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벨이나 가족들이나, 지난 2년 반 동안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겠어." "그럼요. 주식시장이 폭락하기 시작할 때 처음엔 믿기지가 않았어요. 우리가 파산한다는 건 정말 상상도 못한 일이었죠. 다른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어떻게 우리가•••••. 정말 생각도 못했어요.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마지막 순간에 결국은 회복하리라고만 믿었죠. 그런데 정말 모든 게 무너졌을 때, 더 이상 살아갈 의미도 없다고 느껴졌어요. 정말이지, 미래고 뭐고 암담하기만 했어요. 한 2주 동안은 처참한 기분에 빠져 있었죠. 모든 걸 잃어버리고, 더 이상 사는 낙도 없을 것만 같고, 좋아하던 모든 것들과 헤어져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 2주쯤지나고 나니 결국 이렇게 생각하게 되더군요. ‘그래, 다 잊어버리자. 과거에 대한 미련 같은 것, 다시는 떠올리지 말자. 그리고 정말로 그렇게 했어요. 지금도 미련은 없어요. 가졌을 때 충분히 즐겼고, 이젠 없으니 그뿐이고, 그렇게 생각해요." - P233

"스스로 소유욕이 강한 여자라고 생각해 본 적 있나? 그레이가 깊은 시인의 감성을 갖고 있다고도 했고, 잠자리에서 아주 열정적인 연인이라고도 했어. 그렇다면 두 가지 모두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얘기잖아. 하지만 네가 말 안 한 게 있어. 그 두가지를 합한 것보다 네게 훨씬 더 중요한 무엇. 그건 바로, 그리 작진 않지만 아름다운 너의 그 두 손 오목한 곳에 그를 붙잡아 두고 있다는 느낌이지. 래리였다면 언제든 거기서 빠져나 - P275

 키츠의 시 기억하나? ‘사랑에 빠진 용감한 연인이여, 당신은 결코 입 맞출 수 없으리라. 목표에 가까이 다가가기만할뿐."
"가끔 보면 선생님은 스스로 아주 많은 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사실은 그렇지도 못하면서."
그녀는 다소 신랄한 말투로 대화를 이었다.
"여자가 남자를 잡아 두는 방법은 한 가지에요. 그게 뭔지는 선생님도 아시죠? 한 가지 더 알려 드릴까요? 중요한 건 남녀가 처음 잠자리를 가질 때가 아니에요. 두 번째가 중요한 거라구요. 두 번째 잠자리에서 남자를 잡아 둘 수 있으면 그를 영원히 잡아 둘 수 있는 거죠." - P276

"열정은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파스칼은, 가슴은 이성이 이해하지 못하는 나름대로의 이유를 갖고 있다고 말했지. 내 생각이 맞는다면 그건 열정이 가슴을 사로잡으면 가슴은 사랑을 위해 세상을 잃어도 좋다는 것을 입증할 만한 그럴듯한, 심지어는 결정적인 이유들을 만들어 낸다는 뜻이야. 그래서 명예를 희생시켜도 좋고 치욕도 그리 큰 대가가 되지 않는다는 확신을 주지. 열정은 파괴적인 거야.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파넬과 키티 오셰이도 결국 열정 때문에 파멸로 치닫고 말았잖아. 그리고 열정은 무언가를 파괴하지 않으면 소멸해 버려. 그러고 나면 수년 동안 인생을 허비했다는 걸 깨닫고 비참한 기분이 들겠지. 사람들에게 망신을 당하면서 무서운 질투의 고통을 견뎌 내고 그 모든 쓰디쓴치욕을 삼켜야 하는 순간이 올 테니까. 자신이 가진 애정을 전부 가난한 매춘부한테 소진했음을, 어리석고 하찮은 존재에게 자신의 꿈을 모두 걸었음을, 껌 한 쪽만도 못한 상대에게 영혼을 전부 쏟아부었음을 깨닫는 비참한 순간이 찾아오는 거지." - P280

