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가 현재 석탄에 의존하는 한 가지 이유는 산림 훼손이다. 15세기와 16세기가 되자 스코틀랜드 숲 지대의 95퍼센트가 벌목되었다. 남은 연료는 땅속에 있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공장의 보일러와대다수 가정의 난로에서 나무가 사라졌는데도 나무는 말 그대로 석탄산업을 떠받치고 있다. 탄광의 모든 갱도는 돌의 무게에 작용하는 중력과의 도박이다. 탄광 연보와 탄광 조사관 보고서는 탄광주의 지질학적 도박에 목숨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으로 가득하다. 이들들은은 "천장이 무너지고 석탄이 무너지고돌이 무너지고잔해가 무너져 죽었다. 수백 년이 지나도록, 재난을 막아줄 것이라고는 나무 말뚝과 가로대로 만든 ‘갱도지주차‘뿐이었다. 현지 공급량이 턱없이 부족했던 탓에, 러시아, 스칸디나비아, 남유럽에서 잘라 온받침목들이 포스강에 늘어선 선착장에 하역되었다. 1930년대가 되어서야 스코틀랜드 지주 젠트리 계급은 땅을 조림지로 전환하여 갱도지주를 공급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광부들은 목숨을 부지하려면 갱도지주의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나무는 부서지기 전에 끼익, 빽하는 소리를 낸다. 뒤틀린 나무의 비명 소리는 천장이 무너지기 전에피신하라는 신호였다. 탄광주들이 갱도지주를 철제로 교체한 것은 철의 뛰어난 강도로 보건대 개선인 것 같았지만, 문제는 경고음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철은 사전 경고 없이 파국적으로 무너진다. 이 때문에 광부들은 목재 갱도지주를 철제 지주에 덧대어 청각적 조기 경보 시스템을 복원했다. 광부들의 목숨을 구한 공로는 카나리아보다 나무에게 돌아가야 한다. 카나리아는 21세기의 혁신적 발견으로, 재난이 닥친 뒤에 구조대원들이 주로 활용했다. - P152

 어떤 지역이 부유해지면 자기네 숲을 보호하고 숲 면적을 증가시킨다. 하지만 목재 수요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수입이 증가하여 목재 수입국의 무성한 숲 지대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산림 훼손이 일어날 것이다.
인구밀도가 높은 유럽 북부 나라들은 현지의 정치적 압력이 아니더라도 임목만 가지고는 전력 수요를 충당할 수 없다. 땅과 숲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따라서 목재 펠릿을 다른 곳에서 구해야 한다. 미국 남동부의 목재 소유주들은 국내 판매량이 당장 급증할 기미가 없으므로 기꺼이 유럽 구매자들과 장기 계약을 맺는다.
각국의 국민과 나무는 예전에는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었으나 이제는 단단히 매여 있다. 영국 가정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캐롤라이나와 조지아의 숲과 조림지가 벌목된다. 파운드로 납부된 세금은 달러로 짓는 펠릿 공장에 흘러든다. - P156

펠릿이든 석유, 재생가능 에너지이든 아니든 수입 연료는 그 사회의 에너지원에 대한 모든 감각적 연결의 끈을 끊는다. 우리의 연료 탱크는 세상에 연결되어 있으나 우리의 몸과 마음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중석기인처럼 불에 의존하나 이제는 화덕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지구적 에너지 교역의 이러한 약점은 구체적인 정책 규제보다 더 심각하다. 규제는 다시 쓰면 되지만 단절은 복구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유럽의 ‘녹색‘은 사실 무지개색이다. 전 세계에 걸쳐 식물에게 수집되고 정책의 안개를 통해 굴절된 햇빛의 여러 색깔인 것이다. 이 무지개가 땅에 닿는다. 유럽 시장에 도착한 목재, 에탄올, 바이오디젤은 미국, 캐나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크라이나,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의 프레리와 숲에서 온 것이다. 이곳에서의 확장된 삶의 경험은 에든버러, 런던, 브뤼셀의 재생가능 에너지 정책에 몸으로 체득한 지식을 더할것이다. - P159

