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그러나 몇 년 전, 「니꼴라 유치원」이라는 소설을 쓸 때의 일이다. 그 소설은 안진이라는 도시의 어떤 소문난 유치원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였는데, 학부모들이 자기 아이를 그곳에 입학시키기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때문에 나는 당연하게도 주인공을 꽤나 고생시켰다. 그녀는 후보 2번으로 접수된 민우라는 아이의 엄마였다. 나는 그녀가 애를 쓰면 쓸수록 유치원의 음험한 비밀을 알게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 나는 모두가 궁금해하기를 바랐다. 과연 민우 엄마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진실을 알면서도 아이를 유치원에 보낼까. 아니면 아이와 함께 그 높은 담벼락 밖으로 빠져나올까.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사실 니꼴라 유치원은 결코 어둡거나 우울한 소설이 아니다. 아마 내가 쓴 소설 중 가장 밝고 유머러스한 작품일 것이다. 정말이다. 나는 이 소설을 좋아하며 개인적으로 많이 아낀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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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일리의 죽음을 나는 쉽사리용서할 수 없다. 용감하고 재능 있는 청년이 글래스고대학에서 경력을 쌓을 기회를 내던지고 파시즘과 싸우러 달려왔다. 그리고 흠잡을 데 없는 용기와 기꺼이 나서는 자세로 전선에서 자신의 몫을 다하는 것을 내 눈으로 직접 보았다. 그런데 그들은 그를 감옥에 던져 넣고 방치된 동물처럼 죽어가게 했다. 피가 낭자한 거대한 전쟁 한복판에서 개인의 죽음을 가지고 지나치게 호들갑을 피우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북적거리는 거리에 비행기가떨어뜨린 폭탄이 수많은 정치적 박해보다 더 많은 고통을불러온다. 그러나 스마일리의 죽음 앞에서 화가 나는 것은그것이 철저히 무의미한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전장에서죽는 것•••••• 그래, 그것은 이미 예상한 일이다. 그러나 하다못해 상상 속의 죄목도 없이 순전히 맹목적인 앙심 때문에 감옥에 갇혀 방치된 채 혼자 죽어가야 했다는 것, 이것은 다른 문제다. 어떻게 이런 행동이 승리를 앞당길 수 있다는 건지 나는 잘 모르겠다. 게다가 스마일리의 사례가 예외적이었던 것도 아니다. - P260

 내가 정말 보잘것없는 역할밖에 하지 못한 이 전쟁이 내게 남긴 기억은 대부분 흉악한 것이지만, 그것을 경험하지 않는편이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스페인 내전은 어떻게 끝나든 살육과 물리적 고통을 차치하더라도 결국경악스러운 재앙이 될 테지만, 이런 재앙을 언뜻 목격했을때 그 결과가 항상 환멸과 냉소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묘하게도 그때의 경험으로 나는 인간의 품위를 더 믿게 되었다. 내가 지금까지 제시한 설명이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기를 바란다. 이런 일을 다룰 때는 누구도 온전히 진실만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자신이 직접 본 일을제외하면, 무슨 일에든 확신을 갖기가 어렵다. 게다가 사람들은 누구나 글을 쓸 때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는어느 한쪽 편에 기울어지기 마련이다. 혹시 내가 앞에서 아직 이 말을 안 썼을지 모르니 여기에 쓰겠다. ‘나의 당파성, 착오, 내가 본 것은 사건의 한 면에 불과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왜곡을 주의하라.‘ 스페인 내전 중이시기를 다룬 다른 책을 읽을 때도 항상 똑같은 점을 주의해야 한다.  - P282

