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출발에 대비하여 서랍 속의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그녀는 무엇인가에 손가락을 찔렸다. 그것은 그녀의 결혼 꽃다발을 묶은 철사였다. 오렌지의 꽃봉오리는 먼지로 누렇게 바랬고, 은테를 두른 비단 리본은 가장자리가 풀어져 있었다. 엠마는 그것을 불 속에 집어던져 버렸다. 그것은 마른 짚보다 더 빨리 탔다. 이윽고 재 위에 빨간 덤불 같은 것이 되어 남더니 드디어 천천히 무너져내렸다. 그녀는 그것이 타는 것을 지켜보고있었다. 마분지로 된 조그만 열매들이 터지고 놋쇠 철사가 뒤틀리고 장식끈이 녹아버렸다. 종이 꽃잎은 오므라들어 난로판을따라 검은 나비처럼 흔들리더니 마침내 굴뚝 속으로 날아가버렸다.
삼월에 토트를 떠날 때 보바리 부인은 임신중이었다.
- P102

이야기를 하면서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사이에 레옹은 한쪽발을 보바리 부인이 앉아 있는 의자의 받침살에 걸치고 있었다.
그녀는 푸른색의 작은 비단 넥타이를 매고 있었는데 그것이 가두리 장식을 한 흰 삼베 칼라를 마치 프레즈 처럼 떠받쳐주고있었다. 그래서 머리를 움직일 때마다 얼굴의 밑부분이 옷깃 속에 묻히기도 하고 다시 살며시 드러나기도 했다. 샤를르와 약사가 잡담을 하고 있는 동안, 두 사람은 이런 식으로 바싹 붙어 앉아서 우연히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가 언제나 서로간의 공감이라는 불변의 중심으로 모이게 되는 그런 막연한 대화 속으로 접어들었다. 파리의 연극, 소설의 제목, 새로운 카드릴 춤, 그들이 알지 못하는 사교계, 그녀가 살았던 토트, 현재 그들이 있는 용빌 등, 두 사람은 만찬이 끝날 때까지 모든 것을 다 검토해 보았고 모든 것에 대해서 골고루 다 이야기했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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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례식이 있은 지 이틀 뒤 부부는 떠났다. 샤를르는 환자들때문에 더 이상 오래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루오 영감이 자기 마차에 두 사람을 태우고 바송빌까지 따라왔다. 거기서 그는 딸에게 마지막으로 키스를 하고 마차에서 내려 되돌아갔다. 한 백 보쯤 걷다가 그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마차가 저만큼 멀어져 가면서 먼지 속에서 바퀴가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그는 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자기가 결혼하던 때의 일, 흘러간 지난 시절, 아내의 임신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역시 아내를 장인댁에서 자기 집으로 처음 데려오던 날은 어지간히도 즐거웠었다. 크리스마스 무렵이어서 들판이 흰 눈에 뒤덮여 있었으므로 아내를 말잔등에 태우고서 눈 속을 터벅거리며 왔었다. 그녀는 한쪽 팔로 그를 붙잡고 다른 팔에는 바구니를 걸쳐들고 있었다. 코 지방 특유의 머리 두건에 달린 긴 레이스가 바람에 하늘거리면서 때로는 그녀의 입술 위에 닿곤 했고 그가 고개를 돌려보면 바로 가까이 어깨 위에 그녀의 발그레한작은 얼굴이 보닛 모자의 금박 장식 아래에서 말없이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 보였다. 시린 손을 녹이기 위해서 그녀는 이따금씩 그의 가슴에 손을 찔러넣었다. 그 모두가 얼마나 아득한 옛일인가! 그때 낳은 아들이 살아 있었다면 서른 살이 되었을 것이다! 그때 그는 뒤를 돌아보았지만 길 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않았다. 그는 자신의 마음이 빈집처럼 쓸쓸해지는 것을 느꼈다.
- P50

결혼하기 전까지 그녀는 사랑을 느낀다고 여겼었다. 그러나그 사랑에서 응당 생겨나야 할 행복이 찾아오지 않는 것을 보면자신이 잘못 생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래서엄마는 여러 가지 책들에서 볼 때는 그렇게도 아름다워 보였었던 희열이니 정열이니 도취니 하는 말들이 실제로 인생에서는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었다.
- P55

샤를르가 하는 말은 거리의 보도(步道)처럼 밋밋해서 거기에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뻔한 생각들이 평상복 차림으로 줄지어지나갈 뿐 감동도, 웃음도, 몽상도 자아내지 못했다. 그는 루앙에서 사는 동안 한번도 극장에 가서 파리에서 온 배우들을 구경하고 싶다는 호기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고 스스로 말하곤했다. 그는 수영도 모르고, 검술도 모르고, 권총도 쓸 줄 몰라서, 어느 날 그녀가 소설을 읽다가 마주친 승마 용어의 뜻을 설명하지 못했다.
반대로 남자란 모름지기 모르는 것이 없고, 여러 가지 재주에 능하고 정열의 위력, 세련된 생활, 온갖 신비들로 인도해주는 능력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 사내는 무엇 하나 가르쳐줄 것도 없고, 무엇 하나 아는 것도 없고 무엇 하나 바라는 것도 없었다. 그는 그녀가 행복하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그녀는 너무나 흔들림 없는 이 평온과 이 태연한 둔감, 그녀 자신이 그에게 안겨주고 있는 행복 그 자체에 대하여 그를 원망하고 있었다.
- P65

