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진하게 화장을 한, 장미꽃 색깔의 니트 드레스를 입은 중년여인이 계단을 밟고 기차에 올라타는 것을 봤다. 그녀 뒤로 여름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입은 채 핸드백을 움켜쥔 아가씨가 올라왔다. 그다음에 기차에 오른 사람은 노인으로 아주 천천히. 나름대로 위엄을 갖춰움직이고 있었다. 노인은 백발이었고 하얀 실크 크라바트를 매고 있었지만, 신발이 없었다. 승객들은 당연히 이 세 사람이 동행이라고 추측했다. 그리고 이 밤에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일이 행복한 일은 아니었을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승객들은 살아오는 동안 그보다 더 희한한 일들도 봐왔다. 그들도 잘 알다시피 세상은 별의별 종류의 일들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이 일은 예상했던 것만큼 나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런 까닭으로 이 세 사람이 통로를 걸어자기 자리를 잡는 동안 여인과 백발노인은 서로 나란히 앉았고, 핸드백을 든 아가씨는 몇 자리 뒤쪽에 앉았다. 그들은 더이상 다른 생각으로 이어가지 않았다. 대신에 승객들은 역을 바라보며 그 역에 기차가 서기 전에 저마다 빠져들었던 생각, 그러니까 저마다의 문제들로 돌아갔다. 차장은 철로를 살펴봤다. 그리고 그는 기차가 온 방향을 훑어봤다. 그는 팔을 들어 손전등으로 기관사에게 신호를 보냈다. 기관사는 그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눈금판을 돌리고 레버를 내렸다. 기차는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천천히 움직였으나, 곧 속력을내기 시작했다. 기차는 환한 객차 불빛을 노반에 흩뿌리며, 다시 어두운 시골 동네를 빠르게 통과할 수 있을 때까지 점점 더 빨리 움직이기시작했다. - P2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유주가 노동자에게 주는 급여를 줄일 수 있게 만들어주는 제도배열 아래에서 많은 가계는 현금 급여 이외 소득원에서 생계의 일부를 확보한다. 이를테면 자급 활동(텃밭, 바느질), 비공식호혜 활동(상호부조, 현물 교환), 공적이전소득(복지수당, 사회서비스, 공공재) 등이다. 이러한 제도배열에서는 인간 활동과 재화의 상당 부분이 시장의 영향권 바깥에 머문다.
이러한 활동과 재화는 단순히 자본주의 이전 시대가 남긴 잔재가 아니며, 사멸 중인 것도 아니다. 예를 들면, 20세기 중반에 포드주의가 중심부의 선진공업국에서 노동계급 소비주의를 촉진할 수 있었던 것은, 남성의 고용과 여성의 가사활동을 결합한 반-프롤레타리아화된 가계 덕분이면서 동시에 주변부의 상품소비가 발전하지 못하게 막은 덕분이기도 했다. 반-프롤레타리아화는 신자유주의에 들어서 오히려 더 강화됐는데, 신자유주의가 구축한 축적 전략이란 한마디로 수십억 민중을 공식 경제에서 추방해 비공식 회색 지대(자본이 부를 쪽쪽 빨아먹는)로 옮겨버리는 것이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런 종류의 ‘원시 축적‘은자본이 이윤을 뽑아내는 원천이자 기댈 언덕이 되어주는 현재진행형 과정이다.
따라서 요점은, 자본주의 사회의 시장화된 측면‘과 ‘비시장화된 측면‘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이는 예외적 현상이나 우연적인 경험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DNA에 각인된 특징이다. 사실 ‘공존‘은 이 둘의 관계를 포착하기에는 너무 약한 단어다. 더 나은단어는 ‘기능적 중첩imbrication‘이나 ‘종‘이겠지만, 이런 말들도 이 관계의 도착성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앞으로 논의를통해 더 분명해지겠지만, 이러한 측면을 가장 훌륭하게 표현하는 말은 ‘제살깎아먹기cannibalization‘다. - P36

인식의 전환에서 한 가지 핵심적인 것은 ‘생산‘에서 ‘사회적 재생산‘으로 나아가는 전환이다. ‘사회적 재생산‘이란, 인간 존재와 사회적 유대를 생산하고 지탱하는 상호작용, 필수재공급, 돌봄 제공의 형태들을 뜻한다. ‘돌봄‘, ‘감정노동‘, ‘주체화subjectivation‘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는 이러한 활동은 자본주의의 인간 주체들을 형성하고, 그들을 육체를 지닌 자연적 존재로지속시킨다. 또한 그들을 사회적 존재로 구성하고 그들의 활동반경을 이루는 아비투스habitus 와 사회-윤리적 내용 혹은 인륜성Sittlichkeit을 형성한다. - P40

