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리를, 광장을 기대했다. 대신 내가 서 있는 곳은 더러운 강으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계단의 꼭대기이다. 강가에 도착한 것이다. 결국, 세인트폴 성당과 가까워진 셈이다. 그러나 넓디넓은 템스 강이 나와교회 사이로 흐르고 있다. 나는 서서 일종의 공포와 외경 속에 강을 바라본다. 브라이어에서 템스 강을 따라 걷던 기억이 난다. 강이 둑을 침식하고흔드는 것같이 보이던 기억이 난다. 난 저 강이, 마치 나처럼, 미치도록 빨라지고 싶어 한다고, 넓어지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까지 넓어지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독처럼 퍼져 나간다. 강바닥이 부서진 물건들로 어지럽다. 짚, 나무, 잡초, 종이, 천조각, 코르크와 기우뚱한 병들이 보인다. 강이 움직인다. 강이아니라 바다처럼 움직인다. 파도가 친다. 그리고 선체에 부딪히면서, 강변에 철썩 떨어지면서, 강변에 솟아 있는 계단과 벽과나무 부두에 부딪히면서 강은 쉬어 버린 우유처럼 거품을 가득문다. - P556
「내게도 내 배 아파 낳은 아기가 하나 있었는데 죽었다고 그 숙녀, 수의 어머니가 왔던 즈음에 말이야」 부인이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내가 말했지. 이 근처에서 다시 물어봐도 똑같은 대답을 들을 거야. 아기들은 잘 죽거든. 그러니 누가 이상하단 생각을 했겠어••••••?」목소리에 무언가가 있다. 몸이 떨려 오기 시작한다. 부인이내가 떠는 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손을 뻗어 내 엉킨 머리를 어루만진다. 「됐어, 이젠 휴. 그래. 넌 이제 안전하단다. 그리고 어루만지던 손길이 멈춘다. 부인이 내 머리털 한 줌을 쥐고 있다. 부인의 얼굴에 다시 웃음이 떠오른다. 「참 재미있지.」부인의 목소리가 달라진다. 「네 머리 말이야. 난 네 눈이 갈색이고 피부는 하얗고 허리와 손은 가늘 거라 생각했어. 오직 네 머리만이 내가 상상하던 이상으로 더 금발이구나•••••• 말이 갑자기 뚝 끊긴다. 손을 뻗으며 부인은 고개를 움직였다. 가로등 불빛과, 변색한 은 같은 달에서 나오는 달빛이 부인얼굴을 비추면서 갑자기 부인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부인의갈색 눈과 창백한 피부, 통통한 입술. 그리고 갑자기 나는 깨닫는다. 저 입술은 한때는 훨씬 더 통통했으리라••••••. 부인이 입술을 적신다. 「아가.」 부인이 말한다. 「나의, 나의 소중한 딸••••••. 부인이 다시 잠시 주저하다가 마침내 입을 연다. - P589
「좋아하지, 그렇지?」 여전히 엉덩이를 돌리며 베이컨 간호사가 말했다.「아니라고? 네가 좋아한다는거 우리 모두 들었는데 뭘 그러자 간호사들이 아우성을 쳤다. 아우성치며 날 바라보는얼굴에서, 전에는 보아도 이해하지 못했던 심술궂은 표정을 다시 보았다. 이제는 물론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예전에 모드가 크림 부인의 집에서 크리스티 의사에게 했을 말이 짐작이 갔다. 모드가 그 일을 얘기했을 거란 생각이, 나를 미쳤다고 몰기 위해 젠틀먼 앞에서 그 일을 얘기했을 거란 생각이 갑자기 들면서 심장이 멎는 듯했다. 브라이어를 떠난 뒤로는 심장멎을 일이 무척 많았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이 최악 같았다. 화약으로 가득 차 있는데 막 성냥으로 그어진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몸부림치고 비명 지르기 시작했다. - P661
