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일행에 섞여 있던 르완다인이 어찌된 영문인지 알아보고 와서는 이렇게 말했다. "저자가 비명을 지른 여인을 강간하려고 했나 봅니다." 그는 우리가 들은 함성은 곤경에 처했다는 신호로 르완다에서는 그소리를 들으면 함께 함성을 지르는 것이 의무라고 설명했다. "소리를 들으면 누구든 같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야 합니다. 다른 선택은 없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합니다. 만일 그 소리를 외면하는 경우에는 심문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산지에서 살아가는 르완다인들의 삶의 방식입니다." 그는 두 손을 들어 올리더니 손가락 끝과 끝을 맞대고 마치 조각천을이어 맞추듯 이리저리 엇갈리며 움직였다. 그런 식으로 마을은 조그만 땅뙈기로 칸칸이 나뉘어 있고, 사람들은 이웃과 맞닿아 있는 각자의 땅뙈기안에서 서로 복작거리며 살아간다는 뜻이었다. "사람들은 각자 따로 살아가지만 동시에 같이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서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내가 비명을 지르면 선생도 질러야 하고, 선생이 비명을 지르면 나도질러야 하지요. 누구든 달려가야 합니다. 소리를 듣고도 집에 가만히 있는 사람은 설명을 해야 합니다. 범죄자와 한통속이라 그런 건지, 겁쟁이라 그런 건지. 그러고도 다급해서 소리칠 때 누가 와주기를 바라는지 같은 질문에 말입니다.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려면 누구나 이 간단한 원리를 지켜야 합니다."
참으로 부러운 관습이었다. 우리가 사는 곳에서도 다급하게 소리를지르면 과연 우리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있을까? 누군가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에 우리도 함께 고함치며 서둘러 달려갈 수 있을까? 우리가사는 곳에서도 이런 식으로 강간을 저지하고 강간범을 붙잡는 일이 자주 있을까? 나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런 공동체의 의무 체계가 완전히 거꾸로 뒤집혀 살인과 강간이 하나의 규범이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무고한 사람이 범죄자가 되고 이웃을 보호하는 사람이 ‘공모자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최루가스를 사용해 어두운 은신처에 몸을 숨긴사람들을 울부짓게 만들어 그 소리로 생존자를 찾아내선 무참히 살해하는 일이 정상으로 여겨진다면 어떻게 될까? 나중에 무고네로를 방문했을때 사뮈엘에게서 최루가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순간 계곡에서 여인이 외치던 비명 소리가 생각났다. - P48

하지만 후투족, 투치족이라는 이름이 문제였다. 이름에는 의미가 부여된다. 이름을 놓고 ‘계급‘이 어떻다느니 ‘지위‘가 어떻다느니 ‘신분‘이 어떻다는 둥 의견이 분분하지만 이름이 두 종족을 구별 짓는 근원이라는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후투족은 농사꾼이었고 투치족은 목자였다. 따라서 처음부터 불평등한 관계에 놓여 있었던 셈이다. 가축은 농작물보다 더 값이 나가는 재산이기 때문이다. 물론 가축을 기르는 후투족도 있었고 농사를 짓는 투치족도 있었다. 하지만 투치족이라는 이름은 정치, 경제적으로 ‘엘리트‘의 동의어로 자리 잡았다. 그러한 계층화는 1860년 투치족 출신 음와미 키게리 르와부기리가 르완다의 왕위에 오른 뒤 일련의 군사 원정을 통해 왕국의 영토를 거의 현재 수준으로 넓혀 지배권을다지면서 더욱 가속화된 것으로 보인다. - P63

