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언

조선의 인조(仁祖) 14년이자 청의 숭덕(德) 원년이었던 병자년(丙子年)십이월 8일(1637년 1월 3일). 청군의 선봉대가 압록강을 건너면서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시작되었다. 이듬해인 정축년(丁丑年) 정월 30일(1637년 2월24일), 남한산성을 나선 인조는 삼전도(三田渡)에서 청의 태종(太宗)에게세 번 무릎 꿇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린다는 ‘삼궤구고두(三跪九叩頭)‘의 예를 올렸다. 전쟁이 터진 지 채 두 달도 되지 않아 인조는 ‘삼전도의 치욕‘
을 겪었던 것이다.
한국 역사상 최대의 치욕 중 하나로 기억되는 참패였기에 이런 의문이 저절로 머릿속에 떠오른다. 전쟁 준비를 조금이라도 했다면 어찌 이렇게 참담한 결과가 나올 수 있었겠는가? 왜란(倭亂)의 참화를 겪은 지 50년도지나지 않았건만, 심지어 약 10년 전에는 똑같은 적으로부터 침략을 당하는 정묘호란(丁卯胡亂)을 겪었건만, 그사이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왜란이나 정묘호란은 사전에 적의 침공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치자. 그러나 병자호란의 경우는 겨울의 전쟁이 터지기 한참 전인 병자년 봄 척화론(斥和論)이 들끓는 가운데 전쟁 불사의 의지를 천명하지 않았던가? 조선의 위정자들은 계절이 두 번 바뀌는 동안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다는말인가? - P9

서론

조선의 제16대 국왕 인조(仁祖)[1595~1649년 재위 1623~1649년]가 쿠데타를 일으켜 광해군(光海君)을 몰아내고 보위(寶位)에 오른 지 햇수로 14년째였던 병자년(丙子年)의 십이월, 청(淸) 태종(太宗) 홍타이지(Hongtaiji,
皇太極)[1592∼1643년 재위 1626~1643년 청의 대군(大軍)을 직접 이끌고 조선에 쳐들어왔다. 우리가 ‘병자호란(丙子胡亂)‘이라고 부르는 전쟁이터진 것이다.
병자호란이 터지기 10년 전에도 전쟁이 있었다. 바로 ‘정묘호란(丁卯胡亂)‘이다. 1627년의 정묘호란은 두 나라가 이른바 ‘형제 맹약‘이라고 불리는 화의(和議)를 체결함으로써 끝이 났다. 정묘호란 때의 홍타이지,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금국(金國)[만주어로는 ‘아이신 구룬(Aisin Gurun)]의 한(汗)이었으며, 형제 맹약 이후의 10년 동안 후금의 한 홍타이지와 조선의 왕 인조는 상호 대등한 외교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병자년(1636) 이월에 이르러 양국 관계에 매우 심각한 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후금이 사신을 파견하여 이제 명(明)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홍타이지의 ‘칭제(稱帝)‘ 과정에 동참하라는 요구를 들이밀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조선 조정에서는 척화론(斥和論)이 들끓었다. 후금의 요구를 단호하게 물리친 것은 물론이다. 삼월 1일에는 인조가 정묘년 이래의 양국 관계가 이제 파국에 이르렀으니 조만간 닥쳐올 적의 침공에 대비하라는 취지의 이른바 ‘전화교서(絶和敎書)‘를 팔도에 하달했다. 그러나 후금과의 관계를 당장 끊어버리지는 않았다. 나덕헌(羅德憲)과 이확(李廓)을 사신으로 파견했던 것이다. - P21

