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냐?"
더 큰 소리로 대답한다.
"소인은 도이노음이요."
이 소란에 시대와 상방 하인들이 모두 놀라 잠이 깼다. 뺨을 갈기는 소리가 들리더니, 등을 떠밀어서 문 밖으로 끌고 가는 모양이다. 알고 보니 그는 밤마다 우리 일행의 숙소를 순찰하면서 사신 이하 모든 사람의 수를 헤아리는 갑군甲軍이었다. 깊은 밤 잠든 뒤의 일이라 지금까지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갑군이 제 스스로 ‘도이노음‘이라 하다니, 정말 배꼽 잡을 일이다. 우리나라말로 오랑캐를 ‘되놈‘이라 한다. 갑군이 ‘도이‘라고 한 것은 ‘도이島夷‘의 전이고,
‘노음노音‘은 낮고 천한 이를 가리키는 말, 즉 조선말 ‘놈‘의 와전이요, ‘이요‘란 웃어른에게 여쭙는 말이다. 그래서 그는 조선 사람이 알아듣도록 ‘되놈이요‘하고 말했던 것이다. 갑군은 여러 해 동안 사신 일행을 모시는 사이에 우리나라사람들에게 말을 배웠는데, ‘되놈‘이란 말이 귀에 익었던 모양이다. 한바탕 소란때문에 그만 잠이 달아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수많은 벼룩에 시달렸다.
•정사 역시 잠이 달아났는지 촛불을 켜고 새벽을 맞았다. - P131

나는 오늘에야 알았다. 인생이란 본시 어디에도 의탁할 곳 없이다만 하늘을 이고 땅을 밟은 채 떠도는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말을 세우고 사방을 돌아보다가, 나도 모르는사이에 손을 들어 이마에 얹고 이렇게 외쳤다.
"훌륭한 울음터로다! 크게 한번 통곡할 만한 곳이로구나!"
정진사가 묻는다."하늘과 땅 사이의 툭 트인 경계를 보고 별안간 통곡을 생각하시다니, 무슨 말씀이신지?"
"그렇지, 그렇구 말구! 아니지,아니고 말고, 천고의 영웅은나 울기를 잘했고, 천하의 미인은 눈물이 많았다네. 하지만하그들은 몇 줄기 소리 없는 눈물을 옷깃에 떨굴 정도였기에, 그들의 울음 소리가 천지에 가득 차서 쇠나 돌에서 나오는듯 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네. 사람들은 다만 칠정七情 가운데서 오직 슬플 때만 우는 줄로 알 뿐, 칠정모두가 울음을 자아낸다는 것은 모르지. 기쁨喜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노여움怒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즐거움樂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사랑함愛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욕심慾이 사무쳐도 울게 되는 것이야. 근심으로 답답한걸 풀어 버리는 데에는 소리보다 더 효과가 빠른 게 없지.
울음이란 천지간에 있어서 우레와도 같은 것일세.
지극한 정이 발현되어 나오는 것이 저절로 이치에 딱맞는다면 울음이나 웃음이나 무에 다르겠는가. 사람의 감정이 이러한 극치를 겪지 못하다 보니 교묘하게 칠정을늘어놓고는 슬픔에다 울음을 짝지은 것일 뿐이야.  - P13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