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결정結晶

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내가 서 있는 벌판의 한쪽 끝은 야트막한 산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등성이에서부터 이편 아래쪽까지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이 심겨 있었다. 여러 연령대의 사람들처럼 조금씩 다른 키에, 철길 침목 정도의 굵기를 가진 나무들이었다. 하지만 침목처럼 곧지않고 조금씩 기울거나 휘어 있어서, 마치 수천 명의 남녀들과 야윈 아이들이 어깨를 웅크린 채 눈을 맞고 있는 것 같았다.
묘지가 여기 있었나. 나는 생각했다.
이 나무들이 다 묘비인가. - P9

 마침내 잠시 잠들 수 있을 것 같다고, 아니, 거의 잠들었다고 느꼈을 때였다. 감은 눈꺼풀 속으로 별안간 그 벌판이 밀려들어왔다.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 위로 흩어지던 눈발이,
잘린 우듬지마다 소금처럼 쌓여 빛나던 눈송이들이 생시처럼 생생했다.
그때 왜 몸이 떨리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마치 울음을 터뜨리는순간과 같은 떨림이었지만, 눈물 같은 건 흐르지도, 고이지도 않았다. 그걸 공포라고 부를 수 있을까? 불안이라고, 전율이라고, 돌연한 고통이라고? 아니, 그건 이가 부딪히도록 차가운 각성 같은거였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칼이 사람의 힘으로 들어올릴 수도없을 무거운 쇳날이 허공에 떠서 내 몸을 겨누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걸 마주 올려다보며 누워 있는 것 같았다.
봉분 아래의 뼈들을 휩쓸어가기 위해 밀려들어오던 그 시퍼런바다가, 학살당한 사람들과 그후의 시간에 대한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고 그때 처음 생각했다. 다만 개인적인 예언이었는지도모른다고. 물에 잠긴 무덤들과 침묵하는 묘비들로 이뤄진 그곳이, 앞으로 남겨질 내 삶을 당겨 말해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그러니까 바로 지금을. - P11

압도적인 성량으로 끊임없이 세계가 말을 걸어오는 것 같던 여름이 갔다. 더이상 매 순간 땀 흘리지 않아도 된다. 온몸에 힘을빼고 거실 바닥에 누워 있지 않아도 된다. 열사병에 걸리지 않기위해 수없이 찬물샤워를 하지 않아도 된다.
세계와 나 사이에 소슬한 경계가 생긴다. 긴소매 셔츠에 청바지를 꺼내 입고, 증기 같은 열풍이 더이상 불어오지 않는 도로변을 걸어 나는 식당에 간다. - P28

자신의 삶을 스스로 바꿔나가는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쉽게 생각해내기 어려운 선택들을 척척 저지르고는 최선을 다해 그 결과를 책임지는 이들. 그래서 나중에는 어떤 행로를밟아간다 해도 더이상 주변에서 놀라게 되지 않는 사람들.  - P33

다음날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으며 나는 오래전 겨울에 들었던 인선의 가출 이야기를 떠올렸고, 이상하게도 그 어머니만큼이나 인선이 안쓰럽게 느껴졌었다. 만 열일곱 살 아이가 얼마나 자신이 밉고 세상이 싫었으면 저렇게 조그만 사람을 미워했을까? 실톱을 깔고 잔다고. 악몽을 꾸며 이를 갈고 눈물을 흘린다고. 음성이 작고 어깨가 공처럼 굽었다고. - P82

거리에 인적이 보이지 않는다. 눈 닿는 이차선 도로 어디에도차량이 다니지 않는다. 움직이는 것은 믿을 수 없이 느리게 떨어지고 있는 함박눈뿐이다. 허공을 가득 메운 눈송이들 사이로 선홍색 신호등이 켜진다. 버스가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선다. 젖은 아스팔트 위로 눈이 내려앉을 때마다 그것들은 잠시 망설이는 것처럼보인다. 그럼•••••• 그래야지•••••• 라고 습관적으로 대화를 맺는 사람의 탄식하는 말투처럼, 끝이 가까워질수록 정적을 닮아가는 음악의 종지부처럼, 누군가의 어깨에 얹으려다 말고 조심스럽게 내려뜨리는 손끝처럼 눈송이들은 검게 젖은 아스팔트 위로 내려앉았다가 이내 흔적없이 사라진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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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때로 소수의견이란 무대 뒤에서 상대방을 설득하는 작업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나아가 죽을힘을 다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진실을 알리기로 작정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소수의견들이 있다.
대법관 일곱 명이 아프리카계 인간은 일종의 재산일 뿐 절대로 시민이 될수 없다고 판결한 1857년 드레드 스콧 사건에서도 그랬고, 다수의견이 ‘분리-평등원칙‘을 지지했던 1896년 플레시 대 퍼거슨 사건에서도 그랬다. 이들 소송건에서 소수의견을 제기한 대법관들은 동료 대법관에게 호소하는것이 더 이상 통하지 않자, 법정 밖의 공중을 향해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역사가 자신들의 판단을 정당화해주기를 기대하면서. - P167

해 한바탕 싸움을 벌이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셸비 사건에서 대법관들은 선출직 관료들을 무시하면서 대중의 참정권을 보장하는 법률의 주요조항을 무효화했다. RBG는 뉴욕 타임스」에서이렇게 밝혔다. "대법원은 보수적이라는 평판을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회가 통과시킨 법을 얼마든지 무효화할 수 있다는 의미로 적극주의라는 표현을 쓸 수 있다면, 현재 대법원은 그 어느때보다 적극적인 법원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5" RBG의 암담한 예상은 현실이 되었다. 셸비 판결 이후 몇 년 동안, 여러 주에서 앞다투어 법을 고쳐 투표 참여를 더 어렵게 만들어버렸고, 그 피해는 유색인종과 빈곤층에게 불균형적으로 쏠렸다. RBG가 말했다. "우리는 이 정도면 비에 젖지 않을 것 같다면서 우산을 내던졌습니다. 그러나 거센 폭풍이 우리에게 밀려올 것입니다.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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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리를, 광장을 기대했다. 대신 내가 서 있는 곳은 더러운 강으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계단의 꼭대기이다. 강가에 도착한 것이다. 결국, 세인트폴 성당과 가까워진 셈이다. 그러나 넓디넓은 템스 강이 나와교회 사이로 흐르고 있다.
나는 서서 일종의 공포와 외경 속에 강을 바라본다. 브라이어에서 템스 강을 따라 걷던 기억이 난다. 강이 둑을 침식하고흔드는 것같이 보이던 기억이 난다. 난 저 강이, 마치 나처럼, 미치도록 빨라지고 싶어 한다고, 넓어지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까지 넓어지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독처럼 퍼져 나간다. 강바닥이 부서진 물건들로 어지럽다. 짚, 나무, 잡초, 종이, 천조각, 코르크와 기우뚱한 병들이 보인다. 강이 움직인다. 강이아니라 바다처럼 움직인다. 파도가 친다. 그리고 선체에 부딪히면서, 강변에 철썩 떨어지면서, 강변에 솟아 있는 계단과 벽과나무 부두에 부딪히면서 강은 쉬어 버린 우유처럼 거품을 가득문다. - P556