농성 개시 후 한 달이 지날 무렵 남한산성의 조선 조정은 글자 그대로고립무원에 빠져 있었다. 조정은 ‘항전론‘과 ‘항복론‘으로 분열되었다. 전쟁발발 전의 ‘척화론‘을 이은 ‘항전론‘은 끝까지 저항하다가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자는 주장이었다. ‘주화론(主和論)‘에 맞닿아 있었던 ‘항복론‘은 옛날중국의 춘추(春秋) 시대의 월왕 구천(句踐)처럼 어떻게든 이번 위기를 넘겨야만 훗날의 와신상담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오늘날의 시각에서는 언뜻 ‘항복론‘이 훨씬 더 현실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시 상황에서는 딱히 그런 것도 아니었다. 항복을 한들 과연 청군이 국가의 지속과 군신(君臣)의 안전을 보장해줄 것인가? 반면에 적지 않은 근왕병이 아직 미원에 남아 있지 않은가? 설사 그들의 근황이 끝내 실패한다고 할지라도나라와 운명을 함께하여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면 천하 후세의 역사에 떳떳하기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강화도로 들어간 원손(元孫)과 두 대군(大君)이 이 나라의 종묘사직을 이어갈 희망도 있었다.
그러나 남한산성의 조선 조정은 결국 항복을 선택했다. 단, 그 항복은 청 측에서 ‘평화적‘ 철군의 조건을 내걸면서 전개된 종전(終戰) 협상의 결과였다. 정축년 정월 20일, 홍타이지는 인조가 출성(出城)하면 바로 전쟁을 끝내고 철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조선으로서는 출성 시 국왕의 안전 보장을 확신할 수 없었다. 오랑캐의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정월 26일, 청군이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남한산성에 알렸다. 나흘 전인 정월 22일에 강화도를 점령했다는 사실을 확실한 증인과 증거까지 제시하며 통고한 것이다. 충격에 휩싸인 인조는 그날 저녁 출성 요구를 수용하기로 결단을 내리고, 이튿날 이를 청군에 알렸다. 정월28일, 홍타이지는 국왕의 안전 보장을 재확인하면서 종전 이후 조선이 이행해야 할 의무사항을 전달했다. 정축년 정월 30일, 날수로 47일 만에 남한산성을 나온 인조는 한강 남안의 전에서 홍타이지에게 삼궤구고두三궤九叩頭의 예를 올렸다. 오늘날의 달력으로 1637년2월 24일의 일이었다. - P26

통설의 서사에는 간혹 근거가 될 만한 사료를 전혀제시하지 않은 막연한 주장들이 발견된다. 설사 근거 사료를 제시했더라도그 사료를 신뢰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과거의 기록이라고 해서 모두 믿어서는 안 된다. 앞뒤의 상황과 부합하지 않거나 상식을 벗어나는 돌출적인 ‘증언‘에 대해서는 그 신빙성을 면밀히 따지는 검증 작업이 필요하다. 특히어떤 기록의 ‘증언‘이 다른 기록의 ‘증언‘과 모순될 때에는 어느 쪽이 사실을 전하고 있는지 엄밀히 따져야 한다. 조선의 기록뿐만 아니라 청의 기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쪽 기록이든 간에 와전, 오류, 왜곡 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기 마련이므로, 주요 문헌 기록을 면밀히 대조하고 검토하여 허구나 왜곡 및 과장을 최대한 걷어내야 한다. 이러한 사료 비판을 거쳐 사실(史實)을 확정한 뒤에는 합리적인 추론으로 사실과사실의 관계를 정합적으로 구성해야 한다. - P30

병자호란이 홍타이지의 親征이었다는 사실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넘길 성질이 아니다. 친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병자호란의 중대특징이다. 병자년의 시점에서 보자면, 홍타이지의 조선 친정은 당연한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외의 선택이었다. 그는 얼마든지 다른 왕공이나 장수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병자호란을 치를 수도 있었다. 많은 사례가 있지만, 자신의 형제와 조카들에게 맡겼던 정묘호란을 단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심지어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나와 삼전도로 나가기 전날 밤까지도 조선 조정이 홍타이지의 친정을 반신반의한 것 역시 당시 시점에서 친정의 의외성을 방증한다.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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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에서 수치심 shame은 본질적으로 미묘한 개념이다. 중독을 멈추는 원동력인 동시에 중독을 강화하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러한 역설에서 벗어날 수있을까?
우선 수치심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오늘날 심리학에서는 수치심을 죄책감과 다른 감정으로 본다. 교과서적인 설명은 이런 식이다. 수치심이 우리 자신을 나쁘게 느끼게 하는 감정이라면, 죄책감은 긍정적인 자아를 지키면서도 자신의 그릇된 행동을 인정하는 감정이다. 수치심은 부적응적 감정, 죄책감은 적응적 감정인 셈이다. - P247