우렁찬 소리는 폰데로사소나무의 뻣뻣한 바늘잎에서 난다. 다른 나무의 잎은 흐르는 공기에 순응하지만 폰데로사소나무는 구부러지지않는다. 가지와 잔가지가 바람에 까닥거릴지언정 바늘잎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바늘잎은 수천 개의 굳센 살로 바람을 써레질하여 바람에 사납게 골을 판다. 이 골에서 나는 소리는 잔향이 없다. 팔락팔락 흔들리는 잎의 에너지가 하나도 남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나무는 바람의 성격을 시시각각 알려준다. 돌풍이 지나가면 음역을 한껏 올렸다가 공기의 움직임이 달라짐에 따라 가늘어지거나 부풀거나 잦아든다.
존 뮤어John Muir도 폰데로사소나무의 소리를 들었는데, 그의 묘사는 내게 수수께끼였다. 바람에 대한 폰테로사소나무의 반응에서 그는 바늘잎에서 나는 "최상의 음악"과 "자유롭고 날갯짓하는 듯한 허망"을 들었다. 써레질은 어디로 갔나? 다급한 경고음은? 뮤어는 자신의 솔숲에서 아이올로스(호메로스, 「오디세이아』에 등장하는 바람의 지배자_옮긴이)의 화음을 들었지만 나는 아리엘(셰익스피어, 「폭풍」에 등장하는 공기의 정링_옮긴이)이 감옥에서 허공을 할퀴며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이렇듯상반된 경험은 기질의 차이에서 비롯하는지도 모른다. 뮤어의 끊임없는 황홀경은 필적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식물 분류학 문헌을 읽어보니 뮤어가 들은 소리와 내가 들은 소리는 서로 다른 방언이었다.
폰데로사소나무는 변이가 다양한 나무다. 나뭇진 냄새가 장소에 따라 다를 뿐 아니라 언어의 형태와 뻣뻣함도 지역적 변이가 있다. 로키산맥의 폰데로사소나무는 바늘잎 길이가 캘리포니아에 있는 뮤어의 폰데로사소나무에 비해 절반에 불과하다. 로키산맥의 나무는 바늘잎표면 아래의 두터운 세포벽 때문에 더 뻣뻣해서 태평양 연안에서 자라는 말보다는 철선솔에 가깝다. 바늘잎은 짧고 뻣뻣할수록 소리가세다. 아리엘은 캘리포니아에 행복하게 사로잡힌 채 비교적 촉촉한 흙에 뿌리 내린 나무에서 달콤하게 노래하는 듯하다. 건조한 여름과 무거운 겨울 눈에 적응한 바늘잎이 신음을 내뱉는 것은 메마른 콜로라도 산지에서뿐이다. - P166

이따금 용광로의 열이 화염으로 번지기도 하는데, 폰테로사소나무는 여기에도 대비가 되어 있다. 늦여름 비는 기대하기 힘들지만 번개는그렇지 않다. 뇌우 때문에 숲을 찾지 못한 적도 여러 번이다. 지금 내게 그늘을 드리운 나무를 비롯한 상당수는 껍질에 골이 파여 있다. 이좋은 우동지부터 뿌리까지 죽 이어진다. 벌어진 곳을 막으려고 상처좌우로 껍질이 부풀어 있지만, 번개로 인한 상처가 완전히 치유되는일은 드물며 헐벗은 목질부는 고산의 햇빛을 고스란히 받아 회색으로 바랜다.
내 엉덩이 밑의 마른 바늘잎과 풀은 불이 엄청나게 잘 붙는다. 번개가 숲바닥에 불을 피우면 불꽃이 숲밑을 따라 기어오르거나 솟구친다. 이렇듯 땅에서 불이 나면 숲은 새카맣게 타버리지만 나이 든 폰데로사소나무는 용의 피부처럼 두꺼운 판으로 이루어진 껍질이 열과 화염을 막아주어 무사하다. 아스펜을 비롯한 다른 나무들은 불에 견디는 힘이 약하며, 약한 산불은 폰데로사소나무의 경쟁자들을 몰아낸다. 10년에 한 번꼴로 화마가 휩쓸고 지나가면 폰데로사소나무는 승승장구한다.
그렇다고 해서 용이 어떤 불에도 무적인 것은 아니다. 어떤 불은 더뜨겁고 더 높이 올라간다. 이런 불은 땅바닥에서 숲지붕까지 기어올라가 무성한 잔가지를 집어삼킨다. 우듬지가 절반 이상 타면 폰데로사소나무는 죽는다. 사나운 불은 살아있는 나무를 모조리 쓸어버린다. 숲이 복원되려면, 씨앗이 싹트고 어린나무가 생장하는 수십 년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따라서 숲의 성격은 큰불과 작은 불이 얼마나 자주 찾아오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산불의 리듬을 좌우하는 요인은 여러가지다. 산지기와 땅임자는 작은 불을 진화하여 큰불의 연료를 비축하고, 가뭄으로 약해진 소나무의 향은 치명적인 나무좀 떼를 끌어들여 마른 땔나무를 남기며, 무엇보다 습도와 온도의 변화-단기적 날씨변동과 장기적 기후 추세가 불을 부추기거나 억누른다. - P173

