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미터 떨어진 곳에 너비가 커다란 문만 한 미국참나무white ooak-쓰러져 있다. 사정없이 무너지면서 털썩 소리가 났다. 뿌리는 20미터밖까지 흙을 뿌리며 포탄 구덩이 같은 구멍을 남겼다. 또 다른 거목 설탕단풍나무도 같은 날 몰아친 봄 폭풍에 쓰러졌다. 온전한 뿌리에 불은 밑동만 남기고 줄기가 대부분 아래로 꺾였다. 똑바로 선 조각들은 연필만큼 가늘지만 내 팔이 닿지 않을 만큼 높다. 쪼개진 나무를 손으로 문지르면서 튀어나온 부분을 뽑을 때마다 낮게 웅 소리가 난다. 붉은물푸레나무와 마찬가지로 두 고목도 쓰러지면서 숲지붕에 구멍을 냈다. 둘 다 폭풍에 통나무가 갈라졌다. 이제 숲의 뭇 생명이 들어가 잔치를 벌일 것이다. 높이서 내려다보면 이런 도목倒木은 숲에 무작위로 뿌려진 점처럼 보인다. 하나하나가 숲 생명의 고갱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각 점의 생명이 점차 주변으로 퍼져 나간다. 숲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숲에는 도목 73 페타그램 (73억 톤)이 있다고 한다. 이는 숲의 5분의 1에 해당한다. 더는 생전의 모습을 알아볼수 없는 죽은 유기물이 되어 흙으로 돌아간 나무의 양은 살아있는 나무를 능가한다. - P128
기억, 대화, 연결로 가득한 존재-사람, 나무, 박새-가 죽으면 생명의 그물망이 지능과 생명의 중심축을 잃는다. 망자와 밀접하게 연결된 이들에게는 이 손실이 뼈아프다. 숲에서는 비탄의 생태학적 형상이 펼쳐진다. 나무가 죽으면 그에 의존하던 생물은 자신에게 생명을 준 관계를 잃는다. 나무의 동반자와 적 모두 살아있는 나무를 새로 찾아야한다. 그러지 못하면 죽는다. 이 관계에 간직된, 숲에 대한 이해도 대부분 사라진다. 나무가 숲의 한 자리에서 평생 습득한 지식 빛, 물, 바람, 살아있는 공동체의 성질 -도 없어진다. 하지만 죽은 나무는 자신의 몸 속과 주위에서 새로운 생명의 촉매가 됨으로써 새로운 연결과, (그럼으로써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낸다. 이 창조 과정은 교훈적이거나 명령적이지 않다. 나무는 자신이 아는것을 전수하여 새로운 버전을 재창조하지 않는다. 죽음은 나무 안팎에서 수천의 상호작용을 만들어내는데, 그 하나하나에서 생태적 기회가 열린다. 관리되지 않고 통제되지 않는 이 다수성에서 새로운 관계에 담긴 새로운 지식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숲이 생겨난다. 죽은 나무는 피뢰침처럼 주변의 잠재력을 자신의 몸으로 끌어당기며 흩어진 것을 집중하고 강화한다. 하지만 이 벼락은 땅으로 흘러들어 사라지지않는다. 생명은 죽은 나무의 밀접한 연결들을 통해 살아가며 활력과 표현의 다양성을 증가시킨다. 우리의 언어는 나무의 이러한 내세를 깨닫는 일에 서툴다. ‘부패, 분해, 고목枯木, 죽은 나무‘ 같은 헐거운 단어로는 이 생생한 과정을 묘사할 수 없다. 부패는 가능성의 폭발이다. 분해는 살아있는 공동체의 재구성이다. 고목은 새 생명의 용광로다. 죽은 나무는 활기찬 창조성이며 ‘자아‘를 그물망에 내려놓음으로써 소생한다. - P130