하지만 스피크는 처지가 딱한 흑인들과 함께 살면서 아비시니아(에티오피아의 옛 이름—옮긴이) 최고의 혈통임을 나타내는 섬세한 계란형 얼굴, 큰 눈망울, 높은 코‘로 미루어, ‘보잘것없는 원주민과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우수 인종‘을 발견했다. 이 ‘인종‘은 외투시족(즉 투치족)을 비롯해 많은 부족들에서 발견되었다. 다들 가축을 기르며 다른 종족들을 지배하는 위치에 있었다. 스피크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그들의 ‘외모‘였다. 그들은 오랜 혼혈의 결과로 머리가 곱슬곱슬하고 피부가 검었지만 ‘콧날이 없는 펑퍼짐한 코가 아니라 아시아인처럼 콧날이 우뚝한 코를 지니고 있었다. 스피크는 모호한 과학 용어로 자신의 가설을 그럴 듯하게 포장하는 동시에 성서의 역사적 권위를 빌려 그들을 ‘셈족의 피가절반 흐르는 함족‘, 곧 사라진 기독교인의 후예로 규정하고 영국식 교육을 조금만 받으면 자신과 같은 영국인처럼 ‘모든 점에서 우월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민주존 해닝 스피크의 이름을 아는 르완다인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들대부분은 그의 터무니없는 이론의 핵심, 즉 유럽 인종을 가장 많이 닮은아프리카인이 지배자의 능력을 타고났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다. 그러한 이론을 받아들이든 아니든 함족 신화가 자신들이 이 세상에서 과연 어떤 존재인지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개념이라는 점을 부인할 르완다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후투 파워의 주창자 레옹 무게세라는 1992년11월의 유명한 연설에서 후투족에게 투치족을 은야바롱고 강(르완다를 지나는 나일 강의 지류-옮긴이) 너머 에티오피아로 되돌려 보내라고 촉구했다. 그는 그 문제로 굳이 고심할 필요가 없었다. 1994년 4월 은야바롱고강은 죽은 투치족으로 넘쳐났고, 시체 몇만 구가 빅토리아 호수 기슭으로 밀려들었다. - P68

르와부기리왕의 죽음으로 투치족 왕족들 사이에 격렬한 계승권 분쟁이일어났다. 르완다 왕국은 엄청난 혼란에 빠져들었고, 세력을 쥐고 있다가무력해진 지도자들은 상호 후원을 대가로 식민지 지배자들과 결탁했다. 그 결과 ‘이중 식민주의‘라는 정치 구조가 형성되었다. 이런 구조 아래서 투치족 귀족들은 독일인의 보호와 묵인에 힘입어 내부의 정적을 처단하고 후투족에 대한 지배권을 더욱 강화했다. 국제연맹이 1차 세계대전의 전리품으로 르완다를 벨기에에 넘겨줄 무렵 후투족과 투치족이라는 이름은 서로 적대하는 ‘인종‘을 가리키는 의미로 굳어졌다. 벨기에인들은 그런 양극화 현상을 식민지 정책의 발판으로 삼았다. - P71

어쩌면 식민주의자들이 터무니없는 함 가설을 받아들여 르완다인들의 분열을 꾀했던 이유도 바로 이 르완다의 두드러진 국민성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벨기에인들은 굳이 르완다에 질서를 가져다주는 척하지 않았다. 대신 기존의 문명에서 지배와 종속 개념에 부합하는 특성을 추려내자신들 목적에 맞게 고치는 쪽을 선택했다. 식민화는 폭력이고, 그러한 폭력을 실행에 옮기는 방법은 수두룩하다. 벨기에인들은 군사와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과 성직자 외에 과학자도 르완다에 파견했다. 과학자들은 저울과 줄자와 양각 측경기를 들여와 르완다인의 체중과 두개골의 크기를 재고, 툭 튀어나온 르완다인들의 코를 비교 분석했다. 아니나다를까.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믿어온 바를 확인할 수 있었다. 투치족은 ‘거칠고 흉포한 후투족에 비해 더 ‘고귀하며‘ 귀족의 면모를 좀 더 자연스럽게‘ 풍겼다. 예를 들어 ‘코의 크기‘를 보면 투치족은 코 중앙이 후투족에 비해 약 2.5밀리미터가 더 길고 거의 5밀리미터가 더 가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내로라하는 유럽인 관찰자들 다수가 투치족은 세련되고 고상하다는 맹신에 단단히 사로잡혀, 르완다의 지배 종족이 아틀란티스의 사라진 도시 멜라네시아에서 왔다는 등 스피크가 무색할 만큼 말도 안 되는 주장들을 늘어놓았다. 심지어 프랑스의 어느 외교관은 그들이외계에서 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벨기에 식민주의자들은 함족 신화를 지침으로 삼고 로마 가톨릭교회와 제휴해 르완다를 통치하면서 인종에 따라 르완다 사회를 철저하게 개편했다. 그런 가운데 르완다 초대 주교 몬시뇰레옹 클라스가 후투족의 공민권을 박탈하고 ‘우수한 혈통을 타고난투치족의 전통적인 지배권을 강화하는 데 앞장섰다. 1930년 그는 투치족 추장을 ‘무식한 후투족으로 대체하려는 시도는 "온 나라를 무정부 상태로 몰아넣어 반유럽 공산주의를 양산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투치족 추장만큼 유능하고, 똑똑하고, 적극적이고, 진보의 가치를 잘 이해하고, 백성들에게 환영받는 추장은 없다"라고 덧붙였다. - P72