우리는 젠틀먼이 어슬렁거리며 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젠틀먼은 휘파람을 불고 있었던 듯하다. 그러더니 입스 씨의 가게 문 앞에서멈추어 섰다. 손을 외투 주머니에 넣더니 열쇠를 끄집어냈다. 계단에 대고 오른발, 그다음엔 왼발에서 먼지를 떨어냈다. 그러고는 자물쇠에 열쇠를 찌르고 주위를 무심히 둘러본 뒤 안으로들어갔다. 너무나 편안하고 익숙한 태도였다. 젠틀먼을 지켜보는 내내 몸이 떨려 왔다. 그러나 묘한 기분이들었다. 「저런 악마 자식! 내가 말했다. 죽여 버렸으면, 쏴버렸으면, 달려가 얼굴을 후려쳤으면 싶었다. 그러나 정작 모습을보자 두려워졌다.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졌다. 마치 아직도 여기가 크리스티 의사의 병원이고, 당장에라도 끌려가 흔들리고 묶이고 물에 쑤셔 박힐 것 같아 무서워졌다. 숨이 탁탁 걸리면서 숨소리가 이상하게 났다. 찰스가 알아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 P705
석스비 부인의 방에 불이 켜지고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리고 사람 형체가 나타났다. 바로 석스비 부인이었다! 심장이 급격히 쿵쾅대기 시작했다. 석스비 부인의 머리가 희어 보였고 낯익은 검은 태피터 드레스를 걸치고 있었다. 손에 등불을 들고내게서 얼굴을 돌린 부인이 턱을 움직이는 게 보였다. 방 안 저멀리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부인이 뒤로 물러남에 따라 그 사람은 앞으로 나오고 있었다. 여자아이였다. 허리가 무척 가늘었고••••••. 그 여자아이를 보자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석스비 부인이 그 아이 뒤쪽에서 방을 왔다 갔다 하는 동안 여자아이는 브로치와 반지들을 빼내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바로 유리창 앞까지 왔다. 창틀의 가로막대 위에 팔을 걸치고 손목에 이마를 대고 서더니 조용해졌다. 오로지 손가락만이 창문의 레이스를 일없이 당기며 움직이고 있었다. 장갑을 끼지 않은 맨손이었다. 머리는 곱슬곱슬했다. 나는 생각했다. <그럴 리 없어>그리고 석스비 부인이 다시 입을 열자 여자아이는 얼굴을 들었고 가로등 불빛이 얼굴을 정면으로 비추었다. 그리고 내 입에서 커다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여자아이가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들을 수 있었다는 생각은 안 들지만 말이다. 여자아이는 고개를 돌리더니 내쪽을 바라보는 것 같았고, 거의 1분 동안이나 먼지투성이 거리와 어둠을 가로질러 나와 시선을 마주치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눈도 깜빡이지 않았던 것 같다. 여자아이도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여자아이는 계속 눈을 뜨고 있었다. 나는 그 눈을 바라보았고 마침내 눈 색깔이 기억났다. 그리고 여자아이는 자기 방으로 돌아서서 한 발 물러나더니 등불을 집었다. 그리고 여자아이가 불꽃을 낮추는 동안 석스비 부인이 여자아이에게 다가가 손을 올려 여자아이의 옷깃 뒤쪽 고리를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방이 어두워졌다. - P708