그러던 어느 날, 이런 짧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나는 뜻밖의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샤르트르에 갔다가 파리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레이가 운전을 하고 래리는 조수석에, 이사벨과 나는 뒷좌석에 앉았다. 긴 하루를 보낸 터라 모두들 지친 상태였다. 래리는 조수석 등받이 위쪽으로 팔을 뻗어 걸쳐놓았는데, 그 자세 때문에 셔츠 소매가 올라가면서 가늘지만 강인한 팔목과 팔뚝이 드러났다. 팔뚝을 가볍게 뒤덮은 솜털 위로 햇살이 쏟아져 황금빛으로 빛났다. 순간 나는 이사벨의 몸이 경직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녀를 흘끗보았다. 그녀는 마치 최면에 걸린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호흡이 빨라지면서 두 눈은 금빛 솜털로 뒤덮인 강인한 손목에 고정되었다. 그의 손가락은 길고 섬세하면서도 단단해 보였다. 나는 사람의 얼굴에서 그토록 강렬한 욕정을 본 적이 없었다. 마치 색욕의 가면 같았다. 그 아름다운 얼굴에 그토록 방자하고 음탕한 표정이 떠오를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것은 인간이라기보다 짐승에 가까웠다. 그녀의 얼굴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았다. 음탕한 표정 때문에 섬뜩하고 무섭게 변해 있었던 것이다. 마치 교미 중인 암캐의 얼굴을 보는 듯했다.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그녀는 내가 옆에 있다는 사실도 잊은듯했다. 그녀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래리의 손뿐이었다. 무심하게 등받이를 감싼 그 손이 그녀를 광란의 욕정으로 채워주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후, 마치 경련이 인 듯 그녀의 얼굴이 씰룩거렸다.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두 눈을 감고 구석에 몸을 깊숙이 기대며 말했다.
"담배 한 대만 주세요."
귀에 거슬리는 거친 목소리가 도무지 그녀의 목소리로 들리지 않았다.
나는 케이스에서 담배 한 대를 꺼내어 그녀에게 불을 붙여주었다. 그녀는 굶주린 듯이 깊이 빨아들였다. 그 이후로 도할 때까지 창밖을 보며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 P313

"남편과 아기가 죽었을 때 소피는 세상이 끝난 것처럼 느껴졌을 거야. 그래서 자신이 어떻게 될지 전혀 신경 쓰지 않은채 술과 난잡한 성교라는 끔찍한 타락으로 스스로를 내몬 거지. 자신을 그렇게 잔인하게 대한 삶에 복수하기 위해서 말이야 천국 같은 생활을 하다가 그것을 잃게 되니까 보통 사람들이 사는 보통 세상을 견디지 못하고 좌절해서 지옥으로 곤두박질친 거야. 더 이상 신들이 마시는 넥타를 마실 수 없다면 차라리 밀주를 마셔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는 얘기지."
"그런 건 선생님 소설에나 나올 만한 얘기잖아요. 말도 안된다는 거 선생님도 아시죠? 소피가 술독에 빠진 건 술을 좋아해서 그런 거예요. 남편과 아이를 잃은 여자가 어디 한두 명이에요? 그 애가 타락한 건 그것 때문이 아니에요. 선에서 갑자기 악이 ‘툭‘ 튀어나올 수는 없죠. 악은 예전부터 항상 그 자리에 있었어요. 그걸 잘 막아 두고 있다가 차 사고로 그 방어막이 깨지면서 본래의 모습이 나온 것뿐이에요. 쓸데없이 소피를 동정하지 마세요 소피는 원래 그런 애였어요" - P328

"정말 너무하시네요. 제가 래리를 남자나 밝히는 막돼먹은여자한테 넘겨주려고 모든 걸 포기한 줄 아세요?"
"왜 네가 모든 걸 포기했다고 생각하지?"
 "단지 래리의 앞길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그를 놓아줬으니까요."
"거짓말은 그만두라구, 이사벨. 네가 래리를 포기한 건 다이아몬드와 모피 코트 때문이었잖아."
말이 끝나기 무섭게 빵과 버터가 담긴 접시가 내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천만다행으로 나는 접시를 잡았다. 바닥에 빵과 버터가 흩어졌다. 나는 일어나서 접시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이 크라운더비 접시가 깨졌으면 네 엘리엇 외삼촌께서 아주 고마워하셨을걸. 도싯 공작 3세를 위해 만들어진 거라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귀한 거니까." - P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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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이 다루는 분야는 가격, 이윤, 지대, 비용 등에 한정되지 않는다. 법, 도덕, 유행, 철학 등도 모두 경제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들분야는 경제학을 뒷받침할 수도 있고, 또는 그것의 정체성에 손상을 줄수도 있다. 소스타인 베블런과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경제학의 정의또는 범위를 확장했고, 동료들이 더 넓은 사회 현상에 눈을 뜨도록 촉구했다. 경제학은 앨프리드 마셜이 생각했던 것만큼 쉬운 학문이 아니다. - P397

케인스주의자 Keynesian 란 어떤 사람을 의미할까? 다음 두 가지 기본명제를 따르는 사람을 말한다.