식민지 이전 시대에 후투족과 투치족이라는 정체성이 어떤 의미를지녔건 간에 벨기에인들은 ‘출신 인종‘에 따라 르완다인의 실존을 정의하는 특징으로 만들어놓았다. 그래도 대부분의 후투족과 투치족은 여전히 아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종족 간의 결혼도 성행했고, 산지에 사는키 작은 투치족‘의 운명이나 그 이웃에 사는 후투족의 운명이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학교에 나가 우월한 종족과 열등한 종족이라는 개념을 들으며 성장하기 시작하면서 한 국민으로서의 집단 정체성은 점점 퇴색했고, 그러한 인종 분열 정책 아래 투치족과 후투족은 각각권리와 피해를 주장하면서 반목하기에 이르렀다.
부족주의는 또 다른 부족주의를 낳는다. 벨기에도 ‘인종‘ 계보를 중심으로 계층화된 사회였다.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소수의 왈론인이 플라망어를 사용하는 다수를 몇 세기 넘게 지배했다. 하지만 오랜 ‘사회 혁명‘을 거치며 벨기에는 인구학 측면에서 훨씬 더 평등한 시대로 들어섰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르완다에 진출한 플라망인 사제들은 후투족에게 동병상련을 느끼며 그들에게 정치 개혁에 대한 열망을 불어넣었다. 그 무렵 벨기에 식민 정부는 유엔의 신탁 통치 아래 놓여 있었다. 이는 식민 정부가르완다 독립에 필요한 기초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압력에 처했다는 의미였다. 후투족 정치 운동가들은 다수의 통치와 ‘사회 혁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르완다에서의 정치 투쟁은 평등 추구가 아니라 양극화된 사회에서 어느 인종이 주도권을 잡을 것인가 하는 문제로 초점이 맞춰졌다. - P74

르완다가 독립할 즈음 벨기에인들은 지지하는종족을 갈아치웠지만 그들이 마련한 새 질서는 옛 질서를 그대로 유지한채 사람들만 바꾼 데 지나지 않았다. 1961년 1월 벨기에인들은 새로운 후투족 지도자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아놓고 군주제 폐지와 공화국 수립을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임시 정부는 명목상으로는 후투족 정당과 투치족정당이 균등하게 권력을 나누어 갖는 구도였지만 몇 달 뒤 유엔 진상조사위원회는 보고를 통해 르완다 혁명은 "어느 한 종족의 독재를 야기해 하나의 압제 정권을 또 하나의 압제 정권으로 대체하는 데 그쳤다"라고 결론 내렸다. 아울러 보고서는 "언젠가 우리는 투치족을 상대로 폭력이 행사되는 광경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벨기에인들은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르완다는 1962년에 완전히 독립했으며, 그레구아르카이반다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후투 독재 정권은 대중 민주주의로 위장했다. 르완다의 권력 투쟁은 후투 지배층 사이의 내분으로 발전하면서 과거에 투치족 왕족들이 벌이던 이전투구와 매우 비슷한 양상을 띠었다. 르완다 혁명가들은 트리니다드토바고 출신의 작가 네이폴의 지적대로 너나 할 것 없이 ‘흉내쟁이‘가돼서 자신들이 반기를 들었던 제도를 등에 업고 권력을 남용했다. 그들은 과거의 지배자들이 압제에 신음하던 사람들의 손에 결국 사라지고 말았다는 사실을 깡그리 잊어버렸다. 카이반다 대통령도 루이 드라크제가 남긴 유명한 르완다 역사를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카이반다는 르완다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힘은 ‘한 국가 정서‘ 라는 라크제의 통찰력을 받아들이기보다 르완다를 하나의 정부가 통치하는 두 나라‘로 인식했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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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안안심입니다

내 이름은 안안심입니다.
나이는 78세입니다.
태어난 곳은 보성군 웅치면 삼수마을입니다.
4남 2녀 중 큰딸입니다.

어릴 때 별명은 ‘봉숭아꽃‘이라고 불렸습니다.
장독대 봉숭아처럼 예쁘다고 했습니다.

성격은 차분하고 속이 깊은 편입니다.
얼굴은 둥글고 체격은 보통입니다.

