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성 해방은 선택과 통제에 관한 것이다. 즉, 학대와 정반대의 것이다. 오히려 섹슈얼리티와 관련해, 특히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관련해 그동안 억눌린 생각들을 공개적으로 말하기 시작하자 억압적 행동에 도전하기가 더 쉬워졌다.  - P270

 자본주의는 성 개방 풍조와 여성의 성적 자유 증대를 흡수해서 이윤 창출에 활용하는 재주를 보여 줬다. 1960년대에 세계 전역에서 벌어진 대중적투쟁과 반란에도 불구하고 체제는 살아남았고, 이윤이 원동력인 사회는 투쟁의 성과들을 왜곡했다. 
....
기업들은 전에는 미처 몰랐던 성소수자들의 구매력을 활용하는 이른바 "핑크경제"를 창출했다. - P274

포르노는 여성 억압의 한 징후이지 그 근원이아니다. 여성은 가장 초기의 포르노 사진과 인쇄물이 대량생산되기 훨씬 전부터 억압받았다. 포르노를 검열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고 오늘날에는 그것이 가능하지도 않다. 특정 형태의 포르노, 예를 들어 폭력적 내용을 포함한 포르노를 금지하는 것은 그럴듯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경찰, 공무원, 판사 등의 국가기관에 우리의 섹슈얼리티를 단속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면 그들은 그 권한을 이용해 자신들이 불온하다고 여기는 글과 이미지도 금지할 것이다. 그들은 성소수자의 글이나 심지어 안전한 성생활에 대한 구체적 조언들도 겨냥할 수 있다.아동 학대를 담은 포르노는 이미 다른 법령으로 금지돼있다. - P294

(롤리타 효과)의 저자는 "여학생들은 자신의 욕망이 언제나 위험하고 해롭다고 여겨지는 상황(그와 동시에 남학생들의 성적 관심을 끌도록 부추겨지는 상황)에서는 성관계에서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배우지도 못한다"고 했다. 여성은 남성의 욕망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배우지만 자신의 욕망을 어떻게 계발해야 하는지는 배우지 못한다. 미국에서 10대 임신율은 금욕만을 강조하는 성교육이 최고조였을 때 가장 높았다. 오늘날 10대 임신율은 역대 최저 수준인데 그 이유는 여러 가지다. 더 우수한 포괄적 성교육이 더 많은 학교에서 이뤄지고 있고 피임 기구가 더 많이 사용되고 있는 점이 주요한 이유다. 연구자들은 "혼전금욕만을 장려하는 성교육 프로그램은 성관계를 중단시키거나 심지어 늦추는 데도 전혀 효율적이지 않다는 것이 입증됐다"고 결론내린다.
- P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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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부에서는 제1물결에 참여했던 여성들과 연계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그러나 제1물결 여성들과 제2물결 여성들의 경험이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 주는 한 사건이 있었다. 한 여성해방운동 단체는 저명한 참정권 운동가이자 전국여성당의 지도자인 앨리스 폴을 1960년 신좌파가 주도한 대통령 취임 반대 집회에 초대했다. 거기서 시위자들은 "투표권을 도로 가져가라"고 외쳤다. 새로운 세대에게 투표란 민주주의를 우롱하는 행위이자 여성의 환심을 사리는 사랑발림에 지지 않았던 것이다. 여성의 투표권을 위해 싸우다 투옥되기도 했던 리스 폴에게 사람들 앞에서 함께 유권자 등록증을 불태우는 이벤트에 참여하자고 권했을 때, 폴은 "펄쩍 뛰며 대노했다."
- P195

운동의 초기부터 여러 쟁점을 놓고 격렬한 정치적 논쟁들이 있었다. 누가 진짜 적인가? 가장 중요한 투쟁은 무엇인가? 베트남 전쟁인가, 인종차별주의인가, 자본주의인가, 성차별주의인가? 여성은 어떻게 조직화해야 하는가? 이런 논쟁과 투쟁 속에서 성장한 페미니즘은 결코 하나의 특정한 이데올로기로 규정된 적이 없다. 오히려 페미니증은 언제나 서로 경합하는 여러 의미를 포괄했다.  - P196