무도실의 공기는 탁해졌다. 램프의 불빛은 희미해져 있었다.
사람들이 당구실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하인 하나가 의자에 올라가서 창유리를 두 장 깨뜨렸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에 뒤를 돌아다본 보바리 부인은 마당에서 농부들이 창문에 얼굴을 바짝 갖다대고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자 베르토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농장과 질퍽한 늪, 작업복 차림으로 사과나무 밑에 선 부친이 눈에 선했다. 착유장에서 우유 항아리속의 크림을 손가락으로 끄집어내고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도 옛날 그대로 보였다. 그러나 섬광처럼 번쩍이는 현재로 인하여, 방금까지 그렇게 또렷했던 과거의 생활은 간 곳 없이 사라져 버렸고, 과거에 정말 그렇게 살았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 되었다. 그녀는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무도회의 주변에는 그 나머지 모든 것을 덮고 있는 어둠뿐이었다. 그때 그녀는 마라스키노 술이 든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는데 은으로 도금한 조개모양의 접시를 왼손에 들고 숟가락을 입에 넣은 채 눈을 반쯤 감았다.
- P80

개인적 욕망을 공상으로 만족시키기 위하여 발자크와 조르주 상드의 소설을 읽었다. 식탁에까지 책을 끼고 들어와서는 샤를르가 그녀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식사를 하는 동안 책장을 넘기곤 했다. 읽는 책 속에서 자작의 추억이 항상 되살아났다.
그녀는 자작과 지어낸 작중 인물을 결부시켜 생각했다. 그러나 그를 중심으로 한 원은 그 둘레로 점점 확대되었고 얼굴에서 떨어져나간 그의 후광은 더욱 멀리까지 퍼져나가서 다른 모든 꿈들을 비추어주는 것이었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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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치료용 성장호르몬은 죽은 사람의 뇌(뇌하수체)에서 추출하것이었으므로, 성장호르몬(GH) 대신 사람성장호르몬(HGH)이라고 불렸다. 왜소증 어린이는 하루에 한 번씩 적어도 일 년 동안 주사를 맞아야 했는데, 하나의 뇌하수체는 하루에 한 명의 어린이를 치료하는 데충분한 양만 공급했다. (용량에 관한 연구는 아직 수행되지 않았지만, 좌우지간 뇌하수체 하나에 들어 있는 분량이 정량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한 명의어린이를 치료하려면 365개의 뇌하수체, 그러니까 365 구의 사체가필요했다. 미국의 심각한 왜소증 어린이들을 모두 치료하려면 어마어마한 시체가 필요하므로, 수많은 영안실과 입도선매 계약을 맺어야할 판이었다.
- P214

