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의 귀는 매우 다양한데, 그 이유는 대부분이 현음기 chordoronal organ-곤충의 전신에서 발견되는, 움직임에 민감한 구조에서 진화했기 때문이다." 현기는 단단한 바깥쪽 큐티클cuticle 바로 아래에 있는 감각세포로 구성되어 있으며, 진동과 신장stretching 동작에 반응한다. 그것은 곤충에게 자신의 신체부위 펄럭이는 날개, 움직이는 팔다리, 팽창한 내장의 위치를 알려준다. 그러나 현기는 공중에 떠다니는 매우 큰 소리에도 반응할 수 있기 때문에, 거의 귀로 진화하는 경향이 있다. 귀로 변신하려면 더 민감해지기만 하면 되는데, 이 문제는 현음기 바로 위에있는 큐티클을 얇게 해 고막을 만듦으로써 쉽게 해결된다. 이러한 일이 거의 모든 신체부위에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곤충의 귀는 가장 있을 법하지 않은 위치에 자리 잡을 수 있다. 마치 그들의 체표면 전체가 청각을 위해 준비된 것 같다.
그러나 많은 곤충들은 이 진화적 식은 죽 먹기를 실행하지 않았다. 하루살이와 잠자리는 귀가 없고 대부분의 딱정벌레도 그렇다. 사실 대부분의 곤충은 귀가 먼 것처럼 보이며, 다른 모든 동물 종을 수적으로 압도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동물이 귀가 들리지 않는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이것은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며, 특히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우리에게 소리는 편재하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에 더욱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수백만 명의 청각장애인들은 그것 없이도 잘 지내고 있으며, 많은 동물들은 그것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우리의 동료 포유류와 다른 척추동물들을 본다면, 청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도 무방할지 모른다. 그러나 곤충을 본다면, 청각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될 것이다. - P329

오르미아는 그런 어려움을 전혀 겪지 않는다. 그들은 1도 이내의 범위로 귀뚜라미를 추적할 수 있는데, 이는 인간, 원숭이올빼미, 그리고 지금껏 테스트를 거친 거의 모든 동물들보다 우수하다. 이 같은 최고 수준의 예리함에도 불구하고, 오르미아의 귀는 ‘귀뚜라미 찾기‘라는 매우 단순한 행동을 제어한다. 많은 곤충들의 귀도 사정은 마찬가지인데, 제인 야크는 ‘곤충의 귀가 그토록 다양한 신체부위에서 진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귀는 ‘귀의 덕을 보는 행동‘을 제어하는 뉴런 근처에 위치하는 경향이 있어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암컷 귀뚜라미는 몸을 돌이켜 노래하는 수컷 쪽으로 이동하므로, 귀가 다리에 있다. 사마귀와 나방은 포식자의 소리가 들릴 때 공격을 피하기 위해 다이빙과 회전을 하므로, 귀가 날개의 위나 근처에 있다. - P332

이러한 계절적 주기는 미적 감각보다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다. 올빼미와 오르미아가 그러는 것처럼, 동물들은 소리가 양쪽 귀에 도달하는 시간 차를 이용해 음원의 위치를 계산할 수 있다. 귀가 미세한 시간차를 탐지하는 데 서툴러지면, 귀의 주인은 음원을 지도화하는 데 서툴러진다. 따라서 봄에 암컷 참새의 음향 타이밍 감각이 약간 둔해지면 음향 공간도 약간 모호해진다.
2002년 이러한 계절적 주기를 처음 발견했을 때 루카스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다른 연구자들도 그의 초기 연구 결과를 믿지 않았다. 당시 사람들은 청각이 대체로 정적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종 -슬프지만, 인간도 포함된다-에서는 나이가 들면서 둔해질 수 있지만, 더 짧은 시간 범위에 걸쳐 변화할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앞에서 여러 번 살펴본 바와 같이, 동물의 감각은 주변 환경에 미세하게 맞춰져 있으며, 관련된 정보를 빠짐없이 추출하도록 진화했다. 계절이 바뀜에 따라 환경이 변화하면 관련 정보도 변화하기 마련이다. 북아메리카의 새들에게 봄은 종종 짝짓기를 의미한다. 봄이 되면 공기가 다른 계절에는 없는)세레나데로 가득 차므로, 그들은 이제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가을은 바야흐로 개방성의 계절이다. 벌거벗은 나뭇가지는 작은 새가 포식자에게 더 잘 보이도록 만든다. 그러므로 가을에는 ‘다가오는 위험의 위치를 알아내는 능력‘이 가장 중요해지는데, 이 능력은 빠른 청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동물의 환경세계는 정적일 수 없는데, 그 이유는 그들 자신의 세계가 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 P348

