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와 블랑카가 서로 주고받은 편지들이 없었더라면 그 시기는 시간이 흐르면서 빛이 바래고 희미해진 기억들로 뒤죽박죽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주고받은 수많은 편지들 덕분에 베일에 싸일 뻔한, 도저히 있을 수도 없을 것같은 엄청난 진실이 보존되었다. 클라라는 결혼식 이후 딸에게서 온 첫 편지를 읽는 순간 블랑카와 오래 헤어져 있지 않을 거라고 예감했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서 집 안에서 가장 크고 햇빛이 잘 드는 방을 준비해 두었다. 그러고는 그 방 안에다 세 자식들이 사용했던 청동 요람도 갖다 놓았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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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까지는 비참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 사이에 확실한 경계선이 그어져 있었다. 그리고 아만다는 자신과 같은부류에 속해 있었다. 넥타이를 매고 일하는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자기와 같은 돈 많은 얼간이들을 부러워하는 동시에 무시하는 중간계급이 있다는 건 전혀 몰랐다. 으리으리한 트루에바 저택에서 아만다가 자신의 가난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집안 식구들 대부분에게 주문을 걸어야 할 때가 여러 번 있었을테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은 그녀를 도와주지 못했다는사실을 생각하면서 혼란스럽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니콜라스는 가난했던 아버지의 어린 시절과 자기 나이에 어머니와 누나를 부양하기 위해 직장을 가져야 했다던 아버지의 얘기를 떠올렸다. 니콜라스는 교훈적이라고만 생각했던 그런 일화들을 자기가 본 현실과 난생처음으로 연결해 볼 수 있었다. 니콜라스는 아만다의 삶이 바로 그와 같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 P405

해 질 녘이 되자 미겔이 발그스름하게 붉어진 뺨을 하고서 등 뒤로 선물을 감춘 채 머뭇거리면서 돌아왔다. 누나에게 줄 빵 봉투였다. 미겔은 선물을 침대 위에 놓고서 누나에게 애정 어린 키스를 하고 고사리 같이 작은 손으로누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베개를 바로 해주었다. 니콜라스는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그 어린아이의 몸짓에는 자기가 살면서 여자들에게 보여줬던 그 어떤 관심이나 애무보다도 큰 애정과 사랑이 담겨 있었다. 그제야 니콜라스는 아만다가 한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난 배울 게 많아."
니콜라스가 중얼거렸다.
- P406

미국인 의사들은 에스테반의 몸의 치수를 재고, 각 부위마다 일일이 무게를 재고, 영어로 질문하고, 바늘로 몸속이 액체를 주입시켰다가 다른 바늘로 그 액체를 다시 뽑아냈다. 엑스레이도 찍고 장갑을 뒤집듯 그의 몸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심지어는 항문에 발광체를 끼워 넣기도 했다. 마침내 미국 의사들은 모든 게 그의 상상에서 비롯된것이며, 몸이 쪼그라들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그는 언제나 똑같은 사이즈였으며, 자기가 옛날에는 키 1미터 80 센티미터에 42 사이즈의 신발을 신었다고 착각한 것이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에스테반 트루에바는 화가 나서 자기 나라로 돌아왔다. 나폴레옹부터 히틀러까지 역사적으로 위대한 정치가들이 키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키 문제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집에 돌아와 보니 미겔이 정원에서 놀고 있었고, 아만다가 하이메와 함께 테라스에 앉아 있었다. 아만다는 훨씬 더 야위고 눈밑이 시꺼메진 데다가, 평소 주렁주령 달고 다니던 목걸이나 팔찌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지만 에스테반은 자기집 지붕 아래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다.
- P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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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 발전소의 건설과 운영 비용은 공해 규제 때문에 더욱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에너지 전환이 이루어지는 진정한 이유는 더 에너지 밀도가 높고 풍부하고 저렴한 대안이 출현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마르케티가 예견했던 바와 같다. 하지만 이후의 역사는 마르케티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사회가, 특히 상류 계급이 새로운 기술과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 P253

낚시와 어업에 희생되는 노란눈펭귄과 앨버트로스를 떠올려 보자.
물고기 양식은 이런 해양 생물과 야생 어류 보호에 필수적이다. 1970년대 이래로 야생 해양 어류 전체의 개체 수가 40퍼센트 가량 감소했다. 사람들이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과도한 어획은 상어를 포함해 많은 어종의 지역 멸종을 불러온 원인이다.
오늘날 어류 자원 중 90퍼센트가 남획되거나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어종 전체가 절멸하거나 그 직전 상황에 몰리도록 잡아 대고 있는것이다. 지표면 중 15퍼센트가 보호 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는 반면 바다는 오직 8퍼센트만이 보호 수역이다.
1974년 이래 인류가 먹어 치우는 생선 양은 3배나늘어 이미 지속 불가능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 야생 어류의 위기는 날로 커지는 중이다. 2020년부터 2050년까지 세계 생선 수요는 2배 오를 것으로 보인다. 인구와 소득의 증가로 인한 현상이다.

