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상들이 이 두 가지 환경에서 잘 살아남으려면 심리적 적응이 필요했다. 환경의 변동성은 더오래된 뇌의 네트워크를 두 종류의 상황에 각각 전문화된 두 가지 체계로 개선하는 결과를 낳았다. 행동 활성화 체계BAS, behavioral activationsystem는 자신과 자신이 속한 무리가 굶주리다가 잘 익은 열매가 가득한 나무를 갑자기 발견한 경우처럼 기회를 포착할 때 작동한다. 무리 전체가 긍정적 감정과 공동의 흥분에 휩싸이고 입에 침이 고이기시작하며, 모두가 당장 달려들 준비를 한다! 나는 BAS 대신에 조금더 직관적인 이름을 사용하려고 하는데, 발견 모드 discover mode가 바로그것이다.
반대로 행동 억제 체계BIS, behavioral inhibition system는 열매를 따고 있는데 가까이에서 표범의 포효 소리가 들려오는 경우처럼 위협을 감지할 때 작동한다. 그러면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몸에 스트레스 호르몬이 흘러넘치면서 식욕이 뚝 떨어지며, 위협의 정체를 확인하고도망갈 방법을 찾는 데 온 신경을 쓰게 된다. 나는 BIS를 방어 모드defend mode라고 부르려고 한다. 만성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방어모드가 만성적으로 작동한다.
두 체계는 함께 환경 변화에 재빨리 적응하는 메커니즘을 형성하는데, 온도 등락에 따라 냉난방 장치를 가동하는 자동 온도 조절 장치와 비슷하게 작동한다. 모든 종에서 전체 시스템의 기본 설정은 그동물의 진화사와 예상되는 환경에 좌우된다. 먹이 사슬의 최고 포식자나 포식자가 전혀 없는 섬에서 살아가는 초식 동물처럼, 일상생활My personal hobbies alistening to music, 에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위험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진화한동물은 평온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집 없이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오려고 한다. 공격을 받으면 즉각 방어 모드로 변하긴 하지만, 이들의 기본 설정은 발견 모드이다. 반대로 늘 포식자의 위협 속에서 진화한 토끼와 사슴 같은 동물은 겁이 많다. 그래서 언제든지 몸을 홱 돌려 달아나려고 한다. 이들의 기본 설정은 방어 모드이며, 주변 환경이 평소와 다르게 안전하다고 지각할 때에만 느리게 머뭇거리면서 발견 모드로 옮겨간다.
사람(그리고 개처럼 사회성이 매우 높은 포유류)의 경우, 기본 설정은 개성을 결정하는 주요 인자이다. 평생 동안(직접 위협을 받을 때를 제외하고) 발견 모드로 살아가는 사람(그리고 개)은 더 행복하고 사회성도 더 높으며, 새로운 경험에 더 열린 태도를 보인다. 반대로 거의 항상방어 모드로 살아가는 사람(그리고 개)은 더 방어적이고 더 불안해하며, 안전하다고 지각하는 순간이 드물다. 이들은 새로운 상황과 사람, 개념을 기회보다는 잠재적 위협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상습적 조심성은 옛날의 일부 환경에서는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된 적응이었고, 오늘날에도 불안정하고 폭력적인 환경에서 자라는 아동에게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방어 모드에 갇혀 있으면 오늘날 선진국의 대다수 아동이 누리는 신체적으로 안전한 환경에서 학습하고 성장하는 데 방해가 된다. - P110