삼지닥나무 속껍질을 짓이겨 물에 넣으면 식물 세포에서 섬유 가닥이 떨어져 나와 떠다닌다. 섬유소 분자 하나하나는 당의 가닥으로, 최대 15,000개가 사슬로 연결되어 있다. 이 가닥은 물과 히비스커스 점액에 뜬 채 서로 엮이고 짜인다. 찬물은 발효를 방지하여 점성이 있는현탁액을 만드는데, 여기서 최상의 종이가 나온다. 에치젠의 언덕들은농사에는 알맞지 않을지 모르나, 가와카미 고젠은 산지에 맞는 공예술을 전해주었다. 나무조차 따뜻한 골짜기에 비해 섬유가 길어서 질기고 윤기 나는 종이를 만들 수 있다. 에치젠은 일본 제지업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다이묘, 쇼군, 정부에 종이를 독점 공급했다. 물과 섬유가담긴 이 통으로부터 일본은 문자 문화를 만들어냈다. 훗날 서양과 교역이 시작되자 종이는 유럽으로 전해졌다. 유럽의 제지술은 아시아보다 1000년 뒤처져 있었다. 렘브란트는 동판화를 찍을 때 일본 종이를 즐겨 썼다. 아마도 에치젠산이었을 것이다. 고운 체로 물을 뜨면 섬유소가 미로를 이루고 있는데, 이것을 펴면 엉킨 가닥들이 고정된다. 물에 담갔다 뺐다를 반복하여 종이 표면에 광택을 낸다. 살아있는 식물 세포 안에서 물을 붙잡아두는 모세관 작용이 식물 섬유를 빨아들이고 편다. 압착기로 누르면 물이 종이에서 빠져나온다. 젖은 종이는 수분을 잃으면서 질겨진다. 마지막으로, 물이 빠져나가면서 섬유소를 가까이 잡아당겨 식물의 원자가 다른 원자를만나 원자 대 원자로 결합된다. - P133
구조물에 개암이 얼마나 풍부하던지 발걸음을 디딜 때마다 껍데기쪼개지는 소리가 날 정도였다. 개암에 들어 있는 영양소는 열매 한가운데 파묻혀 있는 작은 배아세포 덩어리에 공급하기 위해 최고만 뽑아낸 것으로, 갓 싹이 튼 개암에 필요한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비타민이 모두 들어 있다. 열매의 60퍼센트는 지방이며 나머지는 단백질과탄수화물, 약간의 섬유질이다. 사람은 견과를 두세 줌만 먹으면 오전일과에 필요한 에너지를 모두 충당할 수 있다. 개암은 보관이 쉬워서기근을 대비한 보험으로 저장해둘 수 있다. 구운 개암은 몇 개월을 보관해도 영양소가 거의 줄지 않는다. 구우면 열매의 향도 진해진다. 중석기 식단에서 개암이 다른 음식과 어떻게 어우러졌는지는 아쉽게도수수께끼다. 고고학 기록은 대부분 뒤죽박죽 쓰레기 더미에서 발굴한것이어서 개별 식단을 구체적으로 밝혀내기엔 아직 역부족이다. 영국, 스칸디나비아, 북유럽 전역의 여러 유적지와 마찬가지로 이중석기 마을에서는 개암이 주식이었다. 고고학자들은 인류사에서 이시기를 ‘견과 시대nut age‘라고 부르기도 한다. 훗날 기온이 올라가고 큰나무가 등장하자 개암나무가 줄어 식량 공급이 부족해졌다. 신석기인이 땅을 갈아 매년 곡식을 재배하는 중노동을 해야 했던 것은 즐겨 이용하던 나무와 견과 수확이 감소한 탓일 수도 있다. 중석기 화덕의 역할은 요리와 난방에 국한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화덕 주위에서 교류하고 친목을 다졌다. 현존 수렵·채집인의 문화를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모닥불가에서는 대화의 성격도 달라진다. 낮 동안의 대화 주제는 먹고사는 문제, 불만, 농담이지만, 불가에서는 상상력이 꽃피고 이야기가 탄생한다. 사람들은 사귀고 헤어지는 일에 대해, 영적 세계에 대해, 결혼과 친족에 대해 이야기한다. 불은 공동체를 담금질하고 가닥들을 합치는 듯하다. 우리의 마음은 불 소리에 특별히 적응한 것처럼 보인다. 심리학 실험에서 피험자에게 나무가 타서 갈라지는 소리를 들려주었더니 혈압이 낮아지고 사회성이 증가했다. 불 소리를 듣지 않고 보기만 하는 것은 효과가 거의 없었다.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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