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은 소인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는 다양한 단어들의 미묘한 차이를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네바다에 있는 도시 리노를 부각시키기 위해 떠들썩한 광고와 함께 1957년에 개최된) 최초의 LPA 모임은 <미국의 난쟁이Midgets of America〉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갓 출범한 이 조직의 명칭은 모든 유형의 소인들이 환영받는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1960년에 <미국의 소인들Little People of America>로 바뀌었다." 난쟁이를 의미하는 <미지트midget>라는 단어는 당초 호기심의 대상인 소인들을 묘사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귀찮은 작은 날벌레를 의미하는 <미즈midge>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오늘날 이 단어는 지극히 모욕적인 말 <깜둥이nigger>나 <스페인어를 쓰는 놈spic>, <호모 자식 faggot> 등에 상당하는 소인을 가리키는 욕설로 간주되며, 내가 직접 들은 바에 의하면 혹시라도 그들의 아이가이런 호칭으로 불릴까 봐 많은 어머니들이 전전긍긍했다. 하지만 보통사람들은 난쟁이라는 말이 모욕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그 말을 사용하는 대다수 사람들도 나쁜 의도 없이 그 말을 사용한다. 설령 사용자가 그 말이 낙인을 찍는 말임을 모를지라도 부적절한 단어를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편견의 증거일까? 세계적으로 유명한 서커스 사업가 바넘의 사이드쇼에서 가장 인기 있던 작은 스타들은 비례가 맞는, 즉 평균 신장을 가진 사람과 비슷한 신체 비율을 가진 소인들, 즉 〈드워프dwarf>였다. <드워프>라는 용어는 골격계 이상보다 뇌하수체 이상으로 키가 작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빈번히 사용되었다. 2009년 경제면 기사에 〈미지트>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때 「뉴욕타임스」는 LPA로부터 격렬한 항의를 받았고, 결국 인쇄 편람을 개정했다. 하지만 <드워프>라는 용어는 그 자체로 부담스러운 연상 작용을 유발한다. 바버라 스피겔은 연골 형성 부전증이 있는두 아이가 있고 그들의 정체성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고 아이들을 키우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녀의 첫째 딸이 유치원의 같은 반 아이들에게 자신의 키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물었을 때 바버라는 <네가 <드워프>라고 말해>라고 대답했다. 딸아이가 자신의 허리에 양손을 걸치고 대꾸했다.
하지만 나는 판타지에 등장하는 가짜가 아니잖아요! - P234

대다수 소인들이 대중의 조롱 때문에 괴로워하고 심각한 제약과 건강 문제에 직면할 수 있음에도, 그들이 쾌활한 어린이라는 낡은 생각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 것 같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 같은 현상은 생물학적으로 왜소증과 관련된 특징이라기보다 그들의 사회적 상황을 편하게 해주려는 일종의 보상일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많은 소인들이 그들을 둘러싼 이런 관점이 그들의 삶에 존재하는 팍팍함을 하찮게 보이도록 만든다고 생각한다. 소인의 초기 정서 발달은 상당히 긍정적으로 나타난다. 전반적인 행복이라는 기준에서 보통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소인들은 비교적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하지만 자신이 왜 그토록 다른지 묻는 질문이 시작되면서 부모들은 힘든 시기를 맞는다. 자세한 내용을 완곡하게 표현하는 행위는 그 아이를 조롱하는 행위만큼이나 독이 될 수 있다. 인류학자 조앤 애블론Joan Ablon이 차이를 안고 사는 것Living with Differences에 쓴 글에 따르면 과보호는 대다수 부모들이 한 번쯤 그 희생양이 되는함정이다. "소인 아이들은 흔히 자신이 어린아이 취급을 당한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캘리포니아를 거점으로 하는 소인 재단의 설립자 리처드 크랜들은 그의 소인 자녀를 둔 부모들을 위한 지침서에서 이렇게 조언한다.
「유모차를 타는 보통 연령이 지났음에도 유모차를 이용하고 싶은 유혹에굴복하지 말라. 물론, 당신이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당신의 아이는 네 걸음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고, 그 때문에 쇼핑센터에서 당신의 속도가 느려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애초에 30분 일찍 도착해서 아이의 속도에 맞춰 함께 걸어 다니는 편이 그 아이를 아기처럼 유모차에 태워 다니는 것보다 훨씬 낫다.」 LPA와 유사한 단체인 영국의 <제한된 성장 협회RGA>는 2007년도에 실시된 조사 결과를 요약하면서 소인 아이들은 그들을 평범한 사람처럼 대할수록 보다 많은 자신감을 갖게 되고, 그 결과 어른이 되어서도보다 많은 성취를 보이게 된다고 주장했다.  - P248