탈레브는 이런 것들과는 달리 강해지기 위해 때때로 넘어질 필요가 있는 것을 가리키기 위해 ‘antifragile‘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앞의 설명에서 나는 ‘물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안티프래질 특성을 지닌 무생물 물체는 매우 드물다. 안티프래질리티는 오히려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세계에서 기능하도록 설계된(진화를 통해 혹은 때로는 사람에 의해) 복잡계의 공통적인 성질이다. 궁극적인 안티프래질계는 면역계인데, 아동기에 제대로 완성되려면 먼지와 기생충과 세균에 일찍 노출되는 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완벽한 위생 거품 속에서아이를 키우려고 하는 부모는 안티프래질 면역계의 발달을 차단함으로써 오히려 아이에게 해를 끼친다.
그것은 심리적 면역계‘(아이가 좌절과 작은 사고, 괴롭힘, 따돌림, 지각된 불공정 행위, 일상적인 갈등을 몇 시간 또는 며칠 동안의 내적 동요를 겪는일 없이 다루고 처리하고 극복하는 능력)에 작용하는 것과 동일한 역학이다. 갈등과 박탈을 겪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스토아학파와 불교가 오래전부터 가르쳤듯이, 행복은 인생에서 모든 불행 ‘유발 요인 trigger‘을 없앤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외부 사건이 내부의 부정적 감정을 촉발하는 힘을없애는 법을 배우는 데에서 찾아온다. 사실, 우리 아이들이 걸음마를 배울 무렵에 아내와 내가 읽은 최고의 양육서‘는 매일 아이들에게 우발적 사건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좌절을 맛볼 기회를 주라고 권했다. <꼬꼬마 텔레토비 Teletrubbies>를 보고 싶으면 먼저 장난감을 치워야해. 만약 계속 그걸 고집한다면 타임아웃time-out 벌을 줄 거야. 그래, 네 여동생은 네가 갖지 않은 걸 갖고 있지만, 살다 보면 그런 일은 종종 일어나게 마련이야. - P116

아이는 선천적으로 안티프래질 능력이 있다. 과잉보호를 받으며자란 아이가 방어 모드에 머무는 청소년이 되기 쉬운 이유가 여기에있다. 방어 모드가 되면 덜 배우고, 가까운 친구도 적으며, 불안을 더많이 느끼고, 일상적인 대화와 갈등에서 고통을 더 많이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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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아이들을 화성에 보내겠습니까?"

첫아이인 당신 딸이 열 살이 되었을 때, 원대한 꿈을 가진 생면부지의 억만장자가 최초의 화성 영구 정착지에서 살아갈 사람들 중 한 명으로 그 아이를 선택했다고 상상해보라. 우수한 학업 성적(거기다가당신이 동의한 기억이 없는 유전체 분석 결과)을 바탕으로 선정되었다고한다. 우주를 좋아하던 딸은 당신 몰래 그 임무에 지원했는데, 게다가 딸의 친구들도 모두 그 임무에 지원했다고 한다. 딸은 제발 화성으로가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 P15

자, 이래도 딸을 화성으로 보내겠는가?
당연히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지구로 돌아온다는 기약도 없이 어린이를 화성으로 보낸다는 이 계획은 완전히 미친 짓으로 보인다. 도대체 어느 부모가 이를 허락하겠는가? 이 계획을 추진하는 회사는 화성에 대한 우선권을 놓고 다른 회사들과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 지도자들은 아동 발달에 관한 세부 내용은 전혀 모르고, 아동의 안전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회사는 부모의 승인을받았다는 증명도 요구하지 않았다. 어린이가 부모의 승인을 받았다는 칸에 체크만 하면, 그 어린이는 화성으로 날아갈 수 있다.
어떤 회사도 부모의 동의 없이 어린이를 화성으로 데려가 위험에처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했다간 막중한 법적 책임을 져야 할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 P17

사회심리학자 진 트웽이 Jean Twenge의 획기적인 연구 덕분에 우리는세대 간 차이가 어린 시절에 경험하는 사건들(전쟁과 우울증 같은)을넘어서고, 어릴 때 사용한 기술의 변화(라디오, 텔레비전, PC, 인터넷, 아이폰 순으로 이어진)를 반영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 P21