찰스의 말이 눈물에 녹아든 소금처럼 가물거리기 시작했다. 「그만 울어!」 내가 말했다. 「제발 인생에서 딱 한 번만 울음을 멈춰 봐, 안 그러면 맹세컨대 널 때릴 테야! 어서 말해, 모드가어떻게 했어?」찰스가 숨을 들이쉬더니 손을 주머니에 넣고 무언가를 꺼냈다. 「아무것도요.」 찰스가 말했다. 「하지만 제게 이걸 주셨어요. 앉아 있던 탁자에서 가져온 거예요. 마치 비밀이라도 되는 것처럼 주시던데요. 그리고 키 큰 남자가 시계 뚜껑을 닫자 모드 양이 절 떠밀었어요. 키 큰 남자가 제게 1파운드를 주었고, 제가 받아 들자 빨간 머리 여자애가 절 내보냈어요. 모드 양이 제가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눈이 이글이글거리시더라고요. 그러나 아무 말도 안 하셨어요. 그냥 이것만 주셨고, 이걸로 모드 양이 아가씨에게 뭔가 뜻을 전달하려 했다고 생각해요. 오, 아가씨! 절 바보라고 불러도 좋아요. 하지만 하느님 맙소사, 전 그뜻까지는 정말 몰라요!」 찰스가 내게 물건을 넘겨주었다. 모드가 무척 작게 만들어놓았기에 그걸 풀고 알아보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알아본 뒤에는 손에 쥐고 돌리고, 또 돌렸다. 그리고 일어나 멍청히 바라보았다. 「이게 다야?」 내가 말했다. 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카드였다. 브라이어에서 모드가 가지고 놀던 프렌치 덱의 한 장이었다. 하트 2였다. 기름때가 묻고 접힌 자국이 나 있었다. 그러나 붉은 하트 하나에 아직도 모드가 발로 밟아 생긴 주름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 P722
내가 경멸에 몸을 떨며 말했다. 이제 와서 젠틀먼의 강요로그랬을 뿐이라고 말하려는 거야?」「정말로 강요당했어! •••••• 하지만 네가 의미하는 그런 식은아니었어」 내가 말했다. 「네가 남을 속이는 사기꾼이 아닌 척하시겠다?」 모드가 말했다. 「넌 안 그래? 모드가 재차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그 눈빛에 다시 거의 부끄러움에 휩싸이며 나는 눈길을 돌려 버렸다. 잠시 후 나는 좀 더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 「정말 싫어했어. 네가 등을 돌리면 그 사람과 있을 땐 웃지도않았어.」 난 웃었다고 생각해?」「왜 아니겠어? 넌 배우잖아••••••. 지금도 연기하고 있는 거잖아!」「내가?」여전히 내 얼굴에 눈을 고정하고 여전히 내게 손을 뻗고 있지만 간신히 닿을락 말락 한 거리에서 손을 멈춘 채 모드가 말했다. 빛이 온통 우리에게만 들었고, 부엌의 나머지 부분은 거의 어둠에 잠겨 있었다. 나는 모드의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먼지로 더럽혀져 있거나 멍들어 있었다. 내가 말했다. 「젠틀먼을 싫어했다면, 왜 그렇게 했던 거야?」「다른 방법이 없었어」 모드가 말했다. 「내 삶이 어떤지 봤잖아. 난 내가 되어 줄 네가 필요했어「그래서 네가 여기 와서 내가 되려고!」 모드는 아무 대꾸도하지 않았다. 내가 말했다. 우리가 젠틀먼을 속일 수도 있었어. 네가 내게 말만 해주었다면. 어쩌면 우리가••••••「어떻게?」「어떻게든. 뭐라도, 나도 몰라••••••.」모드가 고개를 저었다. 모드가 조용히 물었다. 「네가 얼마나많이 포기할 수 있었을까?」 - P738
세상에, 뺨은그러나 젠틀먼은 다시 코웃음을 쳤다. 「말해 봐.」 젠틀먼이 모드에게 말했다. 「네가 언제 처음으로 친절해지는 법을 배웠는지. 수가 뭘 알든 그게 네게 무슨 상관이야? 왜 그렇게 붉히시나! 아직도 그건 아니야? 석스비 부인을 보는거야? 석스비 부인의 생각에 네가 마음 쓴다는 말 따윈 하지마! 어이구, 너도 수만큼 나쁜 년이야. 떨기는! 좀 더 용감해지시지, 모드. 네 어머니를 생각해.」 모드는 심장에 손을 얹고 있었다. 이제 모드는 젠틀먼에게 꼬집히기라도 한 것처럼 깜짝 놀라고 있었다. 젠틀먼이 그 모습을보더니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고는 석스비 부인을 바라보았다. 부인 역시 젠틀먼의 말에 깜짝 놀라고 있었다. 모드처럼 다이아몬드 브로치 아래 가슴에 손을 대고 일어났다. 그러고는 젠틀먼의 시선을 느끼고 얼른 모드를 흘낏 본 뒤 손을 떨어뜨렸다. 