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수용소에서 죽은 사람들은 자신들을 죽인 사람들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고요? 당신은 그 말을 하려는 거죠? 당신은 그들 사이엔 미워할 까닭도 없었고 전쟁도 없었다고 말하려는 거죠?"
나는 이번엔 고개를 끄덕이고 싶지 않았다. 그가 말하는 내용은 맞지만 그의 표현 방식은 옳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신 말이 맞아요. 그들 사이엔 전쟁도 없었고 서로 미워할까닭도 없었어요. 하지만 사형집행인 역시 그가 사형을 집행하는 사람을 미워하지는 않지만 죽이는 겁니다. 명령을 받았기때문인가요? 그가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나요? 당신은 내가 지금 명령과 복종에 대해서 그리고 수용소의 요원들은 명령을 하달받았고 또 그들은 그 명령에 따를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생각하나요?"
그는 경멸하는 투로 웃었다. "아니요. 난 지금 명령과 복종에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형집행인은 누구의 명령에 따라서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일을 하는거요. 그는 자신이 사형을 집행하는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아요. 그는 그들에게 복수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자신한테방해가 되거나 그들이 자신을 위협하고 공격하려고 해서 그들을 죽이는 것도 아니지요. 그에게는 그들이 중요하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에겐 그들을 죽이든지 살리든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거예요." - P163

연대책임이라는 것이 도덕적으로 그리고 법률적으로 타당성을 인정받든 인정받지 못하든 간에, 나의 학생세대들에게 그것은 하나의 경험적 현실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연대책임은 제3제국 당시에 일어났던 일에만 적용되지 않았다. 유대인들의 묘석에 철십자 훈장을 그려 넣은 사실, 그토록 많은 수의 옛 나치주의자들이 법원과 행정부 그리고 대학에서 출세를 한 사실, 독일연방공화국이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은사실, 전통적으로 망명과 저항이 순응하는 삶보다 덜 전승되었다는 사실이 모든 사실은 비록 우리가 손가락으로 죄를 저지른 당사자들을 가리킬 수 있다고 해도 우리 가슴속을 수치심으로 가득 채웠다. 죄를 지은 사람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고 해서 우리가 수치심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손가락질을 함으로써 적어도 수치심으로 인한 고통을 극복할 수 있었다. 손가락질은 수치심의 수동적인 고통을 에너지와 행동과 공격심리로 전환시켜주었다. 그리고 죄를 저지른 우리 부모들과의 대결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었다. - P181

나는 그녀에게 한나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자신이 주인공이 아닌 상황에서 상대방의 옛사랑 이야기를 누가 듣고 싶어 하겠느냐고 생각했다. 게르트루트는 영리하고 유능하고 충실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에 우리 두 사람의 삶이 많은 하인들과 하녀들 그리고 많은 아이들을 거느리고 서로 생각할 시간도 없이 바쁘게 일하면서 꾸려나가야 하는 농가에서의 삶이었다면, 우리의 삶은 성취와 성공을 일구어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시외의 한 신축 건물의 방 세개짜리 아파트와 우리의 딸 율리아와 사법관 시보인 게르트루트와 나의 일이 전부였다. 나는 게르트루트와 함께 지내는 것과 예전에 한나와 함께 지내던 것을 비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게르트루트와 포옹할 때마다 이게 아닌데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의 손길이나 감촉. 그녀의 냄새와 맛, 그것은 내가 찾던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러한 것도 시간이 지나면 극복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러한 것이 사라지기를 바랐다. 나는 한나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이게 아닌데하는 느낌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 P184