네 번째 트렌드는 불과 몇 년 뒤에 시작되었는데, 남자아이보다는 여자아이에게 훨씬 큰 타격을 주었다. 스마트폰이 전면 카메라 기능을 추가하고(2010년) 인스타그램이 페이스북에 인수되면서(2012년)인기가 크게 높아지자,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미지를 게시하는 유행이 크게 확산되었다. 자신의 일상생활을 촬영해 세심하게 편집한 사진과 비디오를 또래 친구들과 낯선 사람들이 단지 보기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평가까지 할 수 있도록 게시하는 청소년 수가 크게 늘어났다. Z세대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돌려 흥미진진하고 중독성이강하고 불안정하며, 그리고 곧 보여주겠지만) 아동과 청소년에게 부적절한 대체 우주로 오라고 유혹하는 ‘포털‘을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면서 사춘기를 보내는 역사상 최초의 세대가 되었다. 그 우주에서 사회적으로 성공하려면 의식 중 상당 부분을 자신의 온라인 ‘브랜드‘를 관리하는 데 쏟아부어야 한다(끊임없이 계속). 이제 또래 친구들로부터 청소년기의 산소인 인정을 받고 청소년에게 악몽과도 같은 온라인 따돌림을 피하려면 이것은 꼭 필요한 활동이 되었다. 십대 Z세대는 친구, 지인 그리고 잘 모르는 인플루언서의 화려하고 행복한 게시물을 살펴보느라 매일 많은 시간을 쏟아붓는다. 그 결과로 사용자가 만든 비디오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점점 더 많이 보는데, 이것들은 그들을 온라인에 최대한 오래 머물도록 설계된 자동 재생 기능과 알고리듬을 통해 제공된다. 이들은 친구와 가족과 함께 놀고 대화하고 접촉하고 심지어 시선을 마주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그래서 성공적인 인간 발달에 필수적인 체화된 사회적 행동에 참여하는 양도 크게 줄어든다.
따라서 Z 세대는 급진적인 새로운 성장 방식, 즉 인류가 진화한 소규모 공동체의 현실 세계 상호 작용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태에서 성장하는 방식을 시험하는 대상이다. 이것을 ‘아동기 대재편Great Rewiringof Childhood‘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이것은 마치 이들이 화성에서 성장하는 첫 세대가 된 것과 비슷하다. - P22

이와는 대조적으로 ‘가상 세계‘는 불과 지난 수십 년 동안 전형적으로 나타났던 다음 네 가지 특징을 지닌 관계와 사회적 상호 작용을가리킨다.

1. 비체화된disembodied 방식으로 일어난다. 이것은 몸이 필요 없고오직 언어만 필요하다는 뜻이다. 파트너는 인공 지능AL, artificial intelligence이 될 수도 있고, 이미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2. 비동기화된asynchronous 방식으로 일어나며 그 정도가 매우 심한데, 주로 텍스트 기반 게시물과 댓글을 통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영상 통화는 동기화된 방식으로 일어난다.)
3. 수많은 잠재적 청중을 상대로 방송을 하면서 일대다 의사소통이 아주 많이 일어난다. 다중 상호 작용이 병렬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다.
4. 진입과 퇴출 장벽이 낮은 공동체 내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기분이 나쁘면 상대방을 차단하거나 그냥 관계를 끊을 수도 있다. 공동체는 오래 지속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으며, 관계는 보통 일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 P27

 첫 번째 단서는 정신 질환증가가 불안과 우울증과 관련된 장애에 집중되었다는 점인데, 정신의학에서 이들 장애는 뭉뚱그려서 내면화 장애internalizing disorder로 분류한다. 이 장애는 심한 고통을 받는 사람이 증상을 내면적으로 느낄때 나타난다. 내면화 장애가 있는 사람은 불안과 두려움, 슬픔, 절망같은 감정을 느낀다. 이들은 반추를 자주 한다. 또 사회적 관여에 거리를 두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외면화 장애는 고통을 느끼는 사람이 그 증상과 반응을 다른 사람들을 향해 밖으로 표출할 때 나타난다. 행동 장애, 분노 조절장애, 폭력 성향과 과도한 위험 감수 성향 등이 이에 포함된다. 나이와 문화, 국가에 상관없이 내면화 장애는 여자아이와 여성에게서 더높은 비율로 나타나는 반면, 외면화 장애는 남자아이와 남성에게서더 높은 비율로 나타난다. 그렇긴 하지만 양성 모두 두 장애로 고통받으며, 양성 모두 2010년대 초반 이후에 내면화 장애가 증가한 반면에 외면화 장애는 감소했다. - P49

인류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집단 의례가 인간의 보편적인 문화라는사실에 주목했다. 16세기와 17세기의 유럽인 탐험가들은 모든 대륙의 공동체들에서 모든 구성원이 함께 모여 북을 치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비트가 강한 음악을 연주하는 등의 집단 의례를 행한다는 사실18을 발견했다. 집단 의례는 신뢰를 더욱 돈독하게 하고 균열이 생긴사회적 관계를 회복하는 기능이 있다고 널리 이야기되었다. 위대한사회학자 다비드-에밀 뒤르켐David-Émile Durkheim은 그러한 의례에서생겨나는 ‘사회적 전기 social electricity‘에 관한 글을 썼다." 그는 교감과소속감을 북돋는 데 의례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 P93

