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토하는 몸을 꼿꼿이 세우더니 어깨를 쭉 펴고서 정면을 바라본다. "제일생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고 가장 사랑한 것이 바로 군대입니다."
"지금 자네가 군대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군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걸세." 스카비노 장군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정한 표정을 지으려고 애쓴다. "적어도 그 특별봉사대를 책임지는 동안에는 말일세."
판토하 대위가 눈을 꿈뻑거린다. "죄송합니다만 지금 무슨 말씀을하시는 겁니까?"
"난 자네가 사령부나 이키토스의 막사에 발을 들여놓지 않길 바라네." 스카비노 장군은 윙윙 소리만 낼 뿐 보이지 않는 선풍기 날개에 손바닥과 손등을 번갈아 갖다 댄다. "모든 공식 행사나 사열, 혹은 미사나 종교 행사에 참석하지 않아도 좋네. 또한 군복을 입고 다닐 필요도 없어. 사복만 입도록 하게."
"근무를 할 때도 사복을 입어야 합니까?" 판토하 대위는 계속해서눈을 깜박거린다.
"자네 근무지는 사령부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마련할 것이네." 스카비노 장군은 걱정스럽고 당황스러우며 동정 어린 눈빛으로그를 쳐다본다. "모르는 척하지 말게. 자네가 조직하려는 특별봉사대를 위해 이곳에 사무실이라도 열어줄 거라고 생각했나? 이키토스 외곽 그러니까 아마존 강변에 내가 창고 하나를 준비해놓았네. 항상 사복을 입고 다니게 그곳이 군대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알아서는 안 되며 눈치 채서도 안 되네. 알겠나?"
"예, 장군님" 판토하 대위는 입을 벌린 채 고개를 끄덕인다.  - P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서문

나는 이 소설을 1973년과 1974년에 바르셀로나에 있는 사리아 지역의 허름하고 비좁은 집에서 있으며, 동시에 소설의 영화 시나리오도 함께 작업했다. 영화는 호세 마리아구티에레스가 감독을 맡아 촬영해야 했지만, 영화계의 황당한 술책에 휘말려 결국은 내가 그와 함께 공동으로 감독을 맡게 되었다. 그 영화가 실패작으로 끝난 것은 모두 내 책임이다.
아마존 수비대원들의 성적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페루 군부가 조직했던 ‘특별봉사대‘라는 소설의 이야기는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나는 1958년과 1962년에 아마존 지역을 방문하면서 너무나 확장되고 왜곡된 나머지 잔혹하고 처참한 우스개 꼴이 되고 만 특별봉사대의 존재에 관해 알게 되었다. - P5

1

"일어나요, 판타" "포치타가 말한다. "벌써 여덟시예요. 판타, 판티타."
"벌써 여덟시라고? 맙소사, 세상 모르고 잤어." 판티타가 하품한다. "내 계급장 달았어?"
"그럼요, 중위님." 포치타가 차려 자세를 취한다. "아이, 미안해요. 대위님. 내가 습관이 될 때까지는 그냥 중위로 계속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요, 계급장을 달아놓으니 아주 멋져 보이는걸요. 하지만 지금 당장 일어나야 해요. 약속이 몇 시죠?" - P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ㅁ










"준페이, 이 세계의 온갖 것들은 의지를 갖고 있어." 작은 목소리로 그녀는 고백하듯이 말했다. 준페이는 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대답할 수 없었다. 그녀가 하는 말은 밤공기 속에서 문장으로서의 형태를 잃고 희미한 와인 향기에 섞여 그의 의식 깊은 곳에 은밀히 와닿았다. "이를테면 바람은 의지를 갖고 있어. 우리는 평소에그런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지. 하지만 어느 순간, 그것을 저절로 깨닫게 돼. 바람은 단일한 의지를 갖고 당신을 감싸고 당신을 뒤흔들어 바람은 당신의 내면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어.
바람뿐만이 아니야. 온갖 다양한 것들이, 돌도 그중 하나겠지? 그들은 우리를 아주 잘 알아.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다. 어느 순간이찾아오고, 우리는 그것을 문득 깨달아 우리는 그런 것들과 함께 살아나갈 수밖에 없어. 그런 것들을 받아들여서 우리는 살아남고 그리고 점점 더 깊어져가는 거야."