다행히 프래킹에 대한 전쟁은 실패로 끝났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미국은 셰일층을 수압파쇄해 천연가스를 채굴하는 기술의 발전과 적용에 대해 그리 큰 규제를 하지 않았고, 지금 그 혜택을 톡독히 보고 있다. 미국은 부동산 소유주에게 지하자원에 대한 개발 권리를 온전히 인정하는 나라다. 다른 국가 대부분은 지하자원 개발 권리가 정부에 귀속된다. 그래서 프래킹은 미국 외에 그 어떤 나라에서도 발전할 수 없었다.

식물 기반 식단은 육류를 포함하는 식단에 비해 저렴하다. 그 결과사람들은 오히려 생산, 유통, 소비 과정에서 에너지를 사용하는 소비등에 돈을 더 많이 쓰게 된다고 연구자들은 지적한다. 이 현상은 흔히리바운드 효과 rebound effect‘로 알려져 있다. 소비자들이 채식을 하면서아낀 돈을 소비재에 쓸 경우 그에 따른 소비가 늘어나게 되므로 순 에너지 사용량 감소는 0.07 퍼센트, 순 탄소 배출량 감소는 2퍼센트에 지나지않는 것은 그래서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식품이나 토지사용 같은 분야가 아니라 ‘에너지‘ 분야에서 탄소 배출 절감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에너지 분야가 가장 중요하다. 전기, 수송, 요리, 난방같은 에너지 분야가 세계 화석 연료 소비의 거의 90퍼센트를 차지하고있다.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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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페드로 가르시아 노인이 밤마다 닭장 안으로 들어와 계란을 훔치고 병아리를 잡아먹는 여우에 맞서 의기 위해 암탉들이 힘을 모은 이야기를 블랑카와 페드로 테르세로에게 들려주었다. 암탉들은 더 이상 여우의 횡포를 참고만 있을 수 없다고 결론짓고는, 여우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다가 여우가 닭장 안으로 들어오자 길을 차단한 후 여우를 포위하고는 덮쳐서 정신없이 쪼아대 여우를 반쯤 죽여 놓았다.
 "그러자 여우는 암탉들에게 쫓겨 고리를 내리고는 정신없이 도망쳤지."
노인이 이야기를 마쳤다.
그 이야기를 듣고 블랑카는 닭들은 원래 어리석고 약하지만 여우는 약삭빠르고 강하기 때문에 그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웃었다. 그렇지만 페드로 테르세로는 웃지 않았다. 페드로 테르세로는 오후 내내 여우와 암탉들의 얘기를 되새기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그 순간 페드로 테르세로는 어른이 된 것일지도 모른다.
- P248

땅이 심하게 흔들려 클라라는 제대로 서 있을 수도 없었다. 그녀는 무릎을 꿇은 채 바닥으로 쓰러졌다. 귀가 먹을정도로 엄청난 굉음과 함께 지붕 위의 기왓장들이 떨어져나가 클라라의 주변으로 비처럼 쏟아졌다. 도끼를 휘둘러댄 것처럼 생벽돌 벽이 그냥 무너져 내렸으며, 악몽에서본 것처럼 땅바닥이 쩍쩍 갈라졌다. 클라라 앞쪽으로 엄청난 틈새가 벌어지면서 닭장이며 빨래터, 마구간의 일부가 휘말려 들어갔다. 물탱크가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다가 땅바닥으로 넘어져 터지는 바람에 천 리터나 되는 물이 간신히 살아남은 닭들 위로 쏟아져, 닭들은 필사적으로 날개를퍼덕거려야 했다. 멀리서 화산이 성난 용처럼 불과 연기를 시뻘겋게 뿜어내기 시작했다. 개들은 쇠사슬에서 풀려 나와 미친 듯이 뛰어다녔으며, 무너진 마구간에서 용케 살아남은 말들은 공포로 허공을 박차며 히이잉거리며 울다가 광활한 들판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포플러나무는 술 취한 사람처럼 흐느적거렸으며, 뿌리째 뽑혀 나가면서 참새둥지를 짓이겨 버린 나무도 있었다. 가장 두려운 것은 땅 속 깊은 곳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절규하는 듯한 소리였다. -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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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롤라는 오랜 세월을 혼자 외롭고 슬프게 살다 보니 재미도 없고 감정도 모두 메말라버린 채 몇 가지 끔찍하고 커다란 열정에만 집착하게 되었다. 페룰라는 작은 동요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치사하게 누구에게 원한을 갖지도 않았고, 남몰래 누군가를 질투하지도 않았다. 위선적인 행동도 하지 않았고, 싫은데 좋은 척하지도 않았고, 예의상 친절하게 굴지도 않았고, 평소 남에 대한 배려도 하지 않았다. 페룰라는 오로지 어마어마한 사랑 하나만을 위해 태어난 그런 사람이었다. 엄청난 증오나 끔찍한 복수, 가장 숭고한 영웅심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었다. 그렇지만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그렇게 낭만적으로 풀어 나갈 수 가 없었다. 대신 병든 엄마의 방 안이나 비참한 빈민가에 감혀 고된 고해 성사나 하면서 우울하고 밋밋한 생을 살아야했다. 어머니가 되기 위해, 대의명분을 위해, 열정을 위해, 풍요를 위해 뜨거운 피를 가지고 태어난 덩치 크고 중만한 여자가 그렇게 자신을 소진하며 살아야 했던 것이다.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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