고래의 청각은 스케일이 엄청나서 감당하기 어렵다. 물론 공간적인 광대함도 있지만 시간의 확장성도 있다. 물속에서 음파가 80킬로미터를 이동하는 데 1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만약 한 고래가 24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다른 고래의 노래를 듣는다면, 그는 약 30분 전에 불린 노래를 듣는 것이다. 마치 머나먼 별에서 온 ‘오래된 빛‘을 바라보는 천문학자처럼 말이다. 만약 고래가 800킬로미터 떨어진 산을 감지하려고 한다면, 자신의 소리와 10분 후에 도착하는 메아리를 어떻게든 연계해야 한다. 뜬금없는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대왕고래의 심박수는 수면에서 분당 약 30회이지만 잠수하면 분당 2회로 느려질 수 있다. 그들은 확실히 우리와 매우 다른 시간 범위에서 활동한다. 금화조가 한음 안에서 밀리초 단위의 아름다움을 듣는다면, 아마도 대왕고래는 몇초, 몇 분 단위로 동일한 경험을 할 것이다." "그들의 삶을 상상하려면 생각을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확장해야 해요"라고 클라크는 말한다. 그는 이러한 경험을, 장난감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보다가 NASA의 허블우주 망원경으로 제대로 된 장엄함을 목격하는 것에 비유한다. 고래에대해 제대로 생각하면, 세상은 시공간적으로 확장되어 더 크게 느껴질것이다. - P354

그러나 수중생활에 적응함에 따라, 그들 중 한 그룹-여과식을 하는 수염고래류mysticetes로, 대왕고래, 참고래, 혹등고래를 포함한다-이 낮은 초저주파음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와 동시에 그들의 몸은 지구상에서 가장 큰 수준으로 부풀어 올랐다. 이러한 변화들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수염고래는 독특한 섭식 방법을 진화시킴으로써 거대한 크기를 달성했는데, 그들의 섭식 방법은 크릴이라고 불리는 작은 갑각류를 먹는 데 유리하다. 크릴 떼를 향해 돌진하는 대왕고래는 입을 벌려 자신의 몸만 한 양의 물을 삼키는데, 이를 통해 한 번에 50만 칼로리의 열량을 섭취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에는 대가가 따른다. 크릴은 바다 전체에 고르게 분포되어 있지 않으므로, 대왕고래는 큰 몸을 유지하기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그들에게 이처럼 긴 여행을 강요한 신체 비율은 장거리 여행에 걸맞은 수단까지 갖추게 했으니, 그건 바로 특별한 소리-다른 동물보다 낮고 크고 멀리 가는 소리를 만들고 들을 수 있는 능력이다. - P355

리키Rickge와 헨리 헤프너 Henry Heffner‘는 ‘왜 그렇게 많은 포유동물이 초음파를 들을 수 있는지‘에 대해 다른 설명을 내놓는다. 초음파는 음원의 위치를 알아내기가 쉽다는 것이다. 원숭이올빼미와 마찬가지로 포유류는 소리가 두 귀에 도착했을 때 양쪽을 비교해 음원의 위치를 알아낸다. 그러나 양쪽 귀 사이의 간격이 좁으면, 이러한 비교는 파장이 짧은 고주파 음에서만 가능해진다. 따라서 포유류의 머리가 작을수록 가청주파수는 높아지기 마련이다. 이처럼 청각 세계의 경계는 두개골에 부딪히는 소리의 물리학에 의해 설정된다.
고주파 음은 저주파 음보다 찾기 쉬울 수 있지만 중요한 한계가 있다. 그것은 에너지를 빨리 상실하고, 나뭇잎·풀. 나뭇가지와 같은 장애물에의해 쉽게 산란되고 반사될 수 있다. 이는 초음파 노래가 짧은 거리에만 확산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대왕고래의 노래는 바다 건너편에서도 들릴 수 있지만, 생쥐의 노래는 가까운 이웃에게만 들린다. 많은 동물들이 초음파를 들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적은 수의 포유동물-설치류, 이빨고래, 작은박쥐 small bar, 집고양이, 그 밖의 몇몇 포유동물이 초음파를 이용해 의사소통을 하는 것은 바로 이 제한성 때문이다. 소리가 너무 빨리 사라지는 것도 문제다(이것은 ‘초음파로 해충을 퇴치한다‘고 선전되는 장치가 실제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럴 경우 범위가 너무 제한되어실용성이 떨어진다.) - P362