가장 잘하는 음식은
회무침입니다.
남들이 맛있다고 인정을 해 주었습니다.

가장 부러운 사람은
야무지게 말 잘하는 사람입니다.
앞으로 소원은
건강하게 공부하는 것입니다. - P12

치매 앓은 시어머니

시아버지 제삿날 시동생은
마트에서 막걸리 한 병과 사과 세 개를 사서
배달을 시켜 놓고 시어머니도 안 보고 갔습니다.

시어머니는 4년째 치매를 앓고 계셔서
내가 대소변을 받아 내고 있었습니다.
잠시라도 집을 비우면 변기통에 세수를 하고
가스에다 신발을 태우고 냉장고를 뒤져
엉망을 해놨습니다.

나는 혼자서 너무 감당하기 힘들어 동서 셋이서
1년에 두 달씩만 모셔 주면 나머지는 내가
모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못 모신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리고 시누들까지 발걸음을 끊었습니다.

나는 어버이날이 되면 시어머니가 불쌍해서
꽃을 사다 달아 주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 P51

행복의 보약
손경애

나는 못 배웠다는 것이 늘 가슴 아팠습니다.
길을 가다 간판을 보면 알 수 없는 글자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은행을 가도 겁이 안 납니다.
일을 다녀도 답답하지가 않습니다.
평생 주눅 들었던 내 자신이 떳떳해졌습니다.
그리고 건강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대학생 손녀에게
큰사위에게 문자를 보내면 존경한다고
답을 해줍니다. 나는 가족들한테 칭찬을
들으니까 보약 먹은 것처럼 힘이 납니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다 보면 재미가 있어
끼니가 되도 배고픈 줄도 모릅니다.
못 그려도 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고
절로 행복해 집니다. - P57

이웃집 엄마
정오덕

이웃집 엄마는 스물일곱 살에 혼자되어 아들 둘을 데리고 살았습니다. 엄마와 작은아들은 농사를 지어서 큰아들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이웃집엄마는 밥하는 시간도 아까워 일을 많이 하려고 한꺼번에 밥을 많이해 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국을 많이 끓이라고 부탁했습니다. 이웃집엄마는 날만 새면 들에 나가 일을 하고 때가 되면 찬밥 들고 우리집에 와서 국물에 말아 먹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큰아들을 법관으로 키워내셨습니다.
이웃집 엄마는 나를 친딸처럼 생각했습니다. 시집가면 뭐든지 잘해야한다고 논일 밭일을 데리고 다니며 가르쳤습니다. 내가 결혼해서 살 때도 우리 집에 오고 싶어 했는데 형편이 어려워 한 번도 오시라는 말을못했습니다. 지금은 저세상으로 떠나고 안 계시지만 늘 마음에 걸립니다. - P120

최고의 행복
김명남

공부를 하니 젊어졌다고 합니다.
글을 읽어도 쏙 들어오고 숙제도 재밌습니다.
문자 못한 친구들은 나를 부러워합니다.

성격도 활달하게 변하고 말도 잘하고
공부가 나를 달라지게 했습니다.

생전 처음 그림을 그렸습니다.
내가 살아온 인생도 글로 썼습니다.
책이 나오고 서울에서 전시를 했습니다.
갑자기 방송, 신문, 잡지에도 나왔습니다.
내가 대단한 사람으로 느껴졌습니다.

나는 그림을 그릴 때마다 사진을 찍어서
자식들한테 보냈습니다.
자식들은 우리엄마 대단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식들하고 대화도 많아졌습니다.
나는 지금이 내 인생에서 최고의 행복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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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열 명에 한 명꼴로 죽인다는 뜻의 ‘decimation‘이라는 영어 단어가 있다. 1994년 봄과 초여름을 거치는 동안 르완다 공화국 인구의 10퍼센트가 희생되는(decimated) 대량 학살이 일어났다. 살인 도구는 원시적이었지만(풀과 나무를 베는 데 쓰는 마체테 칼이 주를 이루었다) 살해 속도는 전광석화처럼 빨랐다. 약 750만정도였던 전체 인구 가운데 최소한 80만 명이 겨우 100일 만에 무참히 살육되었다. 르완다 사람들은 종종 100만 명이 죽었다고 말한다.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모른다. 르완다에서 사람들이 살해당한 속도는 홀로코스트 때 유대인들이 살해당한 속도의 세 배에 달한다. 르완다 학살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이후의 가장 효율적인‘ 대량학살 사례이다. - P7