젠틀먼의 웃음소리가 사라졌다.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건 뭐지?」 젠틀먼이 말했다. 「뭐가 뭔데?」 존이 말했다. 석스비 부인이 움직이며 말했다. 「자 그럼, 데인티••••••「오!」 젠틀먼이 말했다. 「오!」 젠틀먼은 탁자 근처를 걸어가는부인을 지켜보았다. 그러고는 흥분하여 부인에서 모드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얼굴이 점점 더 붉어지고 있었다. 손을 머리에 올리더니 이마에 내려온 머리털을 세게 뒤로 잡아당겨 넘겼다. 「이제 알겠군.」 젠틀먼이 말했다.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고는웃음이 뚝 그쳤다. 「오, 이제야 알겠어 「당신은 아무것도 몰라.」 모드가 젠틀먼에게 한 걸음 내디디며 말했다. 그러나 눈길은 내 쪽을 흘끔거리고 있었다. 「리처드, 당신은 아무것도 몰라.」 젠틀먼이 모드에게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좀 더 빨리 알아차리지 못했다니 내가 바보였어! 오, 정말 대단한데! 언제부터알고 있었어? 네가 발로 걷어차고 욕을 퍼부었던 것도 당연하지! 심통을 부린 것도 당연해! 부인이 널 그냥 내버려 둔 것도! 늘 그 점이 놀라웠어. 불쌍한 모드!」 젠틀먼이 몹시 웃어댔다. 「그리고, 오, 석스비 부인, 정말 안됐군요!」「그만해요!」석스비 부인이 말했다. 「제 말 알겠어요? 그 얘기가 나오게 두지 않겠어요!」 부인도 젠틀먼에게 한 발자국 다가갔다. 「불쌍한지고.」 여전히 껄껄거리며 젠틀먼이 다시 말했다. 그러고는 외쳤다. 입스 씨, 당신도 이 일을 알고 계셨나요?」 입스 씨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뭘 알아?」 존이 물었다. 두 눈이 검은 점 두 개 같았다. 존이나를 보았다. 「뭘 안다는 거야?」「나도 몰라.」 내가 말했다. 「아무것도 몰라」 모드가 말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모른다고! - P746
「너무하는데, 안 그래? 경찰들이 말했다. 「굉장히 심각하군. 어디 얼마나 심각한지 보자고 경찰들은 젠틀먼의 머리를 잡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리고목의 맥박을 짚어 보았다. 그러고는 말했다. 「추악한 살인이야. 자, 누구 짓이지?」모드가 움직였다. 혹은 한 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존이 더 빨랐다. 「저 여자 짓이에요.」 존이 주저 없이 말했다. 부인에게 맞은뺨이 시꺼메져 있었다. 존이 팔을 들어 가리켰다. 「저 여자짓이에요. 제가 봤어요.」 존은 석스비 부인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존의 행동을 보고, 말도 들었지만 꿈쩍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이렇게 말하는 게 다였다. 「뭐••••••?」 그리고 모드 역시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뭐••••••?> 혹은 <잠깐••••••!>이라고그러나 석스비 부인이 젠틀먼의 옆에서 일어났다. 태피터 드레스가 피에 흠뻑 젖어 있었고, 가슴에 매단 다이아몬드 브로치는 루비 브로치로 변해 있었다. 손끝에서 손목까지 온통 선명한 붉은색이었다. 대중지에 나오는 살인자 사진 같은 모습이었다. 「제가 한 짓입니다.」 부인이 말했다. 「제가 지금 후회하고 있다는 걸 하느님은 아실 겁니다. 그러나 제가 한 짓입니다. 그리고 여기의 이 여자아이들은 결백합니다. 그리고 이 일에 대해선아무것도 모릅니다. 이 아이들은 아무도 해치지 않았습니다. - P757
