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가 단백질을 만드는 과정에는 거의 변이가 없다. 그러나 똑같은 단백질을 사용한다고 해서 완벽하게 똑같은 구조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단백질에서 형태 또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약간의 변이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다음 단계, 즉 몸의 구조가 행동을 만들어내는 과정에는 변이가 좀 더 커질 뿐이다. 왼손잡이가 반드시 왼손잡이를 낳는 것은 아니지만 왼손잡이 집안에서 왼손잡이가 태어날 확률이 그렇지 않은 집안보다 훨씬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왼손잡이가 될 수 있는 구조가 진화하지 않는한 그러한 행동은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 P194

 특히 "생물의 진화는 일직선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도 아니다. ‘진화‘란 말을 들으면 계통수보다 잡목이나 꽃양배추가 떠오른다." 라는설명은 압권이다. 그리고 우리가 실제로 박쥐·고래·기린·오랑우탄의 후손이 아니라 "경골어류의 직계 후손이고 양서류의 후손이며 포유류와 유사한 파충류의 후손이라서 ‘나 자신이 개박쥐나 고래 같은 포유류보다 도마뱀에 더 가깝다는 느낌이 든다." 라고 하는말은 다윈 진화론의 핵심 개념인 공통 유래common descent 의 정곡을 찌른다. "특정한 박테리아가 20억이나 30억 년 전에 세포 분열을 하는데, 단 한 번의 치명적인 돌연변이가 일어났다고 가정해봐. 그렇다면 나는 결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거야." 라고 하는 대목도 그 어느 학술 논문보다 진화의 우연성을 훨씬 실감 나게 표현한다.
- P210

독일의 휘터만 부자가 저술한 <성서 속의 생태학AmAnfang war die  okologie>에 따르면 기독교의 누명은 나름 억울한 면이 있어 보인다. 구약에 기록되어 있는 고대 유태인들은 지금 기준으로 봐도 지속가능성이 대단히 큰 삶을 살았다. 나무가 자라 열매를 맺기 시작할 때부터 첫 3년 동안에는 열매를 수확하지 않고 그대로 썩게 해 토양을 기름지게 하고(레위기 19장 23~25절) 일주일에하루씩 안식일을 갖듯이 7년마다 한 해씩 수확 안식년을 가졌다(레위기 25장 8~13절). 물속에 사는 동물 중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것을 먹어서는 안 된다." (레위기 11장 9~11절)라는 계율은 모기를비롯하여 온갖 해충을 잡아먹는 개구리를 보호하는 생태학적 지혜를 담고 있다. 아울러 고대 유태인들은 개인의 토지 소유를 49년으로 제한했다. 당시 유태인들의 평균 수명이 50년 남짓이었음을 감안하면 이는 토지 세습을 막아 토지의 사유화 때문에 벌어지는 환경 파괴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려는 정책이었다. 이 세상에 유태인만큼 까다로운 음식 계명을 가진 민족도 별로 없을 것이다. 좁고 척박한 땅에서 먹지 말라는 것투성이인 울법을 지키면서도 수백 년 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생물다양성을 보호하며 지속가능한 삶을 유지한 그들의 생활 철학 덕이었다. -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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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멀리 데려갈 이륜마차에 몸을 던진 나는, 더할 나위 없는 우울한 생각들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끊임없이 서로를 행복하게 해주려 애쓰는 상냥한 가족들에게 항상 둘러싸여 있던 내가 이제는 혼자가 되었다. 지금 향하는 대학에서는 스스로 알아서 친구들을 사귀어야 했고 스스로를 알아서 돌봐야 했다. 이제까지의 내 삶은 유별나게 가족의 테두리 안에 머물러 있었다. 그렇다 보니 새로운 얼굴들에 대해 도저히 극복하기 힘든 반감을 갖게 되었다. 나는 동생들과 엘리자베트, 그리고 클레르발을 사랑했다. 그들이 내겐 친숙하고 반가운 얼굴들이었다.
- P55

 획득한 정보의 본질은 연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떤 방향으로 매진해야 하는지 길을 가르쳐주는 쪽에 가까웠다.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성과는 아니었다. 나는 마치 죽은 자들과 함께 파묻혔다가 다시 살아나갈 길을 발견한 아라비아인 같았다. 하지만 길을 인도하는 빛은 희미했고 무력해 보였다.
- P65