1.민간 경제 private economy 는 완전 고용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
2. 정부 지출은 경제를 자극해 완전 고용과 불완전 고용의 틈을 메울수 있다.

어떤 정치가가 정부 지출을 통해 경기를 활성화할 수 있는 정부 프로그램을 지지하거나 소비 진작을 위해 세금 인하를 촉구할 경우 그는 이미 케인스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 P402

1차 세계대전 직후, 케인스는 영국 재무부 대표로 베르사유에서 개최된 파리강화회의 Paris Peace Conference‘에 참석한다. 이번에도 그는 공무원 생활에 싫증을 느끼는데, 이전과는 달리 지루한 업무 때문은 아니었다. 파리강화회의에서 그는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이영국 수상 로이드 조지 Lloyd George와 프랑스 수상 조르주 클레망소Georges Clemenceau의 협잡에 넘어가 패전국 독일에 터무니없는 전쟁 배상금을 물리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이때 케인스는 이미 또 다른 전쟁을 예견하고 있었다. 이런 외교적 공포를 맨 정신으로 지켜보기 힘들었던 케인스는 재무부에 사표를 낸 뒤 서둘러 당시 기준으로 볼 때, 뿐만 아니라 블룸즈버리 그룹 기준으로도 가장 신랄하고 논쟁적인 《평화의 경제적 귀결 Economic Consequences of the Peace》이라는 글을 발표한다.그는 세계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각국 지도자들의 무능함을 질타하면서 독일이 전쟁 배상금을 지불할 수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조심스럽게 피력했다.  - P410

물론 자본가들은 특정 상품을 더 많이 생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총체적인 공급 과잉은 아니다. 그런 과잉 상품은 제때에 소비자를 만나지 못할 경우 점차 가격이 떨어질 것이고, 따라서 얼마 지나지 않아 공급 과잉은 사라질 것이다. 이런 세이의 법칙을 믿는 사람에게 장기 실업이나 불황 같은 것은 턱도 없는 소리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장기 실업과 불황의 가능성을 믿는 사람들이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다. 물론 케인스에게 정신병자는 정통파바보 멍청이들이었겠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동료들을 매도할 수는 없었다. 대신 그는 그들에게 세이의 법칙을 한 번 의심해볼 것을 충고하면서그냥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혀를 찼다.
그렇다면 정통파 바보 멍청이들이 세이의 법칙에서 간과한 것은 무엇일까? 그들은 세이의 법칙에서 가정하는 생산자에서 소비자로,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경제의 주기적인 흐름에서 뭔가 중요한 누수가 있다는 것을 간과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그들은 가계저축을 간과했다. 그렇다면 왜 가계 저축이 중요한가? 세이의 법칙대로라면, 상품 생산은 생산자와 공급업자에게 소득을 발생시킨다. 그리고생산자와 공급업자, 즉 소비자들은 이렇게 벌어들인 소득을 그 상품을 구입하는 데 모두 지출한다. 그런데 그들이 벌어들인 소득의 일부를 지출하지 않고 저축한다면? 생산된 상품은 전부 판매되지 않고 창고에 쌓여갈 것이다.  - P416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고전파 경제학에 대해 양면 공격을 시작했다. 첫째, 그는 저축과 투자가 자동적으로 연결된다고 보지 않았다. 가계와기업은 완전히 다른 이유에서 저축하고 투자한다. 가계는 습관적으로또는 자동차 구입이나 노후 대비 같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 저축할 것이다. 반면 기업은 정치 상황, 확신, 기술, 환율, 또는 어느 팀이 프로야구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할 지에 따라 투자 계획을 바꿀 것이다.
이렇게 저축과 투자 목적이 다른 가계와 기업이 이자율 하나로 서로 조화를 이루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만일 가계 저축이 기업의 투자를 초과하면, 상품의 공급 과잉 현상이 나타날 것이고, 기업은 이에 맞서 우선적으로 종업원들을 해고할 것이다. 그 결과 소비는 더욱 위축된다. 1997년과 1998년에 일본의 가계는 중앙은행이 단기 대출 금리를 0.5퍼센트 인하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출을 줄였다. 소득이 줄어들면, 저축은 투자 수준에 맞춰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완전 고용 상태에서는 반드시 그렇게 되지 않는다.
둘째, 케인스는 유동적이고 가변적인 임금과 물가에 대해서도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물가가 상품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항상 적정 수준에서 오르락내리락 할 것이라고 말하는 정치가들이 있다면, 그들은 수리수리하면 올라가고, 마수리하면 떨어질 것이다"라고 주문을 외는 점술가나 마찬가지다. 독점 상황에서 상품의 수요와 공급이 저절로 조절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지의 소치다. 고전파 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경기 침체가 닥치면 실질 임금은 떨어져야 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명목 임금이 떨어지는 것을 납득하지 못할 것이라고 케인스는 생각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경기가 후퇴하면 기업은 투자를 줄인다고 주장했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저축은 결국 투자와 일치하게 된다. 그런데 왜 그렇게 될까? 그것은 고전파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투자가 늘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으면서 저축할여력도 동시에 잃기 때문이다. 게다가 임금과 물가가 서로 조정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리기 때문에 경기 침체나 공황은 상당 기간 오래지속될 수 있다.
그리고 1930년대 초에 저축과 투자가 일치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즉, 저축도 없었고, 투자도 없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고전파 경제학의 화려한 쇼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 P419