 소인 부모를 둔 소인일 경우보다 보통 키의 부모를 둔 소인인 경우에 우울증의 강도가 더 높은 듯 보이며, 이 같은 결과는 최선의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인으로 살아가는 고통을 직접적으로 아는 부모가 자녀의 경험에 보다 잘 공감하고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좀 더 깊이 들어가자면 이런 상황은 수직적 정체성을 갖고 성장하는 것과 수평적 정체성을 갖고성장하는 것의 차이를 보여 준다. 자신과 비슷한 외모를 가진 어른들 사이에서 성장하는 소인 아이들은 평균 신장과 비율을 가진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성장하는 아이들과 비교할 때, 평범함과 관련해서 훨씬 자기 긍정적인 개념을 내면화한다. 10대들의 키가 완전히 자라면서 소인과 다른 또래들의 차이가 더욱 뚜렷해진다. 이 시기에는 평균 키를 가진 사람들의 세계에서 만족하며 살아왔던 많은 소인들이 다른 소인들과 접촉할 필요성을 절감하기 시작하는데, 소인들끼리는 그들의 외모가 관능적으로 이상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LPA나 유사 단체들은 축복이 될 수도 있지만 마찬가지로 시련이 될 수도 있다. 조앤 애블론의 지적에 따르면 그동안은 자신의모든 문제를 왜소증 탓으로 돌려왔지만 이제는 개인적인 결점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하는 사람들에게 LPA 모임에 참석하는 일은 정신적 외상을 초래할 수 있다. - P249

오늘날에도 소인을 물건 취급하는 행태가 여전하다는 사실은 정말 충격적이다. 소인들이 공통적으로 골격계 질환을 겪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 같은 행태는 특히 흉포해 보인다. 충격에 의해 해당 질환이 더욱 악화될수 있기 때문이다. 난쟁이 던지기 대회의 소인들은 흔히 사정이 어려운 경우가 많고 해당 대회에 참가함으로써 매력적인 야간 소득을 올릴 수 있다. 소인 중에는 당사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생활비를 벌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그들은 프로 풋볼 선수들도 자신의 몸을 해치기는 마찬가지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들을 제외한 대부분의사람들은 그런 행위가 자신의 몸을 던지도록 허락한 당사자에게 해가 될뿐 아니라, 대중들이 소인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인식하도록 만들고, 그결과 조롱의 대상으로 여기는 분위기를 고착시킴으로써 소인 커뮤니티의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해가 된다고 믿는다. 난쟁이 던지기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던져지는 것은 소인들 중 일부에 불과하지만 그 행위 자체는 모든 소인을 집어던질 수 있음을 암시한다고 주장하면서 집어던지는대상이 여성이나 심지어 애완견만 되었어도 절대로 용납되지 않았을 거라고 지적한다. - P257