내가 보기에 수치심이냐 죄책감이냐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가그 감정을 어떻게 경험하느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위반 행위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상대가 우리에게 거부, 비난, 회피의 감정을 드러내면 우리는파괴적 수치심destructive shame 의 사이클로 들어가게 된다. 파괴적수치심은 수치심의 감정적 경험을 심화시키고, 처음에 수치심을 느끼게 했던 행동을 완전히 고정시켜 버린다.
반면에 상대가 우리를 더 가까이 두고 구원/회복을 위한 손길을 내민다면 우리는 친사회적 수치심 prosocial shame 의 사이클로 들어간다. 친사회적 수치심은 수치심의 감정적 경험을 누그러뜨리고, 수치스러운 행동을 멈추거나 줄이도록 도와준다. 자존감도 지켜준다. - P248

파괴적 수치심은 다음과 같이 작동한다. 과용은 수치심으로 이어지고, 수치심은 집단의 외면 혹은 집단에게 거짓말을 해서 외면을 모면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이는 결국 고립을 낳고, 사이클이 끝없이 이어지면서 중독 대상에 대한 의존도 계속되는 결과를 낳는다. - P256

친사회적 수치심은 수치심이 공동체 번영에 쓸모 있고 중요하다는 생각에 근거를 둔다. 수치심이 없으면 사회는 혼돈에 빠져버릴 것이다. 따라서 관습에 반하는 행동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는 건 적절하고 좋은 경험이다.
더 나아가 친사회적 수치심은 누구나 결점을 가졌고, 실수할수 있으며, 따라서 용서할 수도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근거를둔다. 옆길로 엇나간 사람을 내치지 않으면서 집단 규범을 고수하도록 하는 열쇠는, 벌충을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명시한 수치심 이후의 ‘할 일‘ 목록을 만드는 데 있다.
친사회적 수치심 사이클은 다음과 같이 돌아간다. 과용은 수치심으로 이어지고, 수치심은 근본적인 솔직함을 요구하는데, 솔직함은 우리가 파괴적인 수치심에서 본 것 같은 외면이 아니라 수용과 공감을 낳는다. 그러면서 벌충에 필요한 행동들이 어우러진다. 그 결과 유대감은 커지고 중독 대상에 대한 의존은 줄어든다. - P258

만약 AA 회원들이 중독에 굴복하게 되면, AA는 이를 고백할것을 장려하고 이런 행동을 중요한 집단선集團善으로 여긴다. 이 점이 중요하다. 행동경제학자들은 어떤 집단에 소속되는 보상을 집단선club goods 이라고 언급했다. 집단선이 탄탄할수록 그 집단이 현재의 구성원들을 유지하고 새 구성원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집단선의 개념은 가족, 친목 단체, 종교 모임 등 모든 인간 집단에 적용할 수 있다. - P262

영화 중간에 딸이 나를 보더니 "엄마, 내가 멈블이랑 비슷해?" 하고 물었다. 그 순간 나는 부모로서의 자기 회의에 사로잡혔다. 뭐라고 말하지? 사실대로 말하고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위험을 감수해야할까. 아니면 거짓말을 하고 속임수를 써서 음악에 대한 애정을계속 갖고 있게 할까?
나는 위험을 감수했다. "응, " 난 말했다. "멈블이랑 정말 비슷해."
그러자 딸의 얼굴에 큰 미소가 퍼졌다. 나는 이를 확인을 의미하는 미소로 받아들였다. 그때 난 내가 옳은 일을 했음을 깨달았다.
나는 딸이 이미 알고 있는 부분을 사실로 인정함으로써 딸의정확한 자기 평가 능력을 격려했다. 또한 우리가 모든 방면에 뛰어날 수 없고,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 아는 일이 중요하며, 그래야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딸은 1년 후에 피아노 수업을 관뒀지만 지금도 음악을 즐긴다. 라디오를 따라서 음정은 전혀 안 맞게 노래하지만 조금도 쑥스러워하지 않는다.
상호 간의 솔직함은 수치심을 없애는 동시에 친밀감을 길러준다. 우리가 결점을 갖고 있음에도 다른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때, 그들과 나누는 깊은 유대감에서 이러한 따뜻한 감정이 커진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친밀감을 만드는 방법은 완벽함이 아니다. 실수를 바로잡는데 다 같이 노력하고자 하는 우리의 의지가 친밀감을 높인다. - P270