따라서 소셜 미디어 플랫폼은 지금까지 발명된 것 중 가장 효율적인 동조 엔진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똑바른 자세로 앉으라거나 칭얼대지 말라고 몇 년 동안 훈육을 해도 실패하고 마는 반면, 소셜 미디어는 청소년에게 용납되는 행동에 대한 심적 모형을 불과 몇 시간 만에 형성할 수 있다. 부모는 동조 편향의 힘을 사용할 수 없으므로, 소셜 미디어의 사회화 힘에는 상대도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다수를 모방하는 것 외에 또 한 가지 중요한 전략이 있다. 그것은 권위를 포착하고 권위자를 모방하는 것이다. 권위 편향에 관한 주요 연구를 한 사람은 로버트 보이드 밑에서 배운 진화인류학자조 헨릭 Joe Henrich이다. 헨릭은 비인간 영장류의 사회적 위계가 지배성(결국은 남에게 폭력을 가하는 능력)을 기반으로 구축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사람은 권위를 기반으로 한 대안 등급 체계가 있는데, 옛날에는 사냥이나 이야기를 잘하는 것처럼 가치 있는 영역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인 사람에게 그러한 권위가 부여되었다.
사람들은 탁월한 능력을 스스로 파악할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의존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다. 만약 대다수 사람이 프랭크가 공동체에서 가장 뛰어난 활쏘기 명인이라고 말한다면, 그리고당신이 활쏘기를 가치 있게 여긴다면, 프랭크가 활을 쏘는 모습을 한번도 본 적이 없더라도 당신은 그를 ‘존경‘할 것이다. 헨릭은 사람들이 권위 있는 사람을 (스타처럼) 크게 존경하는 이유는, 유대를 통해학습을 최대화하고 자기 자신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그와 친해지고싶은 동기를 느끼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권위 있는 사람은일부 추종자가 가까이 다가오도록 허용하는데, 추종자(헌신적인 수행원과 팬) 무리는 공동체에 자신의 높은 지위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신호가 되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의 플랫폼 설계자들은 모든 게시물과 사용자의 성공을계량화해 전시할 때(좋아요, 공유, 리트윗, 댓글 등으로) 이러한 심리학적체계를 정조준했다.  - P97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11세 무렵에 스마트폰을 처음 소유한 뒤 나머지 십대 시절 동안 인스타그램과 틱톡, 비디오게임, 온라인 생활을통해 사회화되는 미국 어린이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놀이 기반아동기 시절에는 나이에 어울리는 경험을 순차적으로 하는 것이 표준이었고, 그런 경험은 민감기에 잘 조율돼 있었으며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공유되었다. 하지만 스마트폰 기반 아동기에는 아이들이 정해진 순서 없이 쏟아지는 성인 콘텐츠와 경험의 소용돌이 속으로 내던져진다. 현실 세계가 아닌 온라인 세계에서 발달한다면, 그들의 정체성과 자아와 인간관계가 확 달라질 것이다. 받는 보상이나 처벌, 우정의 깊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람직한 것, 이 모든 것은 아이가 매주 보는 수천 개의 게시물과 댓글, 평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소셜미디어를 과도하게 사용하면서 민감기를 보내는 아이의 마음은 그사이트들의 문화에 의해 형성될 것이다. Z세대의 정신 건강 결과가밀레니얼 세대에 비해 그토록 나쁜 이유는 이것으로 설명이 가능할지 모른다. Z세대는 스마트폰으로 문화 학습을 하면서 사춘기와 민감기를 보낸 첫 번째 세대이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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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먼드 - 나도. (그는 초조하게 기침을 시작하고 곧 발작적인 기침이 이어진다. 제이미는 근심과 연민이 어린눈길로 동생을 흘낏 본다. 메리, 앞응접실을 통해 들어온다. 얼핏 보기엔 아까보다 덜 초조해하고 아침 식사 직후의 상태와 비슷해진 걸 제외하곤 달라진 점을 찾을 수 없으나 자세히 관찰하면 눈이 더반짝거리고, 현실에서 한 걸음 물러나서 말하고 행동하는 듯 목소리와 태도가 묘하게 초연해진 걸 알수 있다.)
메리 - (걱정스럽게 에드먼드에게로 가서 어깨를 안으며)이렇게 기침을 하면 안 되는데, 목에 안 좋아. 감기에다 목까지 아프면 안 되지. (에드먼드에게 키스한다. 에드먼드는 기침을 그치고 걱정스런 눈으로 어머니를 흘낏 살핀다. 그러나 어머니의 다정함이 그의 의심을 잠재워 잠시 그는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반면 제이미는 한 번 유심히보고는 자신의 의심이 적중했음을 깨닫는다. 그는 바닥으로 시선을 떨구고 방어적인 냉소가 어린 쓰라린 표정이 된다. 메리는 에드먼드의 의자 팔걸이에 살짝 걸터앉아 아들의 어깨를 안고 말을 잇는다. 그녀의 얼굴은 에드먼드의 뒤쪽 위에 있어서 그는 어머니의 눈을 볼 수가 없다.) - P69