 그 무렵 그녀는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공표했다. 베티가 말했다. 「애나가 대학에 다닐 때였어요. 그녀는 내게 전화해서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밝혔어요. 다음날 나는 그녀에게 긴 편지를 썼어요.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는 그녀가 사랑하는 대상이 남자인가, 여자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제대로 된 사랑을 하고 또 받는 거라고 말했어요. 그녀가 뜨거운 열정을 경험하고, 누군가가 그녀에게 그리고 그녀가 그 사람에게 강렬한 감정을 느낀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의 경이로운 놀라움과 행운과, 진심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 주었죠. 나는 내 반응이 그녀에게 얼마나 중요할지 잘 알았고, 동성 간의 사랑도 이성 간의 사랑만큼이나 진실하고 정당하다는 내 믿음을 그녀에게 솔직하게 말해 줄 수 있어서 기뻤어요.」  - P264

많은 소인들이 충만하고 풍요로운 삶을 산다. 그리고 대체로 왜소증은 장애라기보다 불편인 듯 보인다. 한편 의학계는 결코 만만치 않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출산전 진단이 증가하는 추세와 관련해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부유한 부모는 고가의 검사를 선택하는 반면 가난한 부모는 소인 아이라도 무조건 낳는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로 인해 심각한 인구학적불균형이 초래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연골 형성 부전증을 가진인권 운동가 톰 셰익스피어는 BBC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현안들을 언급하면서 <나는 장애에 대해 모순된 감정을 가졌다. 나는 장애가 비극ㅡ전통적인 관점ㅡ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비극과 전혀 무관ㅡ장애를 바라보는, 어떤 면에서, 급진적인 관점ㅡ하다고 생각하지도않는다. 나는 장애를 하나의 곤경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출산전 검사를 통해 임신을 하거나 피하려고 하는 데 따른 문제들도 지적했다. 요컨대 자신이 소인 아이를 갖게 될 거라는 사실을 일찍 알았을 때의 장점은 예비 부모가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만약 슬픔이 그 부모가 느끼는감정 중 하나라면 출산 전에 그 같은 슬픔을 갈무리하거나 아니면 낙태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반면에 몰랐을 때의 장점은 선택의 문제가 부모에게 끔찍하고 엄청난 중압감을 부과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예비 부모들이 그 같은 짐을 짊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 P288

에밀리는 제이슨을 공동 생활 가정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녀가 말했다. 패배감이 들었어요. 우리는 제이슨을 다운증후군이지만 그런 시설이 필요 없는 사람으로 만들려고 정말 열심히 노력했거든요. 하지만 나는 우리 자신이 만들어 낸 어떤 이상(理想)보다는 무엇이 제이슨에게 최선인지 생각해야 했어요.」 에밀리는 한 지역 시설의 대기자 명단에 제이슨을 올리면서 사실상 불가능한 기간인 8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말했다. 「제이슨 같은 장애 아동을 키울 때 장애 아동 그 자체는 최소한의 문제일 뿐이에요. 공공 기관의 관료주의가 내 숨통을 조이고있을 때 제이슨은 오히려 옆에서 나를 위로해 주었어요.」 공공 기관을 상대로 싸울 수단이 없는 사람들은 좀처럼 공공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 즉 공공 기관을 상대로 싸워서 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대체로 교육과 시간, 돈이 필요하다. 원래 이런 공공서비스가 생긴 취지가 그 세가지가 부족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는 점을 생각하면 가슴아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 P323

