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잠시 망설였지만 곧 래리와 주고받았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 내용에 관해서는 이미 앞에서 충실하게 독자들에게 전달한 바 있다. 독자들은 이사벨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그런 이야기들을 할 수 있을까 하고 놀라워할지도 모른다. 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열 번도 안 되는것 같고, 같이 잡화점에 갔던 때를 제외하고 둘이서만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사벨이 나한테 그런 얘기들을 하는 것이 놀랍지 않았다. 먼저, 사람들은 다른 이들한테 말하기 힘든 얘기도 작가 앞에서는 쉽게 털어놓는 경향이 있다. 아마 어떤 작가라도 그렇게 말할 것이다. 어쩌면 작품을 한두 권쯤 읽고 나면 그 작가에 대해 특별한 친밀감 같은 것을 느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자신이 소설 속 등장인물이된 것처럼 느끼고 작가에게 자기 속마음을 터놓는 것일지도모르겠다. - P145
"왜 그런 식으로 말씀하세요? 선생님은 항상 마음속의 말을 솔직하게 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요. 전 제가 주인공 역할이아니라는 걸 알아요. 주인공은 래리니까요. 그는 이상주의자인동시에 아름다운 꿈을 꾸는 몽상가죠. 설령 꿈이 실현되지 못한다 해도 그런 훌륭한 꿈을 꾸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멋진 일일 거예요. 반면에 저는 냉정하고 현실적이고 계산적인 역할을하고 있죠. 상식이라는 게 그렇게 큰 공감을 얻을 만한 멋진건 아니잖아요? 하지만 선생님이 잊고 계신 점이 있어요. 결국손해 보는 사람은 저라는 사실 말이에요. 래리는 아름다운 꿈의 구름을 좇아 마음껏 하늘을 돌아다니겠지만, 전 그 꽁무니를 쫓아다니면서 뒷수습을 하고 빠듯한 살림을 꾸리느라 바동거려야 할 거예요. 저도 사람답게, 즐겁게 살고 싶어요." - P152
"사랑에 빠져 있을 때 이런저런 상황이 뜻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사람들은 지독하게 괴로워하면서 도저히 극복하지 못할것처럼 생각해. 하지만 바다가 얼마나 유용한지 알면 놀라게될 걸." "그게 무슨 뜻이에요?" "사랑은 항해에 서투르기 때문에 바다에 나서면 약해지지. 이사벨과 래리 사이에 대서양이 놓이게 되면, 배를 타기 전에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만 같던 아픔도 실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 깨닫게 될 거야." "경험을 통해 아시는 거예요?" "파란만장한 지난날의 경험에 비춰 말하는 거야. 한창 짝사랑으로 가슴앓이를 할 때 난 즉시 대양으로 나가는 정기선을탔거든."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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