에드먼드 - (불안해서)형, 그만둬! (제이미, 다시 창밖을 내다본다.) 그리고 어머니도요. 왜 갑자기 형한테 그러세요?
메리 - (매정하게) 눈만 뜨면 남을 비웃잖니. 다른 사람들 약점이나 찾고. (그러다 돌연 감정 없는 초연한목소리로 변하며) 운명이 저렇게 만든 거지 저 아이 탓은 아닐 거야. 사람은 운명을 거역할 수 없으니까. 운명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손을 써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일들을 하게 만들지. 그래서 우리는 영원히 진정한 자신을 잃고 마는 거야. (에드먼드는어머니의 이상한 태도에 겁이 난다. 그는 어머니의 눈을 보려고 하지만 어머니는 시선을 피하고 있다.
제이미는 어머니를 돌아봤다가 다시 재빨리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 P72

2막 2장

같은 장소, 반 시간쯤 뒤. 탁자 위에 있던 술 쟁반이 치워지고 없다. 막이 오르면 가족들이 점심 식사를 마치고돌아온다. 메리가 맨 먼저 뒷응접실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남편이 그 뒤를 따라나온다. 그는 아까 1막에서 아침을 먹고 등장할 때와 비슷한 상황인데도 아내와 함께 나오지 않는다. 그는 아내를 만지려고도,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비난하는 표정의 얼굴에는 이제 지치고 무력한, 해묵은 체념의 빛까지 어려 있다. 제이미와 에드먼드가 아버지 뒤를따라 나온다. 제이미의 얼굴은 방어적인 냉소주의로 딱딱하게 굳어 있다. 에드먼드도 형의 이러한 방어술을 흉내내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몸이 병들었을뿐더러 마음까지 아프다는 걸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 P83

메리 - (아들에게 초연하게 키스한다.) 잘 다녀와라. 집에서 저녁 먹으려거든 늦지 않도록 해. 아버지한테도 그렇게 말씀드리고. 너도 브리지트 성질 알잖니. (에드먼드, 서둘러 나간다. 티론이 현관에서 외친다. "다녀오겠소. 메리." 제이미도 외친다. "다녀올게요. 어머니." 메리, 대답한다.) 다녀들 와요. (그들이 나가고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그녀는 탁자 옆에 와서 서서 한 손으로는 테이블을 두드리고 한 손으로는 머리를 매만진다. 겁에 질린 고독한 눈으로 실내를 둘러보며 중얼거린다.) 여긴 너무 쓸쓸해. (지독한 자기 경멸로 얼굴이 굳어진다.) 또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구나. 사실은 혼자 있고 싶었으면서. 저들이 보이는 경멸과 혐오감 때문에 함께 있는 게 싫었으면서. 저들이 나가서 기쁘면서. (절망적인 웃음을 흘린다.) 성모님. 그런데 왜 이렇게 쓸쓸한 거죠?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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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먼드 - 나도. (그는 초조하게 기침을 시작하고 곧 발작적인 기침이 이어진다. 제이미는 근심과 연민이 어린눈길로 동생을 흘낏 본다. 메리, 앞응접실을 통해들어온다. 얼핏 보기엔 아까보다 덜 초조해하고 아침 식사 직후의 상태와 비슷해진 걸 제외하곤 달라진 점을 찾을 수 없으나 자세히 관찰하면 눈이 더반짝거리고, 현실에서 한 걸음 물러나서 말하고 행동하는 듯 목소리와 태도가 묘하게 초연해진 걸 알수 있다.)
메리 - (걱정스럽게 에드먼드에게로 가서 어깨를 안으며)이렇게 기침을 하면 안 되는데. 목에 안 좋아.
감기에다 목까지 아프면 안 되지. (에드먼드에게 키스한다. 에드먼드는 기침을 그치고 걱정스런 눈으로 어머니를 흘낏 살핀다. 그러나 어머니의 다정함이 그의 의심을 잠재워 잠시 그는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반면 제이미는 한 번 유심히보고는 자신의 의심이 적중했음을 깨닫는다. 그는 바닥으로 시선을 떨구고 방어적인 냉소가 어린 쓰라린 표정이 된다. 메리는 에드먼드의 의자 팔걸이에 살짝 걸터앉아 아들의 어깨를 안고 말을 잇는다. 그녀의 얼굴은 에드먼드의 뒤쪽 위에 있어서 그는 어머니의 눈을 볼 수가 없다.)  - P69