불과 몇 년 뒤에 제이슨은 다시 우울해졌고, 에밀리는 제이슨을 역사상가장 높은 수준의 고기능 다운증후군 아이로 만들려고 했던 자신의 원래 시도를 걱정스럽게 되돌아보았다. 그녀가 말했다. 「만약 뒤늦게라도 완벽한 깨달음을 얻었다면 내가 다르게 행동했을까요? 제이슨의 지성은 우리 관계를 더할 나위 없이 돈독하게 만들어 주었고 나는 그 부분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저기능 다운증후군 아동들이 보다 행복하고, 자신이 다운증후군인 것을 부당하다고 생각하면서 괴로워하지 않는다는 점은 인정해요. 그런 아이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보다 수월하게 살아요. 하지만 그렇게 사는 것이 더 행복할까요? 제이슨은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의 지성을 과시할 때 무척 즐거워해요. 나는 그들의 책이 재발간되어 제이슨과 그의 친구가 낭독회를 하고 있는 반스앤노블 서점을 찾았다. 제이슨은 청중의 질문에 능숙하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에밀리는 흥분한 표정이었고 제이슨도 마찬가지였다. 제이슨의 지성에서 비롯된 그들의 즐거움이 두 사람 모두에게 기쁨이 되었다. 제이슨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곳을 찾은 다운증후군 자녀의 부모들도 희망에 부풀어 흥분한 표정이었다.
제이슨이 책에 사인을 해주는 동안 사람들은 그에게 경외심을 가지고 다가갔다. 그와 에밀리는 영웅이었고, 제이슨은 영웅이 되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그의 외로움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자부심도 느낄 수 있었다. - P3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에게 녀석들은 반려가 아니라 여행자에 가깝다. 새미와이슬이도, 방울이와 깐돌이도 잠시 우리집에 왔다가 떠났거나 떠날 것이다. 긴 여행을 하다보면 짧은 구간들을 함께하는 동행이 생긴다. 며칠 동안 함께 움직이다가 어떤 이는먼저 떠나고, 어떤 이는 방향이 달라 다른 길로 간다. 때로는 내가 먼저 귀국하기도 한다. 그렇게 헤어져 영영 안 만나게 되는 이도 있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그렇게 모두 여행자라고 생각하면 떠나보내는 마음이 덜 괴롭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환대했다면, 그리고 그들로부터 신뢰를 받았다면그것으로 충분하다. - P2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인류를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여행하는 인간으로 정의하기도 했다. 인간은 끝없이 이동해왔고 그런 본능은 우리 몸에 새겨져 있다. 인류는 대형 유인원과 97퍼센트 이상 유전자를 공유하지만 그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고릴라, 오랑우탄, 침팬지 등은 활동량이 인간에 비해 현저히 적다. 그들은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가만히 있는다. 열 시간 정도를 털을 고르거나 쉬고 아홉 시간에서 열 시간 정도를 잔다. 유인원을 연구한 학자들은 궁금했다. 어째서 이들은 운동이라고는 거의 하지 않는데 인간과 같은 대사증후군이나 심혈관 질환이 없을까? 동물원의 침팬지조차도 고혈압이나 당뇨병에 거의 걸리지 않는다고한다. 그런데 인간은 왜 매일같이 엄청난 활동을 하지 않으면 병에 걸리는가? 유인원과 달리 초기 인류는 나무에서 내려와 걷고 뛰었다. 탄자니아의 하드자족은 하루 평균 9킬로미터에서 12킬로미터를 이동하는데, 이는 평균적인 미국인이 일주일 동안 걷거나 뛰는 거리와 비슷하다고 한다. - P87

2007년에 하버드대 고고학과와 유타대 생물학과 합동 연구팀은 원시 인류가 사냥감이 지쳐서 쓰러질 때까지 뛰어서 쫓아가도록 진화했다는 것을 밝혀내 BBC 다큐멘터리와 비슷한 결론에 이른다. 우리는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초기 인류가 어떤 존재였을지, 우리가 어떤 이들로부터 진화해왔을지를 알 수 있다. 인류는 걸었다. 끝도 없이 걷거나 뛰었고, 그게 다른 포유류와 다른 인류의 강점이었다. 어떤 인류는 아주 멀리까지 이동했다. 아프리카에서 출발해 그린란드나 북극권까지 갔고, 몽골에서 출발한 어떤 그룹은 얼어붙은 베링해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가 마야와 잉카, 아즈텍 문명을 일구었다. - P89