제2물결 여성운동 당시에 이미 그 뒤 생겨날 수많은 다양한 흐름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앨리스 에컬스는 문화적 페미니즘이1970년대 초의 미국 여성해방운동에서 이미 등장할 조짐을 보이고있었다고 지적한다. 그녀는 "성계급 체제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정치적 운동"에서 "남성성을 문화적으로 과대평가하고 여성성을 파소평가하는 경향을 뒤집기 위한 대항문화 운동"으로의 전환에 주목한다. 다시 말해, 억압의 체계적·물질적 구조보다 관념과 표현을 우선시하게 된 것이다.
- P228

여성이 ‘피해자 의식‘을 버려야 한다는 주장은 ‘제3물결‘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사상의 일부와 비슷했다. 제3물결 페미니증은 포스트페미니즘과 더불어 발전했고, "별도의 도움은 필요 없다. 우리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식의 태도를 취했다. 그렇지만 페미니즘은 어떤 형태는 좋은 것이고 여전히 필요하다는 시각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
제3물결은 성차별주의를 전복하고 언어를 재구성하고자 했다. 그래서 여성들은 "나는 잡년이다", "나는 쌍년이다", "포르노가 최고야"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다녔으며 - P232

 그러나 지난 10년간 일부 페미니즘 사상은 서구의 ‘계몽주의‘, ‘근대성‘, ‘페미니즘‘이 ‘중세적‘ 이슬람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을 지지하는 담론으로 타락해 버렸다. 프랑스에서는 주요 페미니스 연합체인 전국여성 권리연합 (CNDF)이 히잡을 쓴 여성이 모임에 오지 못하게 막았으며 세계 여성의 날 집회에도 참가하지 못하게 막으려했다. 델피가 썼듯이 무슬림 여성들은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울 자격이 없는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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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그때까지 해온 모든 노력, 몇 년동안 해온 모든 공부는 바로 이 특권을 사기 위한 것이었다. 아버지가 내게 준 것 이상의 진실을 보고 경험하고, 그 진실들을 사용해 내 정신을 구축할 수 있는 특권, 나는 수많은 생각과 수많은 역사와 수많은 시각들을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스스로 자신을 창조할 수 있는능력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믿게 됐다. 지금 굴복한다는 것은 단순히 언쟁에 한번 지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그것은 내 정신의 소유권을 잃는다는 의미였다. 이것이 내게 요구되는 대가였다. 이제 이해가됐다. 아버지가 내게서 쫓고자 하는 것은 악마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 P471

좋게 봐준다 해도 나는 두 사람이었고, 내 정신과 마음은 둘로 갈라져있었다. 그 소녀가 늘 내 안에 있으면서, 아버지 집 문턱을 넘을때마다 모습을 드러냈다.
그날 밤 나는 그 소녀를 불렀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를 떠난 것이다. 그 소녀는 거울 속에 머물렀다. 그 이후에 내가 내린 결정들은 그 소녀는 내리지 않을 결정들이었다. 그것들은 변화한 사람, 새로운 자아가 내린 결정들이었다.
이 자아는 여러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변신, 탈바꿈, 허위, 배신.
나는 그것을 교육이라 부른다.
- P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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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들은 과거의 여성운동을 제1물결과 제2물결로 구분해 왔다. 제1물결은 투표권 쟁취를 위한 참정권 운동을 가리키고 제2물결은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여성해방운동을 일컫는다. 여성운동의 역사를 살펴보는 데 이것은 유용하고 중요한 출발점이다.  - P148

러시아 혁명가 나데즈다 크룹스카야는 1914년 <라보트니차) (여성 노동자) 창간호에 다음과 같이 썼다.