그리고 나는 부인의 얼굴을 보았다. 부인의 얼굴에서 이미 용기와 열정과 활기가 반은 사라져 있었다. 부인은 웅성대는 사람들을 멍하니 둘러보고 있었다. 나를 찾는다는 생각에 나는 일어나 손을 들었다. 그러나 나와 시선이 마주치고도 부인은 앞서처럼 계속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찾는 것처럼 눈길이 계속 방 안을 떠돌다가 마침내 한곳에 고정되더니 눈빛이 분명해졌다. 나는 부인의 시선을 따라가 방청객열 뒤쪽에서 여자아이 하나를 찾아내었다. 온통 검은 옷을 입고 막 베일을 내리는 중이었다. 모드였다. 보리라고 생각도 못하고 있다고 보게 된 것이다. 분명히 말해 두지만, 그 순간에는 마음이 활짝 열렸다가, 전의 일이 모두 떠오르면서 다시 마음이굳게 닫혔다. 모드의 모습이 비참해 보였다. 별일이라는 생각을했다. 모드는 혼자 앉아 있었다. 어떤 신호도 보내지 않았다. 내말은 내게 보내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리고 석스비 부인에게도 보내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측 변호사가 나를 불러 악수를 하며 유감이라고 말했다. 데인티가 울며 내 팔에 기대어 걸었다. 내가 다시 석스비 부인을 보았을 때 부인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모드 쪽을보자 모드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 P770
그러나 물은 필요 없었다. 데인티가 내 곁에 있어 주길 바랐다. 나는 데인티를 잡고 가까이 당긴 뒤 데인티의 옷소매에 얼굴을 묻었다. 몸이 떨려 오기 시작했다. 삐걱대는 용수철 위로•날름쇠가 올라가고 볼트가 풀려 튀어 오르면 녹슨 자물쇠가 덜덜 떨 듯이 나도 그렇게 떨고 있었다. 「어머니가 내가 말했 - P792
다. 말을 끝맺을 수가 없었다. 말로 하기엔 너무 버거웠다. 안다는 것조차 너무 버거웠다! <내 어머니, 모드의 어머니!> 믿을 수가 없었다. 브라이어에서 보았던, 상자 안의 잘생긴 숙녀의 초상화를 떠올렸다. 모드가 닦고 손질하곤 하던 비석을 떠올렸다. 모드를, 그리고 석스비 부인을 떠올렸다. 그리고 젠틀먼을 떠올렸다. <오, 이제야 알겠군!> 젠틀먼은 그렇게 말했다. 이제 나도알게 되었다. 석스비 부인이 감옥에서 그토록 내게 말하고 싶어하면서도 차마 말하지 못했던 것이 무엇인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나에 대해 견디기 어려운 이야기를 듣게 되면••••••.> 왜부인은 이 비밀을 그토록 오래 간직했던 것일까? 왜 내 어머니에대해 거짓말을 했을까? 어머니는 살인자가 아니라 숙녀였다. 막대한 재산을 가진 숙녀였고, 어머니는 그 재산을 나누어••••••.<나에 대해 견디기 어려운 이야기를 듣게 되면 지금 이 순간을 다시 생각하렴.> - P793
「데인티」 내가 헐떡이며 말했다. 「데인티, 부인은 분명 알고있었어. 분명히 내내 알고 있었어. 날 젠틀먼에게 붙여 거기로보낸 것도 분명히 부인이야. 결국은 젠틀먼이 날 어떻게 할지알면서도 •••••• 오!」 목소리가 쉬기 시작했다. 부인이 날 거기로보냈어. 그래서 젠틀먼이 날 거기 두고 자기 딸 모드를 데려오게 하려고 부인이 내내 원했던 건 단지 모드뿐이었던 거야. 날안전하게 지켜주다가 포기해 버렸어. 다 모드를, 모드를••••••. 그러나 그 뒤로 나는 입을 다물었다. 칼을 쥐고 나서던 모드를 생각하고 있었다. 자기를 미워하게 내버려 두었던 모드를 생각하고 있었다. 나를 가장 해친 이가 누군지 알면서도 내가 모르게 하기 위해 자기가 나를 해친 것이라 믿게 하던 모드를 생각하고 있었다••••••. - P794