김현경에 의하면 그림자는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무엇‘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성원권‘일 것이다. 우리가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타인이 우리를 사람으로 받아들여주어야한다. 조선시대 백정은 분명히 인간이었지만 양반과 상민들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구한말 진주에선 그들의 자식들이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오자 양반과 상민들이 집단으로 항의하며 퇴장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런 일들은 전 세계에서 벌어진다. 그들은 생물학적으로는 완벽하게 양반이나 상민과 같지만, 그들은 사회의 정당한 일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장소도 주어지지 않는다. 20세기 초반 미국 남부의 흑인들은 백인들의 공간에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자칫 나무에 목이 매달릴 수있었다.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타인의 환대가 필요하고, 적절한 장소도 주어져야 한다. 조선시대 백정과 20세기 초 나치 치하의 유대인과 1960년대 이전 미국 남부의 흑인들은 환대는커녕, 공적 장소에서 배제되거나 추방당했다. 오직 표지(‘다윗의 별‘이나 유니폼)로 개별성이 지워진 이들만 허용되었다. 그들에게는 ‘그림자‘가 없었던 것이다. 그림자가 없다면 아무리 고매한 사상과 윤리적 자아를 갖추어도 사회에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소설의 말미에 주인공은 저자인 샤미소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벗이여, 만약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어하는 이들이라면 부디 무엇보다도 그림자를 중시하고, 그다음에 돈을 중시하라고 가르쳐주게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더 나은 자신을 위해 살고싶다면 말이지. - P126

시인 아치볼드 매클리시는 아폴로 8호가 달 궤도에 진입한 다음날인 크리스마스에 발행된 뉴욕타임스에 ‘저 끝없는고요 속에 떠 있는 작고, 푸르고, 아름다운 지구를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바로 우리 모두를 지구의 승객riders으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썼다. 인류가 지구의 승객이라는 비유는 지금으로서는 진부하게 들릴지 몰라도 당시에는 읽자마자 무릎을 칠 만한 것이었다. 승객은 영원히 머물지 않는다. 왔다가 떠나는 존재일 뿐이다. 매클리시는 이어서 우주의 이 끝 모를 차가움 속에서 우리 자신들은 형제 brothers, 서로가 형제임을 진실로 아는 형제라고 부연했다. 지구가 고작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 구슬처럼 보인다는 것을 알았을 때, 시인은 자존심을 다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렇기에 지구라는 작은 행성, 푸르게 빛나는 우주의 오아시스와 우리 서로를, 모든 동식물을, 같은 행성에 탑승한 승객이자 동료로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암시한 것이다. - P136

 당황하는 그녀 대신 현지인 할머니가 버스요금을 내주었다. 나중에 갚겠다고 하자 할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자기에게 갚을 필요 없다. 나중에 누군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발견하면 그 사람에게 갚으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환대는 이렇게 순환하면서 세상을 좀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그럴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 준 만큼 받는 관계보다 누군가에게 준 것이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세상이 더 살만한 세상이 아닐까. 이런 환대의 순환을 가장 잘 경험할 수 있는 게 여행이다. - P147

그러니 현명한 여행자의 태도는 키클롭스 이후의 오디세우스처럼 스스로를 낮추고 노바디로 움직이는 것이다. 여행의 신은 대접받기 원하는 자, 고향에서와 같은 지위를 누리고자 하는 자, 남의 것을 함부로 하는 자를 징벌하고, 스스로낮추는 자, 환대에 감사하는 자를 돌본다. 2800여 년 전에호메로스는 여행자가 지녀야 할 바람직한 태도를 오디세우스의 변화를 통해 암시했다. 그것은 허영과 자만에 대한 경계, 타자에 대한 존중의 마음일 것이다. - P18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짜 문제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100년 전에는 자식이 사실상 자산이었고 부모는 죽이는 짓을 제외하고는 자식을 거의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이제는 자식들에게 많은 권한이 부여된다. 그럼에도 부모는 여전히 자녀가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언제 자야 하는지 등을 결정한다. 육체적인 통일성에 관련된 결정도 온전히 부모의 권한일까? 인공와우이식수술에 반대하는 일부 반대자들은 열여덟 살이 넘으면 누구나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결정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이 문제를 비현실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신경학적 쟁점들을 차치하더라도 그들의 주장에는 결함이 있다. 열여덟 살이 된 청각 장애인은 단순히 청각 장애인으로 살 것인지, 아니면 건청인으로 살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익숙하게 알고 있던 문화와 그렇지 않은 문화를 놓고 선택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전까지의 세상 경험이 청각 장애인으로서 규정되어 왔음에도 기존의 경험을 포기하는 경우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거부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 P193

