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까지는 비참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 사이에 확실한 경계선이 그어져 있었다. 그리고 아만다는 자신과 같은부류에 속해 있었다. 넥타이를 매고 일하는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자기와 같은 돈 많은 얼간이들을 부러워하는 동시에 무시하는 중간계급이 있다는 건 전혀 몰랐다. 으리으리한 트루에바 저택에서 아만다가 자신의 가난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집안 식구들 대부분에게 주문을 걸어야 할 때가 여러 번 있었을테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은 그녀를 도와주지 못했다는사실을 생각하면서 혼란스럽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니콜라스는 가난했던 아버지의 어린 시절과 자기 나이에 어머니와 누나를 부양하기 위해 직장을 가져야 했다던 아버지의 얘기를 떠올렸다. 니콜라스는 교훈적이라고만 생각했던 그런 일화들을 자기가 본 현실과 난생처음으로 연결해 볼 수 있었다. 니콜라스는 아만다의 삶이 바로 그와 같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 P405

해 질 녘이 되자 미겔이 발그스름하게 붉어진 뺨을 하고서 등 뒤로 선물을 감춘 채 머뭇거리면서 돌아왔다. 누나에게 줄 빵 봉투였다. 미겔은 선물을 침대 위에 놓고서 누나에게 애정 어린 키스를 하고 고사리 같이 작은 손으로누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베개를 바로 해주었다. 니콜라스는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그 어린아이의 몸짓에는 자기가 살면서 여자들에게 보여줬던 그 어떤 관심이나 애무보다도 큰 애정과 사랑이 담겨 있었다. 그제야 니콜라스는 아만다가 한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난 배울 게 많아."
니콜라스가 중얼거렸다.
- P406

미국인 의사들은 에스테반의 몸의 치수를 재고, 각 부위마다 일일이 무게를 재고, 영어로 질문하고, 바늘로 몸속이 액체를 주입시켰다가 다른 바늘로 그 액체를 다시 뽑아냈다. 엑스레이도 찍고 장갑을 뒤집듯 그의 몸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심지어는 항문에 발광체를 끼워 넣기도 했다. 마침내 미국 의사들은 모든 게 그의 상상에서 비롯된것이며, 몸이 쪼그라들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그는 언제나 똑같은 사이즈였으며, 자기가 옛날에는 키 1미터 80 센티미터에 42 사이즈의 신발을 신었다고 착각한 것이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에스테반 트루에바는 화가 나서 자기 나라로 돌아왔다. 나폴레옹부터 히틀러까지 역사적으로 위대한 정치가들이 키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키 문제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집에 돌아와 보니 미겔이 정원에서 놀고 있었고, 아만다가 하이메와 함께 테라스에 앉아 있었다. 아만다는 훨씬 더 야위고 눈밑이 시꺼메진 데다가, 평소 주렁주령 달고 다니던 목걸이나 팔찌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지만 에스테반은 자기집 지붕 아래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다.
- P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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