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페이, 이 세계의 온갖 것들은 의지를 갖고 있어." 작은 목소리로 그녀는 고백하듯이 말했다. 준페이는 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대답할 수 없었다. 그녀가 하는 말은 밤공기 속에서 문장으로서의 형태를 잃고 희미한 와인 향기에 섞여 그의 의식 깊은 곳에 은밀히 와닿았다. "이를테면 바람은 의지를 갖고 있어. 우리는 평소에그런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지. 하지만 어느 순간, 그것을 저절로 깨닫게 돼. 바람은 단일한 의지를 갖고 당신을 감싸고 당신을 뒤흔들어 바람은 당신의 내면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어. 바람뿐만이 아니야. 온갖 다양한 것들이, 돌도 그중 하나겠지? 그들은 우리를 아주 잘 알아.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다. 어느 순간이찾아오고, 우리는 그것을 문득 깨달아 우리는 그런 것들과 함께 살아나갈 수밖에 없어. 그런 것들을 받아들여서 우리는 살아남고 그리고 점점 더 깊어져가는 거야."
고독한 사람들이 개나 고양이에게 말을 건네는 것처럼, 콩팥 모양의 검은 돌이 이제는 그녀의 생활 대부분을 지배한다. 이 돌은 외부에서 온 물체가 아니구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사이에 준페이는 그것을 깨달았다. 중요한 건 그녀의 내부에있는 뭔가였다. 그녀 안의 뭔가가 콩팥 모양의 검은 돌을 활성화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에게 어떤 구체적인 행동을 취할것을 원했다. 그러기 위한 신호를 끊임없이 보내고 있었다. 밤마다 자리를 바꿔 이동하는 방식으로. - P147
"무엇보다 멋진 것은 그곳에 있으면 나라는 인간이 변화한다는거예요." 그녀는 인터뷰어에게 말했다. "아니, 그보다 변화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어요. 높은 곳에 올라서면 그곳에 있는것은 단지 나와 바람뿐이에요.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요. 바람이 나를 감싸고, 나를 뒤흔들어요. 그렇게 바람이 나라는 존재를 이해합니다. 동시에 나는 바람을 이해하고요. 그리고 우리는서로를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기로 결정하는 거예요. 나와 바람뿐, 그밖에 다른 것은 끼어들 여지가 없어요. 내가 좋아하는 건 바로 그런 순간이죠. 아뇨, 공포감은 없어요. 일단 높은 곳에 발을내딛고 그 집중 속에 빠져버리면 공포감은 사라집니다. 우리는 친밀한 공백 속에 함께 존재해요. 나는 그런 순간이 세상 무엇보다 좋은 거예요." - P154
어쩌면 이렇게도 재미없는 인생인가. 미즈키는 자신의 과거와현재에 대한 질문에 답하면서 새삼 탄식이 흘러나왔다. 생각해보니 그녀의 인생에서는 드라마틱한 요소라고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영상물로 비유하자면, 수면을 유도할 목적으로 제작된 저예산 자연풍경 비디오 같다. 덤덤한 색조의 풍경이 그저 덤덤하게, 하염없이 이어진다. 장면 전환도 없고 클로즈업도 없다. 신나는장면도 없고 우울한 장면도 없고 눈길을 끄는 에피소드 같은 것도없다. 복선도 없고 시사점도 없다. 이따금 생각난 것처럼 카메라앵글이 조금 달라질 뿐이다. - P174
"물론이죠." 사카키 데쓰코는 말했다. 그리고 유연성이 뛰어난얼굴을 옆으로 쭉 늘이며 씨익 웃었다. "그때는 또 우리 둘이서뭔가 때려잡아봅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집에 돌아오자 미즈키는 원숭이에게서 되찾아온 ‘오자와 미즈키‘라는 낡은 이름표와 ‘안도(오자와) 미즈키‘라는 이름이 새겨진은팔찌를 갈색 서류봉투에 넣어 테이프로 밀봉하고 벽장 안의 종이박스에 넣었다. 마침내 자신의 이름이 손 안에 돌아온 것이다. 그녀는 앞으로 다시 그 이름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 일이 잘 풀릴수도 있고 잘 풀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게 바로그녀의 이름이고 그밖에 다른 이름은 없는 것이다.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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