우리 두 사람 사이의 말이 많으면서도 말이 없는 접촉이 시작된 지 4년째 되던 해에 한나에게서 한마디 인사가 날아왔다.
"꼬마야 지난번 이야기는 정말 멋졌어. 고마워. 한나가."
줄이 쳐진 편지지는 노트에서 찢어내 가장자리를 반듯하게자른 것이었다. 인사말은 그 종이의 맨 위쪽에 세 줄을 채우면서 쓰여 있었다. 인사말은 오래 써서 글씨가 번지는 파란색 볼펜으로 적혀 있었다. 한나는 펜에 힘을 잔뜩 주어 쓴 것 같았다. 종이 뒷면에까지 글씨 자국이 났기 때문이다. 내 주소 역시힘을 잔뜩 주어 썼다. 한가운데를 접은 편지지의 아래쪽 면과 위쪽 면에 박힌 글씨 자국을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얼핏 보면 그것은 어린아이가 쓴 글씨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어린아이의 글씨체에서 서툴고 어색하게 보이는 부분이 여기서는 듬뿍 힘이 들어가 있었다. 선들을 모아 글자를만들고, 글자들을 모아 낱말을 만들기 위해 한나가 극복해야했을 어려움이 눈에 들어왔다. 어린아이의 손은 이리저리 마구 헤매기 때문에 글씨가 나아가는 길의 안쪽에다 손을 붙잡아두어야 한다. 반면 한나의 손은 그 어디로도 가려고 하지 않기때문에 앞으로 가도록 몰아대야 했다. 글자들을 형성하고 있는선들은 획을 올려 그을 때나 내려 그을 때나, 곡선을 그리거나 고리 모양을 그리기 전에나 모두 그때마다 늘 새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각각의 글자는 새로이 창출해냈다고 할 정도로 그 기울기나 경사의 방향이 새로웠으며 높이와 너비가 잘못된 경우가 많았다.
나는 그녀의 인사말을 읽고서 기쁨과 환희로 가득 찼다.
"그녀가 글씨를 쓸 줄 안다. 그녀가 글씨를 쓸 줄 안다고!"
나는 그동안 문맹자와 관련된 글들을 구할 수 있는 한 다 구해서 읽었다. 나는 그들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겪는, 즉 길이나 주소를 찾을 때 또는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고를 때 겪는 당혹스러움에 대해서, 미리 주어진 생활의 틀과 낯익은 행로를 더듬더듬 따라가면서 여기서 벗어나면 어쩌나 하며 느끼는 불안감에 대해서, 글씨를 읽고 쓸 줄 모른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 소모하는 정력에 대해서 그리고 그로 인해 실제 삶에 있어서의 에너지 상실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문맹은 미성년 상태를 의미한다. 한나는 읽고 쓰기를 배우겠다는 용기를 발휘함으로써 미성년에서 성년으로 가는 첫걸음을 깨우침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었다. - P198

나는 단 한 번도 한나에게 편지를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를 위해 책을 낭독하는 일은 계속했다. 일 년 동안 미국에 가있을 때에도 그곳에서 카세트테이프를 보냈다. 휴가 여행을 떠나거나 할 일이 특별히 많을 때에는 다음에 보낼 카세트테이프를 완성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나는 특별히 기간을 정해놓지는 않았다. 어떤 때에는 카세트테이프를 일주일이나 보름마다 부쳤으며, 어떤 때에는 3주나 4주 만에 부치는 경우도 있었다. 한나가 이제 혼자서 글을 읽는 법을 익혔으므로 내가 보내는 카세트테이프가 더 이상 필요 없을 거라는 우려 따위는 전혀 하지 않았다. 그녀가 이것 외의 책을 읽으면 그만이었다. 내가 책을 읽어주는 것은 그녀에게 이야기하는 그리고 그녀와 내가 이야기하는 내 나름의 방식이었다. - P201