 1944년 그리핀은 박쥐의 놀라운 기술에 반향정위echolocation, 反響定位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핀 자신도 처음에는 반향정위를 과소평가했다. 그는 그것을 박쥐들에게 충돌 가능성을 알리는 경고 시스템으로 간주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런 견해는 1951년 여름에 바뀌었다. 그는 이타카 근처의 연못가에 앉아, 마이크를 하늘 높이 들어올린 채 사상 최초로 야생 박쥐의 초음파를 녹음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초음파 울음소리가 ‘얼마나 많이 들리는지‘, 그리고 ‘밀폐된 공간에서 목격한 것과 얼마나 다른지‘를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 탁 트인 하늘을 순항할 때, 박쥐의 맥박은 더 길고 둔했다. 그러나 곤충을 뒤쫓을 때, 안정적이던 ‘풋풋풋‘ 소리는 점차 빨라져 스타카토식 윙윙거림으로 융합되곤 했다. 그리핀이 새총을 이용해 박쥐 앞에 자갈을 발사해봤더니, 박쥐는 공중에 떠 있는 물체를 추적할 때마다 동일한 순서의 빠른 펄스(스타카토식 윙윙거림)로 이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반향정위가 단순한 충돌 탐지기가 아님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그것은 박쥐가 사냥하는 방법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는 나중에 이렇게 썼다. "우리의 과학적 상상력은, 심지어 어림짐작으로도(이) 가능성을 고려하는 데 실패했다." - P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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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거대한 그림이고 조화옹(造化翁)은 위대한 화가다. 주황색으로 요염하게 붉게 물든 오구나무의 꽃은 누가 붉은 물감을 칠하고 붉은 빛깔의 돌과 산호가루를 뿌려 그려 놓았는가? 복숭아 꽃잎에는 연지처럼 붉은 즙이 뚝뚝 떨어지는 것만같다. 가을 국화꽃의 빛깔은 등황색을 곱게 바른 것만 같다. 눈이 개고 피어오르는 푸르스름한 기운에는 푸른 빛깔이 두 겹세 겹 엇갈려 먼 곳과 가까운 곳에 골고루 나뉘었다. 세찬 소낙비가 강 위를 내달려서 수묵(水墨)을 한가득 뿌려 놓으면 더 채색할 틈도 없게 된다. 잠자리의 눈동자는 초록빛이 은은하고,
나비의 날개는 금빛으로 물들었다. 생각해 보면 이것은 천상에채색을 담당한 성관(星官)이 있어서 풀과 꽃과 돌과 금의 정수(精髓)를 모았다가 조화옹에게 제공해 온갖 사물에 빛깔을 입히게 한 것이 아닐까? 그래도 가을 강 석양의 거대한 그림이 가장 좋다. 이것이야말로 조화옹이 뜻을 얻은 그림이라고 할만하다.

- 여기 세계를 화판 삼아 그림을 그리는 조물주 역시 무슨 위대한 작업과 거룩한 행위를 하는 전지전능한 창조자가 아니다. 그냥 놀이삼아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일 뿐이다. 전지전능한 자의 거룩한 역사(役事)로 창조된 세계보다는 차라리 예술가가 그림을 그리듯 어린아이가 놀이를 하듯 창조된 세계가 훨씬 더낫지 않을까? 최소한 그런 세계에서는 ‘해야만 한다‘는 식의 획일화되고 규범적인 윤리나 명령의 강제보다는 예술가와 어린아이의 ‘하고싶다‘는 마음처럼 상대적이고 개성적인 욕망이 자유롭게 존중될 것이기 때문이다. - P27

말똥구리는 스스로 말똥 굴리기를 좋아할 뿐 용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용 또한 여의주를 자랑하거나 뽐내면서 저 말똥구리의 말똥을 비웃지 않는다.

- 말똥구리에게 여의주는 필요 없는 물건이다. 용 역시 자신의 여의주가 귀한 만큼 말똥구리에게는 말똥이 귀하다는 것을안다. 비록 상상의 존재지만 우주 만물 중 가장 귀한 동물로 여겨지는 용의 여의주와 가장 미천한 동물로 여겨지는 말똥구리의 말똥의 가치는 동등하다. 이제 우열(愚劣)과 존귀(尊貴)와 시비(是非)의 이분법은 전복되고 해체된다. 사람의 시각이 아닌 하늘의 입장에서 보자면 우주 만물의 가치는 모두 균등하다. 단지 차이와 다양성이 존재할 뿐이다.
이덕무를 비롯한 북학파(北學派) 지식인들은 인성(人性)과물성(物性)이 균등할 뿐만 아니라 동등한 가치를 갖는다고 여겼다. 그래서 자신들의 생각을 고스란히 표현한 이 구절을 무척 좋아하고 아꼈다. 연암 박지원(燕巖朴趾源)은 <낭환집서문(낭丸集序)에 이 구절을 그대로 옮겨 적었는데, 여기에는 영재 유득공(柳得恭)의 숙부였던 기하 유금(幾何柳琴)이 이 말을 듣고 문집의 이름으로 삼을 만하다고 했다는기록이 등장한다. 실제로 유금은 자신의 문집을 ‘말똥구리의 말똥구슬‘이라는 뜻에서 낭환집(낭丸集』이라고 이름 붙였다. <낭환집 서문>은 바로 박지원이 이 문집에 써준 글이다. - P35