버슨과 앨로는 이 같은 미시적 난교 microscopic promiscuity를 이용해 방사면역측정법 adiommunossey (RIA)이라는 기법을 고안해냈다. RIA의 사용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댄스 파트너, 즉 샘플 호르몬 과 ‘호르몬에 결합하는 항체‘를 준비해야 하며, 각각의 양을 알아야 한다. 둘째, 샘플 호르몬과 항체의 혼합물에 환자의 혈액을 첨가하는데, 이 혈액에는 ‘환자의 호르몬‘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 양은 알 수 없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정리하면, 비커 속에는 샘플 호르몬(기지)과 항체(기지)와 환자의 호르몬(미지량未知量)이 들어 있다. 셋째, 환자의 호르본 중 일부가 항체에 결합되어 있는 샘플 호르몬을 떼어내고 항체를 차지할 것이다. 항체에서 떨어져 나온 호르몬의 양을 측정하면, 환자의 혈액 속에 얼마나 많은 호르몬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있다. 호르몬의 양이 너무 적어 양을 직접 측정할 수는 없지만, 호르몬과 항체가 결합하면 큰 덩어리를 형성한다. 그리고 샘플 호르몬은 방사선으로 처리하면 발광하므로 포착하기가 훨씬 더 쉬위진다. 엘로와 버슨은 이상과 같은 방법으로 항체에서 떨어져 나온 샘플 호르몬의 양을 측정할수 있었다.
그들은 호르몬-항체 결합‘의 강도에 기반한 공식을 개발했다. (결합 강도는 호르몬에 따라 다르다.) 그러고는 떨어져 나온 방사선 처리된 샘플 호르몬의 양을 측정해 공식에 대입했다. 만약 떨어져 나온 호르몬의 양이 많다면 환자의 혈액 속에 포함된 호르몬 양이 많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들은 환자의 혈액 속에 포함된 호르몬의 양을, 혈액 1밀리리터당 10억 분의 1 그램‘ 수준까지 측정할 수 있었다.
- P244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녀는 스톡홀름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석한 이후부터 남편이 선물한 ‘노벨상 기념 목걸이‘를 목에 걸고 모든 편지에 "로절린 앨로, 이학박사, 노벨상 수상자"라고 서명했다고한다. 또한 연구실의 게시판에는 "남성의 반만큼 인정받기 위해, 여성은 두 배 열심히 노력하고 두 배 뛰어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쪽지를붙였다. 페미니스트의 격언이었다. 그러나 앨로그 뒤에 핵심을 찌르는 말을 덧붙였다. "그까짓 거, 어렵지 않다." 자녀들은 어머니의 명품 연설을 ‘남성 동료들을 향한 전형적인 공갈 협박‘ 쯤으로 여기고 웃어넘겼지만, 그 쪽지의 내용만큼은 똑똑히 기억했다.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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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하는 일과 독자가 하는 일이 너무 달라요. 작가는 글을쓰는 것으로씨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에요. 반면 독자는 글을 읽음으로써 즐거움을 누리거든요.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엄청나게 다른 거예요, 마지 발레리나와 관객의 관계치료. 발레리나에게 관객의 갈채가 있으면 좋겠조. 그러나 발레리나가 진짜 고민하는 문제는 어떻게 하면 이 동작을 더 잘할 수 있을까. 이 감정을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연기를 얼마나 실감나게 할 수있을까. 주로 그런 것들이거든. 작가란 늙지 않는 발레리나같은 거예요. 그러니까 늘었다고 퇴화하거나 점프의 높이가 낮아지거나 그러면 안 돼요.
- P537

원칙적으로 비무장지대 안에는 민간인이 살 수 없도록 되어있지만 예외가 있습니다. 대성리라는 마을입니다. 이 마을은 일종의 전시용 촌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집들은 번듯했고 주민들은 모두 마을 근처에 경작 가능한 논과 밭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북한군의 계급장과 얼굴 표정까지 알아볼 수 있는 거리에 살고 있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태평해 보였습니다. 아침이면 경운기를 몰고 농사를 지으러 나갔고 저녁에는 돌아와 밥을 지었습니다. 지프를 타고 마을 근처를 지날 때면 아버지는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전쟁 터지면 제일 먼저 죽을 사람들이다."
위험한 곳에 사는 대신, 남한 정부는 이들의 세금과 병역을 면제해주었습니다. 이들은 비무장지대라는 신전에서 일하는 사제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들의 삶을 보면서 저는 삶의 연극성이랄까, 하는 것을 처음으로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살아야 하는 삶도 있다는 것, 나중에는 그 연극성마저 망각하고 일상을 살아나가게 된다는 것, 그런 것들을 어렴풋이 의식하게 되었던 것이 바로 그 무렵이었습니다. - P577

언젠가 해럴드 블룸은 ‘셰익스피어가 『햄릿』을 쓰기 전에는햄릿 같은 인간형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썼다. 그런 식이라면아마도 나라는 인간은 돈키호테와 엠마 보바리와 라스콜니코프 같은 인물로부터 창조되었을 것이다. 상상 속에서 창조되었으나 현존하는 그 어떤 인간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 있으며, 이후로도 영원히 살아남을 그 인물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 P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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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르 편에서는 자기가 왜 즐겨 베르토를 찾아가곤 하는지를 구태여 알려고 하지 않았다. 설사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하더라도 틀림없이 자기가 열을 올리는 까닭은 증세의 심각함이나 아니면 수입에 대한 기대 때문이라고 치부했으리라. 그렇지만 그 농장을 찾아가는 일이 그의 생활의 따분한 일과 속에서 매력적인 예외가 된 것이 과연 그 때문일까? 그날이 되면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출발부터 달음박질로 시작하여 말을 몰아세웠고 땅에 내려서면 풀에다가 신발을 문질러 닦고 들어가기 전에 검은 장갑을 꼈다. 마당에 들어서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든가 어깨로 밀면 빙그르 도는 사립문의 감촉을 느끼는 것이 즐거웠고 담 위에서 시간을 알리며 우는 수탉이나 마중 나오는 하인들이 기분좋게 느껴졌다. 그는 헛간과 마구간이 좋았다. 생명의 은인이라면서 그의 손바닥을 치며 손을 잡는 루오 영감이 좋았다. 말끔히 씻은 부엌 타일 위를 걷는 엠마 양의 작은 나막신이 좋았다. 신발 뒤축이 높아서 그녀의 키가 약간 더 커 보였다. 그녀가 앞에 서서 걸을 때면 나무로 된 구둣바닥이 얼른 들어올려졌다가 편상화의 가죽에 닿으면서 삑삑 하고 소리를내곤 했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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