부르주아 여성들은 자신들의 특수한 여성의 권리를 주장한다. 그들은 언제나 남성과 대립하며 남성에게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한다. 그들에게 현 사회는 두 개의 주된 범주로 나뉘어 있다. 바로 남성과 여성이다. 남성은 모든 것을 소유하고 모든 권리를 누린다. 문제는 평등한 권리를 획득하는 것이다.
노동계급 여성에게 여성 문제는 이와 상당히 다르다. 정치의식이 있는 여성은 현 사회가 계급으로 나뉘어 있다고 인식한다. 각 계급은 특수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부르주아지와 노동계급의 이해관계는 상충한다.
- P170

실비아의 어머니인 에멀린과 언니 크리스타벨은 무엇보다 파업 노동자들이나 노동계급 여성들과 엮이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크리스타벨은 실비아에게 여성 노동자 운동이 쓸데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여성 노동자는 여성 중에서도 가장 약한 부분이야.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아? 그들은 생활이 너무 어렵고 토론을 하기에는 교육 수도 너무 낮아. 가장 약한 부분을 투쟁에 활용하는 건 분명 실수야. 우리는 선택된 여성들을 원해, 가장 강력하고 가장 지적인 여성들 말이야."28 데인저필드는 이런 계급적 분열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그는 참정권 운동의 일부가 "프롤레타리아의 분노라는 어두운 파도위에 밝고 선명한 색깔의 코르크가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고 묘사했다.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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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쓰기 위해서는 그 책들을 다른 방식으로 읽어야만 했다.
두려움이나 숭배를 마음속에서 배제해야만 했던 것이다. 버크는 영국왕정을 옹호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그가 폭군의 하수인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의 책을 집에 들이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책에 쓰인 말들을 나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고 믿으며 읽는 것은전율이 흐를 정도로 기쁜 일이었다. 그와 동일한 전율을 매디슨, 해밀턴, 제이의 글을 읽을 때도 느꼈다. 특히 그들의 결론보다 버크의 결론에 나 스스로 동조하게 될 때, 혹은 그들의 생각이 내용 면에서는 그리다르지 않고 단지 형식적으로만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그 기쁨은 더욱 컸다. 이런 방식으로 책을 읽는 것에는 대단한 가정이 포함되어 있었다. 바로 책들은 사람을 속이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나는 약한 사람이 아니라는 가정이 바로 그것이었다.
- P375

「자신이 누군지를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는 그 사람의 내부에있어요. 그가 말했다. 스타인버그 교수는 이 상황을 <피그말리온>에 비유하더군요. 타라, 그 이야기를 생각해 보세요. 케리 박사는 잠시 망설이다가 날카로운 눈과 꿰뚫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주인공은 좋은 옷을 입은 하층 노동자였어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생기기 전까지는 일단 그 믿음이 생긴 후에는 그녀가 무슨 옷을 입고있는지가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됐지요.」 - P381

<너는 내 딸인데, 내가 너를 보호했어야 했는데.>
그 말을 읽는 순간 나는 한평생을 다시 살았다. 그것은 실제 내가 살아 온 것과는 완전히 다른 삶이었다. 나는 다른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다른 사람이 됐다. 나는 마술 같은 그 말의 힘을 그때도 이해하지 못했고, 지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아는 것은 이것뿐이다. 엄마가 자신이 되고 싶었던 엄마가 내게 되어 주지 못했다는 말을 한 순간, 엄마는 처음으로 자신이 되고 싶었던 엄마가 되었다.
- P423

 그제야 수치심의 뿌리가 어디였는지 깨달았다. 내가 대리석으로 지어진 콘세르바토리에서 공부하지 않았고, 아버지가 외교관이 아니어서 수치스러운 것이아니었다. 아버지가 반쯤 정신이 나간 사람이고, 엄마가 그런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사람이어서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내 수치심은 철컥철컥 돌아가는 선단기의 칼날로부터 나를 밀어 내는 대신, 오히려 그쪽으로 나를 밀어 넣는 아버지를 가졌다는 사실에서 나온 것이었다. 내 수치심은 내가 바닥에 엎드려서 목을 눌리고 있는데도 바로옆방에서 엄마가 눈과 귀를 막고, 그 순간 내 엄마가 내 엄마가 되는것을 포기했다는 사실에서 나온 것이었다.
- P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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