+이것이 케인스의 유효수요이론이다. 유효수요란 실제로 물건을 살 수 있는 돈을 갖고 물건을 구매하려는 욕구, 즉 확실한 구매력이 뒷받침되는 수요를 말한다. 반대로, 구매력에관계없이 물건을 구입하고자 하는 것을 절대적 수요라고 한다. 또, 돈이 있어도 물자 통제때문에 물건을 손에 넣을 수 없다거나 가격이 비싸서 손을 댈 수 없지만 가격이 내려가면 구매하겠다거나, 소득이 증가하면 구매하겠다는 등 어떤 사정으로 표면에 나타나지 않은수요를 잠재 수요라 한다. 케인스의 유효수요이론은 그의 고용 이론의 기본으로 다음과같다. 첫째, 총고용량은 총유효수요에 의해 결정된다. 실업은 총유효수요의 부족 때문이다. 둘째, 고용이 증가하면 소득이 증가하고, 소득이 증가하면 소비도 증가하지만 소비가 증가하는 액은 소득이 증가하는 액보다 적다. 그러므로 고용의 증가를 유지하는 데 충분한 수요를 갖기 위해서는 소득과 그 소득에서 지출되는 소비와의 차액을 메우기 위한 신투자(투자의 증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P421

그럼, 모델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완전 고용에 도달한 건강한 경제를 달성하려면, 가계는 충분히 소비해야 하고, 기업은 상품의 생산과 판매가 균형을 이루도록 충분히 투자를 해야 한다. 만약 사람들이 소득의 전부를 소비한다면(이 경우 한계소비성향MPC=1이 된다), 세이의 법칙에 의해 경제는 완전 고용에 도달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소득의 일부를 저축하기 때문에 기업 투자가 이 부족한 부분을 메워야 한다. 이론적으로 볼 때, 사람들이 저축한 만큼 소비는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생산이 판매를 초과할 것이고, 재고가 늘어날 것이며, 결국 고용주들은 종업원들을 해고할 것이다. 저축이 경기 침체의 주범으로 몰리는 순간이다. - P422

산업혁명을 전후로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논자들이 노동자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귀족들과 자본가들에게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을 들이댔다면, 케인스는 그와는 정반대였다. 그는 마음씨 착하고 순박한 이웃 할머니를 포함한 선의의 저축가들이 악덕 자본가들보다 경제에 더 큰 해를 입힌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 해악은 단순한 해악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또 다른 해악을 낳는다. ‘부패 rot‘가 온 동네에 악취를 풍기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케인스의 승수이론multiplier이다. 승수 이론은 원래 그의 제자이자 뒤에 킹스 칼리지 경제학과에서 교직원으로같이 일하는 리처드 칸Richard Kahn 의 것이었다. 승수 이론의 핵심은 어떤 한 사람의 지출 변화가 시간이 지나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에는 국가 지출 전체에 영향을 주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는 데 있다.
여기에 메이너드 주식회사가 있다고 하자. 이 회사는 남성 화장실을 신축하기 위해 100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그 결과 국가 전체의 총지출은 이전에 비해 100달러 증가한다. 메이너드 주식회사는 이 돈의 일부를 배관공, 건축가, 실내장식가에게 임금으로 지급한다. 그럼, 배관공, 건축가, 실내장식가는 이 돈을 어떻게 할까? 그들은 일부는 지출하고 나머지는 저축할 것이다. 그들이 지출하는 돈은 식료품점 주인, 텔레비전 세일즈맨, 맥주집 주인에게 돌아갈 것이다. 한편, 이들도 각각 자신들이 벌어들인 수입의 일부는 지출하고, 나머지는 저축할 것이다.
이런 연쇄 반응이 계속해서 일어난다. 비록 처음에 메이너드 주식회사가 투자한 비용은 100달러이지만, 총수입은 300달러로 늘어날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승수는 3이 된다. - P423

