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샌더는 생각했다. 진실에 어느 정도 가깝기도 하고, 어쨌든 신빙성이 있는 말이다. 처음이라면 그런 변명으로 빠져 나갈 수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이 아이는 수척해져 있다. 수명이 다한 코트처럼 봉제선이 풀리고 너덜너덜해져 있다. 만일 어떤 어린아이가 길 건너편에서 장난감 총으로 쏜다면 이 소년은 덜컥 겁이 나서 여자 아이처럼 비명을 지를 것이다.
"네 성적표가 내 주장을 뒷받침할 거야. 과연 성적이 이렇게 형편없이 떨어진 것이 외로운 ‘로빈슨 크루소‘ 탓이라고 할 거냐? 으응?"
"시끄러워, 좀 조용히 하지 못해? 입 좀 닥치고 있어!"
"아니, 입 닥치고 있을 수만은 없지."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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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정의와 부정, 평등과 불평등, 개인의 권리와 공동선에 관해 다양한 주장이 난무하는 영역을 어떻게 이성적으로 통과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그 질문에 대답하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려운 도덕 문제에 직면했을 때, 도덕적 고민이어떤 식으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지부터 살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우리는 옳은 행위에 관한 견해나 확신에서 시작한다. ("전차를 비상철로로 돌려라.") 그런 다음 확신하는 이유를 생각하고, 그 근거가 되는원칙을 찾는다.("한 사람을 희생하더라도 여러 사람의 목숨을 건지는 편이 낫다.") 그러다가 그 원칙을 흔드는 상황에 맞닥뜨리면 혼란의 도가니에 빠진다.("가능한 한 여러 사람을 구하는 것이 늘 옳은 줄로만 알았는데, 남자를 다리 아래로 미는 행위는 (또는 무장하지 않은 염소치기를 죽이는 행위는잘못인 것 같다.") 이러한 혼란의 힘과 그것을 정리해야 한다는 압박을느끼는 것이 바로 철학의 출발점이다.
- P45

" 모든 도덕적 싸움은 알고 보면 쾌락을 극대화하고 고통을 극소화하는 공리주의 원칙을 어떻게 적용하느냐를 두고 이견을 보일 뿐이지, 원칙 자체를 문제 삼지는 않는다. 벤담이 묻는다. "인간이 지구를 움직일 수 있을까? 그렇다. 하지만 밟고 설 다른 지구부터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유일한 지구, 유일한 전제, 도덕적 주장의 유일한 출발점은 바로 공리 원칙이라고 말한다.
- P56

많은 사람이 지적하는 공리주의의 가장 두드러진 약점은 개인의권리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직 만족의 총합에만 관심을 두는 탓에 개인을 짓밟을 수 있다. 공리주의자들에게 개인은 단지 사람들의 선호도를 더할 때 계산되는 한 항목에 지나지 않는다. 공리주의논리를 일관되게 적용한다면, 사람을 다룰 때 우리가 예의와 존중의 기본 규범으로 여기는 행위도 용인하는 꼴이 된다.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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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여름, 멕시코 만에서 세력을 일으킨 허리케인 찰리가 플로리다를 휩쓸고 대서양으로 빠져나갔다. 그 결과 스물두 명이 목숨을잃고 110억 달러에 이르는 손실이 발생했다. 뒤이어 가격폭리 논쟁이 불붙었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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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이름 없는 작은 물고기 하나가 육상에서 몸무게를 지탱할만한 지느러미를(호수와 바다에서 적응하기 위한 용도로 진화된 것이지만) 진화시키지 못했더라면 아마 육상 척추동물은 생겨나지 못했을 것이다. 거대한 운석이 6,500만 년 전에 공룡을 멸종시키지 않았더라면 아마 포유류는 아직도 공룡 세계의 한구석 후미진 틈에 숨어사는 왜소한 생물에 불과했을 것이며 자의식을 가질 정도로 큰 뇌를가진 덩치 큰 생물을 진화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아주 작고 힘없는 인류의 선조들이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잔혹한 운명의 화살(어쩌면 멸종)을 견뎌내지 못했다면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 전역으로 퍼져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인류의 출현은 복잡성을 향한 추진력 같은것은 존재하지도 않는 예측 불가능한 과정에서 우연하게 발생한 영광스러운 사건이었다. 자신을 출현시킨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생물을 생산하고자 열망하는 진화의 원리에 의해 만들어진 필연적 결과물이 결코 아니다.
- P302

 종 수준과 그 상위 수준에서 일어나는 다윈적 진화는 지속적이고 불가역적인 이야기이다. 일단 한 종이(서로 교배가되지 않을 때 다른 종으로 정의된다) 조상 종과 분리되면 영원히 다른상태로 남게 된다. 종은 다른 종과 융합되지 않는다. 종들은 다양한방법으로 생태학적 상호작용을 하지만 물리적으로 합쳐 하나의 생식 단위가 되지는 않는다. 자연의 진화란 끊임없이 갈라지고 달라져가는 과정이다.
이에 반해 문화적 변화는 다른 전통의 융합과 접합을 통해 상승발전할 수 있다.  - P308

태양계 밖 어딘가 분명히 존재할 우리보다 진보된 문명들이 왜 지구에 접촉하려 하지 않는가? 하는 엉뚱한 질문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질문에 대한 여러 대답중 하나에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그 대답은 다음과 같다. 그렇게 행성간 또는 은하계간 여행이 가능할 정도로 기술을 발전시킨 사회는, 기술적 역량이 사회적 또는 도덕적 제약을 뛰어넘어 파괴를 부르는 위기의 시대를 잘 극복한 사회일 것이다. 하지만 지구에 접촉해 오는 외계 문명이 없는 것을 볼 때 그런 위기를 아무런 상처 없이 극복할 수 있는 사회가 없는 것이다. 이 대답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하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 P312

정해진 중력의 법칙을 따라 이 행성이 끝없이 회전하는 동안, 아주 단순한 시작으로부터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경이로운 무한한생물종들이 진화해 왔고, 진화하고 있고, 진화해 갈 것이다.

그는 이 마지막 구절을 최고의 요약으로 시작했다.

이러한 생명관에는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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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드의 얼굴에는 다시 걷는 빗자루의 이미지가 떠올랐고 그것과 함께 공포가 춤추듯 되살아났다. 갑자기 듀샌더는 지금 이 상황을 즐기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분과 자기가 듀샌더의 참모습보다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원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기분이들었다. 왠지 노령이고 부엌에서의 장난임에도 불구하고 듀샌더는 우스꽝스럽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무섭게 보였다. 토드에게구덩이나 소각로 안의 시체가 비로소 현실처럼 다가왔다. 팔과 다리와 몸통이 물고기의 배처럼 하얗게 뒤얽혀서 독일의 차가운 봄비를 맞고 있는 시체 사진이 공포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만들어진것(예를 들면 촬영이 끝나면 뒤쪽 어딘가로 가져가 버리는 백화점의 마네킹을 사용한 시체 더미 같은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사악하고 사실적인 사건을 직접 찍어놓은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순간적으로 토드는 시체가 부패하면서 풍기는 평온하고 희미하며 아릿한 냄새를 맡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공포가 그를 빙 둘러 쌌다.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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