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뜰

홧 아 유 두잉?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아임 리딩 어북, 나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홧즈 유어 프렌드 두잉? 당신의친구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석양이 오빠의 이마와 목덜미를 붉게 물들이며 방을 깊숙이가로질렀다.
내가 기억하는 한의 그 시간은 늘 그랬다.
함석 지붕이 흐를 듯 뜨겁게 달아오르고 저녁 햇빛이 칼처럼방안에 깊숙이 꽂힐 즈음이면 어머니는 화장을 시작하고 오빠는 창가에 놓인, 붉은 꽃무늬의 도배지 바른 궤짝 앞에 앉아 꼼짝않고 소리 높이 영어책을 읽었다. 나는 어머니의 곁에 앉아 갖가지 화장품이 담긴 병들을 만지작거리거나 창을 통해서 멀찍이보이는 개울의 다리와 신작로, 그리고 더 멀리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초등학교의 창을, 점점이 붉은 빛이 묻어나는 새털구름들을 바라보며 이유가 분명치 않은 조바심으로 어머니와 오빠 사이의, 은밀히 조성되어가는 팽팽한 공기를 지켜보았다. - P9

거울 속에는 언제나 좁은 방안이 가득 담겨 있었다.
소꿉놀이를 하다가도, 게으르게 눈을 껌벅이며 잠에서 깨어나서도, 싸움질을 하다가도, 허겁지겁 밥을 먹다가도 문득 눈을 들면 방의 한구석에 버티어 선 거울이 자신은 볼 수 없는 등까지도 환히 비추는 바람에, 우리는 거울 속에서 낯설게 만나지는 자신에게 경원과 면구스러움을 느껴 옆으로 슬쩍 비켜서거나 남의 얼굴처럼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 P11

나는 오빠가 또 언니를 때릴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저렇게 묵묵히 있는 것도 아마 트집 잡을 궁리에 골몰한 탓일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는 밤이면 오빠는 언니를 때렸고 할머니는 말릴 염도 없이 동생을 업고 나가 개울가를 서성거렸다.
오빠의 매질은 무서웠다. 오빠는 작은 폭군이었다. 아버지가떠난 이래 부쩍부쩍 자라는 오빠의 몸이 어느결엔가 아버지의빈자리를 채웠다. 어머니가 읍내 밥집에 나가게 되면서부터. 그리고 수상쩍은 외박이 잦아지자 오빠는 암암리에 아버지의 위치를 수락하였음을, 공공연히 자행되는 매질로 나타냈다.
오빠는 자신이 가장임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어 언제나 침울하고 긴장으로 부자연스럽게 굳어 있었다. 그 긴장으로 억눌려져 자라지 못하는 욕망, 자라지 못하는 슬픔, 분노 따위는 엉뚱한 잔인성이나 폭력의 형태로 나타났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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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조던(Alex Jordan)은 스탠퍼드 대학의 대학원생 시절 재미있는 실험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사람들의 구토 경보기를 몰래 작동시켜놓은 상태에서 그들에게 도덕적 판단을 내리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는 스탠퍼드 대학 교정에 있는 횡단보도에 서서 그곳을 지나가는행인들에게 짤막한 설문지에 답변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설문지는 사촌지간의 결혼이나 감독이 몇몇 사람을 속여 인터뷰를 했는데 영화제작사에서 그 다큐멘터리를 개봉하기로 한 것 등 논쟁이 될 만한이슈를 다루고 있었다.
알렉스가 횡단보도에 서 있을 때 바로 옆에는 빈 철제 쓰레기통이있었다. 그는 피험자를 모집하기 전, 먼저 그 쓰레기통에 비닐봉지를넣어두었다. 그러고는 피험자 절반에 대해서는 그들이 횡단보도에 도착하기 전에 그들이 알렉스의 행동을 미처 보지 못하도록) 비닐봉지 안에 방귀 냄새 스프레이를 두 번 뿌렸다. 그러면 그 후 몇 분 동안은 교차로 전체에 ‘그 냄새가 배어 있게 된다.‘ 그리고 나머지 피험자에 대해서는 비닐봉지만 넣어둔 채 스프레이는 뿌리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은 공기에서 구린내가 났을 때 더 혹독한 판단을 내리는 경향이 있었다." 또 다른 연구진은 사람들에게 쓴 음료와 달콤한 음료를 마시게 한 후 설문지를 작성시켜보았는데, 역시 똑같은 효과가 나타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버지니아 대학에서 일하는 나의 동료 제리 클로어(Jerry Clore)의 표현대로, 결국 우리는 "정서를 일종의 정보로 활용하는 셈이다." 무엇에 대한 우리 생각이 어떤지 결정하고자 할 때, 우리는 안으로 눈을 돌려 느낌이 어떤지를 살피는 것이다. 느낌이 좋으면 내가 그것을 좋아하는 것이틀림없고, 뭔가 불쾌한 느낌이 있으면 내가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인 게 틀림없다. - P127

