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에서는 제1물결에 참여했던 여성들과 연계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그러나 제1물결 여성들과 제2물결 여성들의 경험이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 주는 한 사건이 있었다. 한 여성해방운동 단체는 저명한 참정권 운동가이자 전국여성당의 지도자인 앨리스 폴을 1960년 신좌파가 주도한 대통령 취임 반대 집회에 초대했다. 거기서 시위자들은 "투표권을 도로 가져가라"고 외쳤다. 새로운 세대에게 투표란 민주주의를 우롱하는 행위이자 여성의 환심을 사리는 사랑발림에 지지 않았던 것이다. 여성의 투표권을 위해 싸우다 투옥되기도 했던 리스 폴에게 사람들 앞에서 함께 유권자 등록증을 불태우는 이벤트에 참여하자고 권했을 때, 폴은 "펄쩍 뛰며 대노했다."
- P195

운동의 초기부터 여러 쟁점을 놓고 격렬한 정치적 논쟁들이 있었다. 누가 진짜 적인가? 가장 중요한 투쟁은 무엇인가? 베트남 전쟁인가, 인종차별주의인가, 자본주의인가, 성차별주의인가? 여성은 어떻게 조직화해야 하는가? 이런 논쟁과 투쟁 속에서 성장한 페미니즘은 결코 하나의 특정한 이데올로기로 규정된 적이 없다. 오히려 페미니증은 언제나 서로 경합하는 여러 의미를 포괄했다.  - P196

제2물결 여성운동 당시에 이미 그 뒤 생겨날 수많은 다양한 흐름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앨리스 에컬스는 문화적 페미니즘이1970년대 초의 미국 여성해방운동에서 이미 등장할 조짐을 보이고있었다고 지적한다. 그녀는 "성계급 체제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정치적 운동"에서 "남성성을 문화적으로 과대평가하고 여성성을 파소평가하는 경향을 뒤집기 위한 대항문화 운동"으로의 전환에 주목한다. 다시 말해, 억압의 체계적·물질적 구조보다 관념과 표현을 우선시하게 된 것이다.
- P228

여성이 ‘피해자 의식‘을 버려야 한다는 주장은 ‘제3물결‘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사상의 일부와 비슷했다. 제3물결 페미니증은 포스트페미니즘과 더불어 발전했고, "별도의 도움은 필요 없다. 우리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식의 태도를 취했다. 그렇지만 페미니즘은 어떤 형태는 좋은 것이고 여전히 필요하다는 시각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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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물결은 성차별주의를 전복하고 언어를 재구성하고자 했다. 그래서 여성들은 "나는 잡년이다", "나는 쌍년이다", "포르노가 최고야"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다녔으며 - P232

 그러나 지난 10년간 일부 페미니즘 사상은 서구의 ‘계몽주의‘, ‘근대성‘, ‘페미니즘‘이 ‘중세적‘ 이슬람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을 지지하는 담론으로 타락해 버렸다. 프랑스에서는 주요 페미니스 연합체인 전국여성 권리연합 (CNDF)이 히잡을 쓴 여성이 모임에 오지 못하게 막았으며 세계 여성의 날 집회에도 참가하지 못하게 막으려했다. 델피가 썼듯이 무슬림 여성들은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울 자격이 없는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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