균형을 찾아 유지함으로써 얻어지는 보상은 즉각적이지도 않고 영원하지도 않다. 보상을 얻으려면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앞에 무엇이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기꺼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당장 영양가 없어 보이는 지금의 행동들이 실제로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축적되고, 이것이 미래의 언젠가 나타날 거라는믿음을 가져야 한다.
내 환자인 마리아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회복은 《해리포터Harry Potter>>에서 덤블도어가 가로등 기둥을 밝히면서 어두운 골목을 걸어 내려갈 때의 장면과 비슷해요. 그가 골목 끝에서 발길을멈추고 뒤를 돌아봐야 골목 전체에 불이 들어온 광경이 보이죠. 그가 지나온 길의 빛을요."
이제 이야기를 마무리할 시간이다. 하지만 이것이 약물에 찌들고, 너무 자극적이며, 쾌락으로 포화를 이룬 지금의 세상에 대한새로운 접근법의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 저울의 교훈을 실천해서 자신이 지나온 길의 빛을 돌아볼 수 있길 바란다. -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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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프랜시스의 미래상-휠체어에 앉은 오십대 사내의 모습-이 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연기 자욱한 방에 앉아 있는 그의 앞에는 내가 쪼그리고 앉아 있는 한동안 내게, 우리가 예사 친구 사이가 아니라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 살아갈 친구라는 것만 생각해도 기분이 좋던 때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버니가 죽은 직후에도 나를 위로해준 것은 오로지 이런 친구들의 존재였다. 그런데 그것이 역겨웠다. 출구 없는 방에 들어앉은 기분이었다. 나는 그들과 너무 깊이 밀착해 있었다. - P295

줄리언을 이야기할 때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낭만적인 측면에서 과장하게 된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나는 이 세상의 어떤 사람보다도 그를 사랑했다. 내가 세상만사를 아름답게 윤색하고 싶다는 유혹, 세상만사를 다시 빚고 싶다는 유혹, 세상만사를 용서하고 싶다는 유혹을 느낀 것은 바로 그와함께 있을 때였다. 내가 그런 유혹을 느꼈던 까닭은 줄리언 자신이 정감과지혜와 용기와 매력을 부여함으로써 끊임없이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자기주위의 일상사를 다시 빚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를 사랑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지금은 물론, 내가 그 정반대의 극단으로 방향을 틀어 생각해보는 것도쉬운 일이다. 이제 나는 줄리언이 지닌 매력의 비밀은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존재로 느끼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게 접근해 있었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에게는 열등감을 우월감과 오만으로 바꾸어놓는 묘한 재능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타적인 동기에서가 아니라, 이기적인 동기에서 그런 교육을 했다. 그는 자기 자신의 이기적인 충동을 성취하기 위해 그런 교육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이런 측면에 관한 한, 나는 어느 범위까지는 어느 정도 정확하게 체계를 세워 쓸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한다고 해서 그의 개성이 지니는 근본적인 마력이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아직도 그를 처음 만날 때의 그 모습 그대로 기억하고자 하는데, 이 까닭 역시 이로써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나에게 그는 처음에 그랬듯이 지금도 골목어귀 같은 데서 불쑥 나타나 꿈을 이루고 싶으냐고 묻는 노현자와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동화에서조차 귀에 솔깃한 질문을 던지는 친절한 노신사는 항상 우리의 꿈을 성취시켜주는 것만은 아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이것은 내가 쉽게 용인할 수 있는 진실이 아니다. 그러나 몇 가지 이유에서 이것은 나에게 진실이다. 이 대목에서 내가 독자에게 꼭 전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한 짓을 낱낱이 고했을 때 줄리언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라는 점이다. 이 대목에 나는 그가 이마를 책상에 대고, 버니를 위하여 울었고, 우리를 위하여 울었고, 기구한 운명, 낭비된 우리 모두의 인생을 저주하며 울었다는 것을 밝혀두고 싶다. 장님이나 다름없었던 자기 자신, 보지 않으려고 자꾸만 눈을 가리던 자기 자신을 위해 울었다고쓰고 싶다.
사실은 아니지만, 나는 그가 그랬다고 쓰고 싶은 유혹은 버릴 수가 없다. - P370

