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 한글날 기념식 담화부터 철자법을 바꾸라고 요청했습니다. 1948년부터 1950년까지 이승만 대통령의 담화나 기자회견을 보면 당시 맞춤법에 대해 ‘불편하다‘와 ‘어렵다‘ ‘보기 좋지 않다‘는 표현이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그리고 1953년 4월 27일에 당시 백두진 국무총리가 훈령 제8호로 "우리 한글은 철자법이복잡 불편하니, 교과서, 타이프라이터에 대하여는 준비상 관계로 다소 지연되더라도, 정부용 문서에 관하여는 즉시 간이한 구 철자법을사용하도록 함이 가하다"고 했고, 이후 1953년 5월 9일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가 한글 간소화 반대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 그렇게 대통령이 하도 강력하게 지시를 하니까 정부가 대통령의뜻을 받아서 "앞으로 한글 맞춤법은 폐지하고 기음 철자법을 사용한다. 우선 정부만이라도 이걸 사용한다", 이게 국무총리훈령 8호입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쓰느냐에 대한 것은 표시가 없어요. 그리고 당시 문화계의 반대 성명이 있었으니 이걸 1차 파동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나온 기사나 자료를 봐도 구식 기법의 실체는 구체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이승만 대통령이 주장하는 구식 철자법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뭐냐, 실제로 간소화안을 가만히 보면 그 안에 모순이 꽤 많습니다. 뭔가 체계적으로 통일성이 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 P280
●●● 한글 맞춤법통일안은 한글학회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한글 간소화 방안에 반대한 것은 자연스럽다 할 수 있지만, 당시 국어국문학회가 한글 간소화 방안을 선두에 서서 반대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궁금합니다. ◆◆◆ 국어국문학회가 반대한 이면을 들여다보면, 맞춤법을 이 대통령의 권력에 의해 바꾼다는 데 대한 반항도 있지만 그거보다 더 강했던 것은 독재자 이승만을 기회만 있으면 규탄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국어국문학회의 회원들은 그때 거의 20대로 젊고 혈기 발랄한데, "독재를 보고는 참을 수 없다" 그래서 가장 먼저 선두에 섰습니다. 지금 회고해보면 당시 국어국문학회에서 발표한 한글 간소화의 반대 성명서를 내가 썼어요. 국어국문학회에서 나보고 쓰라 했지요. 그래서 내가 반대성명서를 쓸 적에 <한글 간소화 방안 이유 편에대한 반대라 해서 학술적으로 반대하겠다는 그런 의미에서 썼어요. - P287
2-3. 한일 국어학자의 교류와 한일사전의 발간 ●●● 1960년대에 국어국문학회가 주도하여 한국 국어학자들과 일본한국어학자들과의 교류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습니다. 해방 이후 한일 국어학자의 첫 번째 교류라고 할 수 있는데요. 선생님께서 국어국문학회 대표로서 이 교류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셨던 것으로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류는 어떤 계기로 이루어진 것인지요? ◆◆◆ 일본과 우리말 학계와의 첫 접촉은 1962년 10월, 임의단체인 국어국문학회 대표이사 명의의 초청장이 용케 인정돼서 덴리대 조선학과교수가 내한함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방일해 많은 학자들을 만나게 되었고요. 단순한 접촉이지만, 유학생 교환, 평가높은 한일사전 완성으로 전개하는 등 교류의 결실을 맺어갔었지요. - P317
◆◆◆ 1966년 4월에 덴리대 안길보가 내한(4월 30일~5월 9일)하여 서울 ‘평화당 인쇄‘에서 사전을 조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5~7월에 조판을 완료한 후, 옵셋 인쇄용 청쇄로 가져가서 델리 양덕사에서초판을 발행하게 되죠. 이렇게 출판된 사전은 《조일신문》 (1967년 2월25일) 석간에 의외로 상세히 보도되었어요. <최초의 ‘본격적인 조선어사전>이라는 제하에 덴리대 《현대조선어사전》 출판을 보도하면서고려대 김민수 교수는 그 일로 두 번이나 방일했다고 밝혔지요.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어 매일신문사 출판문화상 특별상을 수상했다는점입니다. 일본에서는 이런 수상이 드물어서 편자인 대학에서도 무슨착오일 것이라고 의아해 했다고 해요. ●●● <현대조선어사전>> 편찬과 관련한 말씀을 들으니, 이 사전의 편찬은 1960년대 초 한일 문화 교류의 상징적인 결과물이라고 해야 할 것같습니다. 일본 신문에서 이 사전의 출판소식을 크게 전하고 선생님의 참여를 특별히 밝힌 것이나, 이 사전이 일본의 권위 있는 출판문화상을받게 된 것은 이 사전의 의의가 그만큼 컸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이사전이 해방 후 한국어의 국제적 보급을 위한 활동의 가장 두드러진 성과라는 사실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이라 생각합니다. - P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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