산불은 열대림과 한대림을 둘 다 변형시키고 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개간을 위해 놓은 산불이 번져 연기가 여러 나라를 덮기도 한다. 이 나라들에서는 미립자 물질-불타는 우림에서 발생하여 공기 중에 떠다니는 작은 부스러기 - 을 들이마시는 것이 공중 보건에 심각한문제를 일으켜 국가 간 협정으로 산불을 통제하려 한다. 아마존에서는 가뭄으로 인한 산불 때문에 (대규모 개간의 피해를 입지 않은 곳에서조차)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 한대림 극북 지대에서는 재생 속도가 산불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지구적 관점에서 볼 때 이 모든 산불은 탄소의 대기 중 유출을 가속화한다. 전前산업 시대 이후로 대기중에 초과 방출된 이산화탄소의 5분의 1이 산불에서 비롯했다.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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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어지는 회오리 속에서 돌고 돌고
매는 매잡이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산산이 해체된다. 중심이 버티지 못한다.
그저 무정부 상태가 세상에 풀려 퍼지고
피로 흐려진 조수가 풀리고 사방에서
무구함을 받드는 의식이 물에 잠겨 가라앉는다.
가장 훌륭한 이들은 모든 신념을 잃고, 가장 저열한 자들은치열한 열정으로 충만하다.

틀림없이 뭔가 계시가 임박해 있다.
틀림없이 재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재림! 그 단어를 내뱉자마자
‘세계정신‘에서 광막한 이미지가 나와
내 시야를 괴롭힌다. 어딘가 사막의 모래 속에서
사자의 몸에 인간의 머리가 붙은 형상이
태양처럼 무표정하고 무자비한 시선이
느릿한 허벅지를 움직이고, 그 주위로 온통
성난 사막 새들의 그림자가 비틀거린다.
어둠이 다시 툭 떨어진다. 그러나 이제 나는 안다
이십 세기에 걸친 돌 같은 잠이
흔들리는 요람에 동요해 악몽으로 변했다는 걸
그리고 이제 어떤 거친 짐승들이, 마침내 도래한 그들의 시간을 맞아,
태어나 베들레헴을 덮치려 웅크리고 있는가?

- W. B. 예이츠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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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미터 떨어진 곳에 너비가 커다란 문만 한 미국참나무white ooak-쓰러져 있다. 사정없이 무너지면서 털썩 소리가 났다. 뿌리는 20미터밖까지 흙을 뿌리며 포탄 구덩이 같은 구멍을 남겼다. 또 다른 거목 설탕단풍나무도 같은 날 몰아친 봄 폭풍에 쓰러졌다. 온전한 뿌리에 불은 밑동만 남기고 줄기가 대부분 아래로 꺾였다. 똑바로 선 조각들은 연필만큼 가늘지만 내 팔이 닿지 않을 만큼 높다. 쪼개진 나무를 손으로 문지르면서 튀어나온 부분을 뽑을 때마다 낮게 웅 소리가 난다.
붉은물푸레나무와 마찬가지로 두 고목도 쓰러지면서 숲지붕에 구멍을 냈다. 둘 다 폭풍에 통나무가 갈라졌다. 이제 숲의 뭇 생명이 들어가 잔치를 벌일 것이다. 높이서 내려다보면 이런 도목倒木은 숲에 무작위로 뿌려진 점처럼 보인다. 하나하나가 숲 생명의 고갱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각 점의 생명이 점차 주변으로 퍼져 나간다.
숲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숲에는 도목 73 페타그램 (73억 톤)이 있다고 한다. 이는 숲의 5분의 1에 해당한다. 더는 생전의 모습을 알아볼수 없는 죽은 유기물이 되어 흙으로 돌아간 나무의 양은 살아있는 나무를 능가한다. - P128

