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은 범죄를 감소시키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확증된 사실 대신에 다음의 가설을 내세워야 할지 모른다. 즉, 감옥은 위법행위가 명확히 한정된 유형이자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덜 위험한 - 극단적경우에는 이용 가능한 - 형태인 범죄를 생산하고, 표면적으로는 사회의 주변부에 놓여 있지만 통제의 중심적 대상으로 취급되는 범죄자집단을 생산하고, 병리학에서의 피실험자, 범죄자를 생산한다는 가설이다. 감옥의 성공, 이것은 법과 위법행위들을 둘러싼 투쟁의 과정에서 ‘범죄‘를 특성화시킨 점에 있다. 우리는 어떻게 감옥 체계가 법률위반자를 범죄자로 대체했으며, 또한 모든 범위의 가능한 인식을 사법의 실무에 일일이 고정시켰는가 하는 문제를 앞에서 살펴보았다. 그런데 범죄 대상을 설정하는 그 과정은 위법행위들을 분리하고, 그것들로부터 범죄를 격리하는 정치적 조작과 일체를 이룬다. 감옥은이 두 가지 메커니즘의 접합점으로서, 그것들로 하여금 서로를 보강하고 범법행위 뒤에 놓여 있는 범죄를 객관화하고, 위법행위의 움직범죄를 고정시킬 수 있게 한다. 감옥의 성공은 그토록 대단한것이어서, 한 세기 반에 걸친 ‘실패‘ 후에도 감옥은 변함없이 존재하면서 동일한 효과를 낳고 있으며, 감옥을 폐지하자고 하면서 사람들은 엄청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실정이다. - P500
이 반反형벌 논쟁의 과정에서 가장 멀리 나아간 것은 아마도 푸리에주의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범죄에 긍정적 가치를 부여한 정치이론을 아마도 가장 먼저 만들어 낸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에 의하면 범죄가 ‘문명‘의 결과일지라도, 그것은 또한 그 사실 자체로 인하여문명에 대항하는 하나의 무기이다. 그것은 자체 안에 활력과 미래를간직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억압의 원리로 지배되는 사회질서의 명령을, 강인한 기질 때문에 거부하고 무시하는 사람들, 그 편협한 속박에 갇혀 있기에는 너무나 강한 나머지 그것을 깨뜨려 버리고 마는 사람들, 말하자면 어린아이처럼 그대로 있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사형 집행인이나 감옥을 통해 계속 죽어 간다. 그러므로 죄를 범하는 천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이 어떤 계급에 속하느냐에 따라 그들을 권력에 가까이 가게 하거나 감옥에 들어가게 만드는 역학관계가 있는 것이다. 즉, 현재의 사법관들이라도 가난하다면 아마 도형장을 가득 채울 운명이 될 수 있으며, 도형수들이라도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법원에서 재판관 자리에 앉아서 재판을 진행하고 있을지 모른다. "요컨대, 범죄의 존재는 다행스럽게도 ‘인간성의 강인함‘을 나타낸다. 그런 만큼 실제의 범죄에서 보아야 할 것은 유약함이나 질병이라기보다는 굽힘없이 솟구치는 에너지, 즉 모든 사람들의 눈에 이상한 매력으로 비칠 수도 있는 ‘인간 개인의 강력한 저항‘이다. - P520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모든 메커니즘들을 주관하는 것은 하나의 기구나 한 가지 제도의 단일한 운용이아니라, 전투의 필연성과 전략의 규칙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억압 -거부 - 배제 · 소외 등과 같은 제도적 개념은, 감옥과 같은 도시의 한복판에서 교활한 완화책이나 공개할 수 없는 악의, 사소한 술책, 타산적 방법, 기술, 결국 규율화된 개인의 제조를 허용하는 ‘과학‘, 이러한 것들의 형성과정을 기술하는 데에는 적합하지않다. 복잡한 권력 관계의 결과와 도구, 다양한 ‘감금‘ 장치들에 의해 예속화된 신체와 힘, 그러한 전략의 구성 요소인 담론의 대상들 사이에서, 권력의 중심에 있거나 중앙권력 지향적인 사람들 틈에서, 으르렁거리며 씨우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 P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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