「내게도 내 배 아파 낳은 아기가 하나 있었는데 죽었다고 그 숙녀, 수의 어머니가 왔던 즈음에 말이야」 부인이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내가 말했지. 이 근처에서 다시 물어봐도 똑같은 대답을 들을 거야. 아기들은 잘 죽거든. 그러니 누가 이상하단 생각을 했겠어••••••?」목소리에 무언가가 있다. 몸이 떨려 오기 시작한다. 부인이내가 떠는 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손을 뻗어 내 엉킨 머리를 어루만진다. 「됐어, 이젠 휴. 그래. 넌 이제 안전하단다. 그리고 어루만지던 손길이 멈춘다. 부인이 내 머리털 한 줌을 쥐고 있다. 부인의 얼굴에 다시 웃음이 떠오른다. 「참 재미있지.」부인의 목소리가 달라진다. 「네 머리 말이야. 난 네 눈이 갈색이고 피부는 하얗고 허리와 손은 가늘 거라 생각했어. 오직 네 머리만이 내가 상상하던 이상으로 더 금발이구나•••••• 말이 갑자기 뚝 끊긴다. 손을 뻗으며 부인은 고개를 움직였다. 가로등 불빛과, 변색한 은 같은 달에서 나오는 달빛이 부인얼굴을 비추면서 갑자기 부인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부인의갈색 눈과 창백한 피부, 통통한 입술. 그리고 갑자기 나는 깨닫는다. 저 입술은 한때는 훨씬 더 통통했으리라••••••. 부인이 입술을 적신다. 「아가.」 부인이 말한다. 「나의, 나의 소중한 딸••••••.
부인이 다시 잠시 주저하다가 마침내 입을 연다. - P589

「좋아하지, 그렇지?」 여전히 엉덩이를 돌리며 베이컨 간호사가 말했다.「아니라고? 네가 좋아한다는거 우리 모두 들었는데 뭘
그러자 간호사들이 아우성을 쳤다. 아우성치며 날 바라보는얼굴에서, 전에는 보아도 이해하지 못했던 심술궂은 표정을 다시 보았다. 이제는 물론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예전에 모드가 크림 부인의 집에서 크리스티 의사에게 했을 말이 짐작이 갔다. 모드가 그 일을 얘기했을 거란 생각이, 나를 미쳤다고 몰기 위해 젠틀먼 앞에서 그 일을 얘기했을 거란 생각이 갑자기 들면서 심장이 멎는 듯했다. 브라이어를 떠난 뒤로는 심장멎을 일이 무척 많았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이 최악 같았다. 화약으로 가득 차 있는데 막 성냥으로 그어진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몸부림치고 비명 지르기 시작했다. - P661

우리는 젠틀먼이 어슬렁거리며 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젠틀먼은 휘파람을 불고 있었던 듯하다. 그러더니 입스 씨의 가게 문 앞에서멈추어 섰다. 손을 외투 주머니에 넣더니 열쇠를 끄집어냈다. 계단에 대고 오른발, 그다음엔 왼발에서 먼지를 떨어냈다. 그러고는 자물쇠에 열쇠를 찌르고 주위를 무심히 둘러본 뒤 안으로들어갔다. 너무나 편안하고 익숙한 태도였다.
젠틀먼을 지켜보는 내내 몸이 떨려 왔다. 그러나 묘한 기분이들었다. 「저런 악마 자식! 내가 말했다. 죽여 버렸으면, 쏴버렸으면, 달려가 얼굴을 후려쳤으면 싶었다. 그러나 정작 모습을보자 두려워졌다.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졌다. 마치 아직도 여기가 크리스티 의사의 병원이고, 당장에라도 끌려가 흔들리고 묶이고 물에 쑤셔 박힐 것 같아 무서워졌다. 숨이 탁탁 걸리면서 숨소리가 이상하게 났다. 찰스가 알아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 P705

석스비 부인의 방에 불이 켜지고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리고 사람 형체가 나타났다. 바로 석스비 부인이었다! 심장이 급격히 쿵쾅대기 시작했다. 석스비 부인의 머리가 희어 보였고 낯익은 검은 태피터 드레스를 걸치고 있었다. 손에 등불을 들고내게서 얼굴을 돌린 부인이 턱을 움직이는 게 보였다. 방 안 저멀리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부인이 뒤로 물러남에 따라 그 사람은 앞으로 나오고 있었다. 여자아이였다. 허리가 무척 가늘었고••••••. 그 여자아이를 보자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석스비 부인이 그 아이 뒤쪽에서 방을 왔다 갔다 하는 동안 여자아이는 브로치와 반지들을 빼내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바로 유리창 앞까지 왔다. 창틀의 가로막대 위에 팔을 걸치고 손목에 이마를 대고 서더니 조용해졌다. 오로지 손가락만이 창문의 레이스를 일없이 당기며 움직이고 있었다. 장갑을 끼지 않은 맨손이었다. 머리는 곱슬곱슬했다. 나는 생각했다. <그럴 리 없어>그리고 석스비 부인이 다시 입을 열자 여자아이는 얼굴을 들었고 가로등 불빛이 얼굴을 정면으로 비추었다. 그리고 내 입에서 커다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여자아이가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들을 수 있었다는 생각은 안 들지만 말이다. 여자아이는 고개를 돌리더니 내쪽을 바라보는 것 같았고, 거의 1분 동안이나 먼지투성이 거리와 어둠을 가로질러 나와 시선을 마주치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눈도 깜빡이지 않았던 것 같다. 여자아이도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여자아이는 계속 눈을 뜨고 있었다. 나는 그 눈을 바라보았고 마침내 눈 색깔이 기억났다. 그리고 여자아이는 자기 방으로 돌아서서 한 발 물러나더니 등불을 집었다. 그리고 여자아이가 불꽃을 낮추는 동안 석스비 부인이 여자아이에게 다가가 손을 올려 여자아이의 옷깃 뒤쪽 고리를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방이 어두워졌다. - P708

찰스의 말이 눈물에 녹아든 소금처럼 가물거리기 시작했다.
「그만 울어!」 내가 말했다. 「제발 인생에서 딱 한 번만 울음을 멈춰 봐, 안 그러면 맹세컨대 널 때릴 테야! 어서 말해, 모드가어떻게 했어?」찰스가 숨을 들이쉬더니 손을 주머니에 넣고 무언가를 꺼냈다.
「아무것도요.」 찰스가 말했다. 「하지만 제게 이걸 주셨어요. 앉아 있던 탁자에서 가져온 거예요. 마치 비밀이라도 되는 것처럼 주시던데요. 그리고 키 큰 남자가 시계 뚜껑을 닫자 모드 양이 절 떠밀었어요. 키 큰 남자가 제게 1파운드를 주었고, 제가 받아 들자 빨간 머리 여자애가 절 내보냈어요. 모드 양이 제가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눈이 이글이글거리시더라고요. 그러나 아무 말도 안 하셨어요. 그냥 이것만 주셨고, 이걸로 모드 양이 아가씨에게 뭔가 뜻을 전달하려 했다고 생각해요. 오, 아가씨! 절 바보라고 불러도 좋아요. 하지만 하느님 맙소사, 전 그뜻까지는 정말 몰라요!」
찰스가 내게 물건을 넘겨주었다. 모드가 무척 작게 만들어놓았기에 그걸 풀고 알아보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알아본 뒤에는 손에 쥐고 돌리고, 또 돌렸다. 그리고 일어나 멍청히 바라보았다.
「이게 다야?」 내가 말했다. 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카드였다. 브라이어에서 모드가 가지고 놀던 프렌치 덱의 한 장이었다. 하트 2였다. 기름때가 묻고 접힌 자국이 나 있었다. 그러나 붉은 하트 하나에 아직도 모드가 발로 밟아 생긴 주름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 P722

