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책을 읽도록 태어나지 않았다. 독서는 뇌가 새로운 것을 배워 스스로를 재편성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인류의 기적적 발명이다." - 미국 신경심리학자 매리언 울프, <<책 읽는 뇌>>에서 .
- P19

모르는 날말들이 끝내 제공하는 삶의 지대책을 읽는 행위란 나에게, 내가 사랑하거나 사랑할 이들에게 당도할 시간으로 미리 가 잠깐 사는 것이다. 아직 살아보지 않은 시간이라 당장 이해하기 힘들어도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럴 수도 있는 모양이군.‘ 하는 식의 감(感)을 얻는다. 신비로운 일이다.
정신 밭에 뿌려둔 감(感)이라는 씨앗은 여하튼 어떻게든 자란다. 그러다 문득 내게 당도해버린 시간을 통과할 적에 떠오른다. 처음이지만 처음이 아니고 혼자지만 혼자가아닌 것 같은 기분, 서툴게 더듬어 찾아가면 오래 전 내 정신 밭에 뿌려둔 씨앗 자리에 뼈가 자라고 살이 붙어 서 있는 형상과 마주한다.
내게는 열아홉에 읽은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그러했다. 모르는 낱말로 가득해 나름 자부한 독해력에 혐의를 두게 했다. 정신에 균열이 가불편했을 뿐 아니라 가뜩이나 허무한 아이가 더 허무해져버렸다. 이상하리만치 잊히지 않았다. 흡사 나쁜 남자에게 매혹당한 순진한 소녀 같았다.
- P26

돌아보면 어느 시절이라 이르집을 그 필요 없이 내내 쉬운 게 없었다. 천성이 유약해 억척 부리고 사느니  차라리 세상이 망해버리길 바랐고 어딜 봐도 시틋한 것들 천지였다. 그러나 오늘 나는, 살아 있어서 기쁘다. 어제는 알지 못했으나 오늘 깨우쳐 내일 성장할 나를 기대하는 것은 삶의 지렛대다. 인간은 홀로 이 무거운 삶을 온전히 짊어질 수 없다. 지렛대가 필요하다. 그러니 어찌 아니라고 할수 있을까.
- P28

"고속도로에서 돈 받는 데 있잖아. 근데 사람이 없는거야. 차에다 뭐 달면 거기서 요금 빼간다던데 그걸 안 달아가지고 못 내고 지나버렸어."

딱 맞는 어휘를 떠올렸다면 이리 말했을 것이다.

"톨게이트에서 하이패스 전용차로로 들어서는 바람에 통행료를 정산하지 못하고 통과해버렸어. 내 차에 하이패스 단말기가 없거든."

어휘력이 부족하면 지시대명사를 많이 동원하고 활용범위가 넓은 낱말을 남용한다. 그렇다면 먼저 문장을 구사한 사람이 떠올리지 못한 단어는 모두 몇 개일까?
‘톨게이트‘, ‘하이패스‘ 두 개뿐일 거 같지만 ‘통행료‘
와 ‘정산하다‘, ‘인출하다‘나 ‘결제하다‘, ‘수납원‘ 등의 낱말도 떠올리지 못했다.  - P33

베아트리스는 맛이 궁금해 안달하고 마침내 버질이 소개한다. "배를 작게 잘라내면 속살은 새하얗지, 안에 전등이 켜진 것처럼 하얗게 빛난다고, 그래서 과도 하나와 배 하나만 있으면 어둠이 무섭지 않아."  - P39

피로에 절고 스트레스에 눌려 대상과 사물을 데면데면하게 지나칠라치면 경고등처럼 그때를 켠다.

"너의 나라 바다는 무슨 색이니?"

삼면이 다르고, 계절마다 다르고, 아침저녁으로 다른바다 색깔을 두고 ‘블루‘로 싸잡아 표현한 과거의 나를 부끄러워하며 현재의 내 눈을 씻는다. 그러다 어느 날 새삼스레 궁금했다. 그렇게 물을 수 있는 낭만과 여유는 어디에서 연유할 수 있었을까.……. 하고, 내게 일생의 화두를 선물한 그는 오늘은 여기에 있으나 내일은 어디로 내쳐질지 알 수 없어 불안하고 고독한 망명자였다. - P61

내가 잘못 본게 아니라 당신이 못 본 것에 대하여, 당신이 잘못 본 게 아니라 내가 못 본 것에 대하여.