기억, 대화, 연결로 가득한 존재-사람, 나무, 박새-가 죽으면 생명의 그물망이 지능과 생명의 중심축을 잃는다. 망자와 밀접하게 연결된 이들에게는 이 손실이 뼈아프다. 숲에서는 비탄의 생태학적 형상이 펼쳐진다. 나무가 죽으면 그에 의존하던 생물은 자신에게 생명을 준 관계를 잃는다. 나무의 동반자와 적 모두 살아있는 나무를 새로 찾아야한다. 그러지 못하면 죽는다. 이 관계에 간직된, 숲에 대한 이해도 대부분 사라진다. 나무가 숲의 한 자리에서 평생 습득한 지식 빛, 물,
바람, 살아있는 공동체의 성질 -도 없어진다.
하지만 죽은 나무는 자신의 몸 속과 주위에서 새로운 생명의 촉매가 됨으로써 새로운 연결과, (그럼으로써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낸다. 이 창조 과정은 교훈적이거나 명령적이지 않다. 나무는 자신이 아는것을 전수하여 새로운 버전을 재창조하지 않는다. 죽음은 나무 안팎에서 수천의 상호작용을 만들어내는데, 그 하나하나에서 생태적 기회가 열린다. 관리되지 않고 통제되지 않는 이 다수성에서 새로운 관계에 담긴 새로운 지식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숲이 생겨난다. 죽은 나무는 피뢰침처럼 주변의 잠재력을 자신의 몸으로 끌어당기며 흩어진 것을 집중하고 강화한다. 하지만 이 벼락은 땅으로 흘러들어 사라지지않는다. 생명은 죽은 나무의 밀접한 연결들을 통해 살아가며 활력과 표현의 다양성을 증가시킨다.
우리의 언어는 나무의 이러한 내세를 깨닫는 일에 서툴다. ‘부패, 분해, 고목枯木, 죽은 나무‘ 같은 헐거운 단어로는 이 생생한 과정을 묘사할 수 없다. 부패는 가능성의 폭발이다. 분해는 살아있는 공동체의 재구성이다. 고목은 새 생명의 용광로다. 죽은 나무는 활기찬 창조성이며 ‘자아‘를 그물망에 내려놓음으로써 소생한다. - P130

삼지닥나무 속껍질을 짓이겨 물에 넣으면 식물 세포에서 섬유 가닥이 떨어져 나와 떠다닌다. 섬유소 분자 하나하나는 당의 가닥으로, 최대 15,000개가 사슬로 연결되어 있다. 이 가닥은 물과 히비스커스 점액에 뜬 채 서로 엮이고 짜인다. 찬물은 발효를 방지하여 점성이 있는현탁액을 만드는데, 여기서 최상의 종이가 나온다. 에치젠의 언덕들은농사에는 알맞지 않을지 모르나, 가와카미 고젠은 산지에 맞는 공예술을 전해주었다. 나무조차 따뜻한 골짜기에 비해 섬유가 길어서 질기고 윤기 나는 종이를 만들 수 있다. 에치젠은 일본 제지업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다이묘, 쇼군, 정부에 종이를 독점 공급했다. 물과 섬유가담긴 이 통으로부터 일본은 문자 문화를 만들어냈다. 훗날 서양과 교역이 시작되자 종이는 유럽으로 전해졌다. 유럽의 제지술은 아시아보다 1000년 뒤처져 있었다. 렘브란트는 동판화를 찍을 때 일본 종이를 즐겨 썼다. 아마도 에치젠산이었을 것이다.
고운 체로 물을 뜨면 섬유소가 미로를 이루고 있는데, 이것을 펴면 엉킨 가닥들이 고정된다. 물에 담갔다 뺐다를 반복하여 종이 표면에 광택을 낸다. 살아있는 식물 세포 안에서 물을 붙잡아두는 모세관 작용이 식물 섬유를 빨아들이고 편다. 압착기로 누르면 물이 종이에서 빠져나온다. 젖은 종이는 수분을 잃으면서 질겨진다. 마지막으로, 물이 빠져나가면서 섬유소를 가까이 잡아당겨 식물의 원자가 다른 원자를만나 원자 대 원자로 결합된다. - P133