무더운 여름날 저녁 콩꽃핀 울타리가를 걷다가 기와빛을 띤 거미가 실을 뽑아 거미줄을 엮는 모습을 보았다. 그 신묘한 모습이 부처와 서로 통함을 깨달았다. 실을 뽑고 실을 당기며 다리를 움직이는 방법이 너무나 기막혔다. 때로는 멈춘 듯하다가 때로는 순식간에 거미줄을 엮기도 했다. 마치 사람들이 보리를 심을 때의 발놀림이나 거문고를 퉁길 때의 손놀림과 같았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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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꽃 붉은 물결

삼월 푸른 계곡에 비가 개고 햇빛은 따사롭게 비춰 복숭아꽃 붉은 물결이 언덕에 넘쳐 출렁인다. 오색빛 작은 붕어가 지느러미를 재빨리 놀리지 못한 채 마름 사이를 헤엄치다가 더러 거꾸로 섰다가 더러 옆으로 눕기도 한다. 물 밖으로 주둥아리를 내밀며 아가미를 벌름벌름하니 참으로 진기한 풍경이다. 따사로운 모래는 맑고 깨끗해 온갖 물새 떼가 서로서로 짝을 지어서 금석에 앉고, 꽃나무에서 지저귀고, 날개를 문지르고, 모래를 끼얹고, 자신의 그림자를 물에 비추어 본다. 스스로자연의 모습으로 온화함을 즐기니 태평세월이 따로 없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노라면, 웃음 속에 감춘 칼과 마음속에 품은 화살과 가슴속에 가득 찬 가시가 한순간에 사라짐을 느낀다. 항상 나의 뜻을 삼월의 복숭아꽃 물결처럼 하면 물고기의 활력과 새들의 자연스러움이 모나지 않은 온화한 마음을 갖도록 도와줄 것이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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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코넬의 눈에, 그 포즈는 이상하게도 친숙해 보였다. 석사 과정 학생인 그녀는 뿔매미의 친척뻘인 멸구류의 ‘진동을 통한 의사소통‘을 연구한 적이 있었는데, 그들은 서로의 신호를 탐지하려고 할 때 몸을 앞으로 숙인채 발로 땅바닥을 내리누르곤 했다. 코끼리도 똑같은 행동을 할 수 있을까? 그들 중 하나가 이런 자세를 취할 때마다 다른 코끼리들이 멀리서곧 나타난 것은 분명 우연이 아니었다. 코끼리들은 발로 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것을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했다.
2002년 오코넬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테스트하기 위해 물웅덩이로 돌아왔다. 그녀는 이전에 사자들의 위협을 받는 지역에서 코끼리들의 경고음을 녹음한 적이 있었다. 원래 녹음한 소리는 가청음이었지만, 오코넬은 고주파 부분을 제거하고 땅에 묻힌 교반기를 통해 재생함으로써 지반진동 신호로 변환했다. 그러자 코끼리 떼 전체가 얼어붙는 게 아닌가! 그들은 침묵하고 경계하며 한데 뭉쳐 방어 대형을 갖추었다. 야간투시경을 통해 그들을 지켜본 오코넬은 흥분했다. "이 순간을 계획하고, 희망하고, 꿈꿔왔던 지난 세월들! 우리는 마침내 보여주고 있었다. 아주 ㅠ오래 전 나의 원래 예감이 사실이었음을. 그녀는 자신의 책 《코끼리의 은밀한 감각 The Elephants Secret Sense》에 이렇게 썼다. "코끼리들은 지반진동신호를 탐지해 응답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그녀는 실험을 반복했지만 이번에는 케냐에서 녹음된 케냐 코끼리들의 경고음을 추가했다. 그랬더니 에토샤코끼리들은 낯익은 경고음(에토샤 코끼리의 경고음)의 진동에 반응했지만, 낯선 경고음(케냐 코끼리의 경고음)의 진동에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들은 진동에만신경 쓰는 게 아니라, 진동의 원천(아는 코끼리 모르는 코끼리)까지도 구별하는 것으로 보인다.  - P309

지구를 배회했던 코끼리의 친척뻘 되는 동물들(예: 매머드, 마스토돈)은 어땠을까? 오늘날의 회색곰보다 훨씬 컸던 짧은얼굴곰short faced bear(땅나무늘보 giant ground sloth), 자동차만 한 크기의 아르마딜로, 오늘날의 코뿔소보다 열 배나 무거웠던 뿔없는코뿔소hornless thinos는 어땠을까? 이러한 거대동물들은 모두 멸종했는데, 그 책임은 인간과 우리의 선사시대 친척들에게 있다. 우리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동안 가장 큰 동물들은 눈만 껌벅였고, 이런 상황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남아 있는 코끼리 종-아프리카 두 종, 아시아 한 종-은 모두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코끼리 다음으로 큰 육상동물들-흰코뿔소와 검은코뿔소, 기린, 하마-도 곤경에 처해 있다. 거대한 무리도 줄어들었다. 한때 3000만에서6000만 마리에 이르렀던 들소들이 수천 마리씩 무리 지어 북아메리카를 배회했지만, 유럽의 식민지 개척자들은 그들에게 의존하는 원주민들을 몰살하기 위해 그들을 학살했다. 이제 들소는 50만 마리만 남았고, 대부분 사유지에 국한되어 있다. 그 모든 발굽과 발이 사라진 지금, 땅이 얼마나 조용해졌는지 상상해보라. 한때 거인들의 발자국 소리가 천둥처럼 요란했던 여섯 개 대륙에는 이제 드문드문 웅웅거리는 소리만 울려 퍼진다.
••••••
자연적 진동 세계와의 직접적인 연결이 감소하는 동안 다른 진동풍경이 생겨났다. 현대의 휴대폰은 우리의 피부와 손끝에 대고 윙윙거리며 속보, 다가오는 사건, 사회적 관심사를 알려준다. 우리의 전자장비는 진동을 이용해 우리를 몸 너머의 세계와 연결하고, 우리의 환경세계를 해부학적 범위 너머로 확장한다. 하지만 늘 그렇듯, 그 원조는 다른 동물 그룹이었다. - P310