그다음은 영국 잉글랜드 남부의 풍경은 십중팔구 세상에서 가장 말쑥할 것이다. 그쪽을 지날 때면, 특히 항구를 오가는 기차에서 호화롭고 푹신한 좌석에 앉아 평화롭게 뱃멀미를 다스리는 중이라면, 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기는 한지 알 수 없는 기분이 된다. 일본의 지진, 중국의 기근, 멕시코의 혁명? 걱정할 필요 없다. 내일 아침에도 우유가 문 앞까지 배달될 것이고, 금요일에는 《뉴스테이츠먼》이 발행될 것이다. 산업도시는 아주 멀리 있고, 그곳의 연기와 불행은 둥근 지표면 뒤에 가려져 있다. 이곳에는 내가 어렸을 때 알던 영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철로를 놓으려고 깎아놓은 길은 야생화로 뒤덮였고, 깊은 산속의 초원에서는 광택이 나는 커다란 말들이 풀을 뜯으며 명상에 잠긴다. 천천히 흐르는 개울가의 버드나무, 느릅나무의 초록색 품, 텃밭의 참제비고깔. 그다음에 보이는 것은 런던 외곽의 크고 평화로운 황야, 진창 같은 강 위의 바지선, 친숙한 거리, 크리켓 경기나 왕족의 결혼식을 알리는 포스터, 중산모를 쓴 남자들, 트래펄가 광장의 비둘기,
빨간 버스, 파란 옷의 경찰관, 이 모두가 깊고 깊은 영국의잠에 빠져 있다. 가끔 나는 우리가 이 잠에서 영영 깨지 못하다가 폭탄의 굉음에 화들짝 놀란 뒤에야 깨어날까 봐 두렵다. -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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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지막 여행이 내 머릿속에 묘하게 선명하고 상세하게 남아 있다. 나는 지난 몇 달 동안 느낀 것과는 다른 기분이었다. 좀 더 관찰자에 가까운 기분. 제대 서류도 손에넣었고, 거기에 29사단의 인장도 찍혔다. 의사의 확인서에는 내가 "쓸모없다"고 적혀 있었다. 이제 자유로이 영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결과로 이제야 스페인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거의 처음으로 들었다. 기차가 하루에한 대밖에 없었기 때문에 나는 바르바스트로에서 하루를보내야 했다. 전에는 바르바스트로를 잠깐씩 스치듯 보았을 뿐이고, 그나마도 그냥 전쟁의 일부로 인식했을 뿐이었다. 차갑고 진흙투성이인 회색 도시,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화물트럭과 추레한 군대가 가득한 곳. 그런데 지금은묘하게 달라 보였다. 이 도시를 정처 없이 돌아다니며 나는 유쾌하고 구불구불한 길, 오래된 석조 다리, 사람 키만큼 커다란 통에서 술이 새어 나오는 주류 판매점, 사람들이 수레바퀴, 단검, 나무 숟가락, 염소가죽 수통 등을 만들고 있는 흥미로운 반지하 공방 등을 눈에 담았다. 어떤 남자가 가죽으로 병을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전에는 미처 모르던 사실을 발견하고 커다란 흥미를 느꼈다. 가죽에서 털을 제거하지 않고 털이 있는 부분이 안쪽으로 가게 병을 만들기 때문에, 사람들이 사실은 염소 털의 정수를 마시게 된다는 사실. 나는 몇 달 동안 그런 수통으로 물을 마셨는데도 이걸 몰랐다. 도시 뒤편에는 얕은 옥색 강이 있고, 그 강에서 수직으로 솟은 바위 절벽에 주택들이 지어져 있었다. 침실 창문으로 침을 뱉으면, 100피트 아래의 강물 속으로 침이 곧장 떨어질 정도였다. 절벽에 난 많은 구멍 속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비둘기가 살고 있었다. 한편 레리다에는 낡아서 부서질 것 같은 건물들이 있었는데, 그런 곳 처마에 수천 마리의 제비들이 지은 둥지가 있었다. 조금 떨어져서 보면, 건물이 로코코 시대의 불그스름한 몰딩으로 장식된 것 같았다. 거의 6개월 동안 내가 이런것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주머니에 제대 서류가 있으니 이제 다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관광객이 된것 같은 기분도 조금 들었다. 내가 정말로 스페인에 있다는 생각을 그때 거의 처음으로 했다. 여기는 내가 평생 와보고 싶어 하던 나라였다. 레리다와 바르바스트로의 조용한 뒷골목에서 모든 사람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스페인에대한 아득한 소문 같은 것이 언뜻언뜻 보이는 것 같았다.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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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만큼 국가 발전의 주요 원동력인 동시에 약점이 되기도 한다. 국가 예산의 83%가 석유 수출로 인한 수입에서 발생한다. 석유로 벌어들인 수입은 사우디아라비아라는 관대한 복지국가의 자금줄이 되어주는데 국가는 이를 활용해 국민에게 무상교육, 무상 의료, 공공분야 일자리 등을 제공하고 주거, 식료품, 에너지에 대한 보조금도 지원한다.
그러나 2014년부터 유가가 폭락하면서 정치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나라의 안정성이 문제가 될 위기에 놓였다. 이러한 상황은 영문 앞글자를 따 MBS라고도 불리는 젊은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이 제시한 최근의 정치적, 경제적 개혁 정책을 이해하게끔 해준다. MBS는 2015년에 국왕이 된 부친 살만 빈 압둘아지즈의 뒤를 이어 왕세자에 오른 인물이다.
MBS의 왕세자 즉위는 새로운 세대로 권력이 교체되었음을 알리는 동시에 왕국의보수적인 이미지를 변화시키려는 목적을가진다. MBS는 거리에서 도덕 경찰을 없애고, 공공장소에서의 성별 분리를 완화하고, 여성들의 운전을 허용하고, 영화관을 세우고, 관광업의 문을 활짝 열었다. 또 경제적으로는 2016년에 공식적으로 ‘비전 2030‘
을 출범시켰다. 이는 투자자들을 유치할 목적으로 더욱 다양하고 경쟁력을 갖춘 경제시스템을 구축하고, 석유 이후의 세상을 준비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거대 개혁프로그램이다. - P169