그리고 이런 결과를 얻는 데는 꼭 구토감까지 일으킬 필요가 없다. 그저 손을 씻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토론토 대학의 종첸보(Chen-Bo Zhong) 교수가 밝혀낸 바에 따르면, 설문을 작성하기 전 비누로 손을 씻게 하자 피험자들은 도덕적 정결(포르노, 아물복용) 관련 이슈에 대해 더 원칙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단 몸을 깨끗이 하고 나면 더러운 것은 멀리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종 교수는 그 역의 과정이 성립한다는 것도 보여주었다. 즉, 사람들은 비도덕적인 일을 접하면 깨끗이 씻고 싶어 한다. 사람들은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도덕적 일탈을 기억하게 할 경우, 아니면 단순히 다른 누가 저지른 도덕적 일탈을 손으로 베껴 쓰게만 해도 자신도 모르게 청결을 더 자주 생각하고 자기 몸을 씻고 싶어 하는 욕구를 더 강하게 가진다." 또 실험이 끝난 후 집에 가져갈 일용품을 고르라고 했을 때도 이들은 물티슈나 청소용품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종 교수는 여기에 맥베스 효과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남편에게던컨 왕을 죽이라고 부추겼던 맥베스 부인이 왕이 죽고 나서는 물과 청결에 강박증을 보이기 때문이다("몇 방울의 물이면 이 짓도 다 씻어진다"라던 맥베스 부인은 "지워져라, 지워져, 이 망할 놈의 핏자국! 제발!"이라고 외치는 지경에 이른다). - P128

도덕적 판단은 우리가 피해, 인권, 정의를 재고 따져 순전히 머리로만 내리는 것이 아니다. 도덕적 판단은 급속도로 이루어지는 자동적 과정으로, 동물들이 세상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내리는 판단과 비슷하다. 동물들은 다양한 것을 접했을 때 그것에 다가갈지 아니면 피할지를 스스로의 느낌으로 안다. 대부분의 경우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주체는 다름 아닌 코끼리이다. - P129

추론 능력은 있는데 거기에 도덕적 감정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이코패스는 무슨 말이든 술술 하는 법을 배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연쇄살인범 테드 번디(Ted Bundy)의 경우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할 때 구급대에서 전화 상담 자원봉사를 했다. 당시 그는 사람들의 전화를받으며 어떤 식으로 말해야 여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지 습득할수 있었다. 그는 그렇게 해서 1978년에 체포되기 전까지 무려 서른명 이상의 젊은 여성을 데려다 강간하고 신체를 절단하고 살인했다.
사이코패스가 되고 말고는 잘못된 양육이나 어린 시절 트라우마때문은 아닌 것으로 보이고, 그 외 양육을 바탕으로 한 설명 역시 어느 것도 사이코패스에게는 통하지 않는 듯하다. 한마디로 그것은 유전적으로 물려받을 수 있는 일종의 병증으로" 이 병증이 만들어놓은 뇌는 타인의 요구 · 고통 · 존중감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 감흥이없다. 즉, 사이코패스의 코끼리는 아무리 무참하고 잔인한 상황이눈앞에 펼쳐져도 거기에 꿈쩍도 않는다. 이때 기수는 지극히 정상으로, 전략적 추론 능력도 곧잘 발휘한다. 그러나 기수는 우리 안에서 도덕의 나침반 역할을 해주지 않는다. 코끼리의 뜻에 따라 시중드는 역할만 할 뿐이다. - P131

