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의 물고기는 눈이 보이지 않고 사막의 동물은 갈증을잘 참는 것처럼 어떤 사람이 되는지는 내가 처한 환경에 좌지우지되지, 본성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니었다. 나는 업무 환경이 조금씩 나를 바꾸고 있음을, 더 조급하고 쉽게 욱하고 무책임하게 바꾸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지금껏 지켜왔던 기준을 지킬 수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아졌다. 한번은 모르는 여자한테 한바탕 난리를 친 적이 있었다. 원래 누구한테 호통치는 성격이 아니라그 일은 아주 강한 기억으로 남았다.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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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의 야간 노동이 남긴 것

1년이라고 썼지만 사실 D사의 물류센터에서 일한 시간은 10개월 정도다. 쓰촨 대지진 발생 9주년이었던 2017년 5월 12일, 나는 광저우 근교의 순덕(順덕)에 있는 D사의 허브센터에 입사했다. 당시 전국 최대 규모의 물류센터였지만 퇴사한 뒤에야 인터넷을 통해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거기서 일할 때 규모에 압도당하긴 했어도, 솔직히 몇 번째로 큰지에 관심을 가질 만큼 여유가 있지는 않았다. - P17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떠들기를 싫어하는 모양새였다. 열정적이거나 주체적인 구석이 전혀 없어서 꼭 늙고 조용한 농부들 같았다. 나이가 그렇게 많지 않은데도 그랬다. 또 낯선 사람을 경계하며 차가운 태도를 유지했다. 다행히 나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다들 입을 다문 채 일만하는 게 좋았다. 그런 인간관계가 무척 편안했다. 그러다 어느날 문제가 생겨 조언을 구했더니 다들 어색하게 웃으며 멋쩍게 대답하는 게 아닌가. 사실 그들은 거만한 게 아니라 내향적일 뿐이었다. - P22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이 일은 수습 때가 가장 힘들다. 신체조건이 나쁜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특히 그 여자처럼 바람에 쓰러질 듯 약한 사람이 오면 우리는 아예 도움을 줄 수 없었다. 괜히 도와주었다가는 이 일이 할 만하다는 오해를 심어줄 수있기 때문이었다. 완전히 나가떨어지게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했는데도 버텨낸다면 그 사람은 정말로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우리는 건장해 보이는 사람을 오히려 도와주고 약해 보이는 사람은 외면했다. - P32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는 전부 방관자였다. 사태가 어떻게흘러가는지 조용히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지, 누구도 그 일에 개입하려 하거나 임신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기껏해야 몇 마디 위로하는 게 다였다. 다들 자신만의 스트레스와 고충에 빠져 있어서 다른 사람을 돌볼 여력이 없었다. 그런 일터에서는 누구나 삶에 짓눌려 동정심이 바닥나고 자기도 모르게 무감각하고 차갑게 변해갔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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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정(廟庭)의 노래

1
남묘(南廟) 문고리 굳은 쇠 문고리
기어코 바람이 열고
열사흘 달빛은
이미 과부의 청상(靑裳)이어라

날아가던 주작성(朱雀星)
깃들인 시전(矢箭)
붉은 주초(柱礎)에 꽂혀 있는
반절이 과하도다

아-어인 일이냐
너 주작의 성화(星火)
서리 앉은 호궁(胡弓)에
피어 사위도 스럽구나

한아(寒鴉)가 와서
그날을 울더라
밤을 반이나 울더라
사람은 영영 잠귀를 잃었더라

2
백화(白花)의 의장(意匠)
만화(萬華)의 거동의
지금 고오히 잠드는 얼을 흔들며
관공(關公)의 색대(色帶)로 감도는
향로의 여연(餘烟)이 신비한데

어드매에 담기려고
칠흑의 벽판(壁板)위로
향연(香煙)을 찍어
백련을 무늬 놓는
이 밤 화공의 소맷자락 무거이 적셔
오늘도 우는
아아 짐승이냐 사람이냐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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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은 금방 어두워지고 다시 암흑의 세계는 닥쳐왔다. 기차 안에는 공습 때문에 물론 불을 켜지 않는 것이다. 성냥도 손으로 가리고 켜거나 걸상 아래에 감추고 켜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기차가 가는 중에도, 대원들은 마음을 긴장하고 비행기 떠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억지 같은 명령이 내린다. 순오도 그것이 되는 일인가 하고 몇 번이나 시험을 해 보았지만 폭포 같은 기관차 달려가는 소리 속에 비행기 떠 오는 소리란 모깃소리보다도 더 가늘은 것이었다. - P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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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자랑이라면 ‘프린스‘ 다방에서 오래 앉아 책을 읽었다는 것.
내일은 오늘보다 더 좀 오래 앉아 있을 만한 인내심이 생겨야 할터인데
이것은 강인한 정신이 필요하다.
오래 앉아 있자!
오래 앉아 있는 법을 배우자.
육체와 정신과 통일과 정신과 질서와 정신과 명석과 정신과 그리고 생활과 육체와 정신과 문학을 합치시키기 위하여 오래 앉아 있자! - P676

10월 6일
시 「잠꼬대」를 쓰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썼는데, 현경한테 보이니 발표해도 되겠느냐고 한다.
이 작품은 단순히 ‘언론 자유‘에 대한 고발장인데, 세상의 오해 여부는 고사하고, 현대문학지에서 받아줄는지가 의문이다. 거기다가 거기다가 조지훈도 이맛살을 찌푸리지 않는가?
* 이 작품의 최초의 제목은 「金日成萬歲」. 시집으로 내놓을 때는이 제목으로 하고 싶다.
미(美)는 선(善)보다 강하다. - P722

10월 18일
시 「잠꼬대」를 <자유문학》에서 달란다. 「잠꼬대」라고 제목을 고친 것만 해도 타협인데, 본문의 ‘金日成萬歲‘를 ‘김일성만세‘로 하자고 한다.
집에 와서 생각하니 고치기 싫다. 더 이상 타협하기 싫다.
하지만 정 안 되면 할 수 없지.‘ ‘부분만 언문으로 바꾸기로 하지.
후일 시집에다 온전하게 내놓기로 기약하고.
한국의 언론 자유? Goddamn이다! - P723

 그중에서도 고은을 제일 사랑한다. 부디 공부 좀 해라. 공부를 지독하게 하고 나서 지금의 그 발랄한 생리와 반짝거리는 이미지와 축복받은 독기가 죽지 않을 때, 고은은 한국의 장 주네가 될 수 있다. 철학을 통해서 현대 공부를 철저히 하고 대성하라. 부탁한다.
1965년 12월 24일 - P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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