고독한 사람들이 개나 고양이에게 말을 건네는 것처럼, 콩팥 모양의 검은 돌이 이제는 그녀의 생활 대부분을 지배한다.
이 돌은 외부에서 온 물체가 아니구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사이에 준페이는 그것을 깨달았다. 중요한 건 그녀의 내부에있는 뭔가였다. 그녀 안의 뭔가가 콩팥 모양의 검은 돌을 활성화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에게 어떤 구체적인 행동을 취할것을 원했다. 그러기 위한 신호를 끊임없이 보내고 있었다. 밤마다 자리를 바꿔 이동하는 방식으로. - P147

"무엇보다 멋진 것은 그곳에 있으면 나라는 인간이 변화한다는거예요." 그녀는 인터뷰어에게 말했다. "아니, 그보다 변화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어요. 높은 곳에 올라서면 그곳에 있는것은 단지 나와 바람뿐이에요.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요. 바람이 나를 감싸고, 나를 뒤흔들어요. 그렇게 바람이 나라는 존재를 이해합니다. 동시에 나는 바람을 이해하고요. 그리고 우리는서로를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기로 결정하는 거예요. 나와 바람뿐, 그밖에 다른 것은 끼어들 여지가 없어요. 내가 좋아하는 건 바로 그런 순간이죠. 아뇨, 공포감은 없어요. 일단 높은 곳에 발을내딛고 그 집중 속에 빠져버리면 공포감은 사라집니다. 우리는 친밀한 공백 속에 함께 존재해요. 나는 그런 순간이 세상 무엇보다 좋은 거예요." - P154

어쩌면 이렇게도 재미없는 인생인가. 미즈키는 자신의 과거와현재에 대한 질문에 답하면서 새삼 탄식이 흘러나왔다. 생각해보니 그녀의 인생에서는 드라마틱한 요소라고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영상물로 비유하자면, 수면을 유도할 목적으로 제작된 저예산 자연풍경 비디오 같다. 덤덤한 색조의 풍경이 그저 덤덤하게, 하염없이 이어진다. 장면 전환도 없고 클로즈업도 없다. 신나는장면도 없고 우울한 장면도 없고 눈길을 끄는 에피소드 같은 것도없다. 복선도 없고 시사점도 없다. 이따금 생각난 것처럼 카메라앵글이 조금 달라질 뿐이다. - P174

"물론이죠." 사카키 데쓰코는 말했다. 그리고 유연성이 뛰어난얼굴을 옆으로 쭉 늘이며 씨익 웃었다. "그때는 또 우리 둘이서뭔가 때려잡아봅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집에 돌아오자 미즈키는 원숭이에게서 되찾아온 ‘오자와 미즈키‘라는 낡은 이름표와 ‘안도(오자와) 미즈키‘라는 이름이 새겨진은팔찌를 갈색 서류봉투에 넣어 테이프로 밀봉하고 벽장 안의 종이박스에 넣었다. 마침내 자신의 이름이 손 안에 돌아온 것이다.
그녀는 앞으로 다시 그 이름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 일이 잘 풀릴수도 있고 잘 풀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게 바로그녀의 이름이고 그밖에 다른 이름은 없는 것이다. - P2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영양 단계 연쇄 반응trophic cascade‘이라고 부른 현상에 관심을 갖게 한다. 우리가 멸종을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이 현상을 이해하고 나서부터였다.
이 용어는 영양 단계들 사이에서, 즉 생태계 내의 에너지 전달 서열에서 상호 연관된 생물들의 범주들 사이에서, 혼란이 폭포처럼 연쇄적으로 전달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생태계는 그저 동식물 종만 가득 차 있는곳이 아니다. 생태계는 수많은 관계들이 복잡하게 얽힌 네트워크이며, 그러한 관계에는 포식자와 피식자, 꽃식물과 수분 매개자, 열매를 맺는식물과 그 씨를 확산시키는 동물 사이의 관계 등이 포함된다. 각각의 관계는 영양 단계들을 연결한다. 다이아몬드가 ‘로제타석‘ 논문에서 정의한 영양 단계 연쇄 반응이란, 한 멸종 사건으로 발생한 부차적 효과가한 영양 단계에서 다음 영양 단계로 계속 가지를 치며 전달되는 것을 말한다.
다이아몬드의 글을 직접 인용해보자. "종의 풍부성은 다양한 방법으로 다른 종의 풍부성에 상호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한 종이 멸종하면그 종을 먹이나 수분 매개자 또는 열매 확산자로 사용하는 다른 종들의 풍부성에도 연쇄 파급 효과가 미칠 가능성이 높다." 풍부성이 아주 빈곤한 경우, 그 종은 희귀종에서 멸종의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 P472

