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타고 있는 객차의 아래쪽에서 끽끽거리는 쇳소리가 나더니 뭔가가 다가와서 세차게 부딪치고는 자리를 잡았다. 마이어스는 미로 같은 선로들을 내다보다가 기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는 돌아서서 허겁지겁 객차의 끝으로 가서 원래 자기가 앉아 있던 객차로 넘어갔다. 그는 복도를 걸어 자신의 칸막이 객실로 갔다. 하지만 신문을 읽고 있던 젊은 남자는 없었다. 그리고 마이어스의 여행가방도 없었다. 그건 그가 타고 있던 칸막이 객실이 아니었던 것이다. 번쩍 정신이 들며 그는 기차가 조차장에 있는 동안 자신이 타고 있던 객차를 떼어낸 뒤 다른 이등 객차를 연결시킨 게 분명하리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가 서 있는 칸막이 객차 안에 꽉 들어찬, 몸집이 작고 살갗이 검은 사내들은 마이어스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언어로 빠르게 말하고 있었다. 그들 중 하나가 그에게 들어오라는 몸짓을 했다. 마이어스가 칸막이 객실 안으로 들어서자 그 사람들이 앉을 공간을 만들어줬다. 칸막이 객실 안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몸짓을 했던 사내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자기 옆에 앉으라고 의자를 두들겼다. 마이어스는 진행 방향으로 등을 돌리고 앉았다. 차창 밖 시골 풍경이 점점 더 빨리 스쳐가기 시작했다. 한순간, 마이어스는 그 풍경이 자신에게서 멀어진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는 어딘가로 가고 있었고, 그걸 알았다. 그리고 그게 잘못된 방향이라면, 조만간 그는 알게되리라. - P86

"애가 왜 깨어나지 않는 걸까?" 앤이 말했다. "하워드, 이 사람들한테 무슨 대답 좀 들었으면 좋겠어."
하워드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는 다시 의자에 앉더니 다리를 꼬았다. 그러고는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그는 아들을 한 번 바라본뒤,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대고 앉아 눈을 감고 잠들었다.
앤은 창가로 걸어가 주차장을 내다봤다. 밤이라 자동차들은 불을 켜고 주차장을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창틀을 꽉 잡은채 서 있었다. 그녀는 이제 자신들이 다른 어떤 곳, 어떤 어려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두려웠다. 입이 덜덜덜 떨리기 시작하자 그녀는 입을 앙다물었다. 그녀는 병원 앞에 대형자동차 한 대가 서자 롱코트를 입은 한 여인이 그 차에 올라타는 걸 봤다. 자신이 그 여자였더라면, 그래서 그게 누구든, 누군가 자기를 태우고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그러니까 스코티가 기다리고 있다가 자신이 차에서 내리면 "엄마!" 하고 외치면서 품안으로 뛰어들어오는 곳으로. 데려갔으면 좋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워드가 깨어났다. 그는 다시 아이를 쳐다봤다. 그러더니 의자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켠 뒤, 창가로 걸어가 앤의 곁에섰다. 두 사람은 나란히 주차장을 빤히 쳐다봤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제 그들은 서로의 가슴속까지도 느끼는 듯했다. 마치 걱정을 많이 하다보니 아주 자연스럽게 온몸이 투명해진 사람들처럼. - P104

그들은 롤빵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앤은 갑자기 허기를 느꼈는데, 그 롤빵은 따뜻하고 달콤했다. 그녀는 롤빵을 세 개나 먹어 빵집 주인을 기쁘게 했다. 그리고 그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신경써서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지치고 비통했으나, 빵집 주인이 하고 싶어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빵집 주인이 외로움에 대해서, 중년을 지나면서 자신에게 찾아온 의심과 한계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할 때부터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들에게 그런 시절을 아이 없이 보내는 일이 어떤 것인지 말했다. 매일 오븐을 가득 채웠다가 다시 비워내는 일을 반복하면서 보내는 일이 어떤 것인지. 그가 만들고 또 만들었던 파티 음식, 축하 케이크들. 손가락이 푹 잠길 만큼의 당의 케이크에 세워두는 작은 신혼부부 인형들. 몇백, 아니, 지금까지 몇천에 달할 것들, 생일들. 그 많은 촛불들이 타오르는 것을 상상해보라. 그는 반드시 필요한 일을 했다. 그는 빵집 주인이었다. 그는 자신이 꽃장수가 아니라 좋았다. 사람들이 먹을 것을 만드는 게 더 좋았다. 언제라도 빵냄새는 꽃향기보다 더 좋았다.
"이 냄새를 맡아보시오." 검은 빵 덩어리를 잘라내면서 빵집 주인이말했다. "퍽퍽한 빵이지만, 맛깔난다오." 그들은 빵냄새를 맡았고, 그는 맛보라고 권했다. 당밀과 거칠게 빻은 곡식 맛이 났다. 그들은 그에게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먹을 수 있는 만큼 먹었다. 그들은 검은 빵을 삼켰다. 형광등 불빛 아래에 있는데, 그 빛이 마치 햇빛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이른 아침이 될 때까지, 창으로 희미한 햇살이 높게 비칠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는데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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