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런저런 순간에 다르게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하고 앉아 있어 본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마음만 심란하게 만드는 건지도 모른다. 사실 ‘전환점‘이 어쩌고저쩌고하지만 내가 그런 순간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돌이켜 볼 때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오늘날 그런 상황들을 되돌아보면 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하고 소중한순간들로 다가온다. 그러나 당시에는 물론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나와 켄턴 양의 관계에서 엉뚱한 것들을솎아 낼 수 있는 날이, 달이, 해가 끝없이 남아 있는 줄만 알았다. 이런저런 오해의 결과를 바로잡을 기회는 앞으로도무한히 많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처럼 사소해 보이는 일들이 모든 꿈을 영원히 흩어 놓으리라고 생각할 근거가 전혀없는 것 같았다. - P274

그렇게 이야기를 계속하는 사이에 더 많은것들, 세월이 그녀에게 남긴 더 미묘한 변화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테면 켄턴 양은 ‘약간 느려진‘ 것 같았다. 나이를 먹으면 사람이 대체로 침착해지니까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는데 실제로 나도 한동안은그렇게 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내 눈에 보이는 이 분위기는 삶의 고단함에 다름 아니라는 느낌을 피하기 힘들었다. 지난날 그녀를 때로 들뜬 사람처럼 보일 만큼 활기차게 만들었던 생기의 광채가 이제 사라진 듯 보였다. 게다가 이따금 그녀가 말을 하지 않고 있을 때, 다시 말해 얼굴에 움직임이없을 때면 표정에서 서글픔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 역시 내가 잘못 보았는지도 모른다. - P354

"하지만 이따금 한없이 처량해지는 순간이 없다는 얘기는 물론 아닙니다. ‘내 인생에서 얼마나 끔찍한 실수를 저질렀던가.‘ 하고 자책하게 되는 순간들 말입니다. 그럴 때면 누구나 지금과 다른 삶, 어쩌면 내 것이 되었을지도 모를 더나은‘ 삶을 생각하게 되지요. 이를테면 저는 스티븐스 씨당신과 함께 했을 수도 있는 삶을 상상하곤 한답니다. 제가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을 트집 잡아 화를 내며 집을 나와버리는 것도 바로 그런 때인 것 같아요. 하지만 한 번씩 그럴 때마다 곧 깨닫게 되지요.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남편곁이라는 사실을. 하긴, 이제 와서 시간을 거꾸로 돌릴 방법도 없으니까요. 사람이 과거의 가능성에만 매달려 살 수는없는 겁니다. 지금 가진 것도 그 못지않게 좋다. 아니 어쩌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닫고 감사해야 하는 거죠." - P364

"달링턴 나리는 나쁜 분이 아니셨어요. 전혀 그런 분이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에게는 생을 마감하면서 당신께서 실수했다고 말씀하실 수 있는 특권이라도 있었지요. 나리는 용기 있는 분이셨어요. 인생에서 어떤 길을 택하셨고그것이 잘못된 길로 판명되긴 했지만 최소한 그 길을 택했노라는 말씀은 하실 수 있습니다. 나로 말하자면 그런 말조차 할 수가 없어요. 알겠습니까? 나는 ‘믿었어요. 나리의 지혜를 긴 세월 그분을 모시면서 내가 뭔가 가치 있는 일을하고 있다고 믿었지요. 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말조차 할수 없습니다. 여기에 정녕 무슨 품위가 있단 말인가 하고 나는 자문하지 않을 수 없어요." - P371

한 걸음 더 나아가 전문가에게 농담은 결코 터무니없는 의무가 아니라 주인의 입장에서 얼마든지 기대할 수 있는 의무라는 생각마저 든다. 물론 나는 농담의 기술을 발전시키고자 이미 많은 시간을 투자해 왔지만 내 모든 역량을 바쳐 농담이라는 이 직무에 접근한 적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내일 달링턴 홀에 돌아가면 새로운 각오로 연습에임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 패러데이 어르신은 아직 일주일 더 있어야 돌아오신다. 그래서 내 주인께서 돌아오실 즈음에는 그분이 흐뭇하게 감탄하실 만한 수준에 이르러 있으면 좋겠다. - P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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