누가 자기에게 잘해주는지 아기들이 쉽게 안다는 것은 충분히 조리있는 이야기이다. 강아지도 그 정도는 아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 연구가 시사하는 것은 그런 것이라기보다 영아들도 여섯 달 정도면 사람들이 남들에게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관찰하고, 나아가 못되게 구는 사람보다는 착하게 구는 사람을 더 선호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코끼리는 언어 능력과 추론 능력이 나타나기 훨씬 이전인 영아 시절부터 벌써 도덕적 판단 비슷한 것을 내리고 있다는 뜻이다.
영아와 사이코패스를 통해 밝혀진 여러 사실을 함께 살펴본 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즉, 도덕적 직관은 아주 초기부터 그 모습을 드러내며 도덕성 발달에도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추론 능력은 그로부터 훨씬 뒤에나 모습을 드러내는데, 도덕적 추론 능력만 있고 도덕적 직관은 없을 때 빚어지는 결과는 처참하다. - P134

노예는 주인에게 의문을 제기하는 법이 절대로 없지만, 우리의 결우 애초의 직관적 판단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에 수정을 가하는 때가 더러 있다. 물론 이때에도 기수와 코끼리의 비유는 충분히 유효하다. 기수가 코끼리의 시중을 들도록 진화한 것은 사실이지만, 둘의 관계는 서로가 품격을 지키는 파트너의 관계이다. 즉, 기수는 주인 밑에서 일하는 하인이라기보다 고객을 위해 일하는 변호사에 더가깝다. 훌륭한 변호사라면 고객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변호사라고 해서 항상 고객의 뜻을 그대로 따르는 것은 아니다. 고객이 불가능한 요구를 하는 수도 있고(내가 진행한 최면 연구의피험자들이 학생회장 댄을 비난할 근거를 찾으려고 했던 것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제살 깎아 먹기 식의 일을 요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케이크 두 조각을 먹고 나서 코끼리가 하나를 더 먹고 싶어 할 때는 기수가 거기에 무작정 응하지않고 코끼리를 제지할 구실을 찾는다). 코끼리가 기수보다 힘이 훨씬 세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절대 권력을 주장하는 독재자는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코끼리가 이성에 귀를 기울일 때는 과연 언제일까? 우리가 도덕적 이슈에 대해 한 번 먹은 마음을 바꾸게 되는 것은 주로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이다. 우리는 자기가 믿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 증거를 찾아 나서는 것에 서툴다. 그러나 우리가 다른 사람의 믿음에 어떤 오류가 있는지 칼같이 찾아내듯이, 우리 밑음에 어떤 오류가 있는지는 다른 사람들이 얼마든지 찾아준다. 하지만 상대방과의 논의가 적대적으로 진행되어서는 누구든 마음을 바꿀 가능성이 희박하다. 코끼리는 반대자다 싶은 사람을 만나면 그에게서 몸을 틀어버리고, 그러면 기수가 정신없이 달려들어 반대자의 비난을 반박할 근거를 찾기 때문이다.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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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저런 순간에 다르게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하고 앉아 있어 본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마음만 심란하게 만드는 건지도 모른다. 사실 ‘전환점‘이 어쩌고저쩌고하지만 내가 그런 순간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돌이켜 볼 때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오늘날 그런 상황들을 되돌아보면 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하고 소중한순간들로 다가온다. 그러나 당시에는 물론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나와 켄턴 양의 관계에서 엉뚱한 것들을솎아 낼 수 있는 날이, 달이, 해가 끝없이 남아 있는 줄만 알았다. 이런저런 오해의 결과를 바로잡을 기회는 앞으로도무한히 많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처럼 사소해 보이는 일들이 모든 꿈을 영원히 흩어 놓으리라고 생각할 근거가 전혀없는 것 같았다. - P274

그렇게 이야기를 계속하는 사이에 더 많은것들, 세월이 그녀에게 남긴 더 미묘한 변화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테면 켄턴 양은 ‘약간 느려진‘ 것 같았다. 나이를 먹으면 사람이 대체로 침착해지니까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는데 실제로 나도 한동안은그렇게 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내 눈에 보이는 이 분위기는 삶의 고단함에 다름 아니라는 느낌을 피하기 힘들었다. 지난날 그녀를 때로 들뜬 사람처럼 보일 만큼 활기차게 만들었던 생기의 광채가 이제 사라진 듯 보였다. 게다가 이따금 그녀가 말을 하지 않고 있을 때, 다시 말해 얼굴에 움직임이없을 때면 표정에서 서글픔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 역시 내가 잘못 보았는지도 모른다. - P354