거미는 거의 4억 년 동안 지구상에 존재해왔고, 그동안 줄곧 거미줄을 생산해왔을 것이다. 거미줄은 공학의 경이로움으로, 가볍고 탄력성이 있지만 강철보다 강하고 케블라보다 질길 수 있다." 거미는 그것을이용해 알을 포장하고, 피난처를 만들고, 공중에 매달리고, 하늘로 날아오른다(더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설명한다). 거미줄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많은 종들이 만드는 동글납작한 형태의 거미줄 원형 거미줄이다.
원형 거미줄은 날아다니는 곤충을 낚아챈 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함정이다." 그것은 또한 감시 시스템으로, 거미의 감각 범위를 ‘몸이 닿을 수 있는 범위‘ 너머로 크게 확장시킨다. 게다가 거미의 몸은 수천 개의 틈새 감각기-모래전갈이 먹잇감의 진동 활동을 탐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과 유사한 진동 감지 균열로 뒤덮여 있다. 거미의 틈새 감각기는 관절 주위에도 집중되어 있으며, 그곳에서 무리를 지어 수금형 기관lyrifomorgan 을 형성한다. 이 절묘하게 민감한 기관을 사용해 모든 거미들은 자신들이 서 있는 표면-장소는 다양하다-을 통과하는 진동을 감지할 수 있다. 앞 장에서 소개한 떠돌이호랑거미에게 그 표면은 땅이고, 무당거미와 같은 거미줄 거미orb-weaver에게 그것은 거미줄이다. 무당거미는 진동을 감지하는 표면을 스스로 구성한다. 따라서 원형거미줄의 재료는 다른 기질이를테면 토양, 모래, 식물의 줄기-이 아니라 거미의 일부다. 그리고 거미줄은 거미의 감각계의 일부이며, 기능과 역할 면에서 그들의 몸에 있는 틈새 감각기에 비해 전혀 손색이없다. - P313

거미줄 거미는 자신만의 진동풍경을 구축할 뿐만 아니라, 마치 악기를 튜닝하는 것처럼 조정할 수도 있다. 조정의 범위는 엄청나다. 개별섬유에 가스총을 이용해 발사체를 발사한 후 고속 카메라와 레이저로 거미줄 가닥을 분석함으로써, 모티머는 "일부 거미줄이 알려진 어떤 물질보다도 넓은 범위의 속도로 진동을 전달할 수 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론적으로 거미는 섬유의 경직도, 가닥의 장력, 거미줄 전체의 모양을 바꿈으로써 진동의 속도와 강도를 변경할 수 있다. 새로운 거미줄을 만들 때, 거미는 그때그때 다른 속도로 원사原絲를 뽑아내거나 다른 굵기의 섬유를 만들거나 새로운 가닥에 장력을 더함으로써 이 과제를 수행한다. 특정한 가닥을 추가, 제거 또는 견인함으로써 이미 완성된 거미줄을 조정할 수 있다. 습기 속에서 수축하는 원사의 자연적인 경향에 의존한 다음, 이렇게 조여진 가닥을 적당히 늘일 수도 있다. 거미줄거미가 이런 결정을 내리는 시점은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감각을 조정하고 필요에 따라 자신만의 환경세계를 정의할 수 있는옵션을 보유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 P316