우리가 그것들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 사람은 자기 세계 밖에 있는 상대의 언어를 ‘당장‘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We cannot think what we cannot think.- 비트겐슈타인). 내가 생각하는 대화의 반대말은 주장이다.

우리가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
- P9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직 저 애의 양심은 세상 물정에 물들어 있지 않았어. 하지만 조금만 나이를 먹어봐, 그러면 저 앤 구역질을 느끼며 울지 않을 거야. 어쩌면 세상에서 - 옳지 않은 일을 보아도 울먹이지 않을 거야, 앞으로 몇 년만 나이를 더 먹어봐, 그렇게 되지 않을 테니."
"아저씨, 내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운다는 거예요?"
딜의 남자다움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주는 고통 때문에 우는 거지 —— 심지어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말이야. 흑인들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미처생각하지는 않은 채 백인들이 흑인들에게 안겨주는 그 고통 때문에 우는 거란 말이다."
- P38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못하는 홍길동이 적지 않다. 허균의 홍길동처럼 서자라서가 아니다. 마땅한 어휘를 떠올리지 못해서다.
아버지가 아버지고 형이 형인 것처럼 세상의 대상과사물, 현상 등에는 알맞은 어휘가 있는데 딱 짚어 부르질못 한다. 머릿속에 형체는 있으나 명칭이나 이름이 바로 나오질 않는다. 누가 머릿속 연상을 찍는 카메라는 발명 안하나 싶다. 자신이 느낀 기분이나 감상 등을 표현하고 싶지만 어떻게 옮겨야 할지 갈팡질팡한다. 체온기처럼 기분이나 감상을 감지해 알려주는 기기는 누가 발명 안 하나 싶다. - P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의 사냥은 얼마나 힘들고 위험한 일이었는지요. 당신은 호모 사피엔스처럼 던지거나 쏘는 무기가 없었습니다.
가장 발달한 무기는 바로 르발루아 기술로 만든 돌촉을 단창이었어요. 창이라지만 길이가 별로 길지 않아서 당신은 덩치가 커다란 짐승들과 거의 육탄전을 벌여야 했답니다. 실제로 학자들이 화석으로 나온 네안데르탈인의 뼈를 연구해 보니, 몸이 투우나 로데오(카우보이 말타기 경기)를 한 것처럼 큰충격을 받은 상태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사냥이란 보통 일이아니었고, 한번 하려면 굉장한 신체적 위험을 감수해야 했지요.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까요..
다행히 당신은 집단생활을 하고, 사냥도 함께했기 때문에 동물과 1대 1로 싸울 필요는 없었어요. 동물은 지나가다 우연히 만나는 것을 주로 사냥했지요.. 하지만 가끔은 대규모인원이 계획을 세워서 사냥을 하기도 했습니다. 여럿이서  소떼를 우르르 몰아서 절벽에서 떨어뜨려 죽이는 식으로 ‘작전‘
이라는 것을 세워서 사냥하기도 했죠. - P287

당신의 문화는 수십만 년 동안 정체됐고 그 동안 기술적인 발전이라고 할 만한 것이 전혀 없었어요. 호모 사피엔스가 20만 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구석기를 만들다가 우주까지 날아간 것과 비교하면 정말 변화가 느리지요. 당신의기술은 호모 사피엔스가 가지고 들어온 새로운 구석기 문화를 일부 배우면서 조금 변했지만, 그건 거의 마지막 순간에야 일어난 일이지요.
이렇게 문화나 기술이 정체된 것을 언어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학자들이 많아요. 언어는 지적 교류를 가능하게하는 수단이에요. 그런데 언어가 없으면 교류는 확실히 줄어들고 문화나 기술의 획기적인 발전도 줄어들 수밖에 없어요.
그럼 당신은 말을 아예 하지 못했던 걸까요? 그건 아니에요.
- P289