"하지만 이따금 한없이 처량해지는 순간이 없다는 얘기는 물론 아닙니다. ‘내 인생에서 얼마나 끔찍한 실수를 저질렀던가.‘ 하고 자책하게 되는 순간들 말입니다. 그럴 때면 누구나 지금과 다른 삶, 어쩌면 내 것이 되었을지도 모를 더나은‘ 삶을 생각하게 되지요. 이를테면 저는 스티븐스 씨당신과 함께 했을 수도 있는 삶을 상상하곤 한답니다. 제가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을 트집 잡아 화를 내며 집을 나와버리는 것도 바로 그런 때인 것 같아요. 하지만 한 번씩 그럴 때마다 곧 깨닫게 되지요.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남편곁이라는 사실을. 하긴, 이제 와서 시간을 거꾸로 돌릴 방법도 없으니까요. 사람이 과거의 가능성에만 매달려 살 수는없는 겁니다. 지금 가진 것도 그 못지않게 좋다. 아니 어쩌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닫고 감사해야 하는 거죠." - P364

"달링턴 나리는 나쁜 분이 아니셨어요. 전혀 그런 분이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에게는 생을 마감하면서 당신께서 실수했다고 말씀하실 수 있는 특권이라도 있었지요. 나리는 용기 있는 분이셨어요. 인생에서 어떤 길을 택하셨고그것이 잘못된 길로 판명되긴 했지만 최소한 그 길을 택했노라는 말씀은 하실 수 있습니다. 나로 말하자면 그런 말조차 할 수가 없어요. 알겠습니까? 나는 ‘믿었어요. 나리의 지혜를 긴 세월 그분을 모시면서 내가 뭔가 가치 있는 일을하고 있다고 믿었지요. 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말조차 할수 없습니다. 여기에 정녕 무슨 품위가 있단 말인가 하고 나는 자문하지 않을 수 없어요." - P371

한 걸음 더 나아가 전문가에게 농담은 결코 터무니없는 의무가 아니라 주인의 입장에서 얼마든지 기대할 수 있는 의무라는 생각마저 든다. 물론 나는 농담의 기술을 발전시키고자 이미 많은 시간을 투자해 왔지만 내 모든 역량을 바쳐 농담이라는 이 직무에 접근한 적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내일 달링턴 홀에 돌아가면 새로운 각오로 연습에임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 패러데이 어르신은 아직 일주일 더 있어야 돌아오신다. 그래서 내 주인께서 돌아오실 즈음에는 그분이 흐뭇하게 감탄하실 만한 수준에 이르러 있으면 좋겠다. - P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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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슨은 흄과 입장이 같았다. 도덕철학자들이 하는 일이란 알고 보면 자기들 뇌의 "감정 중추에 의견을 구해" 그것을 조작하듯 정당화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는 비난했다." 그의 예측에 따르면 윤리학을 연구하는 일은 조만간 철학자들의 손에서 벗어나 "생물학의 영역이 될 것이니,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인간 본성의 연구가 윤리학과 하나로 짜 맞추어질 것이었다. 철학 · 생물학 · 진화의 이러한 결합은 윌슨이 꿈꾸던 ‘새로운 종합‘에 해당하는 것이었고, 나중에 윌슨은 이를 통섭(consilience)이라고 불렀다. 여러 사상이 "경계를 뛰어넘어 다 같이" 하나의 통일된 지식 체계를 이루게 된다는 의미였다." - P80