케인스는 경제학자들과 정치가들이 자신의 이런 적극적인 재정 정책fiscal policy을 공격해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미국과 영국의 재부무 관리들은 균형 예산balanced budget 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따라서케인스의 재정 정책을 따른 다는 것은 예산 적자, 즉 정부의 재정 적자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에 케인스는 "그러면 어떤가?"라고 응수했다. 경기 침체기에 균형 예산 정책을 펴는 것은 그야말로 어리석은 짓이다. 왜냐하면 예산은 세입 tax revenues 과 세출 outlays 두 항목으로 되어 있기때문이다. 경기 침체로 인해 소득이 떨어지면, 정부는 세금을 삭감할 수있다. 한편, 경기 침체 상황에서도 정부가 균형 예산 정책을 기본 기조로 계속 유지하고자 한다면, 정부 지출을 줄이거나 세금을 인상하면 된다. 그러나 둘 다 승수 효과로 인해 경기 침체를 가속화할 것이다! 케인스는 경기 순환 전체로 보면 정부 예산은 균형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럼 이와 반대되는 상황, 즉 경기 호황을 상정해보자. 경기가호황인 경우 정부는 국민들로부터 더 많은 세금을 거둬들일 수 있고, 따라서 재정 흑자를 기록할 것이다. 그러나 경기 침체기에 정부는 재정적자를 감수해야만 한다. 그런데 미국과 영국의 재무부 바보 멍청이들은 당시 이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 P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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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잠시 망설였지만 곧 래리와 주고받았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 내용에 관해서는 이미 앞에서 충실하게 독자들에게 전달한 바 있다. 독자들은 이사벨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그런 이야기들을 할 수 있을까 하고 놀라워할지도 모른다. 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열 번도 안 되는것 같고, 같이 잡화점에 갔던 때를 제외하고 둘이서만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사벨이 나한테 그런 얘기들을 하는 것이 놀랍지 않았다. 먼저, 사람들은 다른 이들한테 말하기 힘든 얘기도 작가 앞에서는 쉽게 털어놓는 경향이 있다. 아마 어떤 작가라도 그렇게 말할 것이다. 어쩌면 작품을 한두 권쯤 읽고 나면 그 작가에 대해 특별한 친밀감 같은 것을 느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자신이 소설 속 등장인물이된 것처럼 느끼고 작가에게 자기 속마음을 터놓는 것일지도모르겠다.  - P145

"왜 그런 식으로 말씀하세요? 선생님은 항상 마음속의 말을 솔직하게 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요. 전 제가 주인공 역할이아니라는 걸 알아요. 주인공은 래리니까요. 그는 이상주의자인동시에 아름다운 꿈을 꾸는 몽상가죠. 설령 꿈이 실현되지 못한다 해도 그런 훌륭한 꿈을 꾸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멋진 일일 거예요. 반면에 저는 냉정하고 현실적이고 계산적인 역할을하고 있죠. 상식이라는 게 그렇게 큰 공감을 얻을 만한 멋진건 아니잖아요? 하지만 선생님이 잊고 계신 점이 있어요. 결국손해 보는 사람은 저라는 사실 말이에요. 래리는 아름다운 꿈의 구름을 좇아 마음껏 하늘을 돌아다니겠지만, 전 그 꽁무니를 쫓아다니면서 뒷수습을 하고 빠듯한 살림을 꾸리느라 바동거려야 할 거예요. 저도 사람답게, 즐겁게 살고 싶어요." - P152