인간은 수평 방향에서 올빼미와 거의 비슷하지만, 수직 방향에서는 정확도가 상당히 떨어져 3~6도에 머문다. 그것은 우리의 양쪽 귀가 수평을 이루고 있어서, 소리가 위에서 나든 아래에서 나든 거의 동시에 두귀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빼미의 귀는 독특하게 비대칭적이어서, 왼쪽이 오른쪽보다 높은 곳에 위치한다.‘ 올빼미의 얼굴을 시계로생각하면, 왼쪽 귀는 2시에 열리고 오른쪽 귀는 8시에 열린다. 그러므로 소리가 위나 왼쪽에서 나면 ‘오른쪽 아래‘ 귀보다 ‘왼쪽 위 귀에 조금 더 빠르고 크게 들린다. 소리가 아래나 오른쪽에서 나면 그 반대다. 이러한 타이밍과 크기의 차이를 이용해, 올빼미의 뇌는 음원의 위치를 수직 방향과 수평 방향에서 모두 파악한다. 하이킹을 하다가 근처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우리는 소리의 방향을 대충 짐작한 후 고개를 돌려 그 원천을 정확히 확인한다. 그러나 우리의 머리 위 나무에 앉아 있는 올빼미는 귀만으로도 그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정확히 알아낼 수 있다.  - P324

전통적인 오감 중에서, 청각은 촉각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것은 직관에 어긋나는 것처럼 보인다. 후자는 (단단하고 만질 수 있는) 표면과 관련 있는 데 반해, 전자는 (공기 중에 떠다니고 천상의 것처럼 보이는) 소리를 다루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각과 촉각은 모두 기계적 감각으로, 동일한 수용체(구부러지거나 눌리거나 비틀릴 때 전기 신호를 보내는 수용체)를 이용해 외부 세계의 움직임을 탐지한다. 촉각의 경우, 이러한 움직임은 손가락 끝(또는 수염, 부리 끝, 아이머 기관)으로 표면을 누르거나 쓰다듬을 때 발생한다. 청각의 경우, 그런 움직임은 음파가 귀에 도달해 그 안의 작은 유모세포를 구부러뜨릴 때 발생한다.
그러나 촉각과 달리 청각은 장거리에서도 작동할 수 있다. 시각과 달리 청각은 어둠 속에서, 그리고 단단하고 불투명한 장벽 앞에서도 기능을 발휘한다. 앞 장에서 살펴본 진동 감각과 달리 청각은 표면이 필요하지 않으며, 공기나 물처럼 모든 것을 아우르는 매체를 경유해 작동할 수있다. 그리고 분자의 느린 확산에 의해 제한되는 후각과 달리 청각은 상당히 빨리 음속으로-작동한다. 어떤 감각들은 이러한 특징 중 몇 가지를 가지고 있지만, 청각은 그것들을 모두 겸비하기 때문에 일부 동물들은 청각에 지나치게 의존하기도 한다. 윌리엄 스테빈스William Stebbins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아름답게 요약했다. "소리가 다른 형태의 자극과 크게 다른 점은, 보이지 않는 거리에서 현재 진행되는 사건에 대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 P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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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수용소에서 죽은 사람들은 자신들을 죽인 사람들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고요? 당신은 그 말을 하려는 거죠? 당신은 그들 사이엔 미워할 까닭도 없었고 전쟁도 없었다고 말하려는 거죠?"
나는 이번엔 고개를 끄덕이고 싶지 않았다. 그가 말하는 내용은 맞지만 그의 표현 방식은 옳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신 말이 맞아요. 그들 사이엔 전쟁도 없었고 서로 미워할까닭도 없었어요. 하지만 사형집행인 역시 그가 사형을 집행하는 사람을 미워하지는 않지만 죽이는 겁니다. 명령을 받았기때문인가요? 그가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나요? 당신은 내가 지금 명령과 복종에 대해서 그리고 수용소의 요원들은 명령을 하달받았고 또 그들은 그 명령에 따를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생각하나요?"
그는 경멸하는 투로 웃었다. "아니요. 난 지금 명령과 복종에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형집행인은 누구의 명령에 따라서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일을 하는거요. 그는 자신이 사형을 집행하는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아요. 그는 그들에게 복수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자신한테방해가 되거나 그들이 자신을 위협하고 공격하려고 해서 그들을 죽이는 것도 아니지요. 그에게는 그들이 중요하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에겐 그들을 죽이든지 살리든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거예요." - P163

연대책임이라는 것이 도덕적으로 그리고 법률적으로 타당성을 인정받든 인정받지 못하든 간에, 나의 학생세대들에게 그것은 하나의 경험적 현실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연대책임은 제3제국 당시에 일어났던 일에만 적용되지 않았다. 유대인들의 묘석에 철십자 훈장을 그려 넣은 사실, 그토록 많은 수의 옛 나치주의자들이 법원과 행정부 그리고 대학에서 출세를 한 사실, 독일연방공화국이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은사실, 전통적으로 망명과 저항이 순응하는 삶보다 덜 전승되었다는 사실이 모든 사실은 비록 우리가 손가락으로 죄를 저지른 당사자들을 가리킬 수 있다고 해도 우리 가슴속을 수치심으로 가득 채웠다. 죄를 지은 사람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고 해서 우리가 수치심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손가락질을 함으로써 적어도 수치심으로 인한 고통을 극복할 수 있었다. 손가락질은 수치심의 수동적인 고통을 에너지와 행동과 공격심리로 전환시켜주었다. 그리고 죄를 저지른 우리 부모들과의 대결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었다. - P181