남부의 산악 도시 기콩고로에 정전 사고가발생했다. 여섯 개의 촛불이 게스트하우스 바의 어둠을 밝혔다. 나에게술을 같이 마시자고 청한 군인 세 명의 눈은 시뻘건 오렌지 빛으로 이글댔다. 우리는 맥주 한 잔을 서로 돌려가며 마셨다. 맨 마지막에 맥주를 마신 사람은 나였다. 그런 식으로 군인들은 술에 독이 들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였다. 군인들은 대화를 나누기에는 너무 취해 있었다. 하지만 그들 무리 가운데 한 민간인은 술에 취하지 않기로 작심한 듯 보였다. 그 남자는 번들거리는 검정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팔짱을끼고 눈을 가늘게 뜬 채 꼿꼿이 앉아 있었다. 초연한 태도로 주위 상황을조용히 주시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그는 마치 로봇처럼 영어 음절을하나씩 정확히 끊어 발음하면서 불쑥 나의 이름을 물었다. 나는 "필립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내 손을 와락 움켜쥐며 말했다. "아하, 찰스 디킨스의 소설에 나오는 사람과 같군요."
"그 사람은 핍입니다." 내가 대답했다. - P9

피그미족은 르완다 최초의 거주자들이었다. 숲에서 살아가는 피그미족은 후투족과 투치족으로부터 한물간 부족이라는 이유로 천대받았다. 식민 통치 이전의 왕정 시대에 피그미족은 궁정 광대로일했다. 당시 르완다의 왕은 투치족이었다. 그 때문에 조상 대대로 궁정에서 일했던 피그미족은 제노사이드가 진행되는 동안 투치족 왕족의 ㅍ나풀이라는 이유로 살해되는가 하면, 후투족이 투치족을 조롱할 목적으로 투치족 여자들을 욕보일 때면 강간범이라는 오명을 대신 뒤집어써야했다.
아마도 내가 게스트하우스 바에서 만난 피그미족 남자를 가르친 성공회 주교는 미개한 원주민을 교화하는 일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기독교 교리를 입증해 보이는 절호의 기회라고 여겼을지도모른다. 하지만 그 피그미족 남자는 그런 교리의 맹점을 간파했던 듯하다. 그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경험에 따르면 인간은 결국 모두 같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이론이자 원리, 즉 백인 사제의 가설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그 가설을 마음에 아로새겼지만 결국 그 안에는 넘어서는 안 될 한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이다. 보편주의라는 이름 아래 그는 자신의 동족과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밀림을 경멸하는 법뿐만 아니라 그런 유산을 업신여기는 자기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는 법을배웠다. 결국 그는 백인 여성을 아내로 맞이하는 것만이 자신의 이론을 입증해줄 고리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다만 그가 자신의 신념을 입증하는 데 걸림돌이 있다면 그런 짝을 만날 가능성이 전무하다는 사실뿐이었다. - P13

하지만 집단 폭력의 경우도 조직화가 필요하다. 집단 폭력은 막연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심지어 폭도들이 일으키는 난동에도 계획이 있기마련이며, 엄청난 폭력을 유지하려면 커다란 야심이 필요하다. 집단 폭력은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새로운 질서를 떠받치는 이념의 경우 범죄 성향을 띨 뿐만 아니라 객관적으로도 매우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누구도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단순하면서도 절대적인 성격을 띈다. 제노사이드를 일으키는 이데올로기는 모두그렇다. 르완다의 경우에는 ‘후투 파워‘ 라는 뻔뻔한 명분 아래 제노사이드가 자행되었다. 고의로 인종 말살을 획책하는 사람들에게는 (대중의) 피에 대한 욕망이 확실히 도움이 된다. 이는 르완다의 투치족처럼 남녀노소통틀어 125만 명가량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부차 인구 집단이 대상일 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내가 서 있던 문 안에서 벌어진 살육을 주도했던 사람들 같은 살육 기술자들이라고 해서 굳이 살인을 즐겨야 할 필요는 없다. 어쩌면 그들도 살인을 불쾌하게 생각할지 모른다. 그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희생자가 죽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런 마음이 강해지면 결국에는 살인을 불가피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 P26