구조물에 개암이 얼마나 풍부하던지 발걸음을 디딜 때마다 껍데기쪼개지는 소리가 날 정도였다. 개암에 들어 있는 영양소는 열매 한가운데 파묻혀 있는 작은 배아세포 덩어리에 공급하기 위해 최고만 뽑아낸 것으로, 갓 싹이 튼 개암에 필요한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비타민이 모두 들어 있다. 열매의 60퍼센트는 지방이며 나머지는 단백질과탄수화물, 약간의 섬유질이다. 사람은 견과를 두세 줌만 먹으면 오전일과에 필요한 에너지를 모두 충당할 수 있다. 개암은 보관이 쉬워서기근을 대비한 보험으로 저장해둘 수 있다. 구운 개암은 몇 개월을 보관해도 영양소가 거의 줄지 않는다. 구우면 열매의 향도 진해진다. 중석기 식단에서 개암이 다른 음식과 어떻게 어우러졌는지는 아쉽게도수수께끼다. 고고학 기록은 대부분 뒤죽박죽 쓰레기 더미에서 발굴한것이어서 개별 식단을 구체적으로 밝혀내기엔 아직 역부족이다.
영국, 스칸디나비아, 북유럽 전역의 여러 유적지와 마찬가지로 이중석기 마을에서는 개암이 주식이었다. 고고학자들은 인류사에서 이시기를 ‘견과 시대nut age‘라고 부르기도 한다. 훗날 기온이 올라가고 큰나무가 등장하자 개암나무가 줄어 식량 공급이 부족해졌다. 신석기인이 땅을 갈아 매년 곡식을 재배하는 중노동을 해야 했던 것은 즐겨 이용하던 나무와 견과 수확이 감소한 탓일 수도 있다.
중석기 화덕의 역할은 요리와 난방에 국한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화덕 주위에서 교류하고 친목을 다졌다. 현존 수렵·채집인의 문화를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모닥불가에서는 대화의 성격도 달라진다. 낮 동안의 대화 주제는 먹고사는 문제, 불만, 농담이지만, 불가에서는 상상력이 꽃피고 이야기가 탄생한다. 사람들은 사귀고 헤어지는 일에 대해, 영적 세계에 대해, 결혼과 친족에 대해 이야기한다. 불은 공동체를 담금질하고 가닥들을 합치는 듯하다. 우리의 마음은 불 소리에 특별히 적응한 것처럼 보인다. 심리학 실험에서 피험자에게 나무가 타서 갈라지는 소리를 들려주었더니 혈압이 낮아지고 사회성이 증가했다. 불 소리를 듣지 않고 보기만 하는 것은 효과가 거의 없었다.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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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세상에는 진심으로 사과받지 못한 사람들의 나라가 있을 것이다. 내가 많은 걸 바라는 건 아니야. 그저 진심어린 사과만을 바랄 뿐이야, 자기 잘못을 인정하기를 바랄 뿐이야. 그렇게 말하는 사람과 연기라도 좋으니 미안한 시늉이라도 해주면 좋겠다고 애처롭게 바라는 사람과, 그런 사과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애초에 이런 상처도 주지 않았으리라고 체념하는 사람과, 다시는예전처럼 잠들 수 없는 사람과, 왜 저렇게까지 자기감정을 주체하지못하고 드러내라는 말을 듣는 사람과, 결국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없다는 벽을 마주한 사람과, 여럿이 모여 즐겁게 떠드는 술자리에서 미친 사람처럼 울음을 쏟아내 모두를 당황하게 하는 사람이 그 나라에 살고 있을 것이다. - P252

새비 아주머니는 희미하게나마 의식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이불위에 누워서 증조모가 말을 하면 눈짓으로 반응했다.
새비 아주머니의 시선은 증조모의 몸을 지나서, 마음을 지나서, 어쩌면 영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장소에까지 다다랐다. 그곳에서, 아직 다섯 살도 되지 않은 어린 증조모는 햇볕에 따뜻하게 데워진 돌멩이를 안고서 내 동무야, 내 동무야, 말을 걸고 있다. 그런 작은 따뜻함이라도 간절해서, 하지만 사람은 너무 무서워서 증조모는 마당 구석에 쪼그려앉아서 자기 그림자를 보고 있다. - P288