메리 - (매정하게) 눈만 뜨면 남을 비웃잖니. 다른 사람들 약점이나 찾고. (그러다 돌연 감정 없는 초연한목소리로 변하며) 운명이 저렇게 만든 거지 저 아이 탓은 아닐 거야. 사람은 운명을 거역할 수 없으니까. 운명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손을 써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일들을 하게 만들지. 그래서 우리는 영원히 진정한 자신을 잃고 마는 거야. (에드먼드는어머니의 이상한 태도에 겁이 난다. 그는 어머니의눈을 보려고 하지만 어머니는 시선을 피하고 있다. 제이미는 어머니를 돌아봤다가 다시 재빨리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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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유대 민족에 대한 범죄는 무엇보다도 인류에 대한 범죄이며 국제 재판소에 대한 타당한 주장이 여기에 의존하고 있다는 주장은 아이히만이 재판받고 있는 법과 심각한 모순을 이룬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자신의 죄수를 포기해야 한다고 제안한 사람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1950년의 나치스 및 나치 부역자 (처벌)법은 잘못된 것이고, 그것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과는 모순되며, 사실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고 주장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것은 전적으로 옳은 것이라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마치 살인자가 처벌되는 이유는 그가 공동체의 법을 위반했기 때문이지 그가 스미스 집안에서 그 남편이자 아빠이며 생계를 위해 일하는 자를 빼앗았기 때문이 아닌 것처럼, 국가가고용한 근대의 대량 살인자들이 재판받아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인류의 질서를 위반했기 때문이지 그들이 수백만 명을 죽였기 때문은 아니다. 살인이라는 범죄와 대량학살이라는 범죄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따라서 후자가 "적절히 말하면 새로운 범죄가 아니다"는 일반적인착각보다도 이러한 새로운 범죄에 대한 이해에서 더 위험한 것은, 또는 이러한 새로운 범죄를 다룰 수 있는 국제형사법의 출현에 더욱 방해가 되는 것은 없다. 대량학살이라는 범죄의 핵심은 전적으로 다른 질서가 붕괴되고 또 전적으로 다른 공동체가 훼손되었다는 것이다.  - P373

 일단 한번 등장하여 인류의 역사에 기록된 모든 행위는 그러한 발생이 과거의 일이 되어버린 지 한참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하나의 가능성으로 인류에게 남는 것은 인간적 사건들의 본질 속에 놓여 있다. 어떠한 처벌도 범죄의 발생을 예방하는 충분한 억지력을 가진적이 없었다. 반대로 일단 어떤 특정한 범죄가 처음으로 발생한다면 처벌이 무엇이든 간에 그 범죄의 재출현은 그의 최초의 출현보다도 훨씬가능성이 높다. 나치스에 의해 저질러진 범죄가 재발할 가능성에 대해말하는 특정한 이유들은 훨씬 더 그럴듯하다. 근대의 인구 폭발과 기술적 장치들의 발견이 동시에 일어났다는 두려운 사실, 게다가 기술적 장치들은 자동화를 통하여 심지어 노동을 보더라도 그 인구의 많은 부분을 ‘잉여‘로 만들어 버릴 것이고 또 핵에너지를 통하여 마치 히틀러의가스 시설을 사악한 아이들의 서투른 장난감처럼 보이게 만드는 도구들을 사용해서 이러한 이중적 위협을 처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는점은 우리를 전율케 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본질적으로 바로 그 같은 이유에서 전례 없는 일이 일단 발생했다면 그것은 미래에 선례가 될 것이고, ‘인류에 대한 범죄‘에 대해 다루는 모든 재판은 오늘날 아직 ‘이상‘인 기준에 따라 판단되어야만 한다.  - P375