"사랑에 빠져 있을 때 이런저런 상황이 뜻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사람들은 지독하게 괴로워하면서 도저히 극복하지 못할것처럼 생각해. 하지만 바다가 얼마나 유용한지 알면 놀라게될 걸." 
"그게 무슨 뜻이에요?"
"사랑은 항해에 서투르기 때문에 바다에 나서면 약해지지.
이사벨과 래리 사이에 대서양이 놓이게 되면, 배를 타기 전에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만 같던 아픔도 실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 깨닫게 될 거야."
"경험을 통해 아시는 거예요?"
"파란만장한 지난날의 경험에 비춰 말하는 거야. 한창 짝사랑으로 가슴앓이를 할 때 난 즉시 대양으로 나가는 정기선을탔거든."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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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타인 베블런의 이런 날카로운 관찰력이 가장 먼저 도입된 것은경제학이 아니라 사회학이었다. 그리고 1950년에 우크라이나 태생의 미국인 경제학자 하비 라이벤스타인 Harvey Leibenstein이 <소비자 수요이론에서 유행, 속물, 그리고 베블런 효과 Bandwagon, Snob, and Veblen Effects in the Theory of Consumer Demand>‘라는 논문에서 처음으로 베블런의 이론을 경제학에 접목했다. 라이벤스타인은 이 논문에서 어떤 한 상품의 가격이 떨어지면 그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다는 통상적인 마셜의 수요 법칙은 그대로 따랐다. 그러나 일부 상품, 즉 ‘베블런재Veblen goods‘ (앞서 언급한 벤츠 같은 과시적 소비가 적용되는 상품)는 소비자의 수요가 상품의 효용뿐만 아니라 그 소비자가 다른 소비자가 기꺼이 지불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가격, 즉 예상되는 현시적顯示的 가격 expected conspi-cuous price에 의해 결정된다.  - P355

베블린과 그의 제자들에 따르면, 경영자는 어떤 상품의 효용을 높이기보다는 예상되는 현시적 가격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제도주의자들은 이것은 싸구려 상품을 마치 고가의 명품인 것처럼 과대 포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도에 어긋나는 행위일 뿐만아니라 시간과 재능의 낭비라고 비판했다.
나아가 이것은 자연적 욕구natural drive를 악용하는 행태이기도 하다. 카를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베블런은 인간이 창조적 욕구. 다시 말해 인간이 솜씨나 기량을 뽐내고 싶어 하는 본능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시적 여가와 현시적 소비가 사회에 파고들면서 이런 창조적 욕구가 사라지고 있다 - P357

소스타인 베블런은 마르크스가 했던 계급투쟁 같은 분석은 하지 않았다. 베블런에게 있어 그의 적은 자본가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그에게 노동자들이 영웅일리도 없다. 그는 전혀 다른 인물들을 기용했다. 그에게 나쁜 사람은 경영자들이었다. 그들이 기업체를 소유하고 있던 그렇지 않던 상관없다. 그리고 좋은 사람은 엔지니어들이었다. 그는 경영자들과 엔지니어들을 앞세워 선악대결을 그린다. 현대세계에서 창조, 향상, 생산의 욕구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엔지니어들뿐이다. 반면 그들의 위에서 항상 지시하고, 감독하고, 군림하는 경영자들은 창조성을 억압한다. 경영자들은 현시적 소비에만 관심이 있다.
그들은 한 가지 이유, 즉 돈을 벌 목적에서 사업을 한다. 만일 그들은물건을 생산하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다면, 더 행복해 할 것이다. - P357

당신은 생각할 것도 없이 옥수수식빵을 들고 계산대로향한다. 이때 갤브레이스가 그가 평소 즐겨 먹는 유기농으로 재배된 건강에 좋은 무당, 무미의 오곡 식빵을 들고 계산대 앞 당신 뒤에 줄을 선다. 당신은 뒤에 서 있는 갤브레이스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한다.
"오곡 식빵을 고르셨네요? 저는 아침에 옥수수 식빵을 주로 먹습니다. 정말 좋아하거든요."
이에 갤브레이스가 발끈한다. 그리고 뜬금없이 ‘필요needs‘와 ‘욕구wants‘는 구분해야 한다며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다. 우선, 당신은 옥수수식빵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욕구할 뿐이다. 모든 필요는 우리 내부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욕구는 그렇지 않다. 욕구는 외부에서올 수도 있다. 옥수수식빵을 소비하는 것, 즉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의 내부에서 비롯하는 자연적인 욕구natural derive 가 아니다. 당신은 단지 식빵을 원할 뿐이고, 사실 욕구는 필요보다 덜 중요하다. 둘째, 갤브레이스는 당신이 옥수수 식빵에 대한 당신의 욕구를 스스로 결정했다는것을 부정한다. 그것은 착각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옥수수 식빵을 욕구하도록 또는 선택하도록 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뉴욕의 광고회사들이 몰려 있는 매디슨 애비뉴의 광고업자들이다. 그들이 광고를 통해 당신이 옥수수 식빵을 구매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광고와 판매 정책은 "스스로 뭔가를 결정하고자 하는 욕구라는 관념과 양립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 둘의 핵심 기능은 욕구를 창조하는 것, 즉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욕구를 새롭게 창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 P366

