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하라, 한겨울에 내를 건너듯이, 두려워하라, 사방에서 에워싸인듯이(여혜 약동섭천 유혜 약외사린 與兮 若冬涉川 猶兮 若畏四隣), 다산은 이 구절에서앞의 두 글자를 따서 당호(여유당)로 삼았다. 다산은 직접 쓴 <여유당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의 병은 내가 잘 안다. 나는 용감하지만 지모가 없고 선을 좋아하지만 가릴줄을 모르며, 맘 내키는 대로 즉시 행해 의심할 줄을 모르고 두려워할 줄도 모른다. 그만둘 수도 있는 일이지만 기쁠 수 있다면 그만두지 못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꺼림칙해 참을 수 없으면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멋대로 돌아다니면서도 의심이 없었고, 장성해서는 과거 공부에 빠져 돌아설줄 몰랐고, 나이 서른이 되어서는 지난날을 깊이 뉘우치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선을 끝없이 좋아했으나, 비방은 홀로 많이 받고 있다. 아. 이것이또한 운명이란 말인가? 이것은 나의 본성 때문이니, 내가 또 어찌 감히 운명을 말하겠는가? 노자의 말을 보건대, "신중하라, 한겨울에 내를 건너듯이, 두려워하라 사방에서 에워싼 듯이"라고 했으니, 이 두 마디 말은 내 병을 고치는 약이 아닌가? 대체로 겨울에 시내를 건너는 사람은 차가움이 뼈를 에듯 하므로 부득이한 일이 아니면 건너지 않는다. 사방에서 이웃이 엿보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시선이 자기 몸에 이를까 염려하기 때문에 부득이한 경우라도하지 않는다. - P98
‘선우후락 先憂後樂‘ 이라는 말이 있다. "선비는 마땅히 천하 사람의 근심에 앞서서 근심해야 하고, 천하 사람들이 다 즐거운 뒤에 즐거워해야 한다"는 뜻으로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말한다. 하지만 오늘날 오히려 보이지 않는 계급 질서는 더 견고해지고, 심지어 비열하기까지 한 세태다. 높은 지위, 많은 재산은 마치 그 어떤 나쁜 행동도 저질러도 되는 권리처럼 받아들여지고, 높은 지위에 이르면 사람들을 위해 근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위에 군림해도 된다는 착각이 상식처럼 되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계급을 막론하고 서로 간의 존중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 어떤 지위나 부, 권력을 가졌어도 마찬가지다. 눈앞의 사람을 존중할 줄 모르면 존중받을 자격이 없다. 그 옛날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ㅠ임금에게도 신하를 존경하고 신하에게 진심으로 존경받을 것을 요구했다. 오늘날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 P110
첫머리에 나온 용모를 바르게 하고 반드시 공손하게 들어야 한다‘는 배움에 충실한 사람이 겉으로 드러내는 자세다. 다산은 두 아들에게 이러한 이치를 명심시켰다.
지난번에 너를 보니 옷깃을 여미고 무릎 꿇고 앉으려 하지 않아, 단정하고 엄숙한 빛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는 나의 병통이 한 번 옮겨가서 너의 못된 버릇이 된 것이니, 성인이 ‘먼저 외모로부터 수습해나가야 바야흐로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가르친 이치를 모르는 것이다. 세상에 비스듬히 눕고 삐딱하게 서서 큰소리로 지껄이고 어지러이 보면서 공경하게 마음을 지킬 수 있는 (주경존심主敬在心) 자는 없다. 그러므로 ‘몸을 움직이는 것(동용모 前容貌)‘, ‘말을 하는 것(출사기出辭氣)", "얼굴빛을 바르게 하는 것(정안색正顔色)‘이 학문을 하는 데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니, 이 세 가지에 힘쓰지 못한다면 아무리 하늘을 꿰뚫는 재주와 남보다 뛰어난 식견을 가지고 있더라도 끝내 발을 땅에 붙이고 바로 설 수 없다. - P129
無用之辯不信之察棄而不治무용지번 물급지찰 기이불치 쓸데없는 말과 급하지 않은 일은 버려두고 신경 쓰지 마라. <<순자>>, <천론>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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