‘줄리언은 겁쟁이야. 줄리언도 우리와 같은 입장에 처했더라면 우리가한 것과 똑같은 행동을 했을 거야. 이것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은 줄리언이위선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야."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줄리언은, 심지어는 버니의 죽음에 대해서도 스승으로서의 의무를 다한것 같지 않아, 만일에 스승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려고 했다면, 그래서 우리를 증오하고 우리를 경찰에 넘겼다면 나는 줄리언을 용서할 수 있어.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어. 줄리언은 우리가 더 많은 사람을 죽었어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을 거야. 줄리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살인사건에서 어떻게 하든지 자기 이름을 지우는 것이었어. 어젯밤에 만났을 때 줄리언이 나에게 한 말도 그것이었어."
"어젯밤에 만났어?"
"만났어. 나는 이 일이 줄리언에게는 자기의 정신적 평화를 해치는 사건에서 더도 덜도 아니라는 인상을 받았어. 그렇다고 해서 경찰에 넘겨지기를 바란다는 것은 아니지만, 줄리언은 우리를 경찰에 넘기는 문제를 놓고 적어도 갈등 정도는 했어야 했어. 그래야 자기 몫의 사명에 충실하는 것 아니겠어? 그러나 겁쟁이에게는 그런 갈등이 없어. 겁쟁이는 이렇게 도망쳐버리면 끝나는 것이니까." - P383

어릴 때, 별 이유도 없이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던 일이 생각난다. 아버지는 내게도 비슷한 짓을 했지만 나는 그것이 성질머리가 나빠서 그러는줄을 알지 못하고 그저 나에게 무슨 잘못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거니 했다.
말하자면 그가 날조해내는 매질의 이유("너는 말이 너무 많아."라든지, "애비를 그따위 눈으로 보는 놈이 어디에 있어?")가 나름의 정당성을 지니는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어머니를 매질하는 것(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동네 이웃들이 집을 증축하고 있다고 천진난만하게 말했다. 후에 아버지는 어머니가 자신을 돈을 못 버는 사람이라고 무시해서 화가 났다고 얘기했고,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을 본 어느 순간, 나는 아버지를 정의로운 법률의 제정자라고 보던 유치한 나의 생각이 전혀 틀린것임을 깨달았다. 어머니와 나는 그 지극히 편집증적이고 무식하고 매사에 무능한 사내에게 너무 목숨을 걸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더욱 한심한것은 우리 어머니에게는 그런 아버지와 정면으로 맞붙을 힘도 용기도 없다는 점이었다. 그때의 내 심정은 조종사와 부조종사가 술에 취해 조종실에 곯아떨어져 있는 비행기를 탄 기분이었다. 그날 그리스어 수업이 끝나고친구들과 함께 뤼케이온 앞에 서서 내가 했던 생각은, 열두 살 때 플래노에있는 우리 집 부엌에서 절망과 공포를 느끼면서 내가 하던 생각과 조금도다르지 않았다. 이 비행기는 누가 조종하고 있는 거지? 이 비행기는 누가 몰고 있는 거지? - P387

"안 돼, 헨리!"
커밀라가 소리쳤다. 그러나 나는 그제야 헨리의 의도를 알았다.
헨리는 총구를 자기의 관자놀이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총소리가 두번 났다. 총탄은 그의 왼쪽 관자놀이를 부수고 들어갔다. 두 번째 방아쇠를당기게 한 것은 권총의 반동 때문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헨리가 입을 활짝 벌렸다. 열린 방문에서 불어 들어온 바람이 깨진 유리창 앞에 걸린 커튼을 바깥으로 날리다가 방충망에 부딪치면서 한숨 소리비슷한 소리를 냈다. 눈이 감기는가 싶더니 헨리의 무릎이 꺾였다. 헨리의몸은 바로 그 순간 카펫 위로 무너져 내렸다. - P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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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버스가 도착한다. 우리는 통로 위의 난간에 바짝 기대며승객들이 내리기를 기다린다. 나는 이제 내 앞에 놓일-영불해협횡단레이스"에 견줄 만한, 그러니까 악명 높은 위스트르앙 부두의 페리에서 일하는 생활에 얽매여 그들에게 더 이상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나의 첫 출근 날이니, 짐을 갖고내리는 모든 승객들을 바라보면서 기운찬 목소리로 성심성의껏 "어서 오십시오"라고 환영의 인사를 건네지 않을 수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내 인사에 아무도 대꾸를 보내지 않는다. 가끔씩 그들 중 한명은 다리에 감아 놓은 동아줄 더미가 인사한 건 아닌가 하며 나를 바라본다. 나는 안중에 없는,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고 있는 것이다. - P115