갤브레이스는 자신이 마셜의 ‘한계효용과 수요 법칙 marginal utility of demand‘을 멋지게 타파했다고 생각했다. 시장은 어떤 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진정한 수요를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진정한 수요는 심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 시장은 광고업자들이 소비자들에게 인위적으로 심어주는 욕구만 읽을 수 있을 뿐 그들의 주관적인 심리는 읽을 수 없다. 갤브레이스는 이것을 의존 효과dependence effect‘라 불렀다.
물론 갤브레이스는 이렇게 단언만 하고 끝내지는 않았다. 그는 이것에서 다음과 같은 그럴듯한 결론을 도출해냈다. 기업들은 욕구에 투자하고 그것을 주입한다. 그러나 욕구는 그렇게 절박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정부는 사적 소비를 제한하고 자원을 공공시설을 늘리고 개선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갤브레이스는 도로 하나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공원과 슬럼가를 유유자적 활주하는 고가의 리무진들을 공공연히 비난하면서 미국의 공공 부문은 쇠락해 가고 있는 데 반해 역겨운 냄새가 물씬 풍기는 사적 부문은 나날이 번성해 나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인들은 사실 이런 공공 부문과 사적 부문의 불균형을 원하지 않는다.
기업들이 그들을 현혹하고 있는 것이다. - P367

우선, 소비재에 대한 판매를 금지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이것은 너무 강압적인 조치다. 따라서 갤브레이스는 기업들로 하여금 소비재에 대한 광고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런 충고를 받아들인 정치 지도자들은 소비자들에게 돈을 좀 더 현명하고 유용하게사용할 것을 촉구할 수 있다. 국민들에게 가지고 있는 부를 개인적인 목적이 아닌 공익적인 목적을 위해 써달라고 부탁하거나 설득할 수 있는 뜻이다. 하지만 이런 설득은 모든 중요한 욕구, 즉 필요는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비롯한다는 갤브레이스 자신의 원칙과 모순된다! 좀 더 신중하게 소비하고 공익을 위해 더 많을 돈을 쓰라고 하는 것은 정치 지도자들이 새롭게 ‘외부에서 고안된‘, ‘절박하지 않는 욕구를 소비자들에게 주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치가들이 하든, 세일즈맨들이 하든, 광고는 똑같은 광고일 뿐이다. - P370

금리가 계속 오르면, 사람들은 다가올 미래를 신뢰하지않는다. 즉, 지금 1달러의 가치는 내년에 금리가 오르면 그만큼 떨어지게마련이다. 나는 이런 논의를 토대로 ‘부크홀츠 가설 Buchholz Hypothesis‘이라고 하는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이것은 금리가 오르면 미래 가치가떨어지기 때문에 범죄 발생 건수가 더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대공황 기간 동안 명목 금리가 떨어졌는데, 이것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였음에도 범죄율이 왜 떨어졌는지 그 미스터리를 설명해준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내내 금리가 꾸준히 상승했는데, 흥미로운 것은 이 당시에 범죄율도 덩달아 상승했다. 특히 금리가 가장 많이 올랐던 1980년에 폭력 범죄 역시 최고조를 보였다. 그리고 잠시 주춤하던 금리가 1980년대 후반 다시 오르자 범죄율 역시 같이 상승했다. 1990년대. 금리가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폭력적인 범죄 역시 발생 건수가 줄어들었는데, 이 당시 범죄율과 금리는 3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였다.
물론 금리가 범죄율에 영향을 미치는 유일한 요소는 아니다. 인구 통계, 경찰 업무, 실형률punishment rates 등이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사회가 잠재적인 범죄자들에게 내일은 중요치 않다는 신호를 보낼때,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사람들이 범죄를 통해 당장의 이익을 취하려고 하는 것도 어찌 보면 전혀 이상할 것도 없다. - P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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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사에 군인들과 검은 옷을 입은 여자들이 많이와 있었어. 묘지에는 나무로 만든 작은 십자가들이 줄지어 서있었고, 엄숙하고 슬픈 분위기 속에서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여자들도 남자들도 눈물을 흘렸지. 그런데 난 말이지. 그때 이상하게도 그 작은 십자가들 아래 누워 있는 사람들이 살아 있는 우리보다 더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야. 그런 기분을 느꼈다고 친구한테 말했더니 대체 무슨 소리냐고 갸우뚱거리더군. 하지만 나는 정확하게 설명할 수가 없었어. 친구는 나를 무슨 정신병자처럼 취급했지. 그리고 언젠가 한 번은 전투가 끝난 뒤에 프랑스 병사들의 시체가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장면을 본 적이 있어. 그런데 마치 극단이 망한 후라 이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져서 먼지 가득한 구석에 쌓여 있는 꼭두각시 인형들 같다는 느낌이 드는 거야. 래리가 너한테 했다는 그 말 있지, 죽은 사람은 정말로 죽은 사람처럼 보인다는..... 그때 나도 그런 느낌이었어." - P89