자본주의는 ‘자연‘의 관할영역과 ‘경제‘의 관할영역 사이에 선명한 분할을 전제하며, 실제로 이를 등장시킨다. 이때 자연은 ‘원자재‘를 지속적으로 무상 공급하는, 쉽게 전용할 수 있는 영역으로 인식되고, 경제는 인간을 위해, 인간에 의해 생산되는 가치의영역이라고 인식된다. 이와 더불어, 이미 존재하던 ‘인간‘과 ‘비인간) 자연‘ 사이의 구별도 강화된다. 이 구별에서 인간은 영적이고 사회문화적이며 역사적인 존재라 여겨지고, 비인간 자연은 객관적으로 주어진 몰역사적 물질이라 여겨진다. 이런 구별의 심화 역시, 여러 면에서 사회생활의 리듬이 비인간 자연에 순응하던 이전 세계가 해체된 결과였다. 자본주의는 인간을 자연의 계절적 리듬에서 폭력적으로 분리해내고는, 화석 연료 기반의 제조업이나 화학 비료를 통해 억지로 확대된 이윤 주도 농업에징용한다. 마르크스가 ‘물질대사 균열metabolic rift‘이라 칭한 바가 시작됨으로써, 바야흐로 (다분히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이름인 ‘인류세‘라고 불리는 완전히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가 열렸다‘ ‘인간 활동‘(실은 자본 활동)이 지구를 놓고 제살 깎아먹는 짓을 벌이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 분할 역시 자본주의와 함께 등장했으며, 자본주의 시스템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변화를 거듭했다. 현재의 신자유주의 국면은 ‘더 많은 자연‘을 경제 영역의 본이야기에 끌어들이는 새로운 인클로저 물결(예를 들어, 물의 상품화)이 시작되게 만들었다.  - P4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가 타고 있는 객차의 아래쪽에서 끽끽거리는 쇳소리가 나더니 뭔가가 다가와서 세차게 부딪치고는 자리를 잡았다. 마이어스는 미로 같은 선로들을 내다보다가 기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는 돌아서서 허겁지겁 객차의 끝으로 가서 원래 자기가 앉아 있던 객차로 넘어갔다. 그는 복도를 걸어 자신의 칸막이 객실로 갔다. 하지만 신문을 읽고 있던 젊은 남자는 없었다. 그리고 마이어스의 여행가방도 없었다. 그건 그가 타고 있던 칸막이 객실이 아니었던 것이다. 번쩍 정신이 들며 그는 기차가 조차장에 있는 동안 자신이 타고 있던 객차를 떼어낸 뒤 다른 이등 객차를 연결시킨 게 분명하리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가 서 있는 칸막이 객차 안에 꽉 들어찬, 몸집이 작고 살갗이 검은 사내들은 마이어스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언어로 빠르게 말하고 있었다. 그들 중 하나가 그에게 들어오라는 몸짓을 했다. 마이어스가 칸막이 객실 안으로 들어서자 그 사람들이 앉을 공간을 만들어줬다. 칸막이 객실 안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몸짓을 했던 사내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자기 옆에 앉으라고 의자를 두들겼다. 마이어스는 진행 방향으로 등을 돌리고 앉았다. 차창 밖 시골 풍경이 점점 더 빨리 스쳐가기 시작했다. 한순간, 마이어스는 그 풍경이 자신에게서 멀어진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는 어딘가로 가고 있었고, 그걸 알았다. 그리고 그게 잘못된 방향이라면, 조만간 그는 알게되리라. - P86

"애가 왜 깨어나지 않는 걸까?" 앤이 말했다. "하워드, 이 사람들한테 무슨 대답 좀 들었으면 좋겠어."
하워드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는 다시 의자에 앉더니 다리를 꼬았다. 그러고는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그는 아들을 한 번 바라본뒤,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대고 앉아 눈을 감고 잠들었다.
앤은 창가로 걸어가 주차장을 내다봤다. 밤이라 자동차들은 불을 켜고 주차장을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창틀을 꽉 잡은채 서 있었다. 그녀는 이제 자신들이 다른 어떤 곳, 어떤 어려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두려웠다. 입이 덜덜덜 떨리기 시작하자 그녀는 입을 앙다물었다. 그녀는 병원 앞에 대형자동차 한 대가 서자 롱코트를 입은 한 여인이 그 차에 올라타는 걸 봤다. 자신이 그 여자였더라면, 그래서 그게 누구든, 누군가 자기를 태우고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그러니까 스코티가 기다리고 있다가 자신이 차에서 내리면 "엄마!" 하고 외치면서 품안으로 뛰어들어오는 곳으로. 데려갔으면 좋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워드가 깨어났다. 그는 다시 아이를 쳐다봤다. 그러더니 의자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켠 뒤, 창가로 걸어가 앤의 곁에섰다. 두 사람은 나란히 주차장을 빤히 쳐다봤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제 그들은 서로의 가슴속까지도 느끼는 듯했다. 마치 걱정을 많이 하다보니 아주 자연스럽게 온몸이 투명해진 사람들처럼. - P104