빅토리아와 팡팡은 "비정규직들‘을 관장하는 분과를 만들었다. 고용 약속이 파기된 노동자들, 슈퍼마켓 노동자들, 임시직들, 여자청소부들, 혹은 하청 노동자들 모두를 다 이 분과로 규합시켜야 했다. 금속노조, 조선노조, 우편전신전화노조 같은 거대한 단위를 중심으로 조직된 남자들의 세계에서 조합운동을 한다는 것은 절대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이렇게 규정했다.
"우리는 바로 보루지."
그 한마디가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나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콩티낭Continant"의 계산원들 혹은 빗자루를 든 여자 청소부들과 함께 시위를 한다는 데 대해 수치심을 느끼는 자들도 있었다. 그들의 파업이었고, 그들의 행진이었고, 그들의 플래카드였고, 그들의 조합이었던 것이다.
조합 모임에서는 노조 간부들이 비정규직들도 당연히 이해할 거라고 여기면서 그들 특유의 어법으로 정책 및 기술적인 용어를 구사했는데, 비정규직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책임자들에게달리 말해달라고 요구했고 이는 그야말로 간부들을 화나게 했다.
"당신의 그 바보 같은 질문 때문에 모두들 지겨워하고 있는 거몰라?"
가끔 비정규직들이 발언권을 얻어 말할 때면, 남자들은 배꼽이빠져라 웃어댔다. 빅토리아는 그들과 함께 계급투쟁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 P160

 나는 가끔씩, 어느날 저녁 헬리콥터가 우리의 작은 부두 끝으로 내려와 그녀를 이곳에서 아주 먼 곳, 즉 우리는 꿈에서라도 언감생심 따라가지 못할그런 곳으로 그녀의 진정한 운명을 향해 데려간다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고 그녀에게 아주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인상을 받곤 한다. 하루는 어리석게도 그녀에게 모델이 되어 보려고 하지는 않았느냐고, 게다가 더 바보같이 "다른 일을 찾아볼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라고 물어보고 말았다. 미미는 다른 쪽을 바라보고, 묘하게허스키한 목소리에 힘을 빼며 대답했다.
"너무 늦었지. 이미 스무 살인데."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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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DHD 약물 치료가 학업적·사회정서적기능의 저하와 관련 있다‘는 새롭고 설득력 있는 증거가 있다."
최근 데이터에 따르면, 한때 ‘습관성‘과 거리가 멀다고 여겨졌던 항우울제도 내성과 의존성을 일으켜서 장기간에 걸친 우울증을 야기할 수 있다. 이 현상을 지발성 불쾌감tardive dysphoria이라고한다.
나는 중독 문제와 약물의 효과 여부에 관한 의문을 넘어서서더 심오한 질문과 씨름해 왔다. 향정신성 약물이 인간성의 본질적인 부분을 없애버리는 것은 아닐까?
1993년, 정신의학 박사 피터 크레이머Peter Kramer는 『프로작에게 듣는다 Listening to Prozac』라는 획기적인 책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그는 항우울제가 사람들을 "보통 좋은 것보다 더 좋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크레이머가 틀렸다면? 치료를 위해 처방받은 향정신성 약물이 우리를 보통 좋은 것보다 더 좋게 만드는게 아니라 보통 좋은 것이 아닌 무언가 다른 존재로 만든다면 어떨까?
수년 동안 만난 다양한 환자의 이야기에 따르면, 향정신성 약물은 고통스러운 감정을 단기적으로 완화하는 것을 넘어서 감정자체를 제한한다. 비탄과 경외심 같은 강렬한 감정을 특히 무디게 한다.
어떤 환자는 항우울제 덕분에 조울증의 고통에서 해방됐다고기뻐했지만 한편으론 자신이 올림픽 광고를 보고도 더 이상 울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하면서 웃음을 보였다. 그녀는 우울과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성격 중 감성적인 부분을 기꺼이 희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장례식에서도 울수 없자 나를 다시 찾아왔다. 내 처방에 따라 그녀는 항우울제를 끊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더 많은 우울과 불안을 비롯해 상대적으로 더 넓은 폭의 감정을 받아들이게 됐다. 그녀는 바닥에 가까운 감정도 인간다움을 느끼게 하기에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 P162