"그러나 1973년에는 모리셔스 섬에 남아 있던 자생림 속에서 다 늙어 죽어가는 나무 열세 그루만 살아남아 있었다."라고 썼다. 경험 많은 산림관리인들은 템플에게 그 열세 그루의 나무는 나이가 모두 300년이 넘었다고 알려주었다. 템플은 그것보다 더 젊은 표본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더 젊은 나무는 아무도 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가정했다. 늙은 나무들은여전히 생식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열매를 맺었으나, 열매에 든 씨는 땅에 떨어져도 싹을 틔우지 못했다. 젊은 나무가 전혀 존재하지 않고, 씨가 싹을 틔우지 못하는 상황을 보고 템플은 위험한 논리적 비약을함으로써 인식론적 간극을 뛰어넘었다. 즉, "칼바리아나무의 씨는 수백년 동안 발아한 적이 없다." 라고 결론 내린 것이다. 이 대담한 정언적 명제는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데 꼭 필요한 것이었다.
칼바리아나무는 공 모양의 열매가 열리는 열대 및 아열대 과실수사람과 Sapotaceae(진달래목에 속하는 속씨식물의 한 과)에 속한다. 열매크기는 복숭아만 하고, 큰 복숭아 씨처럼 단단한 핵(과실의 종자를 보호하는 단단한 부분. 과실의 내과피가 굳어진 것으로 매실, 복숭아 따위에 있다)이있다. 그리고 핵 속에는 씨가 딱 한 개만 들어 있다. 핵은 매우 두껍고단단하여 부드러운 싹이 그것을 뚫고 나오기는 매우 어려워 보인다. 템플이 보기에 그것은 큰 문제로 보였다. 그는 칼바리아나무 씨가 발아를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단한 핵 속에 들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과거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 왜 지금은 문제가 되는 것일까? 그것은 칼바리아나무가 살아가던 환경 중에서 뭔가 변한 게 있기때문일 것이다. 생식하는 데 꼭 필요한 도움을 주던 뭔가가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300년 전에 도도가 멸종한 것과 칼바리아나무의 씨가 자연적으로 발아를 한 마지막 순간이 시간적으로 일치한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나는칼바리아나무와 도도 사이에 다음과 같은 공생 관계가 있다는 가설을세웠다."라고 템플은 썼다. 그 관계는 템플의 표현에 따르면 ‘의무적공생관계‘였다. 그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도도가 자신의 열매를 지나치게 먹어치우는 것에 대응해 칼바리아나무는씨를 보호하기 위해 두꺼운 핵을 발달시켰다. 핵이 얇으면 그 속에 든 씨는 도도의 모래주머니 속에서 부서지고 만다. 두꺼운 핵은 씨가 뱃속에서 소화되지 않게 해주었지만, 대신에 핵이 도도의 모래주머니 속에서 닳지 않으면 그 속에 든 씨는 발아할 수 없었다" - P480

제 안정을 유지하지 못할정도로 극히 낮았던 것은 아니다. 설사 받아 비율이 아무리 낮다 하더라도, 자연적 발아가 가능하다는 사실은 도도의 도움이 없이는 받아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템플의 정언적 명제를 논박하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만약 템플의 가설이 옳지 않다면, 어떤 가설로 그것을 대체할수 있을까? 어떤 원인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칼바리아나무는 멸종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스트람의 평가를 따르더라도, 이 좋은 위태로울 정도로 희귀하다. 그 진짜 원인은 도도와 관련된 상호 공생 관계보다 덜 단순하고 덜 극적일지 모른다.
칼 존스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칼바리아나무문제에 올바르게 접근하는 방법은 칼바리아나무를 도도와 유일한 생관계로 고립된 채 살아간 종으로 간주하는 대신에, 사람들이 섬을 망쳐놓기 전에 모리셔스 섬의 생태계에 적응하면서 살아간 비슷한 종의 많은 나무 중 하나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중 많은 나무는 단단한 핵으로 둘러싸 씨를 보호했다. "그것은 앵무에게 먹히는 것을 막기 위한 방법이었을 겁니다."라고 존스는 말한다.
존스의 이야기는 단지 추측일 뿐이지만, 그의 추측은 템플보다 훨씬 더오랫동안 모리셔스 섬의 생태계와 접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사람들이 정착하기 전에 모리셔스 섬에는 4종의 앵무가 살았을 것이라고존스는 추측했다. 그중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는 것은 극히 희귀한모리셔스목도리앵무뿐이다. 사라져간 앵무 종 중에 모리셔스넓적부리앵무 Lophopsittacus mauritianus가 있는데, 이 좋은 아마도 모든 앵무 중에서몸집이 가장 클 것이다. 앵무 외에는 큰박쥐속 Pteropus 의 초식성 박쥐 2종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1종은 멸종했고, 나머지 1종은 그 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멸종한 앵무와 박쥐는 현재 살아남아 있는 친척들과 크게다르지 않았다면, 과일을 먹고 살았을 것이다. 따라서 과실수들은 모두날카로운 부리와 이빨을 가진 포식자들과 맞서 싸워야 했다.
과일의 핵이 새의 부리와 소화관을 무사히 통과할 수만 있다면 그 씨는 새를 통해 새로운 서식지까지 옮겨갈 수 있는 혜택을 얻는다. 사실,
과일의 생태학적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는데, 과일을 먹고 사는 동물을유인하여 씨를 전파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씹거나 갉아먹을 때 핵이 쉽게 부서지고 만다면, 그 나무는 어려운 상황에 빠진다. 씨를 싹 틔우는데 실패하여 그 좋은 개체군 감소를 겪을 것이다. 존스는 오랜 진화 과정을 통해 모리셔스 섬의 일부 나무 종이 단단한 핵을 가진 과일을 맺게되었다고 추측한다. 칼바리아나무도 그러한 종 중 하나이다.
"칼바리아나무 열매는 큰박쥐와 모리셔스목도리앵무가 먹습니다."
지금 그는 칼바리아나무의 생태학을 현재 시제로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이 사실을 어떻게 알까?
"그야 직접 보았기 때문이지요."
칼바리아나무 열매의 핵이 단단한 것은 이 때문이라고 그는 자신있게 말한다.
"도도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앵무하고만 관계가 있지요." - P485