"슈미츠 부인은 자살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쓰지 않았어요.
그리고 당신은 당신들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무슨 일로 인해 슈미츠 부인이 당신이 데리러 오기로 한날 새벽에 자살을 했는지에 대해서 말씀하지 않고 있어요." 그녀는 종이를 접어서 주머니에 넣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구겨진 스커트를 손으로 문질러 폈다. "그녀의 죽음은 저한테는 충격이었어요. 아시겠어요? 그리고 저는 지금 무척 화가 나 있어요. 슈미츠 부인과 당신한테 말이에요. 어쨌든 갑시다."
그녀는 다시 앞장섰다. 그러나 이번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나는 한 병동의 조그만 방에 누워 있었다. 우리는 벽과 들것 사이로 간신히 들어설 수 있었다. 교도소장은 천을 뒤로젖혔다.
한나의 머리에는 시신이 완전히 굳을 때까지 턱을 들어 올려놓기 위해서 천이 동여매어져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특별히 평화스럽지도 특별히 고통스럽지도 않았다. 그저 굳어 있었으며 죽은 듯이 보였다.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자니 죽은 얼굴에서살아 있는 얼굴이 떠올랐다. 늙은 얼굴에서 젊은 얼굴이 말이다. 늙은 부부들에게도 이와 같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여자에게는 늙은 남자의 모습 속에 젊은 남자의 모습이 보존되어 있을 것이고, 남자에게는 늙은 여자의 모습 속에 젊은 여자의 아름다움과 우아함이 신선하게 보존되어 있을 것이다. 왜 나는 일주일 전에 이러한 모습을 보지 못했던 것인가?
나는 울어서는 안 되었다. 교도소장이 묻는 듯한 표정으로 잠시 나를 쳐다보았을 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 한나의 얼굴 위로 다시 천을 덮었다. - P222

어쨌든 나는 우리의 이야기를 생각할 때면 이 사실만을 생각한다. 그렇지만 내가 무언가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입을 때면 당시에 겪었던 마음의 상처들이 떠오르고, 내가 죄책감을느낄 때면 당시의 죄책감이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내가 오늘날 무언가를 그리워하거나 향수를 느낄 때면 당시의 그리움과 향수가 되살아나곤 한다. 우리의 인생의 층위들은 서로 밀집되어 차곡차곡 쌓여 있기 때문에 우리는 나중의 것에서 늘 이전의 것을 만나게 된다. 이전의 것은 이미 떨어져 나가거나 제쳐둔 것이 아니며 늘 현재적인 것으로서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나는 이 사실을 이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 그것이 정말로 참기 어렵다고 느낀다. 어쩌면 나는 우리의 이야기를 비록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에 썼는지도 모른다.
나는 뉴욕에서 돌아오자마자 곧장 한나의 돈을 그녀의 이름으로 ‘문맹퇴치를 위한 유대인 연맹 앞으로 송금했다. 나는 얼마 뒤 한나 슈미츠 여사 앞으로 유대인 연맹이 보낸 기부에 감사하는 내용을 담은 컴퓨터로 쓴 짤막한 서한을 받았다. 나는그 편지를 주머니에 넣고서 한나의 무덤이 있는 공동묘지를 향해 차를 몰았다. 내가 그녀의 무덤 앞에 선 것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 P232

그것들은 한나가 직접 손으로 적거나 아니면 작은 사진들과 마찬가지로 신문이나 잡지에서 오려낸 것들이었다. "봄은 제 푸른 리본을 대기 중에 다시 휘날린다", "구름의 그림자가 들판 위로 도망친다"시들은 모두 자연의 기쁨과 자연에의 동경으로 가득 차 있는 것들이었으며, 작은 사진들은 봄빛이 환한 숲과 꽃들이 다채롭게 흐드러진 초원, 가을의 나뭇잎들과 몇 그루의 나무들, 시냇가의 버드나무, 빨간 버찌가 무르익은 벚나무 한 그루, 가을빛으로 노랗게 그리고 오렌지 색깔로 타오르는 밤나무 한 그루 등을 보여주었다. 신문에서 오려낸 사진에는 검은 양복 차림으로 악수를 나누고 있는 한 중년신사와 소년의 모습이 있었다. 나는 중년 신사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소년이 바로 나 자신임을 알아차렸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식장에서 학교장에게 상장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은 한나가 그 도시를 떠나고 한참 뒤의 일이었다. 당시 글을 읽을줄 모르던 그녀가 그 사진이 실린 지역 신문을 정기구독하고있었던 것인가? 어쨌든 그녀는 사진 내용에 대해서 알아내고 또 그것을 입수하기 위해 어느 정도 어려움을 겪었을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녀는 재판이 열리던 중에도 그 사진을 몸에 지니고 있었을까? 나는 다시 가슴과 목구멍에 눈물이 고여오는것을 느꼈다. -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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