내가 경멸에 몸을 떨며 말했다. 이제 와서 젠틀먼의 강요로그랬을 뿐이라고 말하려는 거야?」「정말로 강요당했어!  •••••• 하지만 네가 의미하는 그런 식은아니었어」
내가 말했다. 「네가 남을 속이는 사기꾼이 아닌 척하시겠다?」 모드가 말했다. 「넌 안 그래?
모드가 재차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그 눈빛에 다시 거의 부끄러움에 휩싸이며 나는 눈길을 돌려 버렸다. 잠시 후 나는 좀 더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
「정말 싫어했어. 네가 등을 돌리면 그 사람과 있을 땐 웃지도않았어.」
난 웃었다고 생각해?」「왜 아니겠어? 넌 배우잖아••••••. 지금도 연기하고 있는 거잖아!」「내가?」여전히 내 얼굴에 눈을 고정하고 여전히 내게 손을 뻗고 있지만 간신히 닿을락 말락 한 거리에서 손을 멈춘 채 모드가 말했다. 빛이 온통 우리에게만 들었고, 부엌의 나머지 부분은 거의 어둠에 잠겨 있었다. 나는 모드의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먼지로 더럽혀져 있거나 멍들어 있었다. 내가 말했다.
「젠틀먼을 싫어했다면, 왜 그렇게 했던 거야?」「다른 방법이 없었어」 모드가 말했다. 「내 삶이 어떤지 봤잖아. 난 내가 되어 줄 네가 필요했어「그래서 네가 여기 와서 내가 되려고!」 모드는 아무 대꾸도하지 않았다. 내가 말했다. 우리가 젠틀먼을 속일 수도 있었어.
네가 내게 말만 해주었다면. 어쩌면 우리가••••••「어떻게?」「어떻게든. 뭐라도, 나도 몰라••••••.」모드가 고개를 저었다. 모드가 조용히 물었다. 「네가 얼마나많이 포기할 수 있었을까?」 - P738

세상에, 뺨은그러나 젠틀먼은 다시 코웃음을 쳤다. 「말해 봐.」 젠틀먼이 모드에게 말했다. 「네가 언제 처음으로 친절해지는 법을 배웠는지. 수가 뭘 알든 그게 네게 무슨 상관이야?
왜 그렇게 붉히시나! 아직도 그건 아니야? 석스비 부인을 보는거야? 석스비 부인의 생각에 네가 마음 쓴다는 말 따윈 하지마! 어이구, 너도 수만큼 나쁜 년이야. 떨기는! 좀 더 용감해지시지, 모드. 네 어머니를 생각해.」
모드는 심장에 손을 얹고 있었다. 이제 모드는 젠틀먼에게 꼬집히기라도 한 것처럼 깜짝 놀라고 있었다. 젠틀먼이 그 모습을보더니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고는 석스비 부인을 바라보았다. 부인 역시 젠틀먼의 말에 깜짝 놀라고 있었다. 모드처럼 다이아몬드 브로치 아래 가슴에 손을 대고 일어났다. 그러고는 젠틀먼의 시선을 느끼고 얼른 모드를 흘낏 본 뒤 손을 떨어뜨렸다.
젠틀먼의 웃음소리가 사라졌다.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건 뭐지?」 젠틀먼이 말했다.
「뭐가 뭔데?」 존이 말했다.
석스비 부인이 움직이며 말했다. 「자 그럼, 데인티••••••「오!」 젠틀먼이 말했다. 「오!」 젠틀먼은 탁자 근처를 걸어가는부인을 지켜보았다. 그러고는 흥분하여 부인에서 모드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얼굴이 점점 더 붉어지고 있었다. 손을 머리에 올리더니 이마에 내려온 머리털을 세게 뒤로 잡아당겨 넘겼다.
「이제 알겠군.」 젠틀먼이 말했다.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고는웃음이 뚝 그쳤다. 「오, 이제야 알겠어
「당신은 아무것도 몰라.」 모드가 젠틀먼에게 한 걸음 내디디며 말했다. 그러나 눈길은 내 쪽을 흘끔거리고 있었다. 「리처드, 당신은 아무것도 몰라.」
젠틀먼이 모드에게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좀 더 빨리 알아차리지 못했다니 내가 바보였어! 오, 정말 대단한데! 언제부터알고 있었어? 네가 발로 걷어차고 욕을 퍼부었던 것도 당연하지! 심통을 부린 것도 당연해! 부인이 널 그냥 내버려 둔 것도! 늘 그 점이 놀라웠어. 불쌍한 모드!」 젠틀먼이 몹시 웃어댔다.
「그리고, 오, 석스비 부인, 정말 안됐군요!」「그만해요!」석스비 부인이 말했다. 「제 말 알겠어요? 그 얘기가 나오게 두지 않겠어요!」 부인도 젠틀먼에게 한 발자국 다가갔다.
「불쌍한지고.」 여전히 껄껄거리며 젠틀먼이 다시 말했다. 그러고는 외쳤다. 입스 씨, 당신도 이 일을 알고 계셨나요?」 입스 씨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뭘 알아?」 존이 물었다. 두 눈이 검은 점 두 개 같았다. 존이나를 보았다. 「뭘 안다는 거야?」「나도 몰라.」 내가 말했다.
「아무것도 몰라」 모드가 말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모른다고! - P746

「너무하는데, 안 그래? 경찰들이 말했다. 「굉장히 심각하군. 어디 얼마나 심각한지 보자고
경찰들은 젠틀먼의 머리를 잡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리고목의 맥박을 짚어 보았다. 그러고는 말했다.
「추악한 살인이야. 자, 누구 짓이지?」모드가 움직였다. 혹은 한 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존이 더 빨랐다.
「저 여자 짓이에요.」 존이 주저 없이 말했다. 부인에게 맞은뺨이 시꺼메져 있었다. 존이 팔을 들어 가리켰다. 
「저 여자짓이에요. 제가 봤어요.」 존은 석스비 부인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존의 행동을 보고, 말도 들었지만 꿈쩍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이렇게 말하는 게 다였다. 「뭐••••••?」 그리고 모드 역시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뭐••••••?> 혹은 <잠깐••••••!>이라고그러나 석스비 부인이 젠틀먼의 옆에서 일어났다. 태피터 드레스가 피에 흠뻑 젖어 있었고, 가슴에 매단 다이아몬드 브로치는 루비 브로치로 변해 있었다. 손끝에서 손목까지 온통 선명한 붉은색이었다. 대중지에 나오는 살인자 사진 같은 모습이었다.
「제가 한 짓입니다.」 부인이 말했다. 「제가 지금 후회하고 있다는 걸 하느님은 아실 겁니다. 그러나 제가 한 짓입니다. 그리고 여기의 이 여자아이들은 결백합니다. 그리고 이 일에 대해선아무것도 모릅니다. 이 아이들은 아무도 해치지 않았습니다. - P757