한 사람의 삶을 한계 없이 담을 수 있는 레코드를 만들면 어떨까.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릴 때의 옹알이 소리, 유치의 감촉, 처음 느낀 분노, 좋아하는 것들의 목록과 꿈과 악몽, 사랑, 나이듦과 죽기 직전의 순간까지 모든 것을 담은 레코드가 있다면 어떨까.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의 삶의 모든 순간을 오감을 다 동원해 기록할 수 있고 무수한 생각과 감정을 모두 담을 수 있는 레코드가 있다면 그건 그사람의 삶의 크기와 같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비가시권의 우주가 얼마나 큰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한 사람의 삶 안에도 측량할 수없는 부분이 존재할 테니까. 나는 할머니를 만나 할머니의 이야기를들으며 그 사실을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지금의 나이면서 세 살의 나이기도 하고, 열일곱 살의 나이기도 하다는 것도. 내게서 버려진 내가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 그대로남아 있었다는 사실도 그애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관심을 바라면서, 누구도 아닌 나에게 위로받기를 원하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종종 눈을 감고 어린 언니와 나를 만난다. 그애들의 손을 잡아보기도 하고 해가 지는 놀이터 벤치에 같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학교에 갈 채비를 하던 열 살의 나에게도, 철봉에 매달려 울음을 참던 중학생의 나에게도, 내 몸을 해치고 싶은 충동과 싸우던 스무 살의 나에게도, 나를 함부로 대하는 배우자를 용인했던 나와 그런 나를 용서할 수 없어 스스로를 공격하기 바빴던 나에게도 다가가서 귀를 기울인다. 나야. 듣고 있어. 오랫동안하고 싶었던 말을 해줘. - P336

나는 오랜만에 할머니 집 소파에 앉아서 집을 둘러봤다. 텔레비전장식장 위에 처음 보는 액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나는 가까이로 가서 액자를 들여다봤다. 액자 속에는 거북이 해변에서 나와 언니, 할머니와 증조할머니가 손을 잡고 서 있는 사진이 들어 있었다.
"할머니."
나는 싱크대 앞에 서서 나를 바라보는 할머니에게 액자를 들어 보였다.
할머니는 내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잘 안다는 듯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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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닥쳤을 때는 사방을 돌아봐도 막막할 뿐이다. 땅이라도뚫고 들어가고 싶은 마음만 들어서 한 치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다행히 나는 두 눈을 지니고 있어 조금이나마글자를 알고 있으므로, 손에 한 권의 책을 든 채 마음을 달래고있노라면 무너진 마음이 약간이라도 안정이 된다. 만약 나의 눈이 비록 오색을 볼 수 있다고 해도, 책을 마주하고서 마치 깜깜한 밤처럼 까막눈이었다면 장차 어떻게 마음을 다스렸을까.

슬픈 일을 당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잊으려고만 한다. 그러나 슬픔이란 잊으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자기 내면 깊숙이자리 잡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슬픔을 위로하는 방법은 슬픔 속에서 찾아야 한다. 만약 기쁨이나 즐거움과 같은 다른 감정으로 슬픔을 극복하려고 한다면 거짓 감정으로 참된 감정을 덮어 버리는 어리석은 짓일 뿐이다. 내면 깊숙이 숨어 있던 그 슬픔은 언제 어디서든 다시 자신을 덮치게 되어있다.
그렇다면 슬픔 속에서 슬픔을 위안할 방법을 찾으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슬픔이 닥쳤을 때 거짓 감정으로 자신을 속이지 말고 슬퍼할 수 있는 한 실컷 슬퍼하라는 말이다. 슬픔이 지극해진 후에야 비로소 슬픔을 넘어설 수 있다. 어디 슬픔만 그렇겠는가? 모든 감정이 마찬가지다. 기쁘면 실컷 기뻐하고, 즐거우면 실컷 즐거워하고, 화가 나면 실컷 화를 내고, 두려우면 실컷 두려워하고, 좋아하면 실컷 좋아하고, 미워하면 실컷 미워해야 한다. 거짓으로 자신의 감정을 속이는 것보다 차라리 어린아이처럼 진솔하게 자신의 감정을 분출하는 것이 더 낫다. 자신에게도 정직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정직한 감정이란 바로 그와 같아야 한다.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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