아이히만의 경우 성가신 점은 바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다는 점.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이 도착적이지도 가학적이지도 않다는 점, 즉 그들은 아주 그리고 무서울만큼 정상적이었고 또 지금도 여전히 정상적이라는 점이다. 우리의 법률 기관들이 가지고 있는 관점과 판결에 대한 우리의 도덕 기준의 관점에서보면 이러한 정상적인 모습은 잔혹한 일들을 모두 모아놓는 것보다도 더 끔찍한 일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뉘른베르크에서 피고와 그의 변호사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언급된 것처럼) 사실상 인류의 적인 이러한 새로운 유형의 범죄자는 자기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거나느끼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드는 상황에서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아이히만 재판에서 나온 증거는 주요 전법들에 대한재판에서 제시된 증거보다 훨씬 더 신빙성이 있다. 자신은 분명한 양심을 갖고 있었다는 항변은 보다 쉽게 기각되었는데 왜냐하면 그러한 항변은 ‘상관의 명령‘에 대해 복종해야 한다는 논지와, 간헐적인 불복종에 대한 여러 형태의 자부심이 결합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록 피고의 나쁜 신념이 분명히 드러난다고 해도, 죄를 느끼는 양심이 실제로 입증되는 유일한 근거는 나치스, 특히 아이히만이 속한 범죄 조직들이 전쟁 끝나기 전 몇 달 동안 그들의 범죄의 증거들을 그토록 아주 열심히 파괴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 근거는 다소 위태롭다. 대량학살의 법은 그것이 새로운 것이기 때문에 아직도 다른 나라들에 의해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인정만을 그것은 입증할 뿐이었다. 혹은 나치스의 언어로 말하자면 그들은 인류를 ‘하류 인간들의 지배‘로부터, 특히 시온의 장로들의 지배로부터 인간을 ‘해방‘하는 싸움에서 패했다는 것이다. 또는 일상적인 언어로 말하면, 그것은 패배에 대한 인정을 입증할 뿐이었다. 만일 그들이 승리했다면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가 죄책감에 물든 양심으로 고통을 받았겠는가?
아이히만 재판에서 논란이 된 보다 큰 문제들 가운데 가장 우선적인것은 잘못을 행하려는 의도가 범죄를 구성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모든 현대 법체계에서 통용되는 가정이었다. 문명화된 사법권이 이처럼 주관적 요소에 대한 고려를 하는 것보다 더 자부심을 가진 것은 없었다. 이러한 의도가 결여된 곳에서는, 어떤 이유에서든 심지어 도덕적 불건전성의 이유에서라 하더라도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하는 능력이 손상된곳에서는, 우리는 어떤 범죄가 저질러졌다고 느끼지 않는다.  - P379

운 좋게도 우리는 그만큼 멀리 나갈 필요는 없습니다. 피고 자신은 전대미문의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주된 정치적 목적이 된 국가에서 산 모든 사람의 편에 서서 그 죄가 현실적으로가 아니라 오직 잠재적으로만 유죄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내적이고 외적인 어떠한 우연적 상황을 통해 피고가 범죄인이 되는 길로 내몰렸는지 간에, 피고가 행한 일의 현실성과 다른 사람들이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잠재성 사이에는 협곡이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오직 피고가 한 일에만 관여할 뿐, 피고의 내적 삶과 피고의 동기에서 가능한 비범죄적본성 또는 피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범죄 가능성에는 관여하지않습니다. 피고는 피고의 이야기를 불운에 찬 이야기로 만들어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을 알고 있는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는 만일 상황이 보다 유리했더라면 피고는 우리 앞이나 또는 다른 형사재판소로 나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상당히 있다는 점도 당신에게 인정해 줄 용의가 있습니다. 논증을 위해서 피고가 대량학살의 조직체에서 기꺼이 움직인 하나의 도구가 되었던 것은 단지 불운이었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피고가 대량학살 정책을 수행했고, 따라서 그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피고와 피고의 상관들이 누가 이 세상에 거주할 수 있고 없는지를 결정한 어떤 권한을 갖고 있는 것처럼) 이 지구를 유대인 및 수많은 다른 민족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기를 원하지 않는 정책을 피고가 지지하고 수행한 것과 마찬가지로, 어느 누구도, 즉 인류 구성원 가운데 어느 누구도 피고와 이 지구를 공유하기를 바란다고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교수형에 처해져야 하는 이유, 유일한 이유입니다. - P382