그러나 어떤 경우에서든 기본이 되는 심리는 패턴 연결이다. 이런식의 인지는 별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순식간에 자동적으로 일어나고, 우리는 여기에 떠밀려 뮐러 · 라이어의 착시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착시를 경험할지 말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저 한쪽 선이 다른 선에 비해 더 길게 우리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마골리스는 이런 식의 사고를 ‘직관적 사고‘라고 부르기도 했다.
반면 ‘이유를 찾아내는 인지 과정‘은 "우리가 어떤 사고를 거쳐 특정 판단에 이르렀는지 설명할 때, 혹은 내가 보기에 다른 사람이 어떻게 그런 판단에 이를 수 있었는지 설명할 때" 이용된다." 이유를찾아내는 인지 과정‘은 언어를 가진 생물체, 그리고 스스로의 입장을 남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는 생물체에게서만 일어난다. ‘이유를 찾아내는 인지 과정‘은 자동적이지 않다. 이는 의식적인 과정으로, 때로는 수고스러운 일처럼 느껴지고, 인지 정보에 의해 그 흐름이 쉽게막힌다. 콜버그는 ‘보이는 그대로의 인지 과정‘은 무시하고 이 ‘이유를 찾아내는 인지 과정‘을 연구해야 한다고 도덕심리학자들을 설득한 것이다." - P98

마골리스의 아이디어는 내 연구에서 드러난 모든 내용에 완벽하게들어맞았다. 우리 머릿속에서는 직관적 판단이 먼저 일어나고("그건 당연히 잘못이죠!"). 그런 다음에야 천천히, 때로는 고문과도 같이 정당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음. 둘의 피임 방법이 모두 실패할 수도 있고, 그러면 둘 사이에서 나는 아이는 기형아일 겁니다. 직관은 추론을 일으키는 추동력이지만, 추론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 P99

감정이 사실은 인지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과학자들이 차츰 인정하게 된 것이다. 감정은 여러 단계를 거쳐 일어나는데, 그중에서도첫 단계가 방금 일어난 일이 내 목표에 도움이 되는지 방해가 되는지 여부로 그 일을 평가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평가는 일종의 정보처리, 즉 인지 작용에 해당한다. 어떤 특정한 입력 패턴이 감정의평가 프로그램에 감지되면, 그것은 우리 뇌에 일련의 변화를 일으켜적절한 반응을 보일 수 있도록 우리를 준비시킨다. 예를 들어, 어두컴컴한 길을 지나는데 누가 뒤에서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면나의 두려움 체계는 위협을 감지하고 교감신경을 작동시키는데, 이로써 맞붙을지 아니면 도망갈지의 반응 기제(fight-or-flight response)가 작동하고, 심장박동 수가 올라가며, 더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기위해 동공이 확대된다. - P101

《행복의 가설>이라는 책에서 나는 이 두 종류의 인지에 각각 기수("이유를 찾는 인지‘를 포함한 통제된 인지 과정)와 코끼리 (감정, 직관 및 모든 형태의 ‘보이는 그대로의 인지‘)라는 이름을 붙인 바 있다." 말(馬) 대신 굳이 코끼리를 선택한 이유는 코끼리가 말보다 훨씬 커다란 덩치를 가지고 있기(그리고 더 영리하기) 때문이다. 지난 5억 년 동안 동물의 마음을 움직여온 것은 자동적 인지 과정이었고, 그렇게 그것은 우리 인간의 마음도 움직여왔다. 따라서 수천 번의 제품 주기를 거친 소프트웨어가 기능이 향상되듯이, 자동적 인지 과정은 이제 자신의 일을매우 능숙하게 처리해내는 단계에 있다. 인간이 언어 및 추론 능력을 발달시킨 것은 최근 100만 년 사이의 어느 즈음인데, 이때 뇌가 스스로 회로를 재구성한 일은, 그러니까 코끼리 등에서 기수를 내리고그 자리에 어설픈 신참 마부를 앉힌 일은 없었다. 오히려 기수(언어를기반으로 한 추론 능력)는 계속 그 자리에 앉아 진화해나갈 수 있었는데.
기수가 어떻게든 코끼리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사실 기수가 시중들 수 있는 일은 여러 가지이다. 우선 미래를 더멀리 내다볼 줄 아는 능력(우리는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대안적인 시나리오를곰곰이 따져볼 수 있다)은, 코끼리가 지금 이 순간 더 나은 결정을 내리도록 도움을 준다. 또 기수는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나아가 첨단 기술까지 섭렵할 줄 아는데, 이 능력은 코끼리가 자신의 목표에는 한발 다가가고 재앙은 슬쩍 비키도록 도움을 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능력으로, 기수는 코끼리의 대변인 역할을 해준다. 그러나 이때 기수가 코끼리의 본심을 반드시 다 알 필요는 없다. 코끼리가 방금 무슨 일을 저질렀든 기수는 그것을 사후 조작하듯 설명하는 기술이 뛰어나고, 코끼리가 앞으로 하고 싶어 하는 일에 대해서도 그 정당화의 근거를 잘 마련한다. 인간이 언어라는 것을 만들어내고 그것으로 서로에 대해 험담하기 시작한 때부터, 코끼리 입장에서는 24시간 내내 일하는 이 홍보 회사를 등에 태우고 다닐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 P102