나는 그녀에게 한나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자신이 주인공이 아닌 상황에서 상대방의 옛사랑 이야기를 누가 듣고 싶어 하겠느냐고 생각했다. 게르트루트는 영리하고 유능하고 충실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에 우리 두 사람의 삶이 많은 하인들과 하녀들 그리고 많은 아이들을 거느리고 서로 생각할 시간도 없이 바쁘게 일하면서 꾸려나가야 하는 농가에서의 삶이었다면, 우리의 삶은 성취와 성공을 일구어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시외의 한 신축 건물의 방 세개짜리 아파트와 우리의 딸 율리아와 사법관 시보인 게르트루트와 나의 일이 전부였다. 나는 게르트루트와 함께 지내는 것과 예전에 한나와 함께 지내던 것을 비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게르트루트와 포옹할 때마다 이게 아닌데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의 손길이나 감촉. 그녀의 냄새와 맛, 그것은 내가 찾던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러한 것도 시간이 지나면 극복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러한 것이 사라지기를 바랐다. 나는 한나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이게 아닌데하는 느낌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 P184

우리 두 사람 사이의 말이 많으면서도 말이 없는 접촉이 시작된 지 4년째 되던 해에 한나에게서 한마디 인사가 날아왔다.
"꼬마야 지난번 이야기는 정말 멋졌어. 고마워. 한나가."
줄이 쳐진 편지지는 노트에서 찢어내 가장자리를 반듯하게자른 것이었다. 인사말은 그 종이의 맨 위쪽에 세 줄을 채우면서 쓰여 있었다. 인사말은 오래 써서 글씨가 번지는 파란색 볼펜으로 적혀 있었다. 한나는 펜에 힘을 잔뜩 주어 쓴 것 같았다. 종이 뒷면에까지 글씨 자국이 났기 때문이다. 내 주소 역시힘을 잔뜩 주어 썼다. 한가운데를 접은 편지지의 아래쪽 면과 위쪽 면에 박힌 글씨 자국을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얼핏 보면 그것은 어린아이가 쓴 글씨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어린아이의 글씨체에서 서툴고 어색하게 보이는 부분이 여기서는 듬뿍 힘이 들어가 있었다. 선들을 모아 글자를만들고, 글자들을 모아 낱말을 만들기 위해 한나가 극복해야했을 어려움이 눈에 들어왔다. 어린아이의 손은 이리저리 마구 헤매기 때문에 글씨가 나아가는 길의 안쪽에다 손을 붙잡아두어야 한다. 반면 한나의 손은 그 어디로도 가려고 하지 않기때문에 앞으로 가도록 몰아대야 했다. 글자들을 형성하고 있는선들은 획을 올려 그을 때나 내려 그을 때나, 곡선을 그리거나 고리 모양을 그리기 전에나 모두 그때마다 늘 새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각각의 글자는 새로이 창출해냈다고 할 정도로 그 기울기나 경사의 방향이 새로웠으며 높이와 너비가 잘못된 경우가 많았다.
나는 그녀의 인사말을 읽고서 기쁨과 환희로 가득 찼다.
"그녀가 글씨를 쓸 줄 안다. 그녀가 글씨를 쓸 줄 안다고!"
나는 그동안 문맹자와 관련된 글들을 구할 수 있는 한 다 구해서 읽었다. 나는 그들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겪는, 즉 길이나 주소를 찾을 때 또는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고를 때 겪는 당혹스러움에 대해서, 미리 주어진 생활의 틀과 낯익은 행로를 더듬더듬 따라가면서 여기서 벗어나면 어쩌나 하며 느끼는 불안감에 대해서, 글씨를 읽고 쓸 줄 모른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 소모하는 정력에 대해서 그리고 그로 인해 실제 삶에 있어서의 에너지 상실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문맹은 미성년 상태를 의미한다. 한나는 읽고 쓰기를 배우겠다는 용기를 발휘함으로써 미성년에서 성년으로 가는 첫걸음을 깨우침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었다. - P198

나는 단 한 번도 한나에게 편지를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를 위해 책을 낭독하는 일은 계속했다. 일 년 동안 미국에 가있을 때에도 그곳에서 카세트테이프를 보냈다. 휴가 여행을 떠나거나 할 일이 특별히 많을 때에는 다음에 보낼 카세트테이프를 완성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나는 특별히 기간을 정해놓지는 않았다. 어떤 때에는 카세트테이프를 일주일이나 보름마다 부쳤으며, 어떤 때에는 3주나 4주 만에 부치는 경우도 있었다. 한나가 이제 혼자서 글을 읽는 법을 익혔으므로 내가 보내는 카세트테이프가 더 이상 필요 없을 거라는 우려 따위는 전혀 하지 않았다. 그녀가 이것 외의 책을 읽으면 그만이었다. 내가 책을 읽어주는 것은 그녀에게 이야기하는 그리고 그녀와 내가 이야기하는 내 나름의 방식이었다. - P201

