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열매가 처음으로 성대모사 한 사람은 스탠리 입키스였다. 그는 짐 캐리가 연기한 영화 「마스크」의 주인공으로 고대의 나무 가면을 쓰면 평소와 전혀 다른 존재로변한다. 히어로라면 히어로의 일종으로 분류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포장하기에 두꺼운 초록 버터크림의 그 얼굴은 토네이도처럼 무질서를 몰고 와 현실을 엉망으로만든다. 우리가 알던 세계는 전혀 다른 것이 된다. 그러니까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진실된 것. - P7

그날 밤은 큰 도화지를 척척 접는 것처럼 시간이 흘러갔다. 한 번 접었을 때 손열매는 밤의 교량을 터덜터덜걷고 있었고 한 번 더 접자 개구리 소리가 왁왁 나는 개천을 마치 하늘을 날듯이 사뿐히 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접을 때쯤에는 늘 보는 버스 정류장 위로 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 P101

 양미는 자전거 옆에 서 있었고 표정은 그림자처럼 텅 비어 있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 앞에서 스위치를 꺼 버리는 건 상처받은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배우는 방어 기제였다. 하지만 그렇게 쳐내 버린 감정은 반드시 돌아오게 마련이었다. 일렁이는 물결처럼.

손열매 - 기분 나쁘잖아, 화를 내, 참지 말고
양미 - 아닌데? 기분 안 나쁜데? 아무렇지 않은데? 사는 꼴이 만날 이러니까 익숙해.
손열매 - 삼키면 독 된다, 흉볼 사람 없으니까 욕도 하고 화도 내
양미 - 아 싫다니까, 언니가 뭔데 이래라저래라야, 지도 돈다 털리고 갈 데 없어서 여기 와 있는 주제에 잘난 척 하지마.

말투는 앙칼지만 양미의 두 눈에는 눈물이 차올라있었다. 감정을 차단해 현실을 감각하지 않는 것보다는나은 상황이었다. 손열매는 교복부터 집어 손으로 탈탈털어 옷걸이에 걸었다. - P162

하지만 손열매는 눈을 감은 채 창가에 몸을 기대고있었다. 뭔가를 기다리는 간절함이 마음을 차게 쓸고 갔다. 뭔가 다른 것, 완평을 찾아간 그 봄처럼 완전히 다른방식으로 진실된 것. 완주 나무도 없고 숲의 친교도 느껴지지 않는 이 도시에도 가끔은 그런 기적이 일어나도 되지 않을까. 그때 버스 기사가 길게 하품하며 차창을 열었고 낙엽들이 날려 들어왔다. 몇 장의 잎일 뿐인데도 버스안은 갑자기 나무 향으로 꽉 채워졌다. 열매는 마치 숲에앉아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렇게라도 완주에 이를수 있다면 꿈에서 깨고 싶지 않다고 바랐을 때 어떤 익숙한 손길이 열매의 팔을 잡고 가만히 흔들어 깨웠다.

다시 시가 이어진다.

손열매 - 그들은 조금씩 비틀거렸어
하지만 하늘 높은 곳에서
달님이 그들을 보살펴 주었네
(천천히, 여운을 주며)
하지만 하늘 높은 곳에서
달님이 그들을 보살펴 주었네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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