너무 뻔한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우리 중 도덕이나 정치 논쟁에 들어가서 이 원칙을 적용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그도 그럴 것이, 도덕이나 정치 논쟁에 들어가면 우리의 바른 마음이 기다렸다는 듯이전투태세에 돌입하기 때문이다. 기수와 코끼리는 척척 호흡을 맞추어 함께 공격을 막아내는 한편 적진을 향해서는 말발로 무장한 수류탄을 힘껏 내던진다. 그 모습에 우리 친구들은 감동에 젖기도 하고, 동맹들은 내가 팀에 헌신한다고 생각해줄 것이다. 그러나 적들은 이들과 달라 내가 아무리 훌륭한 논리로 무장하고 있다고 해도 마음을바꿀 리가 없다. 그들 역시 전투태세에 돌입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덕이나 정치 문제와 관련해 우리가 정말로 누구의 마음을 돌려놓고 싶다면, 나 자신의 눈으로는 물론 그 사람의 눈으로도 사물을 바라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진정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깊이 있게, 그리고 직관적으로), 그 반응으로 어느새 나 자신의마음이 열리는 걸 느낄 것이다. 공감이야말로 서로가 바르다는 확신을 녹이는 해독제이다. 물론 서로 다른 도덕적 가치관을 허물고 서로 공감한다는 것이 몹시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 P108

・기수가 코끼리를 시중드는 모습은 사람들을 도덕적 당혹감에빠뜨렸을 때 목격할 수 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사람들은강하게 직감하고, 그 느낌을 사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사후정당화의 근거를 만들어낸다. 설령 하인(추론 능력)이 아무 이유를 찾지 못한 채 빈손으로 돌아와도 주인(직관)은 자신이 내린판단을 바꾸지 않는다.
• 사회적 직관주의자 모델은 홉의 모델을 기초로 하되 거기에 좀더 사회성을 불어넣은 형태이다. 사람들은 친구를 얻고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해 일평생 모질게 애쓰는데, 도덕적추론도 그런 노력 중 하나이다. 내가 "직관이 먼저이고, 전략적추론은 그 다음이다"라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진실이 무엇인지 밝혀내기 위해 사람들이 혼자 가만히 앉아서 하는 어떤활동을 도덕적 추론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 따라서 도덕이나 정치 문제와 관련해 누구의 마음을 바꾸고 싶다면, 코끼리에게 먼저 말을 걸어야 한다. 자신의 직관에 어긋나는데 그것을 사람들에게 믿으라고 하면, 그들은 전력을 다해서 빠져나갈 구멍을 찾을 것이다. 내 논거나 결론에 어디 미심쩍은부분이 없나 이유를 찾아내면서 말이다. 그리고 거의 백이면 백 그 노력은 성공을 거둘 것이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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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가서 아버님을 뵈실 거죠?"
"난 지금 몹시 바빠요, 켄턴 양. 잠시 후라면 몰라도."
"그럼 제가 부친의 눈을 감겨 드려도 될까요?"
"그렇게 해 준다면 더없이 고맙겠소, 켄턴 양"
그녀가 층계를 오르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녀를 불러 세우고 말했다.
"켄턴 양, 부친께서 방금 작고하셨는데도 올라가 뵙지 않는다고 막돼먹은 사람으로 생각하지는 말아 주시오. 당신도짐작하겠지만 아버님도 이 순간 내가 이렇게 처신하기를 바라셨 을 거요."
"물론입니다, 스티븐스 씨."
"내가 만약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분을 실망시키는 게될 거요."
"압니다. 스티븐스 씨."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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