그리고 나는 부인의 얼굴을 보았다. 부인의 얼굴에서 이미 용기와 열정과 활기가 반은 사라져 있었다. 부인은 웅성대는 사람들을 멍하니 둘러보고 있었다. 나를 찾는다는 생각에 나는 일어나 손을 들었다. 그러나 나와 시선이 마주치고도 부인은 앞서처럼 계속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찾는 것처럼 눈길이 계속 방 안을 떠돌다가 마침내 한곳에 고정되더니 눈빛이 분명해졌다. 나는 부인의 시선을 따라가 방청객열 뒤쪽에서 여자아이 하나를 찾아내었다. 온통 검은 옷을 입고 막 베일을 내리는 중이었다. 모드였다. 보리라고 생각도 못하고 있다고 보게 된 것이다. 분명히 말해 두지만, 그 순간에는 마음이 활짝 열렸다가, 전의 일이 모두 떠오르면서 다시 마음이굳게 닫혔다. 모드의 모습이 비참해 보였다. 별일이라는 생각을했다. 모드는 혼자 앉아 있었다. 어떤 신호도 보내지 않았다. 내말은 내게 보내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리고 석스비 부인에게도 보내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측 변호사가 나를 불러 악수를 하며 유감이라고 말했다. 데인티가 울며 내 팔에 기대어 걸었다. 내가 다시 석스비 부인을 보았을 때 부인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모드 쪽을보자 모드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 P770

그러나 물은 필요 없었다. 데인티가 내 곁에 있어 주길 바랐다. 나는 데인티를 잡고 가까이 당긴 뒤 데인티의 옷소매에 얼굴을 묻었다. 몸이 떨려 오기 시작했다. 삐걱대는 용수철 위로•날름쇠가 올라가고 볼트가 풀려 튀어 오르면 녹슨 자물쇠가 덜덜 떨 듯이 나도 그렇게 떨고 있었다. 「어머니가 내가 말했 - P792

다. 말을 끝맺을 수가 없었다. 말로 하기엔 너무 버거웠다. 안다는 것조차 너무 버거웠다! <내 어머니, 모드의 어머니!> 믿을 수가 없었다. 브라이어에서 보았던, 상자 안의 잘생긴 숙녀의 초상화를 떠올렸다. 모드가 닦고 손질하곤 하던 비석을 떠올렸다.
모드를, 그리고 석스비 부인을 떠올렸다. 그리고 젠틀먼을 떠올렸다. <오, 이제야 알겠군!> 젠틀먼은 그렇게 말했다. 이제 나도알게 되었다. 석스비 부인이 감옥에서 그토록 내게 말하고 싶어하면서도 차마 말하지 못했던 것이 무엇인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나에 대해 견디기 어려운 이야기를 듣게 되면••••••.> 왜부인은 이 비밀을 그토록 오래 간직했던 것일까? 왜 내 어머니에대해 거짓말을 했을까? 어머니는 살인자가 아니라 숙녀였다.
막대한 재산을 가진 숙녀였고, 어머니는 그 재산을 나누어••••••.<나에 대해 견디기 어려운 이야기를 듣게 되면 지금 이 순간을 다시 생각하렴.> - P793

「데인티」 내가 헐떡이며 말했다. 「데인티, 부인은 분명 알고있었어. 분명히 내내 알고 있었어. 날 젠틀먼에게 붙여 거기로보낸 것도 분명히 부인이야. 결국은 젠틀먼이 날 어떻게 할지알면서도 •••••• 오!」 목소리가 쉬기 시작했다. 부인이 날 거기로보냈어. 그래서 젠틀먼이 날 거기 두고 자기 딸 모드를 데려오게 하려고 부인이 내내 원했던 건 단지 모드뿐이었던 거야. 날안전하게 지켜주다가 포기해 버렸어. 다 모드를, 모드를••••••.
그러나 그 뒤로 나는 입을 다물었다. 칼을 쥐고 나서던 모드를 생각하고 있었다. 자기를 미워하게 내버려 두었던 모드를 생각하고 있었다. 나를 가장 해친 이가 누군지 알면서도 내가 모르게 하기 위해 자기가 나를 해친 것이라 믿게 하던 모드를 생각하고 있었다••••••. - P794

나는 숨을 멈췄다. 웅얼대는 소리가 멎었다가 다시 들려왔다.
내 머릿속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고, <정말로> 들려오고 있었다. 서재에서 나는 소리였다.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결국엔 정말로 집에 유령이 나타나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어쩌면, 어쩌면••••••나는 문으로 가서 떨리는 손을 얹고 문을 밀어 열었다. 그리고선 채 눈을 깜박였다. 방이 변해 있었다. 창문에 붙어 있던 페인트는 모두 벗겨지고, 바닥의 놋쇠 손가락은 뽑혀 있었다. 책꽂이에는 거의 책이 남아 있지 않았다. 벽난로에 작은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좀 더 문을 열었다. 릴리 씨의 낡은 책상이보였다. 등불이 켜져 있었다.
그리고 불빛 속에 모드가 보였다.
모드는 의자에 앉아 글을 쓰고 있었다. 책상에 팔꿈치를 괴고 뺨을 손바닥에 올린 채 손가락을 눈 쪽으로 반쯤 굽히고 있었다. 불빛 덕에 모드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손은 장갑 없이 맨손이었으며, 소매는 걷어붙였고, 손가락은 잉크 얼룩으로 시커멨다. 나는 선 채로 모드가 글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종이는 이미 글자들로 빽빽했다. 모드가 종이에서 펜을 떼더니 마치 그다음엔 무엇을 써야 할지 잘모르겠다는 듯이 펜을 돌리고 또 돌렸다. 다시 모드는 숨결 아래로 웅얼거렸다. 모드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다시 써 내려갔다. 그러고는 잉크병에 펜을 담갔다.
그러면서 눈가에서 손을 떼고 얼굴을 들었다. 자신을 지켜보는 나를 보았다.
모드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무 움직임도 없어졌다. 소리지르지도 않았다. 처음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나와 눈을 마주치며 앉아 있었다. 얼굴에 놀랐다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내가 한 걸음을 뗐다. 그러자 모드가 잉크 묻은 펜을 내려놓고 일어났고, 펜이 종이 위로 그리고 책상 위로 구르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모드의 뺨이 창백해져 있었다. 모드가 의자 등을잡았다. 마치 손을 떼면 넘어지거나 기절할 것 같다는 태도였다. 내가 다시 한 걸음을 더 떼자 모드는 의자를 더욱 강하게 쥐었다.
모드가 말했다. 「날 죽이려고 온 거야?」 아주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는 모드의 목소리를 듣고,
얼굴이 창백해진 것을 알았다. 단순히 놀라서만이 아니라 또한 공포심에서 창백해져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니 끔찍했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쏟았던 눈물로 얼굴이 아직도 축축했다. 다시 눈물이 떨어지면서 더욱 축축해졌다.
「오, 모드!」 내가 말했다. 「오, 모드!」 - P804