우리는 약물에 기대어 세상에 적응할 때 과연 어떤 세상에 만족하는 걸까? 고통과 정신 질환을 치료한다는 핑계로 참기 힘든상황에 대해 생화학적으로 무감각한 인구를 양산해내고 있는 건아닐까? 설상가상으로 향정신성 약물은 가난하고 직업이 없으며선거권을 박탈당한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되고 있다.
정신 치료제는 가난한 아이들을 비롯한 빈곤층에게 상대적으로 더 자주 다량으로 처방되고 있다. 미국 질병관리본부의 보건통계센터에서 진행한 2011년 국민건강인터뷰조사 National Health Interview Survey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6~17세 어린이 가운데 7.5퍼센트‘가 "감정적 · 행동적 문제"로 약을 처방받았다. 가난한 아이들이 가난하지 않은 아이들보다 향정신성약물을 복용할 가능성이 더 컸다 (9.2퍼센트 대 6.6퍼센트),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보다, 비히스패닉계 백인들은 유색인들보다 복용 가능성이 더컸다. - P165

누구나 한번쯤은 고통이 쾌락으로 바뀐 경험이 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와 마찬가지로 한동안 아팠다가 기분이 나아진 걸 느꼈거나, 운동 후 러너스 하이를 느꼈거나, 무서운 영화를 보고 설명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수 있다. 고통이 우리가 쾌락에 지불하는 대가인 것처럼, 쾌락 역시 우리가 고통을 통해 얻는 보상이다. - P181

6주 동안 쳇바퀴를 돌린 쥐들에게 코카인을 주었더니, 쳇바퀴를 돌지 않은 쥐들에 비해 코카인 사용을 자율적으로 조절했고 코카인 사용 빈도가 줄었다. 이는 헤로인, 메스암페타민, 알코올을 가지고 진행한 실험에서도 동일하게 관찰됐다. 동물에게 강제적으로 운동을 시키자, 자발적인 약물 사용 빈도는 더 줄어들었다.
인간의 경우 중학교, 고등학교, 성인 초기에 하게 되는 고도의신체 활동이 상대적으로 약물 의존도를 낮추는 것으로 보고됐다. 운동은 약물에 중독된 이들이 의존을 멈추거나 줄이는 데도 도움을 준다.
도파민이 운동 회로에 미치는 중요성은 조사가 이루어진 모든 동물 실험에서 보고되고 있다. 가장 단순한 실험동물 중 하나인 예쁜꼬마선충은 그 지역의 영양물이 풍부함을 알려주는 환경적자극에 반응해 도파민을 분비한다. 연구를 종합해보면 도파민은‘저걸 원해‘라는 동기 부여 신호를 주어 신체를 움직이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오늘날은 도파민에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몸을 움직일 필요가 없어졌다.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오늘날 전형적인 미국인은 깨어 있는 시간의 절반을 앉아서 보내는데, 이는 50년에 비해 50퍼센트 증가한 수치다. 세계의 다른 부유 국가들도 이와 비슷하다. 우리가 공급량이 제한적인 식량을 두고 경쟁하기 위해 매일 10킬로미터를 횡단하도록 진화되었음을 고려하면, 현재 우리가 영위하고 있는 좌식 생활 습관의 역효과는굉장히 충격적이다. - P184

이와 대조적으로 생산직은 갈수록 기계화되는 것은 물론 업무 자체의 의미로부터 단절되고 있다. 생산직 노동자들은 자율성을 제한받고, 경제적 이득도 그저 그런 수준이며, 공동의 사명감도 거의 느끼지 못한다. 성취감과 최종 제품 소비자와의 접촉은모두 내적 동기에 중요한데, 단편적인 조립라인 노동은 이 두 가지와 거리가 멀다. 그래서 ‘적당히 일하고 열심히 놀자‘는 심리가생기는데, 이러한 심리에서 술, 도박, 약물 같은 강박적 과용이 고된 하루의 끝에 주어지는 보상이 된다. 그럴만도 한 게, 현재 저소득 직종에 종사하는 고등학교 교육 이수자들이 일을 가장 적게 하는 반면, 고학력 임금 노동자들은 더 많이 일하고 있다.
2002년 당시 소득 상위 20퍼센트가 하위 20퍼센트보다 두 배더 오래 일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됐는데, 그 흐름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경제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큰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가 나타난다는 게 경제학자들의 추측이다.
개인적으로 가끔은 한 번 일을 시작하면 그만두기 어려울 때가 있다. 깊은 몰입의 ‘흐름‘은 그 자체가 마약과 같다. 몰입은 도파민을 분비하고 특유의 도취감을 낳는다. 이러한 무아지경은 부자 나라에서는 큰 보상을 보장한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친구와 가족과 맺는 밀접한 관계를 가로막는다면 인생에서 덫이 될수 있다. - P204