건청인 세상에서 자라고 구화법 교육을 받은 청각 장애인 남성 조시스윌러는 뒤늦게 농인으로서 정체성을 찾게 되었고 그 과정을 글로 멋지게 표현했다. 그는 보청기와 그 밖의 다른 보조 장치들을 사용했다. 「기본적으로 보청기를 사용하면 말 속에 담긴 행간의 의미를 알아듣지 못하고듣는 그대로만 이해하게 된다. 마치 정교한 가짜 신분증을 가지고 대학가술집에 들어간 고등학교 2학년생처럼 나는 사람들을 속여서 내가 위장하고 싶은 사람처럼 믿도록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세상을 이렇게 살아가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옹호될 수 없는 상태, 즉 청각 장애인과 건청인의 세계양쪽 모두를 기만하는 거짓말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혔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건청인이다. 그럼 나 자신에게 나는 어느 쪽일까? 사람들이 나를 건청인이라고 생각하는 한, 내가 알아듣지 못하고 넘어가는 말이 얼마나 많은지 또는 내가 얼마나 외로운지, 그런 문제는 나에게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마음가짐은 나를 점점 미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똑같은 짓을 계속 반복했다. 내가 아는 거라고는 그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스윌러가 갈로뎃 대학을 방문했다. 그의 방문에 맞추어 학교 신문사에서는 복용 즉시 청능이 생기는 알약이 있다면 그 약을 먹을 것인지 학생들에게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대다수 학생들이 먹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자신의 정체성에 자긍심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스윌러는 <하지만 우리는 누구인가? 나는 알고 싶었다.
우리 눈으로 바깥세상을 보는 주체는 과연 누구인가?>라고 썼다. 몇 년 뒤 그는 자신의 웹사이트에 다음과 같은 설명과 함께 짧은 자전적인 글을 올렸다. 2005년에 조시라는 사람이 인공 와우 이식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대성공이었다. 그는 자신이 ASL을 사용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대단한 긍지를 가지고 있다. 그는 청각 장애인 커뮤니티의 분열을 조장하는 방어적인 태도와 불신을 거부한다. 그리고 우리의 동질성으로 분열을 극복해야 한다고, 그렇게 될 거라고 믿는다.」 - P200

1960년대 초 미국에는 유행성 풍진이 돌았고 그 결과 청각 장애 아동이 급증했다. 이제 중년이 된 이 세대는 <풍진 급등 세대>라고 불린다. 140오늘날에는 백신이 대부분의 잠재적인 어머니들을 풍진으로부터 보호하고, 대부분의 아이들을 풍진과 뇌막염으로부터 보호한다. 청각 장애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인공와우이식수술은 청각 장애 아동 중 대다수가 건청인 세상에서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레 홀리벅은 렉싱턴 졸업식에서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한 이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지금이 청각 장애인으로 살기에 최고의 시기일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청각 장애인이 감소하고 있는 때이기도 하다. 청각장애인으로 살기가 점점 더 좋아지는데 정작 청각 장애인의 숫자는 점점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청각 장애 아동의 부모들은 성인 청각 장애인의 이야기를 들어 보아도 이제는 자녀의 미래를 가늠할 수 없다. 그들이 지금은 사라진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오늘날 자녀에게 인공와우이식수술을 시키지 않는 부모는 점점 쇠퇴하는 세계를 선택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농문화 운동은 스토키가 1960년에 언어로서 ASL의 복잡성을 인지하고 나서야 오늘날의 형태로 탄생했다. 농문화 운동은 1984년에 인공와우이식수술이 FDA의 승인을 받았을 때 이미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패트릭 부드로는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 자신의 문제에 관한 해답을 찾고있다. 이를테면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에게 언어란 어떤 의미인가, 세상은 청각 장애인과 어떻게 교류하는가 같은 문제다. 우리는 이런 문제들의 해답을 찾고 있을 뿐인데 이제는 압박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크리스티나팔머는 우생학과 다문화주의가 접전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 P204