나는 모드에게서 책을 받아 활자를 들여다보았다. 내게는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보였다. 그래서 나는 책을 내려놓고 서가로가서 다른 책을 꺼내 들었다. 역시 똑같아 보였다. 그래서 나는또 다른 책을 꺼냈다. 이 책에는 그림이 들어 있었다. 다른 곳에서는 구경하기도 어려울 만한 그림들이었다. 그림 하나에는 벌거벗은 여자아이 두 명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모드를 바라보았고심장이 조여 오는 것 같았다.
「넌 다 알고 있었구나」 내가 말했다. 그게 처음으로 든 생각이었다. 내내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면서••••••「아무것도 몰랐어.」 모드가 말했다.
「다 알고 있었어! 넌 내가 너한테 키스하게 했어. 다시 키스하고 싶게 만들었어! 그동안 내내 넌 여기에 들락거리면서••••••」갑자기 말이 막혔다. 모드가 내 얼굴을 보았다. 나는 서재 문앞에 와서 모드의 오르락내리락하던 숨죽인 목소리를 듣던 시절을 떠올렸다. 내가 스타일스 부인 그리고 웨이 씨와 함께 타르트와 커스터드를 먹는 동안, 신사들에게, 젠틀먼에게 책을 읽어 주던 모드를 생각했다. 나는 심장에 손을 얹었다. 심장이 너무나 강하게 옥죄어 와서 가슴이 아팠다.
「오 모드」 내가 말했다. 「내가 알기만 했어도! 널 생각하면나는 울기 시작했다. 「네 삼촌을 생각하면 •••••• 오!」 내 손이 빠르게 입으로 올라갔다. <내> 삼촌!」 그 생각에 너무나 기분이 이상해졌다. 「오!」 나는 여전히 책을 쥐고 있었다. 이제 나는 책을 바라보고는 마치 책에 데기라도 한 것처럼 바닥에 떨어뜨렸다. - P811

 단지<단지 널 사랑해>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말하지 않았다. 무어라 할 수 있으랴? 만약 모드가 아직도 당당할수 있다면, 그렇다면, 지금으로선, 내가 과연...... 어쨌거나 내겐말할 필요가 없었다. 모드는 내 표정에 쓰인 그 말을 읽을 수 있었으니까. 모드의 얼굴색이 바뀌고 시선이 차분해졌다. 모드는손으로 눈을 가렸다. 손가락 때문에 이마에 검은 얼룩이 더 많이 생겼다. 여전히 얼룩이 참기 어려웠다. 나는 재빨리 손을 내밀어 모드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엄지에 침을 묻혀 모드의 이마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저 잉크와 모드의 하얀 살결만을생각하며 이마를 문질렀다. 그러나 모드는 내 손을 느끼더니 아주 조용히 있었다. 엄지의 움직임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모드의 뺨으로 움직여 갔다. 그리고 나는 어느덧 손으로 모드의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모드가 눈을 감았다. 뺨이 부드러웠다. 진주와는 달랐다. 진주보다 따뜻했다. 모드가 고개를 돌려 내 손바닥에 입을 맞추었다. 입술이 부드러웠다. 잉크 얼룩이 모드의 이마에 검게 남아 있었다. 결국엔 잉크일 뿐이란 생각을 했다. - P814

모드가 등불을 집어 들었다. 방이 어두워지고, 비는 여전히유리창을 때리고 있었다. 그러나 모드는 나를 벽난롯가로 데려가 앉힌 뒤 옆에 앉았다. 모드의 비단 치마가 갑자기 부풀어 올랐다가 가라앉았다. 모드는 등불을 바닥에 내려놓고 종이를 평평하게 폈다. 그리고 자기가 쓴 글자들을 하나하나 보여 주기시작했다. - P815

마지막으로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네 가지가 있군요. 1. 미친 듯 읽어라. 모든 작가는 기본적으로 열정적인 독자여야 해요. 그래서 자신이 느꼈던 멋진 독서경험을 다른 사람들도 즐길 수 있도록 제공하고 싶어 해야죠.
2. 되도록 날마다 일정한 분량의 글을 써라. (앞서 말했듯이 저는 평일에는 1천 단어씩 써요. 주말에는 글을 안 쓰고요.) 만약영감이 올 때까지 앉아서 기다리고 있다면, 영감은 절대로 찾아오지 않아요. 그리고 쓴 글이 쓰레기라 할지라도 나중에 더 낫게 고칠 수 있죠. 그게 바로 세 번째예요. 3. <다시> 써라! 잘라내는 걸 두려워하지 말아야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4. 계속 노력하라. 거절을 두려워하면 안 돼요. 제 처음 소설은 열 곳에서퇴짜를 맞았어요. 자신에게 맞는 출판사를 찾아내야 하고, 그과정에는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죠. - P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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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 한글날 기념식 담화부터 철자법을 바꾸라고 요청했습니다. 1948년부터 1950년까지 이승만 대통령의 담화나 기자회견을 보면 당시 맞춤법에 대해 ‘불편하다‘와 ‘어렵다‘ ‘보기 좋지 않다‘는 표현이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그리고 1953년 4월 27일에 당시 백두진 국무총리가 훈령 제8호로 "우리 한글은 철자법이복잡 불편하니, 교과서, 타이프라이터에 대하여는 준비상 관계로 다소 지연되더라도, 정부용 문서에 관하여는 즉시 간이한 구 철자법을사용하도록 함이 가하다"고 했고, 이후 1953년 5월 9일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가 한글 간소화 반대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 그렇게 대통령이 하도 강력하게 지시를 하니까 정부가 대통령의뜻을 받아서 "앞으로 한글 맞춤법은 폐지하고 기음 철자법을 사용한다. 우선 정부만이라도 이걸 사용한다", 이게 국무총리훈령 8호입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쓰느냐에 대한 것은 표시가 없어요. 그리고 당시 문화계의 반대 성명이 있었으니 이걸 1차 파동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나온 기사나 자료를 봐도 구식 기법의 실체는 구체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이승만 대통령이 주장하는 구식 철자법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뭐냐, 실제로 간소화안을 가만히 보면 그 안에 모순이 꽤 많습니다. 뭔가 체계적으로 통일성이 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 P280

●●● 한글 맞춤법통일안은 한글학회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한글 간소화 방안에 반대한 것은 자연스럽다 할 수 있지만, 당시 국어국문학회가 한글 간소화 방안을 선두에 서서 반대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궁금합니다.
◆◆◆ 국어국문학회가 반대한 이면을 들여다보면, 맞춤법을 이 대통령의 권력에 의해 바꾼다는 데 대한 반항도 있지만 그거보다 더 강했던 것은 독재자 이승만을 기회만 있으면 규탄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국어국문학회의 회원들은 그때 거의 20대로 젊고 혈기 발랄한데, "독재를 보고는 참을 수 없다" 그래서 가장 먼저 선두에 섰습니다.
지금 회고해보면 당시 국어국문학회에서 발표한 한글 간소화의 반대 성명서를 내가 썼어요. 국어국문학회에서 나보고 쓰라 했지요.
그래서 내가 반대성명서를 쓸 적에 <한글 간소화 방안 이유 편에대한 반대라 해서 학술적으로 반대하겠다는 그런 의미에서 썼어요. - P287