표현이 조금 이상합니다만, 사실이에요. 호모 사피엔스 이외의 다른 인류에게는 ‘할머니‘라는 존재가 매우 드물었거든요. 수명이 그리 길지도 못했고, 활동력과 생식력이 뛰어나지 않은 나이 많은 여성이 살아남기에 그리 호의적인 환경도아니었으니까요. 당신네 네안데르탈인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할머니의 존재는 진화의 큰 수수께끼 였습니다. 여러 설명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가임 기간이 끝난 여성이 직접자손을 낳지 못하게 되자 손자를 돌봐서 종족의 생존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준다‘는 인류학 가설입니다. 일명 ‘할머니 가설‘이지요. 이 이론은 여성이 다른 동물의 암컷과 달리 폐경기 이후에도 오래 사는 이유를 설명해 준답니다. 그런데 이상희 교수와 라파엘 카스파리 미시건대 교수가 2004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네안데르탈인은 수명이 짧아서 30세 이상의 인구(평균 수명이 35살이니 30세면 할머니예요.)가 이보다젊은 층의 39%에 불과했다고 해요. 할머니가 드물었다는 뜻이지요. 반면 3만~1만 8000년 전 살던 호모 사피엔스는 30세 이상 인구가 젊은 층보다 두 배 이상(208) 됐습니다. 할머니가 그만큼 흔했다는 뜻이에요. 현생인류와 그 이전 인류는 할머니가 있는 인류와 없는 인류로 나뉜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 P293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불경한 상상을 합니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호모 사피엔스와 만난 순간입니다. 멀리 검은 피부를한 사람들이 보입니다. 말로만 듣던 호모 사피엔스가 드디어 당신의 마지막 피난처인 이베리아 반도 끝까지 찾아왔습니다. 바느질을 해서 만든 정교하고 따뜻해 보이는 옷을 입고, 당신은 상상도 해 본 적 없는 무기인 쓰는 무기(활)와 길고 긴 창을 둘러매고 있습니다. 목에는 색칠한 조개 껍질을달고 있군요. 네안데르탈인이 색을 칠하거나 무늬를 만드는일이 있는지, 장례에 꽃을 장식하는 일이 있는지, 그러니까상징을 이해하는지에 대해서는 최근 동조하는 의견이 많습니다. 예술가이기도 한 호모 사피엔스와 당신은 이런 점에서도 비슷한 걸까요.
자, 당신과 호모 사피엔스가 이제 서로를 의식하며 바라볼 정도로 가까워졌습니다. - P297

그 모든 의문의 정점에는 현생인류와의 혼혈 여부가있었다. 서로 다른 종 사이에는 대를 이을 수 있는 자손이 태어날 수 없다는 게 생물학에서의 느슨한 합의다. 하지만 자연에서 예외 사례가 많이 발견되기에 둘이 피가 섞였을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더구나 이미 멸종한 생물을 그저 뼈의 형태만으로 구분하는 고생물학과 고인류학에서는 종을 구분할 때 불확설성이 더 크다. 이 말은 둘 사이의 혼혈이 "네안데르탈인을 인류와 다른 종‘으로 구분하는 게 온당하냐"는 철학적인 질문까지 제기하는 큰 화두였다는 뜻이다.
- P303

내용이었다. 네안데르탈인의 게놈과 현생 아프리카인, 아시아인, 유럽 백인 등의 게놈 시료를 서로 비교했는데, 유럽인에게서 가장 많은 공통 유전자가 나왔고 아프리카인에게서는 나오지 않았다. 연구팀은 유전자가 섞인(즉 혼혈이 집중적으로 이뤄진) 시기도 추정했는데, 아프리카에서태어난 현생인류가 북쪽으로 이동한 뒤 유라시아로 퍼지기 직전에 이뤄졌을 것으로 봤다.
••••••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 사이에 피가 섞였다는 사실 자체였다. 이것은 특히 유럽 지역에서 충격적인 결과였다. 이상희 미국UC 리버사이드 인류학과 교수는 "유럽인에게 ‘너는 네안데르탈인이야‘라는 말은 ‘너는 야만인이야‘라는 말과 같은뜻일 정도로 네안데르탈인은 배타적이고 차별적인 대상이었다"며 "하지만 그런 인류가 사실상 조상이라는 데에 많은 유럽인들은 곤혹스러워했다"고 말했다.  - P305

