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싶었지만 울지는 않았어, 어쩌면 울었어야 할지도 몰라. 그 방에서 우리 등 다를 눈물 후에 익사시켜서, 우리의 고통에 종지부를 찍어야 했다. 그렇게 했다면 우리는 이천 장의 백지 속에 얼굴을 묻은채 둥둥뜬 모습으로, 아니면 내 눈물이 증발하고 남은 소금에 묻힌 채 발견되었을 거야. 그제야, 그렇게 늦게야, 오래전 내가 타자기에서 앙크 리본을 빼놓았던 기억이 났어. 그것은 타자기에 대한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복수였어, 실타래에서 실을 뽑듯 리본을 길게 뽑아버렸지 - 애나를 위해 만들었던 미래의 집들, 대답 없는 편지들- 마치 그것이 나를 실제의 삶으로부터 보호해 주기라도할 것처럼, 그런데 더 나쁜 것은 차마 말로는 할 수가 없다, 써야지! - 네 어머니는 종이가 텅 비어 있다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던 거야. 힘들어하는 줄은 알고 있었다. 산책할 때면 내 팔을 잡곤 했으니까, "내 눈은 별로예요, 라는 말을 자주 했지만, 나를 만지려는 핑계이거나, 그냥 하는 말이라고만 생각했어, 왜 도움을 청하지 않았을까, 왜 도움을 청하는 대신, 볼 수도 없으면서 그 많은 잡지와 신문들을 부탁했을까, 그것이 그녀 나름대로 도움을 청하는 방식이었을까? 그래서 그렇게 난간을 꼭 붙잡았었나, 그래서 내가 보는 앞에서는 요리를 하지 않았던 건가, 그래서 내가 보는 앞에서는 옷을 갈아입거나, 문을 열지 않았던 건가? 항상 앞에 뭔가 읽을거리를 두고 있었던 것도 다른 것을 볼 필요없게 하기 위해서였나? 그 긴 세월 동안 내가 그녀에게 적어줬던 모든 말들, 난 그녀에게 단 한 마디도 전하지 못했단 말인가? - P172
나는 부엌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게일의 등 뒤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이름도 근사해요." 다시 우리 둘만 남게 되자, 에이다가 말했다. "오스카, 넌 게일을 아주 불편하게 만들었어." "무슨 말씀이세요?" "게일이 당황했잖니." "전 친절하게 대하려고 했을 뿐인데요." "네 행동에는 지나친데가 있었어." "친절이 지나칠 수도 있어요?" "생색을 내는 태도였단 말이야." "그게 뭐예요?" "어린아이를 대하는 투로 말했다는 거지" "전 안 그랬어요." "가정부가 된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게일은 중요한 일을 하고 있고, 나는 정당한 보수를 주고 있어." "전 그저 친절하게 대하려고 했을 뿐인걸요." 그때 갑자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이름이 오스카라고 말한 적이 있었나? - P207
어떻게 이렇게 외로운 이가 내가 살아온 동안 죽 바로 가까이에 살고 있었단 말인가? 진작 알았더라면 위층으로 올라와 친구가 되어주었을 텐데, 아니면 장신구라도 좀 만들어주든가, 유쾌한 농담도 해주고, 아니면 탬버린 콘서트라도.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이렇게 외로운 또 다른 누군가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지 않을까 궁금해졌다. 비틀스의 「엘리노어 리그비(Eleanor Rigby)」가 생각났다. 정말 그렇다. 그들은 모두 어디 출신일까? 모두 어디에 속해 있을까?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에 맥박, 체온, 뇌파 등에 종합적으로 반응하는 화학 물질을 처리해서, 피부색을 기분에 따라 바꿔주면 어떨까? 엄청나게 흥분했을 때는 피부가 초록색으로 바뀌고, 화가 나면 붉은색, 기분이 십장생 같을 때는 갈색, 우울할 때는 파란색으로 바뀌는거다. 그러면 모두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알 수 있게 될 테고, 서로 좀 더조심할 수 있겠지. 피부 빛이 자주색이 된 사람한테 네가 늦게 와서 화가 났다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마찬가지로 분홍색이된 사람한테는 등을 두드려주면서 "축하해!" 라고 말해 주고 싶을 것이다. - P225
좋은 발명이라고 생각되는 이유가 또 있다. 어떤 기분이 강하게 들기는 하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알쏭달쏭할 때가 아주 많기 때문이다. 내가 낙담한 건가? 실은 겁을 먹었을 뿐인가? 그러한 혼란에 휘둘리다보면, 이도 저도 알 수 없는 애매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상태에 빠진다. 하지만 이 특수한 물만 있으면 오렌지색이 된 손을 보며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난 행복해! 실은 내내 행복했던 거야! 정말 다행이야! - P225
"나도 많이 운단다. 너도 알잖니." "엄마가 우는 건 별로 못 봤어요." "너한테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으니까 그럴 거야." "왜요?" "우리 둘 다에게 좋지 않으니까." "그건 그래요." "어쨌든 우린 계속 살아가야 하지 않겠니." "얼마나 많이 울었어요?" "얼마나 많이?" "한 숟가락만큼? 한 컵만큼? 욕조 하나를 채울 만큼? 흘린 눈물을 다 더해 본다면요." "그런 식으로는 따질 수 없어." "그럼 어떻게요?" "엄마는 행복해질 방법을 찾으려고 애쓰는 중이야. 웃으면 행복해지지." "전 행복해지는 방법 따위 찾지 않을 거예요. 앞으로도 그럴거고요." "저런, 그러면 안 돼." "왜요?" "아빠는 네가 행복해지기를 원하실 테니까." "아빠는 제가 아빠를 기억하길 바라실 거예요." "아빠를 기억하면서 행복해질 수도 있잖니?" "왜 론 아저씨를 사랑하세요?" "뭐라고?" "엄마는 분명히 론 아저씨와 사랑에 빠졌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알고 싶은 건, 왜냐고요? 론 아저씨가 뭐가 그렇게 대단한데요?" "오스카, 세상이 보기보다 더 복잡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해봤니?" "늘 생각해요." "론은 친구야." -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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