2-3. 한일 국어학자의 교류와 한일사전의 발간
●●● 1960년대에 국어국문학회가 주도하여 한국 국어학자들과 일본한국어학자들과의 교류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습니다. 해방 이후 한일 국어학자의 첫 번째 교류라고 할 수 있는데요. 선생님께서 국어국문학회 대표로서 이 교류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셨던 것으로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류는 어떤 계기로 이루어진 것인지요?
◆◆◆ 일본과 우리말 학계와의 첫 접촉은 1962년 10월, 임의단체인 국어국문학회 대표이사 명의의 초청장이 용케 인정돼서 덴리대 조선학과교수가 내한함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방일해 많은 학자들을 만나게 되었고요. 단순한 접촉이지만, 유학생 교환, 평가높은 한일사전 완성으로 전개하는 등 교류의 결실을 맺어갔었지요. - P317

◆◆◆ 1966년 4월에 덴리대 안길보가 내한(4월 30일~5월 9일)하여 서울 ‘평화당 인쇄‘에서 사전을 조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5~7월에 조판을 완료한 후, 옵셋 인쇄용 청쇄로 가져가서 델리 양덕사에서초판을 발행하게 되죠. 이렇게 출판된 사전은 《조일신문》 (1967년 2월25일) 석간에 의외로 상세히 보도되었어요. <최초의 ‘본격적인 조선어사전>이라는 제하에 덴리대 《현대조선어사전》 출판을 보도하면서고려대 김민수 교수는 그 일로 두 번이나 방일했다고 밝혔지요.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어 매일신문사 출판문화상 특별상을 수상했다는점입니다. 일본에서는 이런 수상이 드물어서 편자인 대학에서도 무슨착오일 것이라고 의아해 했다고 해요.
●●● <현대조선어사전>> 편찬과 관련한 말씀을 들으니, 이 사전의 편찬은 1960년대 초 한일 문화 교류의 상징적인 결과물이라고 해야 할 것같습니다. 일본 신문에서 이 사전의 출판소식을 크게 전하고 선생님의 참여를 특별히 밝힌 것이나, 이 사전이 일본의 권위 있는 출판문화상을받게 된 것은 이 사전의 의의가 그만큼 컸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이사전이 해방 후 한국어의 국제적 보급을 위한 활동의 가장 두드러진 성과라는 사실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이라 생각합니다. - P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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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가 하려던 이야기는 이런 게 아니다. 아직 아니다.
나는 일어나 거의 1분 가까이 삼촌의 자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러고는 방을 떠난다. 나는 왔을 때처럼 조심스럽게, 그리고 조용하게 나간다. 계단으로 가서 다시 서재까지 간 뒤 일단 서재에 들어서자 문을 잠그고 등을 켠다. 이제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다. 공포와 기대감으로 속이 메스껍다. 그러나 시간은 정신없이 흐르고 나는 더는 기다릴 수가 없다. 나는 서가로 가로질러가 책장의 유리문 걸쇠를 푼다. 「걷힌 커튼」이다. 삼촌이내게 처음 준 책부터 시작한다. 책을 집어 펼쳐서 삼촌의 책상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면도기를 들어 단단히 쥐고는 면도날을 완전히 빼낸다. 빼기가 빽빽하지만 마지막 1인치는 덤비듯튀어나온다. 결국 면도날의 본질은 베는 것이다.
하지만 힘이 든다. 지독하게 힘이 들어 거의 되지가 않는다.
생전 처음 단정하고 보호막이 벗겨진 종이에 금속을 대는 것이힘이 든다. 책이 비명을 지를까 봐, 그래서 내가 발각될까 봐 거의 겁에 질린다. 그러나 책은 아무 비명도 지르지 않는다. 오히려, 책은 마치 갈가리 찢기길 갈구해 왔다는 듯이 <한숨을 쉰다>. 그리고 한숨 소리를 듣자 면도날을 쥔 손에 더욱 속도가붙고 내 행동은 더욱 능숙해지고 현실이 된다. - P435

「건드려 봐요」 내가 말한다. 「건드려 봐요, 그리고 죽어 버려요. 제 안엔 독이 있어요.」
리처드의 손이 내 목에서 1인치 떨어진 곳에서 멈춘다. 나는눈도 깜빡 않고 리처드와 시선을 마주친다. 리처드가 몸을 곧추세운다. 입이 기묘하게 뒤틀리다가 경멸 속에 말려 올라간다.
「제가 당신을 원한다고 생각했나요?」 리처드가 말한다. 「그랬나요?」 거의 쉭쉭거리듯 말을 내뱉는다. 물론 수가 듣게 될지도 모르니 너무 큰 목소리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리처드가 홍분해 머리털을 귀 뒤로 넘기며 내게서 떨어진다. 발에 가방이•거치적대자 걷어차 버린다. 「제기랄.」 리처드가 말한다. 외투를벗고 소매의 고리를 잡아당기고 사납게 소매를 풀기 시작한다.「꼭 그렇게 빤히 쳐다봐야 하겠습니까?」 옷에서 팔을 빼며 리처드가 말한다. 「당신은 안전하다고 제가 이미 얘기하지 않았나요? 당신과 결혼해서 제가 당신보다 더 기뻐하고 있다고 혹시라도 생각하신다면••••••.」 리처드가 침대로 돌아온다. 「하지만 전 기쁜 척해야만 하지요.」 언짢은 말투로 리처드가 말한다. 그리고 이건 결혼에서 기쁜 일로 통하는 부분에 속하지요. 잊으셨나요?
리처드가 담요를 걷어 매트리스 위 시트를 내 엉덩이 부근까•지 드러낸다. 「비켜 보세요.」 리처드가 말한다. 내가 옆으로 간다. 리처드가 앉아 어색하게 몸을 돌린다. 리처드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뭔가를 꺼낸다. 주머니칼이다. - P440

「정말 비참한 경우로군요. 의사가 말한다. 「그러나 저희가부인에게 갖은 노력을 다해서 저희를 믿으셔도 됩니다. 저 비정상적인 상상들을 떨쳐 내도록 만들겠습니다••••••.」「비정상적이라고요?」 리처드가 말한다. 그리고 다시 몸을 떤다. 표정이 묘하게 변한다. 「아, 선생님. 리처드가 말한다. 「아직도 잘 모르시는군요. 그뿐이 아닙니다. 그 점만은 비밀로 하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이제는 그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정말입니까?」 의사가 말한다. 다른 한 의사가 연필을 든 채 잠시 손을 멈춘다.
리처드가 입술에 침을 바른다. 그리고 갑자기 나는 리처드가하려는 말을 깨닫고 재빨리 얼굴을 리처드의 얼굴 쪽으로 돌린다. 리처드가 내 행동을 알아차린다. 내가 저지하기도 전에 리처드가 입을 연다.
「수전.」 리처드가 말한다. 「네가 네 주인을 대신해 수치심을느끼는 것도 당연해. 하지만 너 자신에 대해선 아무런 수치도느낄 필요 없어. 네겐 아무 죄도 묻지 않으마. 내 아내가, 광기속에서, 네게 강제하려 했던 그 모든 관심들을 네가 불러일으키거나 조장한 적은 한 번도 없으니까••••••.」
리처드가 자기 손을 깨문다. 의사가 빤히 바라보다가 몸을돌려 나를 본다.
「스미스 양.」 몸을 좀 더 가까이 기울이며 첫 번째 의사가 묻는다. 「저 말이 정말인가요?
나는 수 생각을 한다. 지금 만들어 내야 할 모습의 수가 아니라. 저 벽 너머 방에 있는 수를 생각한다. 나를 배신하고 만족하고 있는, 드디어 자기 집, 런던에 있는 음침한 도둑의 소굴로 돌아갈 생각에 기뻐하고 있는 수를 생각한다. 내 위에 타고 앉은 수를 생각한다. 머리를 늘어뜨리고, <나의 진주••••••>.
- P453