플롬리는 그 저서에 우호적인 사명 Frienty Mission)이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약간의 아이러니가 섞인 제목이지만, 자신이 원주민의 비극을 우호적으로 기술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게 분명하다. 책 말미에 ‘태즈메이니아 원주민의 멸종 원인‘이라는 부록이 붙어 있는데, 플롬리는 다섯가지 원인을 열거했다.
•외래 질병
•백인에 의한 원주민의 사냥 및 채집 생활 터전 강탈
•백인들이 저지른 직접적인 살상
•매춘부나 노예로 삼기 위한 원주민 여성 납치
•원주민 생활 방식과 문화 파괴
그리고 다섯 번째 원인 아래에 세부 요인을 몇 가지 열거했다.
•식량 공급 붕괴
•한 부족의 이주에 따른 다른 부족의 영토 잠식
• 가족 생활 붕괴
•어린이 유괴
•출산율 감소

독감, 결핵, 강요된 회유, 납치, 매독, 아노미, 절망, 경쟁, 약탈, 서식지 상실, 블랙 라인, 캥거루 남획…. 이 모든 것이 플롬리가 꼽은 멸종요인의 범주에 포함된다. 그리고 이 요인들은 상호 연결 관계가 있어 다른 요인들을 악화시키는 원인이 된다. - P5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나는 잘난 소리를 할 만한 처지가 아니지만." 그는 말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을 때, 항상 한 가지 룰을 기준으로 삼고 있어요."
"룰?"
"형태가 있는 것과 형태가 없는 것,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면 형태가 없는 것을 택하라. 그것이 나의 룰이에요. 벽에 부딪혔을 때는 항상 그 룰에 따라 행동했고, 긴 안목르로 보면 그게 좋은 결과를 낳았던 것 같아요. 그 당시에는 몹시 힘들었어도." - P30

"설명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어." 그는 가로막듯이 말했다.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좀 이해해줬으면 했던 것 같아. 특히누나는."
누나는 말이 없었다.
그가 말했다. "주위 사람들의 기분 같은 거, 그 무렵의 나는 전혀 생각할 수도 없었어. 그런 것까지 생각할 여유는 도저히 없었으니까."
당시의 일을 떠올리자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는 겨우겨우 그것을 제어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짧은 기간에 내 인생이 확 바뀐 거야. 거기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죽을힘을 다해 매달리는 것만으로도 너무 버거웠어. 진짜로 겁이 나고 두려워서 견딜 수 없었어. 그런 때에 남들에게 설명 같은건 못 해, 이 세계에서 뚝 떨어져나가는 느낌이었으니까. 그래서그냥 이해해줬으면 했어. 그리고 단단히 끌어안아줬으면 했어. 이론이니 설명이니, 그런 건 다 빼버리고 하지만 어느 누구도....." - P37

이십 일 동안의 기억 소멸.
나는 연필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 의자에서 몸을 크게 젖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천장 보드에는 드문드문 불규칙한 무늬가 찍혀있어서 실눈을 뜨고 지그시 쳐다보면 천체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는 그 가공의 별이 뜬 하늘을 올려다보며 건강을 위해 다시 끽연가가 되어볼까 하고 생각했다. 머릿속에는 계단을 오르내리는하이힐 소리가 아직도 희미하게 울리고 있었다.
"구루미자와 씨." 나는 천장 한 귀퉁이를 향해 소리내어 인사말을 건넸다. "현실 세계에 잘 돌아오셨습니다. 불안신경증의 어머님과 아이스피크 같은 하이힐의 부인과 메릴린치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삼각형의 세계에."
나는 다시 어딘가 또 다른 장소에서 문인지 우산인지 도넛인지코끼리인지의 모양을 한 것을 찾아다니리라. 어디가 됐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서. - P1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