인공 와우 이식수술을 둘러싼 논쟁은 동화(同化) 대 소외에 대한 아울러 인간을 표준화하는 행위가 어디까지 바람직한 진화의 징후인지에 대한, 어디까지가 회반죽으로 볼품없이 위장한 우생학인지에 대한 보다 광범위한 논의를 위해 사실상 연결 장치 역할을 한다. 난청 연구 재단의 대표잭 횔러Jack Wheeler는 <우리는 미국 신생아들의 청각 장애를 정복할 수 있다. 만약 모든 신생아에게 청능 검사를 실시하고 부모들을 정치적인 힘으로 조직해서, 부모가 얼마나 많은 돈을 가졌는지와 상관없이 모든 아기들에게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할 수 있다면 매년 청각 장애를 갖고 태어나는 1만 2천 명의 신생아들은 자신을 건청인으로 인식하는 1만 2천 명의 아기들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점이다. 시합은 계속된다. 한 팀은 청각 장애인을 건청인으로 만들려는의사들로 구성된다. 그들은 인도적인 차원에서 기적을 행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한 팀은 농문화의 주창자들이다. 그들은 비전을 쫓는 이상주의자들이다. 하지만 각 팀은 상대 팀을 무의미한 집단으로 만들 것이다. 농문화는 점점 강해지면서 동시에 죽어 가고 있다. 영화 「청각 장애인의 눈으로Through Deaf Eyes를 공동 감독한 로런스 호트와 다이앤 게리는 <청각장애는 거의 언제나 한 세대만큼의 역사를 갖는다>고 단언했다. 한편 일부학자들은 농문화를 전향자들의 문화>라고 지칭하고 있다.  - P208

아버지 시대의 문화는 빈곤했다. 나의 아버지는 브롱크스에 있는 공동주택에서 자랐지만 전문직 계층으로 성장했고, 남부럽지 않게 나와 내 형을 길렀다. 그럼에도 자신이 떠나온 세계를 때때로 그리워했으며 우리에게 그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 세계는 우리의 현실이 아니다. 실제로 누구의 현실도 될 수 없다. 아버지가 태어났고 근대에 들어 동유럽에서 이주해 온 유대인들이 막노동을 하고 이디시어를 사용하던 그 세상은 이제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 세계와 관련하여 우리가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자라온 윤택한 미국적인 방식을 선호한다. 재키 로스는 내게 오늘날의 하시디즘 유대인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들은 그들끼리 모여 있어야 안심해요. 예컨대 금요일 밤에 안식일 모임을 갖고 유대교회당에 모이죠. 그들만의 학교도 있어요. 그들만의 전통도 있어요. 뭐든지 그들만의 고유한 것을 가졌어요. 그런데도 굳이 귀찮게 다른 세상을 신경 쓸 이유가 있겠어요? 농인 커뮤니티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어요. 농인 커뮤니티는 점점 더 축소되고 있으며 이방인이나 다름없는 청각 장애인들은 갈수록 주변인이 되겠죠.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이런 현상에 관심을 기울여야해요.」 - P210