나는 재판에 직면한 한 사람이 주연한 현상을 엄격한 사실적 차원에서만 지적하면서 악의 평범성에 대해 말한 것이다. 아이히만은 이아고도 맥베스도 아니었고, 또한 리처드 3세처럼 "악인임을 입증하기로" 결심하는 것은 그의 마음과는 전혀 동떨어져 있는 일이었다. 자신의 개인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데 각별히 근면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는 어떠한 동기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적인 것이 아니다. 그는 상관을 죽여 그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살인을 범하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문제를 흔히 하는 말로 하면 그는 단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로 하여금 경찰심문을 담당한 독일계 유대인과 마주앉아 자신의 마음을 그 사람 앞에 쏟아 부으며 어떻게 자기가 친위대의 중령의 지위밖에 오르지 못했고 또 자기가 진급하지 못한 것이 자기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또다시 설명을 하면서 4개월 동안 앉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같은 상상력이 결여 때문이었다. 원칙적으로 그는 이 모든 일의 의미에 대해아주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법정에서 있었던 최후 진술에서 그는 "(나치] 정부가 처방한 가치의 재평가"에 대해 말한 것이다. 그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로 하여금 그 시대의 엄청난 범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게 한 것은 결코 어리석음과 동일한 것이 아닌) 순전한 무사유(sheer thoughtlessness)였다. 그리고 만일 이것이 ‘평범한‘ 것이고 심지어 우스꽝스런 것이라면, 만일 이 세상의 최고의 의지를 가지고서도아이히만에게서 어떠한 극악무도하고 악마적인 심연을 끄집어내지 못한다면, 이는 그것이 일반적인 것이라고 부르는 것과 아직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이, 더구나 교수대 아래 서 있는 사람이 자신이 생전에 장례식장에서 들었던 것 외에 생각해 낼 수 없었다는것은, 그리고 이러한 ‘고상한 말‘이 자기 자신의 죽음이라는 현실을 완전히 모호하게 만들어 버렸다는 것은 분명코 아주 일상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처럼 현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과 이러한 무사유가 인간 속에 아마도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대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사실상 예루살렘에서 배울 수있는 교훈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교훈이지 현상에 대한 설명도 아니고 그에 대한 이론도 아니다. - P391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집단적 죄나 집단적 무죄 같은 것은 없다는 점에, 그리고 만일 그런 것이 있다면 어느 한 개인은 유적이거나 무죄일수가 없을 것이라는 점에 동의할 것이다. 물론 이것이 집단의 개별 구성원이 한 일과는 완전히 별개로 존재하는 정치적 책임과 같은 것이 있어서 도덕적 관점에서 판단될 수도 또 형사재판에 세울 수도 없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정부는 그의 선임 정부의 행위와 과실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떠맡으며, 모든 민족은 과거의 행위와 과실에대한 정치적 책임을 떠맡는다. 나폴레옹이 혁명을 통해 프랑스에서 정권을 장악한 뒤에, 자기는 생 루이에서 공공안전위원회에 이르기까지프랑스가 행한 모든 것에 대해 책임진다고 말했을 때, 그는 모든 정치적 생명의 기본적 사실들 가운데 하나를 다소 강조하여 서술했을 뿐이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말해서, 모든 세대가 역사적 연속성 속에서 탄생함에 따라 선조들의 행위에 의해 축복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조들의 죄에 의해서도 짐을 지게 되는 것 이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그런데 이런 종류의 책임은 우리가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며, 단지 은유적 의미에서만 사람들은 자기가 아니라 자기의 아버지 또는 자기의 민족이 한 일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낀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말해 만일 어떤 사람이 실제로 어떤 일에 대해서 죄가 있다면 그가 모든 죄에 대해서 자유롭게 느낀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특정한 어떤 일을 하지도 않고서 죄책감을 느낀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어느 날 국가들 사이의 어떤 정치적 책임들이 국제 재판소에서 심판받게 될 것이라는 것은 아주 상상 가능한 일이다. 상상이 가능하지 않은 일은 그러한 법정이 개인의 유죄와 무죄를 선언하는 형사재판소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개인적 유죄와 무죄에 대한 질문, 피고와 희생자 모두에게 정의를 부여하는 행위는 형사재판소에서 문제가 되는 유일한 일이다. 아이히만 재판도 예외는 아니다. 비록 이곳의 법정이 법전에서 발견되지않는 범죄, 그와 유사한 것이 적어도 뉘른베르크 재판 이전에는 어느 법정에서도 알려진 적이 없었던 범죄를 직면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 보고서는 예루살렘 법정이 정의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어느정도 성공했는가라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다루고 있지 않다. - P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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