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의 야간 노동이 남긴 것
1년이라고 썼지만 사실 D사의 물류센터에서 일한 시간은 10개월 정도다. 쓰촨 대지진 발생 9주년이었던 2017년 5월 12일, 나는 광저우 근교의 순덕(順덕)에 있는 D사의 허브센터에 입사했다. 당시 전국 최대 규모의 물류센터였지만 퇴사한 뒤에야 인터넷을 통해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거기서 일할 때 규모에 압도당하긴 했어도, 솔직히 몇 번째로 큰지에 관심을 가질 만큼 여유가 있지는 않았다. - P17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떠들기를 싫어하는 모양새였다. 열정적이거나 주체적인 구석이 전혀 없어서 꼭 늙고 조용한 농부들 같았다. 나이가 그렇게 많지 않은데도 그랬다. 또 낯선 사람을 경계하며 차가운 태도를 유지했다. 다행히 나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다들 입을 다문 채 일만하는 게 좋았다. 그런 인간관계가 무척 편안했다. 그러다 어느날 문제가 생겨 조언을 구했더니 다들 어색하게 웃으며 멋쩍게 대답하는 게 아닌가. 사실 그들은 거만한 게 아니라 내향적일 뿐이었다. - P22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이 일은 수습 때가 가장 힘들다. 신체조건이 나쁜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특히 그 여자처럼 바람에 쓰러질 듯 약한 사람이 오면 우리는 아예 도움을 줄 수 없었다. 괜히 도와주었다가는 이 일이 할 만하다는 오해를 심어줄 수있기 때문이었다. 완전히 나가떨어지게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했는데도 버텨낸다면 그 사람은 정말로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우리는 건장해 보이는 사람을 오히려 도와주고 약해 보이는 사람은 외면했다. - P32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는 전부 방관자였다. 사태가 어떻게흘러가는지 조용히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지, 누구도 그 일에 개입하려 하거나 임신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기껏해야 몇 마디 위로하는 게 다였다. 다들 자신만의 스트레스와 고충에 빠져 있어서 다른 사람을 돌볼 여력이 없었다. 그런 일터에서는 누구나 삶에 짓눌려 동정심이 바닥나고 자기도 모르게 무감각하고 차갑게 변해갔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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