「기다려요」 수의 말이 들린다. 「무슨 짓을 하는 거예요?」 그리고 말한다. 「신사님들! 신사님들!」 기묘하게 격식을 차려 말한다.
의사들이 달래는 어조로 말을 건네고, 수가 욕설을 퍼붓기 시작한다. 그러자 의사들의 목소리가 차가워진다. 리처드가 뒤로물러난다. 마차 지붕이 기울고 출입구가 올라가 보인다. 그리고 수의 모습이 보인다. 두 남자의 손에 팔을 잡히고 간호사에게 허리를 붙들려 있다. 망토가 어깨에서 떨어지고 모자는 기울었으며 머리칼은 핀에서 제멋대로 빠져나와 있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다. 표정이 이미 사나워져 있다.
수의 눈이 내게 고정되어 있다. 나는 리처드가 내 팔을 잡고손목을 강하게 누를 때까지 돌처럼 굳어 앉아 있다.
「말해요.」 리처드가 속삭인다. 「제기랄.」 그러자 내가 분명하게 그리고 기계적으로 외친다.
「오! 불쌍한 우리 마님!」 고동색 점이 찍힌 수의 갈색 눈이 휘둥그레진다. 수의 흐트러진 머리카락. 「오! 오! 이런 모습을 보니 제 가슴이 미어져요!」 - P458

이제 날이 어두워진다. 혹은 하늘색이 어두워지고 우리는점차 목표한 도시에 가까워진다. 유리에 검댕 자국들이 그려진다. 풍경이 조금씩 초라해진다. 오두막은 나무집으로 바뀌기 시잘하고 어떤 집은 유리와 판자가 깨어져 있다. 정원은 잡초발으로 바뀌어 간다. 곧 잡초마저 도랑으로, 도랑은 검은 운하로, 황량한 길로, 돌이나 흙이나 재로 된 둔덕으로 바뀐다. 하지만아직까지 나는 생각한다. <재마저 네 자유의 일부야> 그리고나도 모르게 어떤 흥분의 불길이 이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곧, 흥분은 불안으로 바뀐다. 나는 늘 런던이 벽으로 둘러싸인 커다란 정원에 서 있는 집 같은 곳이라고 생각해 왔다. 런던이 우뚝 서 있고, 정돈되어 있으며 깨끗하고 하나로 이루어진 곳이라고 상상했다. 이렇게 중간 중간 끊어져 있고, 마을과 교외 등으로 뻗어나갈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완결된 곳이라 믿었다. 그러나 이제 쭉 펼쳐진 축축한 붉은 땅과 쑥 들어간 도랑들이 보인다. 반쯤 세워진 집과 반쯤 만들어진 교회가 보인다. 유리창없는 창문과 석판을 올리지 않은 지붕과 튀어나온 나무 기둥들이 보인다. 살을 발라 놓은 뼈 같다.
이제 유리에 달라붙은 검댕이 너무 많아져 마치 내 베일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기차가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한다.
그 느낌이 싫다. 회색 거리, 검은색 거리처럼 단조로운 거리를 수없이 지나기 시작하고, 나는 절대 저 거리들을 구별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 문과 창문이 지붕과 굴뚝이, 말과 마차와남자와 여자가 엄청나게 뒤섞여 있다! 광고판과 요란한 간판들이 엄청나게 뒤죽박죽으로 얽혀 있다. <스페인식 블라인드><납관>, <지방&면 부산물>, 온통 글자들이다. 글자들이 6피트높이로 적혀 있다. 글자들이 비명을 지르고 고함을 친다. <가죽및 도구점>, <세 놓음>, <브러엄과 멋진 사륜마차 점>, <종이 염색점>, <완벽 지원>, <세 놓음!>, <세놓음!>, <자발적 출자>.
런던 전체가 글자투성이다. 나는 글자를 보다가 눈을 가려버린다. 다시 눈을 들었을 때는 이미 내리막길로 들어선 뒤다.
검댕이 짙게 내린 벽돌담이 기차 주변에 솟아 객실에 어둠을 드리운다. 그러고 나서 더러워진 유리로 이루어진 커다란 반원형지붕이 나타난다. 주위로 연기와 김이 피어오르고 새들이 날개를 친다. 우리가 탄 기차가 몸을 떨다 끔찍하게 멈춰 선다. 다른엔진들이 비명을 지르고 문이 쿵 하고 울리고 수천 명이 통로를 가득 메운다. 내 눈엔 그렇게 보인다.
「패딩턴 종착역입니다.」 리처드가 말한다. 「내리시지요 - P463

 그러나 리처드는 내게서 손을 빼고 팔짱을 낀 채 무척 편안하게 서 있다. 리처드는 웃고 있지만 웃음이 기묘하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 백발의 여자외에는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여자는 의자에서 일어나 탁자근처로 온다. 여자는 바스락거리는 태피터 옷을 입고 있다. 얼굴이 상기되어 있고 반짝거린다. 내 쪽으로 와 앞에 서더니 내 얼굴선을 잘 보려고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여 본다. 여자가 입을움직이고 입술을 적신다. 시선은 아직도 내게 고정되어 있고 끔찍하도록 열심이다. 여자가 뭉툭한 붉은 손을 내게 뻗자 나는움찔하고 물러난다. 리처드」 내가 말한다. 그러나 리처드는 아직도 가만히 서 있을 뿐이고, 여자의 너무나 끔찍하고 너무나 기묘한 표정에 나는 압도당한다. 나는 가만히 서서 여자가 서투르게 내 베일에 손을 뻗게 내버려 둔다. 여자가 베일을 뒤로젖힌다. 그리고 내 얼굴을 보자 눈빛이 더욱 이상하게 변한다. 여자는 마치 자기 손가락 뒤의 내 얼굴이 사라지기라도 할 것같다는 태도로 내 뺨을 만진다.
여자가 시선을 내게 고정한 채 리처드에게 말한다. 목소리가나이 혹은 감정에서 나오는 눈물로 탁하다.
「잘했어.」 여자가 말한다. - P470