건청인들 사이에서 나타난 ASL의 유행을 지켜보면서 인권 운동가 캐럴 패든이 물었다. 「상호 대립적인 두 가지 욕구가 어떻게 동시대에 존재할 수 있을까요? 즉 청각 장애를 근절하려는 욕구와, 독특한 인간 언어의창조와 유지라는 최고로 빛나는 결과물을 찬양하고자 하는 욕구가 어떻게 동시대에 존재할 수 있을까요?‘ 이 두 가지 욕구는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당신은 농문화를 존중할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당신 자식이 농문화의 일원이 되는 것은 반대할 수 있다. 다양성을 잃는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단지 다양성을 위한 다양성은 위선일 뿐이다. 누구나 청능을 가질 수 있는 시대에 순수한 상태로 유지되는 농문화는 모든 사람이 마치 18세기라도 되는 양 살아가는 민속촌과 별반 다를 게 없을 것이다. 청능을 갖지 못한 채 태어난 사람들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공통점을 갖게 될까? 그들의 언어가 여전히 사용될까? 물론이다. 예컨대 전기로 불을 밝히는 시대에도 양초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듯이, 극세사가 개발된 마당에도 여전히 면직물을 즐겨 입듯이, 텔레비전이 있음에도 독서를하듯이 청각 장애인의 언어도 계속해서 사용될 것이다. 우리는 농문화가우리에게 준 것을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며, 농문화의 어느 부분이 귀중하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 기술하는 작업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의학적 진보를 위한 수직적 요구는 수평적인 사회를 필연적으로 압박할 것이다. - P212

부모는 왜소증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간주하여 자녀와의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 여기저기 소인 모임에 참석하고, 자녀의 삶에 다른 소인들을 끌어들이고, 전등 스위치를 키가 작은 사람이 쉽게 닿을 수 있는 위치에달고, 그들이 요리하기 편하도록 주방을 개조할 수 있다. 그럼에도 단신을주된 정체성으로 인식하며 성장하는 아이들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어떤환경에 갇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설령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런 아이들은 자신이 가진 정체성의 내재적인 한계에 직면할 것이다. 예컨대 우리는 자신과 종교나 민족성, 성적 취향, 정치적인 신념, 취미, 사회 경제적 지위 등을 공유하는 사람을 위주로 교제 대상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소인으로서 완전한 삶을 실현할 만큼 소인들의 숫자는 충분하지 않다. - P23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풀리지 않는 삶의 난제들과 맞서기도 해야겠지만, 가끔은 달아나는 것도 필요하다. 중국의 고대 병법서 『삼십육계』의마지막 부분은 「패전계」로 적의 힘이 강하고 나의 힘은 약할 때의 방책이 담겨 있다. 서른여섯 개 계책 중에 서른여섯번째, 즉 마지막 계책은 ‘주위상走爲上‘으로, 불리할 때는 달아나 후일을 도모하라는 것이다. 흔히 ‘삼십육계 줄행랑‘이라고 하는 말이 여기서 온 것이다. 근대 이후로 인간은 자연과 세계를 개조하고 통제하며 발전해왔고, 그런 정신을 이어받은 자기계발서들은 우리에게 주변의 문제들은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고대의 지혜에 끌린다. 인생의 난제들이 포위하고 위협할 때면 언제나 달아났다. 이제 우리는 칼과 창을 든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다른 적, 나의 의지와 기력을 소모시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적과 대결한다. 때로는 내가 강하고, 때로는 적이 강하다. 적의 세력이 나를 압도할 때는 이길 방법이 없다. 그럴 때는 삼십육계의 마지막 계책을 써야 한다.
기억이 소거된 작은 호텔방의 순백색 시트 위에 누워 인생이 다시 시작되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힐 때, 보이지 않는 적과 맞설 에너지가 조금씩 다시 차오르는 기분이 들 때, 그게 단지 기분만은 아니라는 것을 아마 경험해본 사람은알 것이다. - P67

리베카 솔닛은 걷기와 방랑벽에 대한 에세이"에서 고대그리스의 소피스트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생각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은 방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적고 있다. 철학자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들, 이를테면 사상은 옥수수 같은 곡물과 달리 안정적인 수확을 기대하기도 어렵고 모두가 좋아하는 것도 아니어서 한곳에 머물기 어렵다는 것. 인맥이나 터전에 얽매인 직업, 대표적으로 정치인이나 농민과는다르다고 말한다. - P7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