은콩골리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르완다 문화는 공포의 문화입니다. 지금도 사람들이 했던 말이 생생히 기억납니다." 목소리가 날카로워지면서 그의 얼굴에는 혐오감이 역력하게 드러났다. "사람들은 ‘기도라도 하게 해주고 우리를 죽여라‘, ‘길거리에서 죽기 싫다. 집에서 죽게 해다오‘
라고 말했지요." 잠시 뒤 그는 본래의 목소리를 되찾았다. "그런 압제와폭거에 굴복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죽은 목숨인 겁니다. 공포 어린 체념이야말로 제노사이드가 아주 오래전부터 준비되었다는 증거 아니고 뭐겠습니까. 나는 그런 공포를 혐오합니다. 제노사이드의 희생자들은 단지 투치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해왔던겁니다. 그들은 너무도 오랫동안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기 때문에 이미 죽은 목숨이었던 겁니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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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혹시•••••• 그러니까•••••• 우리가 언젠가 한잔할 수도 있을까요 아니면 뭐••••••점심이라도?"
이제 나는 그녀를 보았고, 그녀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의 소중한 날, 물론이죠. 점심이, 내 생각에는, 더 즐거울 것 같네요."
그렇게 해서 내 삶의 또 다른 부분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1년에 두세 번 웨스트 런던에 있는 그녀의 집 근처 작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만나곤 했다. 루틴은 분명했다. 한 번도 입밖에 내어 말한 적은 없지만, 나는 정각 1시에 도착하고 그녀는 거기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다. 함께 오늘의 파스타, 그린샐러드를 먹고 화이트와인 한 잔과 블랙커피를 마신다. 한번은, 만남이 시작되었을 무렵, 내가 평소의 경로에서 벗어나 사슴고기 에스칼로프를 시켰다. "그거 어때요?" 그녀가 테이블 건너에서 몸을 기울이며 진지하게 물었다. "실망스러워요?" 점심은 75분 동안 지속되고 늘 그녀가 돈을 낸다. 내가앉으면 그녀는 "그래, 오늘은 무슨 소식을 가져왔나요?" 하고 물어 나에게 먼저 이야기를 시작하는 부담을 안겼지만 그건 괜찮았다. 나에게 75분밖에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나는 주제 선택에 신중해야 했을 뿐 아니라 그 시간에 어떤 방법을 찾아 아니, 무조건 나의 지성을 농축해야 했다. 나는 그녀 앞에서는 더 똑똑해졌다. 더 많이 알았고, 더 설득력을 갖추었다. 그녀가 기분 좋게 해주려고 필사적이었다. - P70

나는 점심을 먹다가 한번 왜 성인을 가르치는 일을 더 좋아하게 되었는지 물은 적이 있다.
"나는 호기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흥미가 없어요." 그녀가대답했다. "역설적으로 젊은 사람일수록 자기 확신이 더 강 - P71

해요. 그들의 야망은 외부인의 객관적인 눈에는 모호해 보이지만 자신들에게는 선명하고 성취 가능해 보이죠. 반면 성인의 경우•••••• 일부는 그저 즉흥적으로 등록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삶에서 결핍을 느끼기 때문에 와요. 자기가 뭔가 놓쳤을지도 모른다는 느낌. 그런데 이제 상황을 바로잡을 기회-어쩌면 아마도 마지막 기회-가 왔다는 느낌. 나는 그게 대단히 감동적이라고 생각해요." - P72

그녀는 약속을 두 번 잇따라 취소했는데, 아니 미루었는데,
두 번 다 예측은 불가능하지만 모를 수는 없는 인간 외피의침식을 고려하여"라고 이유를 달았다. 나는 그녀가 죽어가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작별도, 소환도, 마지막 메시지도없었다. 나는 그녀가 불평 없이, 스토아학파답게, 소리 없이, 거의 은밀하게 죽었다고 상상했다. 나는 크리스토퍼 핀치라는 사람한테서 장례식 초대를 받았는데, 아마도 그녀의 남자형제인 듯했다. 그전까지 나는 늘 그녀가 외동이라고 가정하고 있었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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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여행을 품은 인생의 시간들

떠올리고 되새기며
또다른 의미를 발견하는
여행의 시간들.
여행의 시간에서 나는
무엇을 찾았을까?

여행의 시간이 다시 찾아온다. 지난 3년 동안 정지되었던 여행, 우리 몸속의 여행 유전자가 다시 활동을개시한다. 마음이 소란스럽다. 궁리가 난다. 벗어나고 싶다.
탈출하고 싶다. 떠나고 싶다. 다시 날개를 펴고 싶다. 나도여행 기지개를 켠다. -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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