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스타인 베블런의 이런 날카로운 관찰력이 가장 먼저 도입된 것은경제학이 아니라 사회학이었다. 그리고 1950년에 우크라이나 태생의 미국인 경제학자 하비 라이벤스타인 Harvey Leibenstein이 <소비자 수요이론에서 유행, 속물, 그리고 베블런 효과 Bandwagon, Snob, and Veblen Effects in the Theory of Consumer Demand>‘라는 논문에서 처음으로 베블런의 이론을 경제학에 접목했다. 라이벤스타인은 이 논문에서 어떤 한 상품의 가격이 떨어지면 그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다는 통상적인 마셜의 수요 법칙은 그대로 따랐다. 그러나 일부 상품, 즉 ‘베블런재Veblen goods‘ (앞서 언급한 벤츠 같은 과시적 소비가 적용되는 상품)는 소비자의 수요가 상품의 효용뿐만 아니라 그 소비자가 다른 소비자가 기꺼이 지불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가격, 즉 예상되는 현시적顯示的 가격 expected conspi-cuous price에 의해 결정된다. - P355
베블린과 그의 제자들에 따르면, 경영자는 어떤 상품의 효용을 높이기보다는 예상되는 현시적 가격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제도주의자들은 이것은 싸구려 상품을 마치 고가의 명품인 것처럼 과대 포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도에 어긋나는 행위일 뿐만아니라 시간과 재능의 낭비라고 비판했다. 나아가 이것은 자연적 욕구natural drive를 악용하는 행태이기도 하다. 카를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베블런은 인간이 창조적 욕구. 다시 말해 인간이 솜씨나 기량을 뽐내고 싶어 하는 본능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시적 여가와 현시적 소비가 사회에 파고들면서 이런 창조적 욕구가 사라지고 있다 - P357
소스타인 베블런은 마르크스가 했던 계급투쟁 같은 분석은 하지 않았다. 베블런에게 있어 그의 적은 자본가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그에게 노동자들이 영웅일리도 없다. 그는 전혀 다른 인물들을 기용했다. 그에게 나쁜 사람은 경영자들이었다. 그들이 기업체를 소유하고 있던 그렇지 않던 상관없다. 그리고 좋은 사람은 엔지니어들이었다. 그는 경영자들과 엔지니어들을 앞세워 선악대결을 그린다. 현대세계에서 창조, 향상, 생산의 욕구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엔지니어들뿐이다. 반면 그들의 위에서 항상 지시하고, 감독하고, 군림하는 경영자들은 창조성을 억압한다. 경영자들은 현시적 소비에만 관심이 있다. 그들은 한 가지 이유, 즉 돈을 벌 목적에서 사업을 한다. 만일 그들은물건을 생산하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다면, 더 행복해 할 것이다. - P357
당신은 생각할 것도 없이 옥수수식빵을 들고 계산대로향한다. 이때 갤브레이스가 그가 평소 즐겨 먹는 유기농으로 재배된 건강에 좋은 무당, 무미의 오곡 식빵을 들고 계산대 앞 당신 뒤에 줄을 선다. 당신은 뒤에 서 있는 갤브레이스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한다. "오곡 식빵을 고르셨네요? 저는 아침에 옥수수 식빵을 주로 먹습니다. 정말 좋아하거든요." 이에 갤브레이스가 발끈한다. 그리고 뜬금없이 ‘필요needs‘와 ‘욕구wants‘는 구분해야 한다며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다. 우선, 당신은 옥수수식빵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욕구할 뿐이다. 모든 필요는 우리 내부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욕구는 그렇지 않다. 욕구는 외부에서올 수도 있다. 옥수수식빵을 소비하는 것, 즉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의 내부에서 비롯하는 자연적인 욕구natural derive 가 아니다. 당신은 단지 식빵을 원할 뿐이고, 사실 욕구는 필요보다 덜 중요하다. 둘째, 갤브레이스는 당신이 옥수수 식빵에 대한 당신의 욕구를 스스로 결정했다는것을 부정한다. 그것은 착각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옥수수 식빵을 욕구하도록 또는 선택하도록 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뉴욕의 광고회사들이 몰려 있는 매디슨 애비뉴의 광고업자들이다. 그들이 광고를 통해 당신이 옥수수 식빵을 구매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광고와 판매 정책은 "스스로 뭔가를 결정하고자 하는 욕구라는 관념과 양립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 둘의 핵심 기능은 욕구를 창조하는 것, 즉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욕구를 새롭게 창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 P366