"내가 제안하는 삶이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얼마나 더 풍성한지 설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신적 세계를 추구하는 삶이 얼마나 즐겁고, 얼마나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는지당신에게 알려 줄 수만 있다면...... 그건 정말 끝없는 즐거움이고, 말로 형언하기 힘든 행복이야. 그것에 비유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어. 바로 홀로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 때의 기분이지. 높디높은 저 위에서, 사방이 온통 무한한 공간뿐인 곳에서 날고 있을 때 말이야. 그럼 끝없는 공간에 취하게 돼. 그때느끼는 흥분이란, 세상 그 어떤 권력과 영예를 준다 해도 바꾸고 싶지 않지. 얼마 전에 데카르트를 읽었어. 그 평온함, 품격,
명석함이란!"
그때 이사벨이 한사코 말해야겠다는 투로 끼어들었다.
"하지만 래리, 그거 알아? 당신은 나한테 맞지도 않는 삶을요구하고 있어. 내가 관심도 없고, 또 관심을 갖고 싶지도 않은삶 말이야. 난 그저 평범한 여자일 뿐이라구. 몇 번이나 말해야알겠어? 난 이제 겨우 스무 살이야. 10년 후면 늙어 버릴 거고, 지금 시간이 있을 때 삶을 즐기고 싶어. 아, 래리, 난 당신을 너무나 사랑해. 하지만 당신이 말하는 삶은 시시해.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을 거야. 제발 부탁이니, 당신 자신을 위해서 포기해. 래리, 당신은 남자니까 남자다운 일을 하란 말이야.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 시간을 소중하게 쓰고 있다구. 당신이 정말 나를 사랑한다면 그런 헛된 꿈 때문에 나를 포기하진 않겠지. 이미 해 보고 싶은 만큼 했잖아. 이제 함께 미국으로 돌아가자."
"안 돼, 그럴 수 없어, 이사벨. 그건 내게 죽음과도 같아. 내영혼에 대한 배신이야." - P125

"당신이 정말 나를 사랑한다면, 이렇게 나를 불행하게 만들지는 않을 거야."
"아냐, 당신을 사랑해. 때로 사람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일을 하려면 주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게 되나 봐."
그녀는 반지가 놓인 손을 래리에게 내밀며 떨리는 입술로애써 미소를 지었다.
"받아, 래리."
"내가 갖고 있어 봐야 뭘 하겠어. 우리 우정에 대한 추억으로 간직해 줄래? 새끼손가락에 끼고 있으면 되잖아. 우정까지끝나는 건 아니겠지?"
‘래리 난 언제까지고 당신을 좋아할 거야."
"그럼 갖고 있어. 그래 줬으면 좋겠어."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 반지를 오른쪽 손가락에 다시 꼈다.
"너무 큰데."
"작게 줄이면 되지. 이사벨, 우리 리츠의 바에 가서 한잔하자"
"좋아"
모든 것이 너무나 쉽게 끝나 버렸다는 생각에 그녀는 약간 당황스러웠다. 그녀는 울지 않았다. 이제 래리와 결혼하지 않을것이라는 사실 말고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모든 게 끝났다는 사실을, 그녀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격렬한 장면조차 연출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약간은 원망스러웠다. 마치 집을 빌리는 일을 의논하는 사람들처럼, 너무나도 침착하게 이야기를 끝냈다. 가슴이 무너졌지만, 한편으로는 둘 다 점잖게 행동했다는 사실에 희미한 안도감도 느껴졌다. 래리의 생각과 감정을 정확하게 알고 싶었지만, 그건 언제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의 매끄러운 얼굴과 검은 눈동자는 오랜 세월 알고 지낸 그녀조차도 꿰뚫어 볼 수 없는 일종의 가면이었다.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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