나는 숨을 멈췄다. 웅얼대는 소리가 멎었다가 다시 들려왔다. 내 머릿속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고, <정말로> 들려오고 있었다. 서재에서 나는 소리였다.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결국엔 정말로 집에 유령이 나타나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어쩌면, 어쩌면••••••나는 문으로 가서 떨리는 손을 얹고 문을 밀어 열었다. 그리고선 채 눈을 깜박였다. 방이 변해 있었다. 창문에 붙어 있던 페인트는 모두 벗겨지고, 바닥의 놋쇠 손가락은 뽑혀 있었다. 책꽂이에는 거의 책이 남아 있지 않았다. 벽난로에 작은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좀 더 문을 열었다. 릴리 씨의 낡은 책상이보였다. 등불이 켜져 있었다. 그리고 불빛 속에 모드가 보였다. 모드는 의자에 앉아 글을 쓰고 있었다. 책상에 팔꿈치를 괴고 뺨을 손바닥에 올린 채 손가락을 눈 쪽으로 반쯤 굽히고 있었다. 불빛 덕에 모드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손은 장갑 없이 맨손이었으며, 소매는 걷어붙였고, 손가락은 잉크 얼룩으로 시커멨다. 나는 선 채로 모드가 글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종이는 이미 글자들로 빽빽했다. 모드가 종이에서 펜을 떼더니 마치 그다음엔 무엇을 써야 할지 잘모르겠다는 듯이 펜을 돌리고 또 돌렸다. 다시 모드는 숨결 아래로 웅얼거렸다. 모드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다시 써 내려갔다. 그러고는 잉크병에 펜을 담갔다. 그러면서 눈가에서 손을 떼고 얼굴을 들었다. 자신을 지켜보는 나를 보았다. 모드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무 움직임도 없어졌다. 소리지르지도 않았다. 처음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나와 눈을 마주치며 앉아 있었다. 얼굴에 놀랐다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내가 한 걸음을 뗐다. 그러자 모드가 잉크 묻은 펜을 내려놓고 일어났고, 펜이 종이 위로 그리고 책상 위로 구르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모드의 뺨이 창백해져 있었다. 모드가 의자 등을잡았다. 마치 손을 떼면 넘어지거나 기절할 것 같다는 태도였다. 내가 다시 한 걸음을 더 떼자 모드는 의자를 더욱 강하게 쥐었다. 모드가 말했다. 「날 죽이려고 온 거야?」 아주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는 모드의 목소리를 듣고, 얼굴이 창백해진 것을 알았다. 단순히 놀라서만이 아니라 또한 공포심에서 창백해져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니 끔찍했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쏟았던 눈물로 얼굴이 아직도 축축했다. 다시 눈물이 떨어지면서 더욱 축축해졌다. 「오, 모드!」 내가 말했다. 「오, 모드!」 - P804
나는 모드에게서 책을 받아 활자를 들여다보았다. 내게는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보였다. 그래서 나는 책을 내려놓고 서가로가서 다른 책을 꺼내 들었다. 역시 똑같아 보였다. 그래서 나는또 다른 책을 꺼냈다. 이 책에는 그림이 들어 있었다. 다른 곳에서는 구경하기도 어려울 만한 그림들이었다. 그림 하나에는 벌거벗은 여자아이 두 명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모드를 바라보았고심장이 조여 오는 것 같았다. 「넌 다 알고 있었구나」 내가 말했다. 그게 처음으로 든 생각이었다. 내내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면서••••••「아무것도 몰랐어.」 모드가 말했다. 「다 알고 있었어! 넌 내가 너한테 키스하게 했어. 