갤브레이스는 자신이 마셜의 ‘한계효용과 수요 법칙 marginal utility of demand‘을 멋지게 타파했다고 생각했다. 시장은 어떤 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진정한 수요를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진정한 수요는 심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 시장은 광고업자들이 소비자들에게 인위적으로 심어주는 욕구만 읽을 수 있을 뿐 그들의 주관적인 심리는 읽을 수 없다. 갤브레이스는 이것을 의존 효과dependence effect‘라 불렀다. 물론 갤브레이스는 이렇게 단언만 하고 끝내지는 않았다. 그는 이것에서 다음과 같은 그럴듯한 결론을 도출해냈다. 기업들은 욕구에 투자하고 그것을 주입한다. 그러나 욕구는 그렇게 절박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정부는 사적 소비를 제한하고 자원을 공공시설을 늘리고 개선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갤브레이스는 도로 하나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공원과 슬럼가를 유유자적 활주하는 고가의 리무진들을 공공연히 비난하면서 미국의 공공 부문은 쇠락해 가고 있는 데 반해 역겨운 냄새가 물씬 풍기는 사적 부문은 나날이 번성해 나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인들은 사실 이런 공공 부문과 사적 부문의 불균형을 원하지 않는다. 기업들이 그들을 현혹하고 있는 것이다. - P367
우선, 소비재에 대한 판매를 금지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이것은 너무 강압적인 조치다. 따라서 갤브레이스는 기업들로 하여금 소비재에 대한 광고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런 충고를 받아들인 정치 지도자들은 소비자들에게 돈을 좀 더 현명하고 유용하게사용할 것을 촉구할 수 있다. 국민들에게 가지고 있는 부를 개인적인 목적이 아닌 공익적인 목적을 위해 써달라고 부탁하거나 설득할 수 있는 뜻이다. 하지만 이런 설득은 모든 중요한 욕구, 즉 필요는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비롯한다는 갤브레이스 자신의 원칙과 모순된다! 좀 더 신중하게 소비하고 공익을 위해 더 많을 돈을 쓰라고 하는 것은 정치 지도자들이 새롭게 ‘외부에서 고안된‘, ‘절박하지 않는 욕구를 소비자들에게 주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치가들이 하든, 세일즈맨들이 하든, 광고는 똑같은 광고일 뿐이다. - P370
금리가 계속 오르면, 사람들은 다가올 미래를 신뢰하지않는다. 즉, 지금 1달러의 가치는 내년에 금리가 오르면 그만큼 떨어지게마련이다. 나는 이런 논의를 토대로 ‘부크홀츠 가설 Buchholz Hypothesis‘이라고 하는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이것은 금리가 오르면 미래 가치가떨어지기 때문에 범죄 발생 건수가 더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대공황 기간 동안 명목 금리가 떨어졌는데, 이것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였음에도 범죄율이 왜 떨어졌는지 그 미스터리를 설명해준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내내 금리가 꾸준히 상승했는데, 흥미로운 것은 이 당시에 범죄율도 덩달아 상승했다. 특히 금리가 가장 많이 올랐던 1980년에 폭력 범죄 역시 최고조를 보였다. 그리고 잠시 주춤하던 금리가 1980년대 후반 다시 오르자 범죄율 역시 같이 상승했다. 1990년대. 금리가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폭력적인 범죄 역시 발생 건수가 줄어들었는데, 이 당시 범죄율과 금리는 3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였다. 물론 금리가 범죄율에 영향을 미치는 유일한 요소는 아니다. 인구 통계, 경찰 업무, 실형률punishment rates 등이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사회가 잠재적인 범죄자들에게 내일은 중요치 않다는 신호를 보낼때,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사람들이 범죄를 통해 당장의 이익을 취하려고 하는 것도 어찌 보면 전혀 이상할 것도 없다. - P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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