근본적인 솔직함은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해, 특히 자신의 결점을 노출하고 어떠한 결과를 감수하면서 있는 그대로 말하기는 중독에서 벗어나는 데 필수적일 뿐 아니라 균형 잡힌 인생을 살아가려는 이들에게 중요한 전략이다. 사실대로 말하기는 여러모로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근본적인 솔직함은 첫째, 우리의 행동을 확실하게 의식하도록한다. 둘째, 친밀한 인간관계를 형성한다. 셋째, 진실한 삶을 이끌어 현재의 자신뿐 아니라 미래의 자신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는다. 더 나아가 사실대로 말하기는 전염성이 있기 때문에 중독을 막을 수 있다. - P214

연구자들은 전두엽 피질의 신경 흥분성이 높아지면 거짓말 빈도가 반으로 줄어드는 현상을 확인했다. 놀랍게도 정직의 증가는
"물질적인 사리사욕이나 도덕적 신념의 변화로 설명될 수 없었고, 참가자들의 충동성, 자발적 위험 감수, 기분과도 무관했다."
연구진은 전두엽 피질을 자극하면 정직의 정도가 강해질 수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는 "인간의 뇌가 복잡한 사회적 행동을적극적으로 조절하는 메커니즘을 진화시켜 왔다"는 생각과 일치한다.
이 실험을 보고 나는 ‘역으로‘ 솔직함을 실천하면 전두엽이 활성화될 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스위스에 있는 크리스티안 러프에게 이메일을 보내 그의 의견을 물었다.
‘전두엽 피질을 자극하는 것이 사람들을 더 솔직하게 만든다면, 더 솔직해지는 것이 전두엽 피질을 자극할 수도 있을까요? 사실대로 말하기를 훈련하면 우리가 미래 계획, 감정 조절, 지연보상에 활용하는 뇌 부위의 활동성과 흥분성을 강화할 수 있을까요?"
그는 이렇게 답했다. "당신의 질문은 일리가 있습니다. 확실 한 대답은 드릴 수 없지만, 솔직함과 관련된 전두엽의 작용처럼 특정 목적을 위한 신경 작용이 반복적인 사용을 통해 강화된다는 당신의 직관에 공감합니다. ‘함께 점화하는 세포들은 연결된다‘는 도널드 헵Donald Hebb*의 오래된 이론에 따르면, 거의 모든 유형의 학습에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합니다."
그의 답변이 마음에 들었다. 솔직함을 훈련하면 특정 목적을위한 신경 회로가 강화될 수 있음을 암시했기 때문이다. 이는 외국어 배우기, 피아노 연주하기, 혹은 스도쿠 잘하기가 다른 회로를 강화하는 방식과 동일하다.
사실대로 말하기는 뇌를 변화시킨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쾌락-고통 균형과 강박적 과용을 이끄는 정신적 작용을 더 확실히의식할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우리의 행동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 P217

20여 년 동안 정신과 의사로서 수많은 환자에게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우리가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말하는 방식이 정신 건강의 표식이자 예측 변수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자신이 주로 피해자이며 나쁜 결과는 남탓이라고 하는 환자들은 보통 상태가 더 나빠지거나 계속 그 상태로 남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사람들은 남을 비난하기 바빠서 자신의 회복에는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자신의 책임을 정확히 표현하는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하면 호전되고 있다는 의미다.
‘피해자 서사‘는 보통 우리가 자신을 특정한 상황에 대한 피해자로 보고 자신의 고통에 대한 보상이나 사례를 받아 마땅하다고여기는 광범위한 사회적 경향을 말한다. 정말로 피해를 당한 경우에도 그 서사가 피해자 의식을 넘어서지 못하면 치료가 진행되기 어렵다. -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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