첫 성공으로 흥분한 가운데 태풍처럼 나를 몰아친 그 다채로운 감정들은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으리라. 삶과 죽음의 경계야말로 이상적인 목표였다. 내가 최초로 돌파해 어두운 세상에 폭포수처럼 빛이흘러들게 만들었기에. 새로운 종이 생겨나 조물주이자 존재의 근원인 나를 축복하리라. 헤아릴 수도 없는 행복하고 탁월한 본성들이 내덕에 탄생하리라. 나만큼 자식의 감사를 받아 마땅한 아버지는 이 세상에 다시없으리라. 이런 생각들을 따라가던 나는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 (지금은 불가능해도) 시간이 지나면 겉보기에는 죽음으로 부패된 육신에도 새 생명을 줄 수 있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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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학자들이 개미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우리 눈에는 개미들이 거의 평지를 걸어 다니는 것 같지만, 개미를 우리 인간의 몸집으로 환산해본다면 집채만 한 바위들을 우습게 타고 넘으며 지하 몇 층 정도를 가볍게 오르내리며 걷는 셈이다. 여섯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는 곤충, 다리가 여덟 개인 거미,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다리를 가지고 있는 다지류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특성 중 하나가 바로 두 발로 걷는 우리 인간보다 험한 지형을 별로 힘들이지 않고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동물들의 움직임을 이용하여 재난 구조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로봇을 개발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그런데 개미는 거미나 다지류에 비해 결정적으로 유리한 점을 하나 더 지니고 있다. 바로 사회성 동물이란 점이다. 개미의 행동을 잘 이해하여 집단행동을 할 수 있는 로봇들을 만들면 훨씬 더 다양한 작업들을 수행할 수 있다.
- P142

인간이 진화의 결과로 탄생한 것은 분명하지만 진화가 우리인류를 탄생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과정은 아니다. 자연선택은 어떤목표를 향해 합목적적으로 진행되는 미래지향적 과정도 아니며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모든 합리적인 해결 방법을 총동원할 수 있는공학적인 과정도 아니다. 그래서 적자생존의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고 난 결과는 어쩔 수 없이 완벽한 인간의 등장일 수밖에 없다는 식의 생각은 지나친 인본주의 또는 인간중심주의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생명은 이처럼 지극히 낭비적이고 기계적이며 미래지향적이지도 못하고 다분히 비인간적인 과정에 의해 창조되었다. 하지만 그처럼 부실해 보이는 과정이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단계를 거듭하며 선택의 결과들을 누적시킨 끝에 오늘날 이처럼 정교하고 훌륭한 적응 현상들, 심지어는 남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일까지 만들어낸 것이다.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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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하여 의생학이라는 분야인데 말 그대로 자연을 흉내 내는 학문이다. 새로운 원천 기술의 보유가 국가 경쟁력의 첩경이 된 요즘, 늘 무無에서 새로운 기술을 창출하는 게 아니라 이미 수천만 년 동안 자연선택에 의해 갈고 닦인 자연의 발명품들을 우리 입맛에 맞도록 다듬어보자는 것이다. 성당흰개미의 집은 그 유명한 가우디 성당과 모습은 비슷할망정 성능은 훨씬 탁월하다. 이처럼 동물 사회의 가우디들이 만들어낸 기술에 관심을 기울여보자는 게 바로 내가 생각하는 의생학이다.  - P108

구달 박사 덕에 의인화 방식은 이제 동물의 행동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방법론으로 당당하게 자리를 잡았다.
이 책의 저자도 "다른 종의 경험을 평가하는데 한 종의 경험을활용하는 것은 야생 동물을 연구하는 많은 생물학자들에게 유용한도구" 라는 주장을 서슴없이 한다. 저자는 다른 동물의 행동과 감정을 해석하는 데 자신의 가치와 경험을 적용하는 것이 우리 인간만이 아니라는 걸 일깨워준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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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라 사망률은 빈민들 사이에서 가장 높았다. 그들은 상한 음식을 먹었고 그마저도 거의 없었다. 그들은 작고 허술하고 난방도 잘 안 되는, 배설물로 가득한 집에서 살았다. 그들은 윗사람이 물려준 낡은 헌옷을 입었다.
제대로 못 먹고 제대로 못 자고 제대로 못 입었기 때문에 그들의 면역계는 약화되었고, 일찍 죽은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영국의 상류층들은 이 괴기한 불균형이 운명이라고 확신했다. 가난은 경제적, 사회적 문제가 아니라 영적 조건, 즉 죄에 대한 벌이라는 것이었다. 1832년 해부법이 통과되면서 사실상 가난은 죄가 되고 말았다. 이전에 죄질이 매우나쁜 범죄에만 가해졌던 징벌인 외과의사, 해부학자, 의대생에 의한 사후 해부는 이제 매장할 비용이 없는 빈민들의 운명이 된 것이다. 1834년 수정 구빈법이 올가미를 더 죄었는데, 일자리를 잃은 빈민에 대한 현금 자선을 법으로 금지하고 그들을 감옥과 같은 구빈원에 밀어 넣었다.
심지어 고아들과 노인들 그리고 장애인들에게도 그랬다.
- P71

오늘날 세계 인구 중 10억 명이 아직도 수도관이나 우물 덮개, 수원지등이 전혀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살고 있다. 수십억 명의 사람들은 개선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오염되고 불안한 식수원에 의존하고 있다. 20억 명은 대소변을 적절히 처리할 방법이 없다. 매년 전 세계에서 200만명에서 300만 명의 아이들이 물 때문에 콜레라를 비롯해 병에 걸려 죽어 간다. 이런 문제는 15년 동안 매년 100억에서 200억 달러를 들여야 고칠 수 있다. 이 비용은 미국인들이 매년 탄산음료를 마시는 데 쓰는610억 달러의 1/3보다 적다. 우리는 지금 멋들어진 집안 배관시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게 아니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기본적인수질 관리와 임시 변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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