「저 여자」 나는 여자에게 눈길을 주며 말한다. 여자는 아직도 말없이 비누와 머리솔을 바라보고 있다. 「당신이 뭐든 <저여자> 말대로 한다고?
「이 경우엔 그렇지. 리처드가 의미심장하게 말한다. 그리고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잠시 멈칫거리자 리처드가 말을 잇는다.「내 말 잘 들어, 모드, 이 계획은 모두가 석스비 부인의 생각이었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석스비 부인이 꾸몄어. 그리고 나는악당이긴 해도, 석스비 부인을 속일 수 있을 만큼 훌륭한 사기꿈은 못 돼」
리처드의 얼굴이 정직해 보인다. 그렇지만, 전에도 나는 리처드가 정직해 보인다 생각한 적이 있다. 「거짓말이야.」 내가 말한다.
「아니 이건 진실이야.」
「저 여자의 계획이라니 나는 믿을 수가 없다. 「저 여자가 당신을 브라이어로, 내 삼촌에게 보냈다고? 그리고 그전엔 파리로? 호트리 씨에게로?
「부인이 날 당신에게 보냈어. 당신에게 가기까지 아무리 경로가 복잡했어도 상관없어. 부인이 없었다면, 어찌어찌 같은 경로를 거쳤다 해도 끝이 어떻게 날지 몰랐을 거야. 그저 당신을 지나쳤을 수도 있어! 아마 많은 남자가 이미 그랬을 거야. 그 사람들은 자기의 앞길을 이끌어 주는 석스비 부인이 없었으니까.」나는 저 둘 사이 공간을 바라본다. 「그렇다면, 저 여자는 내재산에 대해 알고 있었군.」 내가 잠시 뒤 입을 연다. 「그럼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단 얘기네. 저 여자가 알았던 게•••••• 누구지? 삼촌? 우리 집의 하인?」「부인은 널 알았어, 모드, 널, 세상 누구보다도 제일 먼저 널 알고 있었어」여자가 마침내 시선을 들어 다시 나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난 네 어머니를 알았지. 여자가 말한다. - P486

좀 그만해「생각할 거야.」 내가 대답한다. 「언제나처럼 어머니 생각을할 거야. 멍청이로! 하지만 아버지는•••••• 당신, 내 아버지가 신사라고 했지? 저들이 날 이 오랜 세월 동안 고아로 살게 했어. 아버지가 아직도 살아있어? 이제까지 아버지가 한 번도••••••?」「모드, 모드」 리처드가 문 앞 아까의 자리로 돌아가며 한숨을 쉰다. 「네 주위를 둘러봐. 네가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생각해 봐. 당신은 내가 당신을 브라이어에서 구해 와 오늘 아침 내가 그런 행동을 한 게, 이제까지의 그런 위험을 무릅썼던게, 그저 당신에게 가족의 비밀을 알려 주기 위해서였다고, 그게 다라고 생각해?」
「모르겠어!」 내가 말한다. 이제 내가 아는 게 뭐지? 나에게잠시만 생각할 시간을 준다면 내게 말해 주기만 한다면 •••••• 그러나 석스비 부인이 다가와 내 팔을 가볍게 만진다.
「잠깐만, 아가야.」 부인이 굉장히 부드러운 어조로 말한다.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한쪽 눈을 반쯤 감는다. 「잠깐만, 그리고들어 보렴. 아직 내 이야기를 모두 듣지 않았단다. 아직 좋은 소식이 남아 있어. 완전히 녹초가 된 숙녀가 있었다는 거, 기억하지. 한 시간 정도면 도착할 아버지와 오빠와 불량배가 있고, 아기가 있고, 그리고 내가 이렇게 말을 했지. <아기에게 뭐라고 이름을 지어 주죠? 당신의 이름, 메리앤으로 지어 주는 건 어떨까요?? 그리고 숙녀는 아기에게 그런 이름을 붙여 주느니 자기가 아기를 저주하고 말겠다고 말했지. 기억하니, 아가? 그 불쌍한 여자가 말하더구나. <숙녀의 딸이 된다는 것에 대해 제게 한번 말씀해 보세요. 숙녀가 된다는 게 자기 파멸 외에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전 아기에게 평범한 이름을 주고 싶어요 보통 사람의 딸처럼요. 평범한 이름을 가지게 하고 싶어요.> <그럼 직접 평범한 이름을 지어 주세요.> 내가 말하지•••••• 아직까진 사실 숙녀의 기분을 맞춰 주려는 생각뿐이었어. <그럴래요>숙녀가 말해. 예전에 제게 친절하게 대했던 하녀가 하나 있어요. 아버지나 오빠보다도 훨씬 친절했어요. 그 하녀 이름을 따서 아기 이름을 지어 주고 싶어요. 그 하녀 이름으로 아기 이름을 지어 줄래요. 그 하녀 이름은••••••「<모드>」 내가 비참한 목소리로 말한다. 나는 다시 고개를숙인다. 그러나 석스비 부인이 침묵을 지키고 있어 나는 고개를든다. 표정이 기묘하다. 침묵이 기묘하다. 부인이 천천히 고개를 흔든다. 숨을 들이쉬더니, 다시 잠시 망설였다가 말한다.
「<수전>」 - P499

섹스비 부인이 한 말들을 이해하겠지, 모드?」 리처드가 내손가락 사이로 보려 애쓰며 말한다. 「한 아기가 다른 아기가 되었어. 네 어머니는 네 어머니가 아니고, 네 삼촌도 네 삼촌이 아없어니야. 네 인생은 네가 살아야 했던 인생이 아니라, 수가 살아야했던 인생이었어. 그리고 수는 네 인생을••••••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눈앞에 자기 인생이 믿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펼쳐지는 것을 보게 된다고 한다. 리처드가 말하는동안, 나는 나의 인생을 본다. 정신 병원, 내가 지녔던 나무 막대기, 브라이어에서 입었던 아름다운 드레스들, 구슬이 달린줄, 안경을 벗은 삼촌의 눈, 책들, 책들••••••. 인생이 깜빡이며 지나가다 사라지고, 진흙탕에 빠진 동전의 반짝임처럼 사라지고어쩔 수 없어진다. 나는 몸을 떨고 리처드는 한숨을 쉰다. 석스비 부인이 고개를 젓고 혀를 찬다. 그러나 내가 저들에게 얼굴을 보여 주자, 둘 다 뒤로 물러선다. 나는 저들 생각처럼 울고 있지 않다. 나는 웃고 있고, 끔찍한 웃음에 사로잡혀 있고, 내표정이 무시무시해 보이는 게 분명하다.
「오, 하지만 이건 너무 완벽하잖아!」 나는 내가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내가 너무나 간절히 원해 왔던 바로 그것이잖아! 왜 그렇게 보지? 뭘 뚫어져라 보는 거야? 여기 여자애가하나 앉아 있는 거라고 생각해? 그 애는 죽었어! 물에 빠져 죽있다고! 천길만길 아래 가라앉아 있다고. 그 애에게 팔과 다리가 있고 살과 옷이 덮여 있다고 생각해? 머리털이 있다고 생각해? 하얗게 드러난 뼈밖에 안 남았어! 백지장처럼 하얗다고! 그 애는 책이야. 글자들이 떨어져 나와 둥둥 떠다니는••••••」 - P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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