그들은 덴버에게 미안했는지도 모른다. 혹은 세서에게. 어쩌면 누군가를 경멸했던 자신들의 지난날이 안타까웠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서로에게 그토록 오랫동안 나쁜 감정을 품고 있었으면서도, 그 사람에게 역경이 안장도 없는 말을 타고 찾아오면 재빨리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말에 발을 걸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저 착한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 P406

"세서." 그가 말한다. "당신과 나, 우리에겐 어느 누구보다 많은 어제가 있어. 이젠 무엇이 됐든 내일이 필요해."
그는 몸을 숙여 그녀의 손을 잡는다. 다른 손으로는 그녀의 얼굴을어루만진다. "당신이 당신의 보배야, 세서 바로 당신이." 그의 믿음직한 손가락이 그녀의 손가락을 꼭 잡는다.
"나? 내가?" - P445

흔들어서 달랠 수 있는 외로움이 있다. 팔짱을 끼고 무릎을 끌어당겨 세운 채 몸을 흔들고, 계속 흔든다. 이런 동작은 배의 흔들림과는달리, 몸을 흔드는 사람의 마음을 달래고 가라앉혀준다. 그것은 내면의 문제다. 피부처럼 팽팽하게 감싸고 있다. 그런가 하면 배회하는 외로움도 있다. 몸을 흔들어도 진정시킬 수 없다. 그것은 살아 있어서, 제멋대로 돌아다닌다. 메마르고 확산되는 그것은 자기 자신의 발소리가 아득히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 P446

이것은 전할 만한 이야기가 아니다.

124번지 뒤로 흐르는 시내 근처에는 그녀의 발자국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나타났다 사라진다. 그 발자국은 아주 친숙하다. 아이든 어른이든 발을 대어보면, 꼭 맞을 것이다. 발을 빼면, 마치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것처럼 발자국은 다시 사라진다.
곧 모든 흔적이 사라지고, 발자국뿐 아니라 물과 그 물 아래 있는것 전부가 잊힌다. 남는 건 날씨뿐이다. 기억에서 지워지고 행방이 묘연한 이들의 숨결이 아니라 처마를 스치는 바람, 혹은 너무 빨리 녹는봄의 얼음이다. 그저 날씨뿐. 물론 키스를 바라는 아우성도 없다.

빌러비드 - P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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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본성과 양육(nature and nurture)에 관한 책은 이미 많이 나오지 않았는가! 마음이 백지라고 믿는 사람이 아직도 존재한단 말인가? 아이를 한두 명 키워본 사람, 이성애적 관계를 경험해 본 사람, 아이들은 언어를 학습하는 반면에 애완 동물은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에 주목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간의 재능과 기질은 어느 정도 타고난다는 것을 명백히 알고 있지 않을까? 우리는 모두 유전과 환경으로 단순화한 이분법에서 벗어나 모든 행동은 그 둘의 상호 작용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이미 깨닫지 않았는가?" - P7

그럼에도 모든 사회는 그 나름의 인간 본성이론과 함께 유지되며,
우리의 주류 지식인 사회에도 하나의 명확한 이론이 존재한다. 그 이론은 공공연히 표명되거나 채택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거의 모든 신념과 정책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버트런드 러셀은 이렇게 썼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편안하게 해 주는 확신의 구름에 둘러싸인 채 살아간다. 그 구름은 여름날의 파리 떼처럼 그를 따라 이동한다." 오늘날 지식인들의 경우 그 확신의 많은 부분이 심리학 그리고 사회적 관계와 관련되어 있다. 나는 그 확신들을 ‘빈 서판‘이라 지칭하고자 한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은 어떤 고유한 구조와도 무관하며, 사회나 그 자신이 그 위에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새겨 넣을 수 있다는 개념이다. - P27

인간 본성에 대한 이 이론, 즉 인간 본성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론이 바로 이 책의 주제이다. 모든 종교에는 인간 본성에 대한 이론이 포함되어 있고 인간 본성에 대한 이론들이 각각의 종교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처럼, 현대 지식 세계에서는 빈 서판이 세속 종교가되었다. 그것은 가치의 원천으로 간주되며, 따라서 그 이론이 무에서 생겨나는 복잡한 마음이라는 믿기 힘든 기적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은 문제시되지 않는다. 회의론자들과 과학자들이 그 학설에 도전하면 어떤 신자들은 신앙의 위기에 빠지고 또 어떤 신자들은 이교도와 불신자들을 향해 격렬한 공격을 퍼붓는다. 그러나 많은 종교적 전통들이 결국에는 과학의 명백한 위협들(가령 코페르니쿠스와 다윈의 혁명적 이론)을 참고 받아들였듯이, 우리의 가치관도 빈 서판의 종말을 이기고 꿋꿋이 살아남을 것이다.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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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태양 및 풍력 에너지 분야가 부쩍 발전했다. 신형 풍력발전기와 태양광 발전 시설은 낡은 석탄 화력 발전소에 맞설 경쟁력을 갖췄으며 전지 기술이 급속히 개량되면서 들쭉날쭉한 발전량을 상쇄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의 전기 수요를 태양 에너지로 충당하려면 바트나예퀴들 빙하와 맞먹는 약 1만 제곱킬로미터의 면적이 필요한데, 미국의 지붕 면적은 약 5000제곱킬로미터이고 주차장 면적은 약 6만 제곱킬로미터다.
이 경주에서는 승리해도 모두가 승리하고 패배해도 모두가 패배한다. 호주, 아랍 지역, 애리조나가 태양 에너지 도입을 앞당길수록 이 기술이 널리 쓰이고 이를 통해 사람들이 가난에서 벗어날가능성이 커진다. 아프리카 오지에서는 사람들이 100년에 걸친 통신 기술 발전을 생략한 채 곧장 스마트폰을 쓴다. 같은 일이 에너지 혁신에서도 일어나야 한다. 우리는 석탄과 석유를 생략하고 태양·풍력·지열 에너지로 직행해야 한다. 부자 나라가 기술을 확대하고 스스로 활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발전 방안이다. - P346

지금의 중대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삶의 토대가 2050년, 2060년, 2080년에도 무사하도록 하기 위해서 지금처럼 긴급한 조치를 취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코로나19위기에서 전 세계적 무대응이 엄청난 고통을 일으킨 것에서 교훈을 얻어 이를 지구 전체의 미래에 적용할 수 있을까? 99퍼센트의과학자들이 지금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의사와 간호사를 신뢰하듯 기후학자들을신뢰할 수 있을까? 전 세계가 멈춰버린 이번 사태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 P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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