다시 키스하고 싶게 만들었어! 그동안 내내 넌 여기에 들락거리면서••••••」갑자기 말이 막혔다. 모드가 내 얼굴을 보았다. 나는 서재 문앞에 와서 모드의 오르락내리락하던 숨죽인 목소리를 듣던 시절을 떠올렸다. 내가 스타일스 부인 그리고 웨이 씨와 함께 타르트와 커스터드를 먹는 동안, 신사들에게, 젠틀먼에게 책을 읽어 주던 모드를 생각했다. 나는 심장에 손을 얹었다. 심장이 너무나 강하게 옥죄어 와서 가슴이 아팠다. 「오 모드」 내가 말했다. 「내가 알기만 했어도! 널 생각하면나는 울기 시작했다. 「네 삼촌을 생각하면 •••••• 오!」 내 손이 빠르게 입으로 올라갔다. <내> 삼촌!」 그 생각에 너무나 기분이 이상해졌다. 「오!」 나는 여전히 책을 쥐고 있었다. 이제 나는 책을 바라보고는 마치 책에 데기라도 한 것처럼 바닥에 떨어뜨렸다. - P811
단지<단지 널 사랑해>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말하지 않았다. 무어라 할 수 있으랴? 만약 모드가 아직도 당당할수 있다면, 그렇다면, 지금으로선, 내가 과연...... 어쨌거나 내겐말할 필요가 없었다. 모드는 내 표정에 쓰인 그 말을 읽을 수 있었으니까. 모드의 얼굴색이 바뀌고 시선이 차분해졌다. 모드는손으로 눈을 가렸다. 손가락 때문에 이마에 검은 얼룩이 더 많이 생겼다. 여전히 얼룩이 참기 어려웠다. 나는 재빨리 손을 내밀어 모드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엄지에 침을 묻혀 모드의 이마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저 잉크와 모드의 하얀 살결만을생각하며 이마를 문질렀다. 그러나 모드는 내 손을 느끼더니 아주 조용히 있었다. 엄지의 움직임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모드의 뺨으로 움직여 갔다. 그리고 나는 어느덧 손으로 모드의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모드가 눈을 감았다. 뺨이 부드러웠다. 진주와는 달랐다. 진주보다 따뜻했다. 모드가 고개를 돌려 내 손바닥에 입을 맞추었다. 입술이 부드러웠다. 잉크 얼룩이 모드의 이마에 검게 남아 있었다. 결국엔 잉크일 뿐이란 생각을 했다. - P814
모드가 등불을 집어 들었다. 방이 어두워지고, 비는 여전히유리창을 때리고 있었다. 그러나 모드는 나를 벽난롯가로 데려가 앉힌 뒤 옆에 앉았다. 모드의 비단 치마가 갑자기 부풀어 올랐다가 가라앉았다. 모드는 등불을 바닥에 내려놓고 종이를 평평하게 폈다. 그리고 자기가 쓴 글자들을 하나하나 보여 주기시작했다. - P815
마지막으로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네 가지가 있군요. 1. 미친 듯 읽어라. 모든 작가는 기본적으로 열정적인 독자여야 해요. 그래서 자신이 느꼈던 멋진 독서경험을 다른 사람들도 즐길 수 있도록 제공하고 싶어 해야죠. 2. 되도록 날마다 일정한 분량의 글을 써라. (앞서 말했듯이 저는 평일에는 1천 단어씩 써요. 주말에는 글을 안 쓰고요.) 만약영감이 올 때까지 앉아서 기다리고 있다면, 영감은 절대로 찾아오지 않아요. 그리고 쓴 글이 쓰레기라 할지라도 나중에 더 낫게 고칠 수 있죠. 그게 바로 세 번째예요. 3. <다시> 써라! 잘라내는 걸 두려워하지 말아야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4. 계속 노력하라. 거절을 두려워하면 안 돼요. 제 처음 소설은 열 곳에서퇴짜를 맞았어요. 자신에게 맞는 출판사를 찾아내야 하고, 그과정에는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죠. - P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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