"슈미츠 부인은 자살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쓰지 않았어요.
그리고 당신은 당신들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무슨 일로 인해 슈미츠 부인이 당신이 데리러 오기로 한날 새벽에 자살을 했는지에 대해서 말씀하지 않고 있어요." 그녀는 종이를 접어서 주머니에 넣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구겨진 스커트를 손으로 문질러 폈다. "그녀의 죽음은 저한테는 충격이었어요. 아시겠어요? 그리고 저는 지금 무척 화가 나 있어요. 슈미츠 부인과 당신한테 말이에요. 어쨌든 갑시다."
그녀는 다시 앞장섰다. 그러나 이번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나는 한 병동의 조그만 방에 누워 있었다. 우리는 벽과 들것 사이로 간신히 들어설 수 있었다. 교도소장은 천을 뒤로젖혔다.
한나의 머리에는 시신이 완전히 굳을 때까지 턱을 들어 올려놓기 위해서 천이 동여매어져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특별히 평화스럽지도 특별히 고통스럽지도 않았다. 그저 굳어 있었으며 죽은 듯이 보였다.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자니 죽은 얼굴에서살아 있는 얼굴이 떠올랐다. 늙은 얼굴에서 젊은 얼굴이 말이다. 늙은 부부들에게도 이와 같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여자에게는 늙은 남자의 모습 속에 젊은 남자의 모습이 보존되어 있을 것이고, 남자에게는 늙은 여자의 모습 속에 젊은 여자의 아름다움과 우아함이 신선하게 보존되어 있을 것이다. 왜 나는 일주일 전에 이러한 모습을 보지 못했던 것인가?
나는 울어서는 안 되었다. 교도소장이 묻는 듯한 표정으로 잠시 나를 쳐다보았을 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 한나의 얼굴 위로 다시 천을 덮었다. - P222

어쨌든 나는 우리의 이야기를 생각할 때면 이 사실만을 생각한다. 그렇지만 내가 무언가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입을 때면 당시에 겪었던 마음의 상처들이 떠오르고, 내가 죄책감을느낄 때면 당시의 죄책감이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내가 오늘날 무언가를 그리워하거나 향수를 느낄 때면 당시의 그리움과 향수가 되살아나곤 한다. 우리의 인생의 층위들은 서로 밀집되어 차곡차곡 쌓여 있기 때문에 우리는 나중의 것에서 늘 이전의 것을 만나게 된다. 이전의 것은 이미 떨어져 나가거나 제쳐둔 것이 아니며 늘 현재적인 것으로서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나는 이 사실을 이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 그것이 정말로 참기 어렵다고 느낀다. 어쩌면 나는 우리의 이야기를 비록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에 썼는지도 모른다.
나는 뉴욕에서 돌아오자마자 곧장 한나의 돈을 그녀의 이름으로 ‘문맹퇴치를 위한 유대인 연맹 앞으로 송금했다. 나는 얼마 뒤 한나 슈미츠 여사 앞으로 유대인 연맹이 보낸 기부에 감사하는 내용을 담은 컴퓨터로 쓴 짤막한 서한을 받았다. 나는그 편지를 주머니에 넣고서 한나의 무덤이 있는 공동묘지를 향해 차를 몰았다. 내가 그녀의 무덤 앞에 선 것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 P232

그것들은 한나가 직접 손으로 적거나 아니면 작은 사진들과 마찬가지로 신문이나 잡지에서 오려낸 것들이었다. "봄은 제 푸른 리본을 대기 중에 다시 휘날린다", "구름의 그림자가 들판 위로 도망친다"시들은 모두 자연의 기쁨과 자연에의 동경으로 가득 차 있는 것들이었으며, 작은 사진들은 봄빛이 환한 숲과 꽃들이 다채롭게 흐드러진 초원, 가을의 나뭇잎들과 몇 그루의 나무들, 시냇가의 버드나무, 빨간 버찌가 무르익은 벚나무 한 그루, 가을빛으로 노랗게 그리고 오렌지 색깔로 타오르는 밤나무 한 그루 등을 보여주었다. 신문에서 오려낸 사진에는 검은 양복 차림으로 악수를 나누고 있는 한 중년신사와 소년의 모습이 있었다. 나는 중년 신사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소년이 바로 나 자신임을 알아차렸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식장에서 학교장에게 상장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은 한나가 그 도시를 떠나고 한참 뒤의 일이었다. 당시 글을 읽을줄 모르던 그녀가 그 사진이 실린 지역 신문을 정기구독하고있었던 것인가? 어쨌든 그녀는 사진 내용에 대해서 알아내고 또 그것을 입수하기 위해 어느 정도 어려움을 겪었을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녀는 재판이 열리던 중에도 그 사진을 몸에 지니고 있었을까? 나는 다시 가슴과 목구멍에 눈물이 고여오는것을 느꼈다. -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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