끝나지 않은 쿠르드족 문제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쿠르드족은 15와 전쟁을 치르거나 각국의 영토를수호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쿠르드족의 자치권이커지면서 튀르키예 정부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쿠르드족은 아랍인도, 투크르족도, 페르시아인도 아니지만 페르시아어에 가까운 언어를 사용한다. 이들 대다수는 수니파 이슬람교도이지만소수의 시아파 예지디족, 심지어 기독교인도 존재한다. 기원전 9세기 무렵 자그로스 산맥 지역에 정착했던 쿠르드족은 이후 메디아로 이동했고오늘날에는 이란, 이라크, 시리아, 튀르키예 등 4개 국가의 접경지대에 2,500-3,500만 명의 인구가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팔레스타인인과 마찬가지로 국가가 없는 민족이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에 조인된 세브르 조약은 쿠르드족의 자치구 설립을 약속했다. 그러나 튀르키예 초대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은 튀르키예 민족주의를 이유로, 유럽 열강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이유로 쿠르드족의 요구를 외면했다. 반면 이라크의 쿠르드족은 거의 완전한 자치권을 얻어냈다. 오늘날 앞서 언급한 4개 국가에 주로 모여 살고 있는 쿠르드족은그들이 속한 국가의 헌법, 법치주의에 대한 존중 여부, 최근의 지정학적변화에 따라 천차만별의 대우를 받고 있다.
쿠르드족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은 튀르키예다. 튀르키예 인구 다섯 명당한 명은 쿠르드족(즉 1,500만 명)이며 이들은 튀르키예 영토의 30%에거주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 튀르키예는 이들을 ‘산에 사는 투크르족‘이라고만 규정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1970년대 말 튀르키예 정부에 대항하여 게릴라전을 펼치는 쿠르드노동자당(PKK)이 창설되었고 이에 튀르키예 정부는 이들을 군사적으로 억압하고 강제로 이주시켰다. 그러던 중 2003년 미군의 이라크 침공으로 바트당이 붕괴하면서 이라크내 쿠르드족 자치구(쿠르드족 500-600만 명 거주)가 정치적, 경제적으로자치권을 누리게 되자 튀르키예는 이것이 자국의 쿠르드족에게 희망을줄까 두려워했다. 이러한 이유로 튀르키예는 시리아 전쟁에 뛰어든 것이다. 그러나 10년 넘게 이어진 시리아 내전은 쿠르드족의 자치권을 더욱강화했고 시리아 내 쿠르드족자치구를 ‘연방 민주주의‘ 지역으로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쿠르드족은 IS 전투원들에 맞서 싸웠고, 따라서 서구 진영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동맹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2019년미군이 시리아에서 철수하자 그들의 힘은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 P184

1947년 11월 29일, 유엔은 팔레스타인을아랍인 국가와 유대인 국가로 나누고 예루살렘 주변을 국제적 정권이 관할하는 특별지역으로 정하는 분할안을 발표했다. 아랍인들은 이에 크게 반발했지만 1948년 5월14일 유대 국가 건국위원회 의장이자 새롭게 수립된 유대 국가의 초대 총리가 된다비드 벤구리온이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날을
‘나크바‘라고 부른다. 이는 아랍어로 ‘대재앙‘을 뜻하는 말이다. 약 75만 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웃 국가나 아랍의 지배를 받는 팔레스타인 영토로 강제 이주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했다. 이웃 아랍 국가들(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이라크, 레바논)이 이스라엘을 공격했지만 이스라엘은 이들을 물리치고 유엔 분할안이 규정했던 당초 국경선까지 영토를 확장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의 서부 지역을 점령하게 된다. 1949년 전쟁이 중단되었을 때 아랍인들이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지역과 이스라엘의 경계를 나누는 전선에는 ‘그린라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또한 서안지구는 요르단이 통제하게 되었고, 가자지구는 이집트가 통제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이 현재의 영토와 지정학적 입지를 갖게 된 것은 바로 1967년 6월 5일부터 10일까지 이어졌던 6일 전쟁(제3차 중동전쟁) 때문이다.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에맞서 이때에도 이스라엘은 승리를 거두었고 1947년 당시의 팔레스타인 영토에 더해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 시리아의 전략덕 요충지인 골란 고원까지 차지하면서 새로운 지역을 차지했다. - P197

