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때로 소수의견이란 무대 뒤에서 상대방을 설득하는 작업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나아가 죽을힘을 다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진실을 알리기로 작정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소수의견들이 있다.
대법관 일곱 명이 아프리카계 인간은 일종의 재산일 뿐 절대로 시민이 될수 없다고 판결한 1857년 드레드 스콧 사건에서도 그랬고, 다수의견이 ‘분리-평등원칙‘을 지지했던 1896년 플레시 대 퍼거슨 사건에서도 그랬다. 이들 소송건에서 소수의견을 제기한 대법관들은 동료 대법관에게 호소하는것이 더 이상 통하지 않자, 법정 밖의 공중을 향해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역사가 자신들의 판단을 정당화해주기를 기대하면서. - P167

해 한바탕 싸움을 벌이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셸비 사건에서 대법관들은 선출직 관료들을 무시하면서 대중의 참정권을 보장하는 법률의 주요조항을 무효화했다. RBG는 뉴욕 타임스」에서이렇게 밝혔다. "대법원은 보수적이라는 평판을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회가 통과시킨 법을 얼마든지 무효화할 수 있다는 의미로 적극주의라는 표현을 쓸 수 있다면, 현재 대법원은 그 어느때보다 적극적인 법원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5" RBG의 암담한 예상은 현실이 되었다. 셸비 판결 이후 몇 년 동안, 여러 주에서 앞다투어 법을 고쳐 투표 참여를 더 어렵게 만들어버렸고, 그 피해는 유색인종과 빈곤층에게 불균형적으로 쏠렸다. RBG가 말했다. "우리는 이 정도면 비에 젖지 않을 것 같다면서 우산을 내던졌습니다. 그러나 거센 폭풍이 우리에게 밀려올 것입니다.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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