에필로그
새벽을 잃은 인간에게

나무 하나하나가 하나의 개체이고, 잔돌들은 각기 제자리에 있는 소도구이다. 외진 곳의 평평한 바닥에는 빛으로 만든 창들이 꽂혀 있다. 자리만 있으면 풀이 자란다.
벌레들이 햇빛 얼룩마다 윙윙거린다. 어디에선가 딱따구리가 내는 작업장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 시간에는 창조가 동물들의 몫이고, 사람들은 다 최초의 인간, 혹은 최후의 인간처럼 땅 위에 있다.
- 율리 체, 「형사 실프와 평행우주의 인생들」 중 - P3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사람은 기린과 다릅니다. 문명화에 성공한 사람은 당신네 사자의 위협에서 벗어난 대신, 만성적인 미지의 압박을 받게 됐습니다. 그게 바로 상사의 잔소리, 선생님의 지도, 시험 준비입니다. 사람들은 사자를 못반다는 대신,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억압 때문에 만성적인스드레스 반응을 경험하며 괴로워합니다. 기린으로 비유하자면, 눈에 보이지 않는 사자가 매 순간을 관찰하고 있다는느낌일까요. 최근에는 스트레스가 한층 진화해서, 강제적이고 억압적인 지시나 규들, 시험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스스로를 옥죄고 질타하면서 억압을 사조하고 있답니다. 
•••••••
인간을 옥죄던 ‘보이지 않는 사자‘는, 한때는 타자에 의한 억압이었다가 이제는 자기 자신의 조바심에 의한 자멸적 소진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런 소진뒤에 남는 것은 뭘까요. 고작해야 경쟁에서 이긴 자의 피투성이 승리감과, 거기에서 이탈한 낙오자 내지 소외자의 비감뿐이 아닐까요.
- P257

사실 진짜 시커먼 피부는 뜨거운 태양이 지배하던 동아프리카에서 처음 진화한 호모 사피엔스의 특징이었거든. 햇빛 뜨거운 아프리카에서 피부에 해로운 자외선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했겠어요? 피부에 멜라닌을 가득 만들어야지요. 몸에 있는 ‘멜라노코르틴리셉터‘ 유전자가 그 역할을 하지요. 호모 사피엔스 중 일부가 피부가 희게 된 것은 훨씬 나중에, 이들이 아프리카를 벗어나 중위도나 고위도 각지에 퍼지면서 일어난 적응 중 하나였습니다. 검은 피부는 자외선을 막는데, 중위도와 고위도 지역 일부는 자외선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막을 경우 오히려 자외선 부족에 시달릴 가능성이 있었거든요. 잘 알려져 있듯, 우리 몸에서는 비타민 D가 그냥 합성되지 않고 자외선을 피부에 쬐어 줘야만 만들어지거든요. 비타민 D 부족은 뼈를 무르게 하고, 여성의 경우 골반을 약하게 해 임신과 출산을 위험하게 만듭니다. 그냥 팔다리 뼈가 약해지는 것도 위험하겠지만, 임신과출산은 종의 미래를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가 되죠. 이를 막기 위해 탄생한 흰 피부는, 생존과 종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적응이었습니다.
검은 피부에서 시작해 다양한 피부색으로 적응한 호모사피엔스와 달리, 당신네 네안데르탈인은 처음부터 중-고위도에 해당하는 유럽에서 진화한 종입니다. 피부를 검게 만드는 MCIR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었지요. 덕분에 적어도 당신들 중 상당수는 피부가 하얬습니다. 더구나 이 유전자의 돌연변이는 머리카락까지도 빨갛거나 금발로 만듭니다. 당신은 흰 피부에 금발을 지닌 모습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P27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