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득 어제 일리 떠올랐다. 그러자 어제 전당포에서 ‘기상새설欺霜賽雪( 희기가 서리를 능가하여, 백설을 걸고 내기할 수 있다)‘ 넉 자를 썼다가 주인이 돌연 안색이 나빠졌으니 오늘은 단연코 그 치욕을씻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주인에게 "점포 머리에 달 만한 액자를써드릴까요?" 했더니, 주인을 비롯하여 모두들 좋다고환호한다. 나는 곧바로 ‘기상새설‘ 네 글자를 또박또박 써내려갔다. 그런데 여럿이 서로 쳐다보는 품이 어제 전당포주인과 마찬가지로 적이 수상쩍다. 속으로, ‘이것 참 괴이한일이구나‘ 여기며 물었다. "이 말은 이 가게와 별 상관이 없습니까?" "그렇습니다. 저희 가게는 부인네들 장식품을 취급하지, 국숫집은 아니거든요." 그제야 나는 내 실수를 깨달았다. 전날의 일을 돌이켜 보니,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나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저 시험 삼아 한번 써 본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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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들에게 일전의 일을 이야기하니 배꼽을 잡고 웃지 않는 이가 없다. 그후로는점포 앞에 ‘기상새설‘이란 넉 자를 볼 때마다 ‘음, 필시 국숫집이로군‘ 했다. 이는 그 주인장의 심지가 밝고 깨끗함을 이르는 것이 아니라, 실로 그 면발이 서릿발처럼 가늘고 눈보다 희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함이다. - P226
그러므로 이제 사람들이 정말 오랑캐를 물리치려면 중화의 전해오는 법을 모조리 배워서 먼저 우리나라의 유치한 습속부터 바꿔야 할 것이다. 밭갈기, 누에치기, 그릇굽기, 풀무불기부터 공업, 상업 등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다 배워야한다. 다른 사람이 열을 배우면 우리는 백을 배워 백성을 이롭게 해야 한다. 우리백성들이 몽둥이를 만들어 두었다가 저들의 견고한 갑옷과 날카로운 무기를두들길 수 있게 된 다음에야 "중국에는 볼 만한 것이 없다"고 장담할 수 있을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비록 삼류 선비지만 감히 말하리라. "중국의 제일장관은 저 기와 조각에 있고, 저 똥덩어리에 있다." 대체로 깨진 기와 조각은 천하에 쓸모없는 물건이다. 그러나 민가에서 담을 쌓을 때 어깨 높이 위쪽으로는 깨진 기와 조각을 둘씩 둘씩 짝을 지어 물결무늬를 만들거나, 혹은 네 조각을 모아 쇠사슬 모양을 만들거나, 또는 네조각을 등지게 하여 노나라 엽전 모양처럼 만든다. 그러면 구멍이 찬란하게 뚫리어 안팎이 서로 비추게 된다. 깨진 기와 조각도 알뜰하게 써먹었기 때문에 천하의 무늬를 여기에 다 새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가난하여 뜰 앞에 벽돌을 깔 형편이 안 되는 집들은 여러 빛깔의 유리 기와 조각과 시냇가의 둥근조약돌을 주워다가 꽃 • 나무 • 새 · 짐승 모양을 아로새겨 깔아 놓는다. 비올 때진창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기와 조각 하나, 자갈 한 조각도 버리지 않고고루 활용했기 때문에 천하의 고운 빛깔을 다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똥오줌은 아주 더러운 물건이다. 그러나 거름으로 쓸 때는 금덩어리라도 되는양 아까워한다. 한 덩어리도 길바닥에 흘리지 않을뿐더러, 말똥을 모으기위해 삼태기를 받쳐 들고 말 꼬리를 따라 다니기도 한다. 똥을 모아서는네모반듯하게 쌓거나, 혹은 팔각으로 혹은 육각으로 또는 누각 모양으로쌓아 올린다. 똥덩어리를 처리하는 방식만 보아도 천하의 제도가 이에 다갖추어졌음을 알 수 있겠다. 그러므로 나는 말하리라. "저 기와 조각이나 똥덩어리야말로 진정 장관이다. 어찌 성지, 궁실, 누대, 점포, 사찰, 목축, 광막한 벌판, 아스라한 안개 숲만 장관이라고 할 것인가 - P241
무릇 수레는 하늘에서 나와 지상에서 운행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수레는 육지를 다니는 배요, 움직이는 집인 셈이다. 나라에 크게 쓰일 물건으론 이 수레만 한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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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도 수레가 없지는 않으나 바퀴가 완전히 둥글지않고 바퀴 자국이 한 궤도를 그리지 못하니, 수레가 없는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늘 "우리나라는 마을이 험준하여 수레를 쓸 수 없다"고 말하곤 한다. 대체이게 무슨 말인가. 나라에서 수레를 사용하지 않으니까 길이 닦이지 않았을 뿐이다. 수레가 다니게 되면 길이야 저절로 닦일 터, 어찌하여 길거리의 좁음과 산길의 험준함만 걱정한단 말인가. - P246
그런데 이곳에서 흔한 물건이 저곳에서는 귀하디 귀해, 다만 이름만 들어보았을 뿐 실물은 평생 구경조차 할 수 없는 건 무엇 때문인가. 단지 실어 나를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사방이 수 천리나 되는 나라에서 백성들의 살림살이가이토록 가난한 까닭은 한마디로 말해, 나라 안에 수레가다니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수레가 다니지 못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역시 양반들 잘못이라고 답할수밖에 없다. 양반네들은 평소 글을 읽을 때 주례는 성인께서 지으신 글이라며 "윤인輪人"이니 "여인與人"이니 "거인車人" "주인"이니 하고 떠들어 댄다. 그러나 끝내 그것을 만드는 방법이 무엇인지, 운행하는 기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무조건‘ 글만 읽는다는 말이 바로 이것이니, 이런 공부가 학문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 P250
해가 뜰 때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어야 좋을 성싶지만 사실은 그게 해돋이구경으론 가장 멋대가리가 없다. 둥글고 붉은 구리 쟁반 하나가 바다 속에서불쑥 솟아날 뿐이니 무에 볼 것이 있겠는가. 해는 임금의 기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요임금을 찬미하여 "바라볼 땐 구름이요, 다가서니 해일러라"라고 한것이다. 이렇듯 해가 돋기 전에는 반드시 자욱한 구름 기운이 그 가장자리에몰려들어 마치 앞길을 인도하는 듯, 뒤를 따르는 듯, 의장을 갖춘 듯, 수천수만의 기병이 임금을 옹위하여 모시는 듯, 오색 깃발이 펄럭이고 용과 뱀이꿈틀거리는 듯해야 비로소 장관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구름이 너무 많이끼면 도리어 흐리고 가려져서 또한 볼 것이 없다. 새벽엔 밤새 모아진 순음의기운이 내리 쏘이는 태양과 맞부딪치게 된다. 이로 말미암아 바위 틈에선 구름을 토하고 시냇가에선 안개를 뿜어내면서 서로 피어올라 해가 돋을락 말락 할 때 원망스러운 듯 수심에 겨운 듯 흙비 속에 잠긴 듯 빛을 잃게 되는 것이다. -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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