아브라함 협정,
팔레스타인을 배척하다

건국 73주년을 맞이한 해에 이스라엘은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위대한 승자처럼 국제무대에 위용을 드러냈고 동시에 아랍 국가들과는 관계 정상화를 이뤄내는 듯 보였다. 이집트(1979년)와 요르단(1994년) 이후, 미국의 중재로 2020년 9월 15일 백악판에서 이른바 ‘아브라함 협정‘을 체결하면서 이스라엘은 두 걸프 국가인 아랍에미리트와 바레인과도 수교하게 된다. 이 협정의 명칭은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가 공통의 조상으로 여기는 ‘아브라함‘의 이름에서 유했다. 수개월 뒤에는 수단과 모로코와도 관계 정상화가 이루어졌다.
아브라함 협정이 지니는 이슈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먼저 전략적인 이슈다. 이스라엘은 2000년대 초 핵무기 개발을 시도한 이란을 중동 지역 안보를 위협하는 주요 요인으로 여겼는데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걸프 국가들 또한 동일한 관점을 공유했다.
공동의 적에 대한 인식은 이들 국가가 안보에 있어 서로 비공식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도록 해주었다. 뒤이어 이들은 동지중해와 시리아에서 드러나는 튀르키예의 개입주의 정책을 일종의 팽창주의로 간주하며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또한 이들은 무슬림형제단 역시 지역 불안을 발생시키는 위험 요인으로 여기고 있다. 무슬림형제단에서 떨어져 나온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역시 걸프만 군주국가들과 이스라엘 모두에게 위험 요소다.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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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열매가 처음으로 성대모사 한 사람은 스탠리 입키스였다. 그는 짐 캐리가 연기한 영화 「마스크」의 주인공으로 고대의 나무 가면을 쓰면 평소와 전혀 다른 존재로변한다. 히어로라면 히어로의 일종으로 분류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포장하기에 두꺼운 초록 버터크림의 그 얼굴은 토네이도처럼 무질서를 몰고 와 현실을 엉망으로만든다. 우리가 알던 세계는 전혀 다른 것이 된다. 그러니까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진실된 것. - P7

그날 밤은 큰 도화지를 척척 접는 것처럼 시간이 흘러갔다. 한 번 접었을 때 손열매는 밤의 교량을 터덜터덜걷고 있었고 한 번 더 접자 개구리 소리가 왁왁 나는 개천을 마치 하늘을 날듯이 사뿐히 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접을 때쯤에는 늘 보는 버스 정류장 위로 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 P101

 양미는 자전거 옆에 서 있었고 표정은 그림자처럼 텅 비어 있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 앞에서 스위치를 꺼 버리는 건 상처받은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배우는 방어 기제였다. 하지만 그렇게 쳐내 버린 감정은 반드시 돌아오게 마련이었다. 일렁이는 물결처럼.

손열매 - 기분 나쁘잖아, 화를 내, 참지 말고
양미 - 아닌데? 기분 안 나쁜데? 아무렇지 않은데? 사는 꼴이 만날 이러니까 익숙해.
손열매 - 삼키면 독 된다, 흉볼 사람 없으니까 욕도 하고 화도 내
양미 - 아 싫다니까, 언니가 뭔데 이래라저래라야, 지도 돈다 털리고 갈 데 없어서 여기 와 있는 주제에 잘난 척 하지마.

말투는 앙칼지만 양미의 두 눈에는 눈물이 차올라있었다. 감정을 차단해 현실을 감각하지 않는 것보다는나은 상황이었다. 손열매는 교복부터 집어 손으로 탈탈털어 옷걸이에 걸었다. - P162

하지만 손열매는 눈을 감은 채 창가에 몸을 기대고있었다. 뭔가를 기다리는 간절함이 마음을 차게 쓸고 갔다. 뭔가 다른 것, 완평을 찾아간 그 봄처럼 완전히 다른방식으로 진실된 것. 완주 나무도 없고 숲의 친교도 느껴지지 않는 이 도시에도 가끔은 그런 기적이 일어나도 되지 않을까. 그때 버스 기사가 길게 하품하며 차창을 열었고 낙엽들이 날려 들어왔다. 몇 장의 잎일 뿐인데도 버스안은 갑자기 나무 향으로 꽉 채워졌다. 열매는 마치 숲에앉아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렇게라도 완주에 이를수 있다면 꿈에서 깨고 싶지 않다고 바랐을 때 어떤 익숙한 손길이 열매의 팔을 잡고 가만히 흔들어 깨웠다.

다시 시가 이어진다.

손열매 - 그들은 조금씩 비틀거렸어
하지만 하늘 높은 곳에서
달님이 그들을 보살펴 주었네
(천천히, 여운을 주며)
하지만 하늘 높은 곳에서
달님이 그들을 보살펴 주었네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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