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잘난 소리를 할 만한 처지가 아니지만." 그는 말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을 때, 항상 한 가지 룰을 기준으로 삼고 있어요." "룰?" "형태가 있는 것과 형태가 없는 것,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면 형태가 없는 것을 택하라. 그것이 나의 룰이에요. 벽에 부딪혔을 때는 항상 그 룰에 따라 행동했고, 긴 안목르로 보면 그게 좋은 결과를 낳았던 것 같아요. 그 당시에는 몹시 힘들었어도." - P30
"설명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어." 그는 가로막듯이 말했다.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좀 이해해줬으면 했던 것 같아. 특히누나는." 누나는 말이 없었다. 그가 말했다. "주위 사람들의 기분 같은 거, 그 무렵의 나는 전혀 생각할 수도 없었어. 그런 것까지 생각할 여유는 도저히 없었으니까." 당시의 일을 떠올리자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는 겨우겨우 그것을 제어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짧은 기간에 내 인생이 확 바뀐 거야. 거기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죽을힘을 다해 매달리는 것만으로도 너무 버거웠어. 진짜로 겁이 나고 두려워서 견딜 수 없었어. 그런 때에 남들에게 설명 같은건 못 해, 이 세계에서 뚝 떨어져나가는 느낌이었으니까. 그래서그냥 이해해줬으면 했어. 그리고 단단히 끌어안아줬으면 했어. 이론이니 설명이니, 그런 건 다 빼버리고 하지만 어느 누구도....." - P37
이십 일 동안의 기억 소멸. 나는 연필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 의자에서 몸을 크게 젖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천장 보드에는 드문드문 불규칙한 무늬가 찍혀있어서 실눈을 뜨고 지그시 쳐다보면 천체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는 그 가공의 별이 뜬 하늘을 올려다보며 건강을 위해 다시 끽연가가 되어볼까 하고 생각했다. 머릿속에는 계단을 오르내리는하이힐 소리가 아직도 희미하게 울리고 있었다. "구루미자와 씨." 나는 천장 한 귀퉁이를 향해 소리내어 인사말을 건넸다. "현실 세계에 잘 돌아오셨습니다. 불안신경증의 어머님과 아이스피크 같은 하이힐의 부인과 메릴린치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삼각형의 세계에." 나는 다시 어딘가 또 다른 장소에서 문인지 우산인지 도넛인지코끼리인지의 모양을 한 것을 찾아다니리라. 어디가 됐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서.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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