그들은 롤빵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앤은 갑자기 허기를 느꼈는데, 그 롤빵은 따뜻하고 달콤했다. 그녀는 롤빵을 세 개나 먹어 빵집 주인을 기쁘게 했다. 그리고 그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신경써서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지치고 비통했으나, 빵집 주인이 하고 싶어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빵집 주인이 외로움에 대해서, 중년을 지나면서 자신에게 찾아온 의심과 한계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할 때부터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들에게 그런 시절을 아이 없이 보내는 일이 어떤 것인지 말했다. 매일 오븐을 가득 채웠다가 다시 비워내는 일을 반복하면서 보내는 일이 어떤 것인지. 그가 만들고 또 만들었던 파티 음식, 축하 케이크들. 손가락이 푹 잠길 만큼의 당의 케이크에 세워두는 작은 신혼부부 인형들. 몇백, 아니, 지금까지 몇천에 달할 것들, 생일들. 그 많은 촛불들이 타오르는 것을 상상해보라. 그는 반드시 필요한 일을 했다. 그는 빵집 주인이었다. 그는 자신이 꽃장수가 아니라 좋았다. 사람들이 먹을 것을 만드는 게 더 좋았다. 언제라도 빵냄새는 꽃향기보다 더 좋았다.
"이 냄새를 맡아보시오." 검은 빵 덩어리를 잘라내면서 빵집 주인이말했다. "퍽퍽한 빵이지만, 맛깔난다오." 그들은 빵냄새를 맡았고, 그는 맛보라고 권했다. 당밀과 거칠게 빻은 곡식 맛이 났다. 그들은 그에게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먹을 수 있는 만큼 먹었다. 그들은 검은 빵을 삼켰다. 형광등 불빛 아래에 있는데, 그 빛이 마치 햇빛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이른 아침이 될 때까지, 창으로 희미한 햇살이 높게 비칠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는데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 P12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즉, 현 위기를 발생시킨 책임은 ‘식인 자본주의‘ 시스템에 있다. 현재의 위기는 다양한 폭식증의 발작이 한데 모인 예외적유형의 위기다. 수십 년에 걸친 금융화로 인해 지금 우리가 직면한 위기는, ‘단지‘ 극단적인 불평등이나 저임금 불안정 노동의 위기만이 아니다. ‘단지‘ 돌봄이나 사회적 재생산의 위기만도 아니고, 이민과 인종화된 폭력의 위기만도 아니다. 또한 뜨거워진 지구가 치명적 전염병을 토해내는 ‘단순한‘ 생태적 위기만도 아니고, 무너져가는 인프라와 군사주의 증대, 독재자의 만연을 특징으로 하는 ‘오로지‘ 정치적인 위기만도 아니다. 아니, 이 위기는 ‘더 나쁜 무엇‘이다. 이 모든 재난이 한데 모여 서로를 악화시키며 우리를 집어삼키겠다고 위협하는, 사회 질서 전체의 전반적 위기다. - P20

마지막으로 식인 자본주의는 광범하게 포진해 있으면서 서로 복잡하게 결합된 사회적 투쟁을 촉발한다. 생산 지점에서벌어지는 계급투쟁만이 아니라, 이 시스템을 구성하는 접합 부위마다 벌어지는 경계투쟁boundary struggles을 불러일으킨다. 생산이 사회적 재생산과 충돌하는 지점에서 시스템은 돌봄(공공부문이든 민간부문이든, 유급 노동이든 무급 노동이든)을 둘러싼 갈등을 유발한다. 착취와 수탈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시스템은 ‘인종‘, 이민, 제국을 둘러싼 투쟁이 끓어오르게 만든다. 또한 축적이 자연의 한계에 직면한 지점에서도 식인 자본주의는 토지, 에너지, 식물군과 동물군, 지구의 운명을 둘러싼 갈등을 폭발시킨다. 마지막으로 지구 시장과 초거대 기업이 국민국가 또는 초국적 거버넌스 기구와 만나는 지점에서, 식인 자본주의는 공적 권력의 형태와 통제, 범위를 둘러싼 투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가 처한 곤경의 이 모든 가닥은 자본주의에 관한 확대된 인식(통일성과 차별성을 동시에 갖춘)을 통해서만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 - P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직장에서 알게 된, 버드라는 친구가 있는데, 그가 저녁이나 함께 먹자며 프랜과 나를 초대했다. 나는 버드의 아내를 몰랐고 버드는 내 아내 프랜을 몰랐다. 그 점에서 우리는 공평했다. 하지만 버드와 나는 친구였다. 버드의 집에 아기가 있다는 사실도 나는 알고 있었다. 버드가저녁식사에 초대했을 즈음, 아기는 생후 팔 개월 정도였을 것이다. 팔개월이라니? 그 시간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도대체, 지금까지의 시간은 또 다 어디로 간 걸까? 버드가 시가 박스를 들고 출근한 날이 생각난다. 구내식당에서 버드는 내게 시가를 내밀었다. 드럭스토어에서 파는 시기였다. 더치 매스터스. 그런데 한 개비마다 붉은 스티커를 붙여놓고 ‘사내애랍니다‘라는 글씨가 인쇄된 포장지로 싼 시가였다."
원래 시가를 잘 피우지 않지만, 어쨌든 한 개비를 집었다. "몇 개 더 가져." 버드가 말했다. 그는 박스를 흔들었다. "나도 시가는 안 좋아해. 그 사람 아이디어지." 그러니까 버드는 자기 처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 P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